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āsarāsisuttaṃ (MN 26-덫 경) 272-280. [PTS ㅡ ariyapariyesanāsuttaṃ(성스러운 …
3. opammavaggo, 6. pāsarāsisuttaṃ (MN 26-덫 경)
; PTS ㅡ ariyapariyesanāsuttaṃ(성스러운 구함 경)
이렇게 나는 들었다. ― 한때 세존은 사왓티에서 제따와나의 아나타삔디까 사원에 머물렀다. 세존은 오전에 옷차림을 바르게 하고 발우와 가사를 지니고 탁발을 위해서 사왓티로 들어갔다. 그때 많은 비구가 아난다 존자에게 왔다. 와서는 아난다 존자에게 “도반 아난다여, 세존의 앞에서 법문을 들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도반 아난다여, 저희가 세존의 앞에서 법문을 들을 수 있게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존자들은 람마까 바라문의 토굴로 오십시오. 세존의 앞에서 법문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도반이여.”라고 그 비구들은 아난다 존자에게 대답했다.
사왓티에서 탁발을 위해 돌아다닌 뒤에 오후에 탁발에서 돌아온 세존은 아난다 존자에게 “아난다여, 낮 동안의 머묾을 위해 동쪽 사원의 녹자모 저택으로 가자.”라고 말했다. “알겠습니다, 대덕이시여.”라고 아난다 존자는 세존에게 대답했다. 세존은 아난다 존자와 함께 낮 동안의 머묾을 위해 동쪽 사원의 녹자모 저택으로 갔다. 거기서 저녁에 홀로 머묾에서 나온 세존은 아난다 존자에게 “아난다여, 몸을 씻기 위해 뿝바꼿타까로 가자.”라고 말했다. “알겠습니다, 대덕이시여.”라고 아난다 존자는 세존에게 대답했다.
세존은 아난다 존자와 함께 몸을 씻기 위해 뿝바꼿타까로 갔다. 뿝바꼿타까에서 몸을 씻고 나와서 가사 하나만 입고 몸을 동쪽을 향하여 서 있었다. 그때 아난다 존자가 세존에게 “대덕이시여, 람마까 바라문의 토굴이 멀지 않습니다. 대덕이시여, 람마까 바라문의 토굴은 마음에 들고, 대덕이시여, 람마까 바라문의 토굴은 편안합니다. 대덕이시여, 세존께서 연민을 일으켜 람마까 바라문의 토굴로 가시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세존은 침묵으로 동의했다.
그래서 세존은 람마까 바라문의 토굴로 갔다. 그때 많은 비구가 법담을 나누며 람마까 바라문의 토굴에 모여 있었다. 세존은 이야기가 끝나기를 기다리며 문밖에 서 있었다. 그리고 세존은 이야기가 끝난 줄 안 뒤에 기침을 하고서 가로대를 두드렸다. 그 비구들은 세존에게 문을 열어주었다. 세존은 람마까 바라문의 토굴에 들어가서 준비된 자리에 앉았다. 앉아서 세존은 그 비구들에게 “비구들이여, 무슨 이야기를 위해 지금 여기에 함께 모여 앉았는가? 그대들 간에 끝내지 못한 이야기는 무엇인가?”라고 말했다. “대덕이시여, 저희가 세존에 대한 법담을 끝내지 못했는데 세존께서 오셨습니다.” “훌륭하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이 법담을 위해 함께 모인 것은, 비구들이여, 믿음으로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한 그대 좋은 가문의 아들들에게 마땅한 일이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이 함께 모이면 두 가지 할 일이 있으니, 법담(法談)이거나 성스러운 침묵이다.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구함과 성스럽지 못한 구함이라는 두 가지 구함이 있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성스럽지 못한 구함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자신이 태어나는 존재이면서 오직 태어나는 것을 구하고, 자신이 늙는 존재이면서 오직 늙는 것을 구하고, 자신이 병드는 존재이면서 오직 병드는 것을 구하고, 자신이 죽는 존재이면서 오직 죽는 것을 구하고, 자신이 슬픈 존재이면서 오직 슬픈 것을 구하고, 자신이 오염되는 존재이면서 오직 오염되는 것을 구한다.
비구들이여, 무엇을 태어나는 것이라고 말해야 하는가? 비구들이여, 자식과 아내가 태어나는 것이고, 남녀 하인이 태어나는 것이고, 염소와 양이 태어나는 것이고, 닭과 돼지가 태어나는 것이고, 코끼리와 소와 말과 당나귀가 태어나는 것이고, 금과 은이 태어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런 재생의 조건들이 태어나는 것들이다. 여기에 욕심내고, 푹 빠지고, 묶여있기 때문에 자신이 태어나는 존재이면서 태어나는 것을 구한다.
