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mahāhatthipadopamasuttaṃ (MN 28-코끼리 발자국 비유의 큰 경)
3. opammavaggo, 8. mahāhatthipadopamasuttaṃ (MN 28-코끼리 발자국 비유의 큰 경)
이렇게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은 사왓티에서 제따와나의 아나타삔디까 사원에 머물렀다. 그때 사리뿟따 존자가 “도반 비구들이여.”라고 비구들을 불렀다. “도반이여.”라고 그 비구들은 사리뿟따 존자에게 대답했다. 사리뿟따 존자는 이렇게 말했다. — “예를 들면, 도반들이여, 밀림의 생명의 여러 발자국은 어떤 것이든 모두 코끼리 발자국 안에 들어갑니다. 코끼리 발자국이 크기에 있어서 그들 가운데 으뜸이라고 알려졌습니다. 이처럼, 도반들이여, 선법(善法)이라면 어떤 것이든 모두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사성제(四聖諦)]에 따르게 됩니다. 어떤 네 가지입니까?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고성제(苦聖蹄)], 괴로움의 자라남의 성스러운 진리[고집성제(苦集聖諦)],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고멸성제(苦滅聖諦)],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실천의 성스러운 진리[고멸도성제(苦滅道聖諦)]입니다.
그러면 도반들이여, 무엇이 고성제(苦聖諦)입니까? 태어남[생(生)]도 괴로움이고, 늙음[노(老)]도 괴로움이고, 죽음[사(死)]도 괴로움입니다. 슬픔-비탄-고통-고뇌-절망[수비고우뇌(愁悲苦憂惱)]도 괴로움이고,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도 괴로움[구부득고(求不得苦)]입니다. 간략히 말하면, 오취온(五取蘊)이 괴로움입니다[오취온고(五取蘊苦)]. 도반들이여, 무엇이 오취온입니까? 말하자면 ― 색취온(色取蘊), 수취온(受取蘊), 상취온(想取蘊), 행취온(行取蘊), 식취온(識取蘊)입니다.
그러면 도반들이여, 무엇이 색취온(蘊)입니까? 사대(四大-네 가지 큰 존재)와 사대조색(四大造色-네 가지 큰 존재가 결합한 색)입니다.
• pathavībhūtā[지대(地大)] 또는 pathavīmahābhūtā 등의 용례는 없음
그러면 도반들이여, 무엇이 사대(四大)입니까? 땅의 요소[지계(地界)], 물의 요소[수계(水界)], 불의 요소[화계(火界)], 바람의 요소[풍계(風界)]입니다.
도반들이여, 무엇이 땅의 요소입니까? 땅의 요소는 안의 것이 있을 수 있고, 밖의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도반들이여, 무엇이 안의 땅의 요소입니까? 예를 들어 머리카락-털-손발톱-이-피부-살-힘줄-뼈-골수-신장-심장-간-흉막-지라-허파-창자-장간막-위[위 속의 소화되지 않은 음식]-똥 등 안에 있고 개체적이고 거칠고 견고한 것 그리고 결합 된 것은, 또한, 기타의 안에 있고 개체적이고 거칠고 견고한 것 그리고 결합 된 것은 어떤 것이든, 비구여, 이것은 안의 땅의 요소라고 불립니다. 그리고 안의 땅의 요소와 밖의 땅의 요소, 이들은 단지 땅의 요소일 뿐입니다. 그것에 대해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아(我)가 아니다.’라고 이렇게 이것을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써 보아야 합니다. 이렇게 이것을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본 뒤에 땅의 요소에 대해 염오하고, 땅의 요소에 대해 심(心)이 바래게 합니다.
도반들이여, 밖의 물의 요소가 광폭해지는 때가 있습니다. 그때 밖의 땅의 요소는 사라집니다. 참으로, 도반들이여, 이렇게 커다란 그 밖의 땅의 요소에도 무상함이 알려질 것이고, 부서짐이 알려질 것이고, 무너짐이 알려질 것이고, 변하는 성질이 알려질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 작고 애(愛)에 집착된 몸에 대해 ‘나거나 나의 것이거나 나는 있다.’라고 하겠습니까? 참으로 여기에 그런 것은 없습니다.
