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mahāsaccakasuttaṃ (MN 36-삿짜까 큰 경) 364~376.
이렇게 나는 들었다. ― 한때 세존은 웨살리에서 큰 숲의 뾰족지붕 건물에 머물렀다. 그때 세존은 오전에 옷차림을 바르게 하고 발우와 가사를 지니고 탁발을 위해서 웨살리로 들어가려 하고 있었다. 그런데 걸어서 이리저리 움직이고 돌아다니던 니간타의 아들 삿짜까가 큰 숲의 뾰족지붕 건물로 왔다. 아난다 존자가 멀리서 오고 있는 니간타의 아들 삿짜까를 보았다. 보고서 세존에게 이렇게 말했다. ― “대덕이시여, 저 사람은 토론을 즐기고, 현명하게 말하고, 경건한 사람이라고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는 니간타의 아들 삿짜까입니다. 대덕이시여, 그는 부처님을 비난하기 좋아하고, 가르침을 비난하기 좋아하고, 상가를 비난하기 좋아합니다. 대덕이시여, 세존께서는 연민을 가지고 잠시 앉아 계시기 바랍니다.”라고. 세존은 준비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니간타의 아들 삿짜까가 세존에게 왔다. 와서는 세존과 함께 인사를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만한 이야기를 주고받은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니간타의 아들 삿짜까는 세존에게 이렇게 말했다. ―
“고따마 존자시여, 심(心)은 닦지 않고 몸을 닦는 실천으로만 머무는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있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들은 육체에 속한 괴로운 느낌에 닿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이전에, 육체에 속한 괴로운 느낌에 닿아 있는 자에게 허벅지가 경직되고, 심장이 터지고, 붉은 피가 입으로 나오고, 미쳐서 심(心)은 혼란해졌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에게 심(心)은 몸을 따르게 되고 몸의 영향을 받게 됩니다. 그 원인은 무엇입니까? 심(心)을 닦지 않았음입니다. 또한, 고따마 존자시여, 몸은 닦지 않고 심(心)을 닦는 실천으로만 머무는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있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들은 심(心)에 속한 괴로운 느낌에 닿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이전에, 심(心)에 속한 괴로운 느낌에 닿아 있는 자에게 허벅지가 경직되고, 심장이 터지고, 붉은 피가 입으로 나오고, 미쳐서 심(心)은 혼란해졌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에게 몸은 심(心)을 따르게 되고 몸의 영향을 받게 됩니다. 그 원인은 무엇입니까? 몸을 닦지 않았음입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런 나에게 이런 생각이 듭니다. ― '지금 고따마 존자의 제자들은 몸은 닦지 않고 심(心)을 닦는 실천으로만 머문다.'라고.”
“악기웻사나여, 그러면 그대는 몸을 닦는 수행에 대해 들어보았습니까?” “예를 들면 난다 왓차, 끼사 상낏짜, 막칼리 고살라가 있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들은 나체수행자이고 품행에 얽매이지 않은 자이고, 음식을 받은 뒤에 핥아먹는 자이고, ‘오시오!’라는 초대를 받지 않는 자이고, ‘서시오!’라는 초대를 받지 않는 자인데, 주어지지 않은 것과 배당되지 않은 것과 초대되지 않은 것을 받지 않습니다. 그들은 항아리의 가장자리로부터 받지 않고, 그릇의 가장자리로부터 받지 않고, 중간에 문지방이 있는 것, 중간에 몽둥이가 있는 것, 중간에 절굿공이가 있는 것, 두 사람이 먹고 있는 것, 임신부의 것, 젖을 먹이는 여자의 것, 남자에게 안긴 여자의 것을 받지 않고 모여 있는 곳에서 받지 않고, 개가 대기하고 있는 곳에서 받지 않고, 파리 떼가 득실거리는 곳에서 받지 않고, 어류를 받지 않고, 고기를 받지 않고, 술과 발효주와 발효하여 끓인 것을 마시지 않습니다. 그는 한 집에서 한 입의 음식을, 두 집에서 두 입의 음식을 … 일곱 집에서 일곱 입의 음식을 받아먹습니다. 작은 그릇 한 개의 음식으로 삶을 유지하고, 작은 그릇 두 개의 음식으로 삶을 유지하고, … 작은 그릇 일곱 개의 음식으로 삶을 유지합니다. 하루에 한 번 음식을 먹고, 이틀에 한 번 음식을 먹고, … 이레에 한 번 음식을 먹습니다. ― 이와 같은 식으로 보름에 한 번 음식을 먹는 방법의 음식을 먹는 것을 실천하며 머뭅니다.”