비구들이여, 무엇을 늙는 것이라고 말해야 하는가? 비구들이여, 자식과 아내가 늙는 것이고, 남녀 하인이 늙는 것이고, 염소와 양이 늙는 것이고, 닭과 돼지가 늙는 것이고, 코끼리와 소와 말과 당나귀가 늙는 것이고, 금과 은이 늙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런 재생의 조건들이 늙는 것들이다. 여기에 욕심내고, 푹 빠지고, 묶여있기 때문에 자신이 늙는 존재이면서 늙는 것을 구한다.
비구들이여, 무엇을 병드는 것이라고 말해야 하는가? 비구들이여, 자식과 아내가 병드는 것이고, 남녀 하인이 병드는 것이고, 염소와 양이 병드는 것이고, 닭과 돼지가 병드는 것이고, 코끼리와 소와 말과 당나귀가 병드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런 재생의 조건들이 병드는 것들이다. 여기에 욕심내고, 푹 빠지고, 묶여있기 때문에 자신이 병드는 존재이면서 병드는 것을 구한다.
비구들이여, 무엇을 죽는 것이라고 말해야 하는가? 비구들이여, 자식과 아내가 죽는 것이고, 남녀 하인이 죽는 것이고, 염소와 양이 죽는 것이고, 닭과 돼지가 죽는 것이고, 코끼리와 소와 말과 당나귀가 죽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런 재생의 조건들이 죽는 것들이다. 여기에 욕심내고, 푹 빠지고, 묶여있기 때문에 자신이 죽는 존재이면서 죽는 것을 구한다.
비구들이여, 무엇을 슬픈 것이라고 말해야 하는가? 비구들이여, 자식과 아내가 슬픈 것이고, 남녀 하인이 슬픈 것이고, 염소와 양이 슬픈 것이고, 닭과 돼지가 슬픈 것이고, 코끼리와 소와 말과 당나귀가 슬픈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런 재생의 조건들이 슬픈 것들이다. 여기에 욕심내고, 푹 빠지고, 묶여있기 때문에 자신이 슬픈 존재이면서 슬픈 것을 구한다.
비구들이여, 무엇을 오염되는 것이라고 말해야 하는가? 비구들이여, 자식과 아내가 오염되는 것이고, 남녀 하인이 오염되는 것이고, 염소와 양이 오염되는 것이고, 닭과 돼지가 오염되는 것이고, 코끼리와 소와 말과 당나귀가 오염되는 것이고, 금과 은이 오염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런 재생의 조건들이 오염되는 것들이다. 여기에 욕심내고, 푹 빠지고, 묶여있기 때문에 자신이 오염되는 존재이면서 오염되는 것을 구한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성스럽지 못한 구함이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성스러운 구함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자신이 태어나는 존재이면서 태어나는 것에서 위험을 보아서 태어남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온(瑜伽安穩)인 열반을 구하고, 자신이 늙는 존재이면서 늙는 것에서 위험을 보아서 늙음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온인 열반을 구하고, 자신이 병드는 존재이면서 병드는 것에서 위험을 보아서 병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온인 열반을 구하고, 자신이 죽는 존재이면서 죽는 것에서 위험을 보아서 죽음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온인 열반을 구하고, 자신이 슬픈 존재이면서 슬픈 것에서 위험을 보아서 슬픔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온인 열반을 구하고, 자신이 오염되는 존재이면서 오염되는 것에서 위험을 보아서 오염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온인 열반을 구한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구함이다.
• 성스럽지 못한 구함(anariyā pariyesanā) ― 재생의 조건(upadhi)을 구하는 것
• 성스러운 구함(ariyā pariyesanā) ― 열반(涅槃)을 구하는 것
나도, 비구들이여, 깨달음 이전, 깨닫지 못한 보살이었을 때, 자신이 태어나는 존재이면서 오직 태어나는 것을 구하고, 자신이 늙는 존재이면서 오직 늙는 것을 구하고, 자신이 병드는 존재이면서 오직 병드는 것을 구하고, 자신이 죽는 존재이면서 오직 죽는 것을 구하고, 자신이 슬픈 존재이면서 오직 슬픈 것을 구하고, 자신이 오염되는 존재이면서 오직 오염되는 것을 구했다. 그런 나에게, 비구들이여,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왜 나는 자신이 태어나는 존재이면서 오직 태어나는 것을 구하고, 자신이 늙는 존재이면서 … 자신이 병드는 존재이면서 … 자신이 죽는 존재이면서 … 자신이 슬픈 존재이면서 … 자신이 오염되는 존재이면서 오직 오염되는 것을 구하는가? 나는 자신은 태어나는 존재지만 태어나는 것에서 위험을 보아서 태어남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온인 열반을 구하고, 자신은 늙는 존재지만 늙는 것에서 위험을 보아서 늙음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온인 열반을 구하고, 자신은 병드는 존재지만 병드는 것에서 위험을 보아서 병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온인 열반을 구하고, 자신은 죽는 존재지만 죽는 것에서 위험을 보아서 죽음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온인 열반을 구하고, 자신은 슬픈 존재지만 슬픈 것에서 위험을 보아서 슬픔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온인 열반을 구하고, 자신은 오염되는 존재지만 오염되는 것에서 위험을 보아서 오염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온인 열반을 구해야겠다.’라고.