만약에, 도반들이여, 어떤 비구를 다른 사람들이 욕하고 비난하고 화내고 힘들게 하면, 그는 ‘나에게 이촉(耳觸)에서 생긴 괴로운 느낌이 생겼다. 이것은 연(緣)한 것이지 연(緣)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무엇을 연(緣)하였는가? 촉(觸)을 연(緣)하였다.’라고 분명히 압니다. 그는 ‘촉(觸)은 무상(無常)하다.’라고 보고, ‘수(受)는 무상하다.’라고 보고, ‘상(想)은 무상하다.’라고 보고, ‘행(行)들은 무상하다.’라고 보고, ‘식(識)은 무상하다.’라고 봅니다. 계(界)를 대상으로 하는 그의 심(心)은 다가가고 순일해지고 안정되고 분명히 압니다.
만약에, 도반들이여, 손으로 때리거나 흙덩이로 때리거나 몽둥이로 때리거나 칼로 베는 등 기분 나쁘고 불쾌하고 마음에 들지 않게 행동한다면, 그는 이렇게 분명히 압니다. ― ‘이 몸은 손으로 때리는 것들을 겪고, 흙덩이로 때리는 것들을 겪고, 몽둥이로 때리는 것들을 겪고, 칼로 베는 것들을 겪는 존재다. 참으로 세존은 톱의 비유의 가르침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 “만약, 비구들이여, 양쪽에 손잡이가 있는 톱으로 도둑이나 수사관들이 사지를 잘라낸다 해도, 거기서 의(意)를 불쾌하게 한다면, 그것으로 인해 그는 나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가 아니다.”라고. 나는 게으르지 않아 열심히 정진하고, 사띠는 확립되어 잊히지 않고, 몸은 진정되어 흔들리지 않고, 심(心)은 집중되어 삼매를 닦을 것이다. 참으로 이제 이 몸에서 손으로 때리는 것들을 겪어라. 흙덩이로 때리는 것들을 겪어라. 몽둥이로 때리는 것들을 겪어라. 칼로 베는 것들을 겪어라. 이것을 위해 부처님의 가르침은 행해진다.’라고.
만약에, 도반들이여, 이렇게 불(佛)을 계속해서 기억하고, 이렇게 법(法)을 계속해서 기억하고, 이렇게 승(僧)을 계속해서 기억하는 그에게 유익(有益)의 과정인 평정이 확립되지 않으면, 그는 그것 때문에 ‘이렇게 불(佛)을 계속해서 기억하고, 이렇게 법(法)을 계속해서 기억하고, 이렇게 승(僧)을 계속해서 기억하는 나에게 유익의 과정인 평정이 확립되지 않은 것은 참으로 나에게 손실이고, 참으로 나에게 이득이 아니다. 참으로 나에게 잘못 얻어진 것이고, 참으로 나에게 잘 얻어진 것이 아니다.’라면서 동요하고 걱정합니다. 예를 들면, 도반들이여, 며느리가 시아버지를 보고서 동요하고 걱정합니다. 이처럼, 도반들이여, 만약에 이렇게 불을 계속해서 기억하고, 이렇게 법을 계속해서 기억하고, 이렇게 승을 계속해서 기억하는 그에게 유익의 과정인 평정이 확립되지 않으면, 그는 그것 때문에 ‘이렇게 불을 계속해서 기억하고, 이렇게 법을 계속해서 기억하고, 이렇게 승을 계속해서 기억하는 나에게 유익의 과정인 평정이 확립되지 않은 것은 참으로 나에게 손실이고, 참으로 나에게 이득이 아니다. 참으로 나에게 잘못 얻어진 것이고, 참으로 나에게 잘 얻어진 것이 아니다.’라면서 동요하고 걱정합니다. 만약에, 도반들이여, 이렇게 불을 계속해서 기억하고, 이렇게 법을 계속해서 기억하고, 이렇게 승을 계속해서 기억하는 그에게 유익의 과정인 평정이 확립되면, 그는 그것 때문에 만족합니다. 이만큼도, 도반들이여, 비구가 많이 행한 것입니다.
