[동영상] 24.[특강] 설법 그리고 세존에게서 범행을 실천하는 목적 & 아라한의 의미
▣ 맛지마니까야 관통법회 – 24.[특강] 설법 그리고 세존에게서 범행을 실천하는 목적 & 아라한의 의미(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210516)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E-sChBSgx9E
부처님이 설한 법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부처님의 제자들은 어떤 목적으로 부처님에게서 배워 알고 실천하는 범행(梵行)의 삶을 삽니까?
[참고] 아라한(阿羅漢)의 의미
아라한(arahant)은 arahati(to be worthy of, to deserve, to merit – 받을만하다. 마땅하다. 가치가 있다)의 현재분사입니다. 그래서 아라한을 응공(應供-공양받을만한 분)이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양받을만한 분을 지시하는 말은 āhuneyya(sacrificial, worthy of offerings or of sacrifice, venerable, adorable, worshipful)인데, 사쌍팔배(四雙八輩)의 성자들을 의미하기 때문에 응공(應供)이라는 번역은 아라한을 특정하는 적절한 해석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이때, arahati의 의미에서 최상의 가치를 번뇌를 부숨으로써 고멸(苦滅) 즉 락(樂)을 실현하는 것에 두면, 아라한은 최상의 가치를 실현한 자 즉 번뇌 다한 자로 해석할 수 있고, 경들은 실제로 아라한을 번뇌 다한 자(arahaṃ khīṇāsavo)라고 나타내고 있습니다.
1. 부처님이 설한 법의 목적
• 포괄적인 목적 ― 불선(不善)을 버리고 선(善)을 실천하여 열반을 실현함
; kusala[선(善)=유익(有益)] → 이익과 행복 = 락(樂)의 과(果)와 보(報)
akusala[불선(不善)=악(惡)=무익(無益) → 손해와 괴로움 = 고(苦)의 과(果)와 보(報)
‘나는 ~을 위하여 법을 설한다(~ dhammaṃ desemi).’라고 말하는 경들에 의하면, 부처님의 법은
① 탐(貪)-진(嗔)-치(癡)와 다양한 악한 불선법(不善法)들의 제거를 위한,
② 안식을 위한,
③ 거친 아(我)-의성(意成)의 아(我)-무색(無色)의 아(我)를 얻는 것을 버림을 위한,
④ 오염원이고 미래에 태어나고 늙고 죽어야 하는 존재로 다시 이끌고 두렵고 보(報)가 괴로움인, 불선법(不善法)들을 버림을 위한,
⑤ 지금여기에 속하는 번뇌들의 단속과 다음 생에 속하는 번뇌들의 격멸(擊滅)을 위한,
⑥ 중생들의 청정, 슬픔과 비탄의 건넘, 고통과 고뇌의 줄어듦, 방법의 얻음, 열반의 실현을 위한,
⑦ 모든 견해의 토대-결정-선입감-성향-잠재성향들을 뿌리 뽑음, 모든 행(行)의 그침, 모든 재생의 근저를 놓음, 애(愛)의 부서짐, 이탐(離貪), 소멸(消滅), 열반(涅槃)을 위한(dhammaṃ desentassa),
⑧ 깨달음-제어-그침-건넘-완전한 꺼짐을 위한(dhammaṃ deseti),
⑨ 외입처를 즐기고, 좋아하고, 기뻐하는 내입처의 단속을 위한(dhammaṃ deseti)
것입니다. 세존에게서 범행(梵行)의 삶을 사는 목적은 이런 법들을 실현하기 위함이라고 할 것인데, 경들은 여러 방법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2. 세존에게서 범행을 실천하는 목적
1) ‘세존에게서 범행의 삶을 사는(bhagavati brahmacariyaṃ vussati)’ 목적은 주로 외도 유행승이 질문하고 부처님의 제자들이 답하는 형식으로 많은 경에서 설명되는데, 고(苦)에 대한 완전한 지혜를 중심으로 탐(貪)의 바램/관심의 버림/족쇄의 버림/잠재성향의 뿌리 뽑음/경로에 대한 완전한 지혜/번뇌들의 부서짐/명(明)과 해탈(解脫)의 결실의 실현/지(知)와 견(見)/집착 없는 완전한 열반 등으로 나타납니다.
• 질문 ― 「kimatthiyaṃ samaṇe gotame brahmacariyaṃ vussati 어떤 목적 때문에(무엇을 위해) 사문 고따마에게서 범행(梵行)의 삶을 삽니까?」
• 대답 ― 「~ bhagavati brahmacariyaṃ vussati ~ 목적으로(~를 위해) 세존에게서 범행(梵行)의 삶을 삽니다.」
이외에 (MN 24-훈련된 마차 경)과 (AN 9.13-꼿티까 경)은 부처님의 제자들 간의 대화여서 질문과 대답 모두 세존에게서 범행(梵行)의 삶을 사는 형태를 보여줍니다. 또한, (AN 3.18-신의 세상 경)은 사문 고따마에게서 범행의 삶을 사는 목적이 신(神)의 세상에 태어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합니다.
2) 한편, 이 주제는 ‘범행의 실천(brahmacariyaṃ carati)’의 형태로도 나타나는데, ‘나에게서 범행을 실천한다(mayi brahmacariyaṃ carati)’라고 하여 부처님이 직접 범행의 목적을 설명하는 (DN 6-마할리 경)과 (MN 79-사꿀루다이 작은 경) 그리고 부처님에게서 범행을 실천하는 목적이 아닌 것을 직접 설명하는 (MN 63-말루꺄 작은 경)입니다. 또한, ‘사문 고따마에게서 범행을 실천(samaṇe gotame brahmacariyaṃ carati)’하는 목적을 설명하는 (DN 25-우둠바리까 경)이 있습니다.
3) 이 주제에 대한 다른 형태의 경은 「내가 설한 법이 무엇을 위한 것이라고 아는가(kimatthaṃ carahi tvaṃ, bhikkhu, mayā dhammaṃ desitaṃ ājānāsī”ti)?」라는 부처님의 질문에 대해 「저는, 대덕이시여, 세존께서 설하신 법은 ~을 위한 것이라고 압니다(~atthaṃ khvāhaṃ, bhante, bhagavatā dhammaṃ desitaṃ ājānāmī”ti).」라고 대답하고, 다시 부처님이 「참으로, 비구여, 내가 설한 법은 ~을 위한 것이다(~ hi, bhikkhu, mayā dhammo desito).」라고 확인하는 두 개가 있는데, 탐(貪)의 바램을 말하는 (SN 35.57-병 경1)과 집착 없는 완전한 열반을 말하는 (SN 35.58-병 경2)입니다.
[첨부 문서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