비구들이여, 그런 나는 나중에 원치 않아 얼굴이 눈물에 젖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슬피 울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검은 머리의 소년이고 상서로운 젊음을 갖춘 초년기의 젊은 나이에 머리와 수염을 깎고, 노란 옷을 입고,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했다. 이렇게 무엇이 유익(有益)[선(善)]인지를 구하여 출가한 나는 위없이 평화롭고 고귀한 경지를 찾아 알라라 깔라마에게 갔다. 가서는 알라라 깔라마에게 ‘도반 깔라마여, 나는 이 법(法)과 율(律)에서 범행(梵行)을 실천하고자 합니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말했을 때, 비구들이여, 알라라 깔라마는 나에게 ‘존자는 머무시오. 지혜로운 자라면 오래지 않아 자기 스승에게서 온 것을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머물 수 있는 이런 법이 있소.’라고 말했다. 오래지 않아, 비구들이여, 나는 빠르게 그 법을 완전히 익혔다. 비구들이여, 나는 바로 그만큼 자신의 입을 열고 자신의 말을 통해 앎과 확실함을 말했다. ‘나는 알고 본다.’라고 공언했고, 다른 사람들도 인정했다. 비구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알라라 깔라마는 이 법을 단지 믿음만으로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머문다.'라고 선언하는 것이 아니다. 참으로 알라라 깔라마는 이 법을 알고 보면서 머문다.’
비구들이여, 나는 알라라 깔라마에게 갔다. 가서 알라라 깔라마에게 “도반 깔라마시여, 얼마만큼 이 법을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머문다고 선언하십니까?”라고 말했다. 이렇게 말했을 때, 비구들이여, 알라라 깔라마는 무소유처(無所有處)를 선언했다. 비구들이여, 그런 나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알라라 깔라마에게만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도 믿음이 있다. 알라라 깔라마에게만 정진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도 정진이 있다. 알라라 깔라마에게만 사띠가 있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도 사띠가 있다. 알라라 깔라마에게만 삼매가 있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도 삼매가 있다. 알라라 깔라마에게만 지혜가 있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도 지혜가 있다. 참으로 나는 알라라 깔라마가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머문다고 선언하는 그 법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리라.'라고. 오래지 않아, 비구들이여, 그런 나는 빠르게 그 법을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머물렀다.
비구들이여, 나는 알라라 깔라마에게 갔다. 가서는 알라라 깔라마에게 ‘도반 깔라마시여, 당신은 이만큼 이 법을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했다고 선언하십니까?’라고 말했다. ‘도반이여, 나는 이만큼 이 법을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했다고 선언합니다.’ ‘도반이시여, 나도 이만큼 이 법을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머뭅니다.’ ‘도반이여, 우리가 존자와 같은 동료 수행자를 보는 것은 참으로 이득이고 참으로 큰 이득입니다. 이렇게 내가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선언한 법을 그대가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머뭅니다. 그대가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머무는 법을 나는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선언합니다. 이렇게 내가 아는 법을 그대가 알고, 그대가 아는 법을 내가 압니다. 이렇게 그대는 나와 같고, 나는 그대와 같소. 오시오, 도반이여, 이제 둘이 함께 이 무리를 이끕시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이렇게 나의 스승이었던 알라라 깔라마는 제자인 나를 자신과 동등한 위치에 놓고 나를 존중했다. 비구들이여, 그런 나에게 ‘이 법은 염오로 이탐으로 소멸로 가라앉음으로 실다운 지혜로 깨달음으로 열반으로 이끌지 못한다. 단지 무소유처(無所有處)에 태어남을 위해 이끌 뿐이다.’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런 나는, 비구들이여, 그 법에 만족하지 못하고 그 법으로부터 염오하여 떠났다.
비구들이여, 그렇게 무엇이 유익인지를 구하는 나는 위없이 평화롭고 고귀한 경지를 찾아 웃다까 라마뿟따에게 갔다. 가서는 웃다까 라마뿟따에게 ‘도반이여, 나는 이 법과 율에서 범행을 실천하고자 합니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말했을 때, 비구들이여, 웃다까 라마뿟따는 나에게 ‘존자는 머무시오. 지혜로운 자라면 오래지 않아 자기 스승에게서 온 것을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머물 수 있는 이런 법이 있소.’라고 말했다. 오래지 않아, 비구들이여, 나는 빠르게 그 법을 완전히 익혔다. 비구들이여, 나는 바로 그만큼 자신의 입을 열고 자신의 말을 통해 앎과 확실함을 말했다. ‘나는 알고 본다.’라고 공언했고, 다른 사람들도 인정했다. 비구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라마는 이 법을 단지 믿음만으로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머문다.'라고 선언하는 것이 아니다. 참으로 라마는 이 법을 알고 보면서 머문다.’