도반들이여, 무엇이 물의 요소입니까? 물의 요소는 안의 것이 있을 수 있고, 밖의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비구여, 무엇이 안의 물의 요소입니까? 예를 들어 쓸개즙-가래-고름-피-땀-지방-눈물-기름-침-콧물-관절액-오줌 등 안에 있고 개체적이고 액체이고 액체에 속하는 것 그리고 결합 된 것, 또한, 어떤 것이든 기타의 안에 있고 개체적이고 액체이고 액체에 속하는 것 그리고 결합 된 것, 비구여, 이것은 안의 물의 요소라고 불립니다. 그리고 안의 물의 요소와 밖의 물의 요소, 이들은 단지 물의 요소일 뿐입니다. 그것에 대해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아(我)가 아니다.’라고 이렇게 이것을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써 보아야 합니다. 이렇게 이것을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본 뒤에 물의 요소에 대해 염오하고, 물의 요소에 대해 심(心)이 바래게 합니다.
도반들이여, 밖의 물의 요소가 광폭해지는 때가 있습니다. 밖의 물의 요소는 마을도 휩쓸고, 번화가도 휩쓸고, 도시도 휩쓸고, 지역도 휩쓸고, 나라도 휩씁니다. 도반들이여, 큰 바다에서 백 요자나의 물이 줄어들기도 하고, 이백 요자나의 물이 줄어들기도 하고, 삼백 요자나의 물이 줄어들기도 하고, 사백 요자나의 물이 줄어들기도 하고, 오백 요자나의 물이 줄어들기도 하고, 육백 요자나의 물이 줄어들기도 하고, 칠백 요자나의 물이 줄어들기도 하는 때가 있습니다. 도반들이여, 큰 바다에서 야자나무 일곱 길만큼 물이 남아 있고, 야자나무 여섯 길만큼 물이 남아 있고, 야자나무 다섯 길만큼 물이 남아 있고, 야자나무 네 길만큼 물이 남아 있고, 야자나무 세 길만큼 물이 남아 있고, 야자나무 두 길만큼 물이 남아 있고, 야자나무 크기만큼 물이 남아 있는 때가 있습니다. 도반들이여, 큰 바다에서 사람 키 일곱 길만큼 물이 남아 있고, 사람 키 여섯 길만큼 물이 남아 있고, 사람 키 다섯 길만큼 물이 남아 있고, 사람 키 네 길만큼 물이 남아 있고, 사람 키 세 길만큼 물이 남아 있고, 사람 키 두 길만큼 물이 남아 있고, 사람 키 만큼 물이 남아 있는 때가 있습니다. 도반들이여, 큰 바다에 사람 키 절반만큼 물이 남아 있고, 엉덩이만큼 물이 남아 있고, 무릎만큼 물이 남아 있고, 발목만큼 물이 남아 있는 때가 있습니다. 도반들이여, 큰 바다에 손가락 마디가 젖을 만큼도 물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참으로, 도반들이여, 이렇게 커다란 그 밖의 물의 요소에도 무상함이 알려질 것이고, 부서짐이 알려질 것이고, 무너짐이 알려질 것이고, 변하는 성질이 알려질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 작고 애(愛)에 집착된 몸에 대해 ‘나거나 나의 것이거나 나는 있다.’라고 하겠습니까? 참으로 여기에 그런 것은 없습니다. … 만약에, 도반들이여, 이렇게 불을 계속해서 기억하고, 이렇게 법을 계속해서 기억하고, 이렇게 승을 계속해서 기억하는 그에게 유익의 과정인 평정이 확립되면, 그는 그것 때문에 만족합니다. 이만큼도, 도반들이여, 비구가 많이 행한 것입니다.
도반들이여, 무엇이 불의 요소입니까? 불의 요소는 안의 것이 있을 수 있고, 밖의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비구여, 무엇이 안의 불의 요소입니까? 예를 들어 그것에 의해 데워지고, 그것에 의해 썩게 하고, 그것에 의해 불타고, 그것에 의해 먹고 마시고 씹고 맛본 것이 바르게 소화되는 등 안에 있고 개체적이고 열이고 열에 속한 것 그리고 결합 된 것, 또한, 어떤 것이든 기타의 안에 있고 개체적이고 열이고 열에 속한 것 그리고 결합 된 것, 비구여, 이것은 안의 불의 요소라고 불립니다. 그리고 안의 불의 요소와 밖의 불의 요소, 이들은 단지 불의 요소일 뿐입니다. 그것에 대해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아(我)가 아니다.’라고 이렇게 이것을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써 보아야 합니다. 이렇게 이것을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본 뒤에 불의 요소에 대해 염오하고, 불의 요소에 대해 심(心)이 바래게 합니다.
도반들이여, 밖의 불의 요소가 광폭해지는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마을도 태우고, 번화가도 태우고, 도시도 태우고, 지역도 태우고, 나라도 태웁니다. 그것은 초원의 주변이거나 도로의 주변이거나 바위의 주변이거나 물가거나 아름다운 지역에 온 뒤에 연료가 없어서 꺼집니다. 도반들이여, 닭의 깃털이거나 힘줄에 붙은 부드러운 뼈를 가지고 불을 찾는 때가 있습니다. 참으로, 도반들이여, 이렇게 커다란 그 밖의 불의 요소에도 무상함이 알려질 것이고, 부서짐이 알려질 것이고, 무너짐이 알려질 것이고, 변하는 성질이 알려질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 작고 애(愛)에 집착된 몸에 대해 ‘나거나 나의 것이거나 나는 있다.’라고 하겠습니까? 참으로 여기에 그런 것은 없습니다. … 만약에, 도반들이여, 이렇게 불을 계속해서 기억하고, 이렇게 법을 계속해서 기억하고, 이렇게 승을 계속해서 기억하는 그에게 유익의 과정인 평정이 확립되면, 그는 그것 때문에 만족합니다. 이만큼도, 도반들이여, 비구가 많이 행한 것입니다.
도반들이여, 무엇이 바람의 요소입니까? 바람의 요소는 안의 것이 있을 수 있고, 밖의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비구여, 무엇이 안의 바람의 요소입니까? 예를 들어 올라가는 바람, 내려가는 바람, 몸 안의 빈 곳의 바람, 배 안에 있는 바람, 몸의 구성 부분들을 이어 다니는 바람, 날숨과 들숨 등 안에 있고 개체적이고 기체이고 기체에 속한 것 그리고 결합 된 것, 또한, 어떤 것이든 기타의 안에 있고 개체적이고 기체이고 기체에 속한 것 그리고 결합 된 것, 비구여, 이것은 안의 바람의 요소라고 불립니다. 그리고 안의 바람의 요소와 밖의 바람의 요소, 이들은 단지 바람의 요소일 뿐입니다. 그것에 대해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아(我)가 아니다.’라고 이렇게 이것을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써 보아야 합니다. 이렇게 이것을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본 뒤에 불의 요소에 대해 염오하고, 불의 요소에 대해 심(心)이 바래게 합니다.
도반들이여, 밖의 바람의 요소가 광폭해지는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마을도 휩쓸고, 번화가도 휩쓸고, 도시도 휩쓸고, 지역도 휩쓸고, 나라도 휩씁니다. 도반들이여, 여름의 마지막 달에 야자나무 줄기나 부채로 바람을 구하고, 흐르는 물에서 얻을 수 있는 풀들도 원하지 않는 때가 있습니다. 참으로, 도반들이여, 이렇게 커다란 그 밖의 바람의 요소에도 무상함이 알려질 것이고, 부서짐이 알려질 것이고, 무너짐이 알려질 것이고, 변하는 성질이 알려질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 작고 애(愛)에 집착된 몸에 대해 ‘나거나 나의 것이거나 나는 있다.’라고 하겠습니까? 참으로 여기에 그런 것은 없습니다.
만약에, 도반들이여, 어떤 비구를 다른 사람들이 욕하고 비난하고 화내고 힘들게 하면, 그는 ‘나에게 이촉(耳觸)에서 생긴 괴로운 느낌이 생겼다. 이것은 연(緣)한 것이지 연(緣)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무엇을 연(緣)하였는가? 촉(觸)을 연(緣)하였다.’라고 분명히 압니다. 그는 ‘촉(觸)은 무상(無常)하다.’라고 보고, ‘수(受)는 무상하다.’라고 보고, ‘상(想)은 무상하다.’라고 보고, ‘행(行)들은 무상하다.’라고 보고, ‘식(識)은 무상하다.’라고 봅니다. 계(界)를 대상으로 하는 그의 심(心)은 다가가고 순일해지고 안정되고 분명히 압니다.