비구들이여, 나는 웃다까 라마뿟따에게 갔다. 가서 웃다까 라마뿟따에게 “도반이시여, 라마는 얼마만큼 이 법을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머문다고 선언하십니까?”라고 말했다. 이렇게 말했을 때, 비구들이여, 웃다까 라마뿟따는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를 선언했다. 비구들이여, 그런 나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라마에게만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도 믿음이 있다. 라마에게만 정진이 있는 것이 아니다. … 사띠가 … 삼매가 … 지혜가 있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도 지혜가 있다. 참으로 나는 라마가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머문다고 선언하는 그 법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리라.'라고. 오래지 않아, 비구들이여, 그런 나는 빠르게 그 법을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머물렀다.
비구들이여, 나는 웃다까 라마뿟따에게 갔다. 가서는 웃다까 라마뿟따에게 ‘도반이시여, 라마는 이만큼 이 법을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했다고 선언하십니까?’라고 말했다. ‘도반이여, 라마는 이만큼 이 법을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했다고 선언합니다.’ ‘도반이시여, 나도 이만큼 이 법을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머뭅니다.’ ‘도반이여, 우리가 존자와 같은 동료 수행자를 보는 것은 참으로 이득이고 참으로 큰 이득입니다. 이렇게 라마가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선언한 법을 그대가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머뭅니다. 그대가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머무는 법을 라마는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선언합니다. 이렇게 라마가 아는 법을 그대가 알고, 그대가 아는 법을 라마가 압니다. 이렇게 그대는 라마와 같고, 라마는 그대와 같소. 오시오, 도반이여, 이제 둘이 함께 이 무리를 이끕시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이렇게 웃다까 라마뿟따는 나를 동등한 동료 수행자로 삼고, 스승의 자리에 나를 앉히고 나를 귀히 여기고 존중했다. 비구들이여, 그런 나에게 ‘이 법은 염오로 이탐으로 소멸로 가라앉음으로 실다운 지혜로 깨달음으로 열반으로 이끌지 못한다. 단지 비상비비상처에 태어남을 위해 이끌 뿐이다.’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런 나는, 비구들이여, 그 법에 만족하지 못하고 그 법으로부터 염오하여 떠났다.
비구들이여, 그렇게 무엇이 유익인지를 구하는 나는 위없이 평화롭고 고귀한 경지를 찾아 마가다에서 차례로 유행하면서 우루웰라의 장군촌에 이르렀다. 그곳에서 마음에 드는 땅과 만족스런 숲과 투명하게 흐르는 강과 튼튼한 강둑과 주변 일대의 마음에 드는 탁발할 수 있는 마을을 보았다. 비구들이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 ‘오! 마음에 드는 땅과 만족스런 숲과 투명하게 흐르는 강과 튼튼한 강둑과 주변 일대의 마음에 드는 탁발할 수 있는 마을이 있다. 참으로 이곳은 정진을 원하는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정진하기에 충분하다.’라고. 그런 나는, 비구들이여, ‘이곳은 정진하기에 충분하다.’라고 하면서 거기에 앉았다.
그런 나는, 비구들이여, 자신이 태어나는 존재이면서 태어나는 것에서 위험을 본 뒤에 태어남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온인 열반을 구하여 태어남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온인 열반을 성취했다. 자신이 늙는 존재이면서 늙는 것에서 위험을 본 뒤에 늙음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온인 열반을 구하여 늙음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온인 열반을 성취했다. 자신이 병드는 존재이면서 병드는 것에서 위험을 본 뒤에 병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온인 열반을 구하여 병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온인 열반을 성취했다. 자신이 죽는 존재이면서 죽는 것에서 위험을 본 뒤에 죽음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온인 열반을 구하여 죽음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온인 열반을 성취했다. 자신이 슬픈 존재이면서 슬픈 것에서 위험을 본 뒤에 슬픔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온인 열반을 구하여 슬픔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온인 열반을 성취했다. 자신이 오염되는 존재이면서 오염되는 것에서 위험을 본 뒤에 오염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온인 열반을 구하여 오염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온인 열반을 성취했다. 나에게 ‘나의 해탈은 흔들리지 않는다. 이것이 태어남의 끝이다. 이제 다시 존재로 이끌리지 않는다.’라는 앎과 봄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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