만약에, 도반들이여, 손으로 때리거나 흙덩이로 때리거나 몽둥이로 때리거나 칼로 베는 등 기분 나쁘고 불쾌하고 마음에 들지 않게 행동한다면, 그는 이렇게 분명히 압니다. ― ‘이 몸은 손으로 때리는 것들을 겪고, 흙덩이로 때리는 것들을 겪고, 몽둥이로 때리는 것들을 겪고, 칼로 베는 것들을 겪는 존재다. 참으로 세존은 톱의 비유의 가르침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 “만약, 비구들이여, 양쪽에 손잡이가 있는 톱으로 도둑이나 수사관들이 사지를 잘라낸다 해도, 거기서 의(意)를 불쾌하게 한다면, 그것으로 인해 그는 나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가 아니다.”라고. 나는 게으르지 않아 열심히 정진하고, 사띠는 확립되어 잊히지 않고, 몸은 진정되어 흔들리지 않고, 심(心)은 집중되어 삼매를 닦을 것이다. 참으로 이제 이 몸에서 손으로 때리는 것들을 겪어라. 흙덩이로 때리는 것들을 겪어라. 몽둥이로 때리는 것들을 겪어라. 칼로 베는 것들을 겪어라. 이것을 위해 부처님의 가르침은 행해진다.’라고.
만약에, 도반들이여, 이렇게 불을 계속해서 기억하고, 이렇게 법을 계속해서 기억하고, 이렇게 승을 계속해서 기억하는 그에게 유익의 과정인 평정이 확립되지 않으면, 그는 그것 때문에 ‘이렇게 불을 계속해서 기억하고, 이렇게 법을 계속해서 기억하고, 이렇게 승을 계속해서 기억하는 나에게 유익의 과정인 평정이 확립되지 않은 것은 참으로 나에게 손실이고, 참으로 나에게 이득이 아니다. 참으로 나에게 잘못 얻어진 것이고, 참으로 나에게 잘 얻어진 것이 아니다.’라면서 동요하고 걱정합니다. 예를 들면, 도반들이여, 며느리가 시아버지를 보고서 동요하고 걱정합니다. 이처럼, 도반들이여, 만약에 이렇게 불을 계속해서 기억하고, 이렇게 법을 계속해서 기억하고, 이렇게 승을 계속해서 기억하는 그에게 유익의 과정인 평정이 확립되지 않으면, 그는 그것 때문에 ‘이렇게 불을 계속해서 기억하고, 이렇게 법을 계속해서 기억하고, 이렇게 승을 계속해서 기억하는 나에게 유익의 과정인 평정이 확립되지 않은 것은 참으로 나에게 손실이고, 참으로 나에게 이득이 아니다. 참으로 나에게 잘못 얻어진 것이고, 참으로 나에게 잘 얻어진 것이 아니다.’라면서 동요하고 걱정합니다. 만약에, 도반들이여, 이렇게 불을 계속해서 기억하고, 이렇게 법을 계속해서 기억하고, 이렇게 승을 계속해서 기억하는 그에게 유익의 과정인 평정이 확립되면, 그는 그것 때문에 만족합니다. 이만큼도, 도반들이여, 비구가 많이 행한 것입니다.
• 육내입처(六內入處) - 안의 것, 육외입처(六外入處) - 밖의 것
• samannāhāra ― concentration(집중), bringing together(묶음-합침-접촉시킴)
※ (SN 35.185-꼿티까 경) ― 「도반 꼿티까여, 안(眼)이 색(色)들에게 족쇄가 아니고, 색(色)들이 안(眼)에게 족쇄가 아닙니다. 이 둘을 연(緣)하여 생기는 욕탐(欲貪)이 거기서 족쇄입니다.」
예를 들면, 도반들이여, 나무토막을 연(緣)하고, 덩굴을 연하고, 짚을 연하고, 진흙을 연하고, 공간에 둘러싸여 집이란 이름을 얻게 됩니다. 이처럼, 도반들이여, 뼈를 연하고, 근육을 연하고, 살을 연하고, 피부를 연하고, 공간에 둘러싸여 몸[rūpa-색(色)]이란 이름을 얻게 됩니다. 도반들이여, 안의 안(眼)이 망가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밖의 색(色)들이 영역에 들어오지 않고, 이것에 속한 집중도 없습니다[이것들을 묶어주지도 않습니다]. 그러면 이것에 속하는 식(識)의 부분[안식(眼識)]은 출현하지 않습니다. 도반들이여, 안의 안이 망가지지 않았고 밖의 색들이 영역에 들어옵니다. 그러나 이것에 속한 집중이 없습니다[이것들을 묶어주지 않습니다]. 그러면 이것에 속하는 식의 부분은 출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도반들이여, 안의 안이 망가지지 않았고 밖의 색들이 영역에 들어오며, 이것에 속한 집중도 있을 때[이것들을 묶어주면], 이렇게 이것에 속하는 식의 부분이 출현합니다. 이런 방법으로 있게 된 것 중의 색은 색취온(色取蘊)을 따라가 쌓입니다. 이런 방법으로 있게 된 것 중의 수(受)는 수취온(受取蘊)을 따라가 쌓입니다. 이런 방법으로 있게 된 것 중의 상(想)은 상취온(想取蘊)을 따라가 쌓입니다. 이런 방법으로 있게 된 것 중의 행(行)들은 행취온(行取蘊)을 따라가 쌓입니다. 이런 방법으로 있게 된 것 중의 식(識)은 식취온(識取蘊)을 따라가 쌓입니다.
그는 이렇게 꿰뚫어 압니다. — ‘이렇게 이 오취온(五取蘊)의 따라가 쌓임과 모임과 조합이 있다. 세존은 이렇게 말했다. — ‘연기(緣起)를 보는 자는 법을 본다. 법(法)을 보는 자는 연기(緣起)를 본다.’라고. 또한, 이 오취온은 연기된 것들이다. 이 오취온에 대한 관심, 잡음, 친밀함, 묶임이 괴로움의 자라남이다[고집(苦集)]. 이 오취온에 대한 욕탐(欲貪)의 제어와 욕탐(欲貪)의 버림이 괴로움의 소멸이다[고멸(苦滅)].’라고. 도반들이여, 이만큼도 비구가 많이 행한 것입니다.
도반들이여, 안의 이(耳)가 망가지지 않았습니다. … 비(鼻)가 망가지지 않았습니다. … 설(舌)이 망가지지 않았습니다. … 신(身)이 망가지지 않았습니다. … 의(意)가 망가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밖의 법(法)들이 영역에 들어오지 않고, 이것에 속한 집중도 없습니다[이것들을 묶어주지도 않습니다]. 그러면 이것에 속하는 식(識)의 부분[의식(意識)]의 출현은 없습니다. 도반들이여, 안의 의가 망가지지 않았고 밖의 법들이 영역에 들어옵니다. 그러나 이것에 속한 집중이 없습니다[이것들을 묶어주지 않습니다]. 그러면 이것에 속하는 식의 부분의 출현은 없습니다. 그러나 도반들이여, 안의 의가 망가지지 않았고 밖의 법들이 영역에 들어오며, 이것에 속한 집중도 있을 때[이것들을 묶어주면], 이렇게 이것에 속하는 식의 부분의 출현이 있습니다. 이런 방법으로 있게 된 것 중의 색은 색취온을 따라가 쌓입니다. 이런 방법으로 있게 된 것 중의 수는 수취온을 따라가 쌓입니다. 이런 방법으로 있게 된 것 중의 상은 상취온을 따라가 쌓입니다. 이런 방법으로 있게 된 것 중의 행들은 행취온을 따라가 쌓입니다. 이런 방법으로 있게 된 것 중의 식은 식취온을 따라가 쌓입니다. 그는 이렇게 꿰뚫어 압니다. —‘이렇게 이 오취온의 따라가 쌓임과 모임과 조합이 있다. 세존은 이렇게 말했다. — ‘연기를 보는 자는 법을 본다. 법을 보는 자는 연기를 본다.’라고. 또한, 이 오취온은 연기된 것들이다. 이 오취온에 대한 관심, 잡음, 친밀함, 묶임이 괴로움의 자라남이다. 이 오취온에 대한 욕탐의 제어와 욕탐의 버림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도반들이여, 이만큼도 비구가 많이 행한 것입니다.
사리뿟따 존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 비구들은 즐거워하면서 사리뿟따 존자의 말씀을 기뻐했다.
mahāhatthipadopamasuttaṃ niṭṭhitaṃ aṭṭhamaṃ.
코끼리 발자국 비유의 큰 경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