"악기웻사나여, 그런데 그들은 정말 그만큼 만으로 지속합니까?" "아닙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들은 때때로 아주 맛있는 딱딱한 음식을 씹고 아주 맛있는 부드러운 음식을 먹고 아주 맛있는 음식을 맛보고 아주 맛있는 음료를 마십니다. 그들의 이 몸을 힘 있게 하고 자라게 하고 살찌게 합니다.”
"악기웻사나여, 그들은 이전에 버린 것을 나중에 다시 쌓습니다. 이처럼 이 몸을 살찌게도 하고 여위게도 합니다. 악기웻사나여, 그러면 그대는 심(心)을 닦는 수행에 대해 들어보았습니까?" 세존으로부터 심(心)을 닦는 수행에 대한 질문을 받은 니간타의 후예 삿짜까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자 세존은 니간타의 후예 삿짜까에게 이렇게 말했다. ― "악기웻사나여, 그대가 몸을 닦는 수행에 대해 먼저 말한 것은 성스러운 율(律)에서는 법답게 몸을 닦는 수행이 아닙니다. 악기웻사나여, 그대는 몸을 닦는 수행도 모르는데 어떻게 심(心)을 닦는 수행을 알겠습니까? 악기웻사나여, 이런 방법으로 몸을 닦지 않고 심(心)을 닦지 않는 자 그리고 몸을 닦고 심(心)을 닦는 자가 있습니다. 그것을 듣고 잘 사고(思考)하십시오. 나는 말할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존자시여."라고 니간타의 후예 삿짜까는 세존에게 대답했다. 세존은 이렇게 말했다. ―
"악기웻사나여, 어떻게 몸을 닦지 않고 심(心)을 닦지 않는 자가 있습니까? 악기웻사나여, 여기 배우지 못한 범부에게 즐거운 느낌이 생깁니다. 즐거운 느낌에 닿아 있는 그는 즐거움에 친밀한 자이고, 즐거움에 친밀하면서 삽니다. 그에게 그 즐거운 느낌이 소멸합니다. 즐거운 느낌의 소멸로부터 괴로운 느낌이 생깁니다. 괴로운 느낌에 닿아 있는 그는 슬퍼하고 힘들어하고 비탄에 빠지고 가슴을 치며 울부짖고 당황합니다. 악기웻사나여, 몸을 닦지 않았기 때문에 그에게 생겨난 즐거운 느낌은 심(心)을 소진하여 머물고, 심(心)을 닦지 않았기 때문에 그에게 생겨난 괴로운 느낌은 심(心)을 소진(消盡)하여 머뭅니다. 악기웻사나여, 누구든지 몸을 닦지 않았기 때문에 생겨난 즐거운 느낌이 심(心)을 소진(消盡)하여 머물고, 심(心)을 닦지 않았기 때문에 생겨난 괴로운 느낌이 심(心)을 소진(消盡)하여 머무는 양쪽 측면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악기웻사나여, 이렇게 몸을 닦지 않고 심(心)을 닦지 않는 자 자가 있습니다.
"악기웻사나여, 어떻게 몸을 닦고 심(心)을 닦는 자가 있습니까? 악기웻사나여, 여기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에게 즐거운 느낌이 생깁니다. 즐거운 느낌에 닿아 있는 그는 즐거움에 친밀한 자가 아니고, 즐거움에 친밀하면서 살지 않습니다. 그에게 그 즐거운 느낌이 소멸합니다. 즐거운 느낌의 소멸로부터 괴로운 느낌이 생깁니다. 괴로운 느낌에 닿아 있는 그는 슬퍼하지 않고 힘들어하지 않고 비탄에 빠지지 않고 가슴을 치며 울부짖지 않고 당황하지 않습니다. 악기웻사나여, 몸을 닦았기 때문에 그에게 생겨난 즐거운 느낌은 심(心)을 소진하여 머물지 않고, 심(心)을 닦았기 때문에 그에게 생겨난 괴로운 느낌은 심(心)을 소진(消盡)하여 머물지 않습니다. 악기웻사나여, 누구든지 몸을 닦았기 때문에 생겨난 즐거운 느낌이 심(心)을 소진(消盡)하여 머물지 않고, 심(心)을 닦았기 때문에 생겨난 괴로운 느낌이 심(心)을 소진(消盡)하여 머물지 않는 양쪽 측면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악기웻사나여, 이렇게 몸을 닦고 심(心)을 닦는 자가 있습니다.
• 몸을 닦음 ― 즐거운 느낌에 대한 대응력 → 개발된 느낌을 감당
• 심(心)을 닦음 ― 괴로운 느낌에 대한 대응력 → 고행(苦行)을 감당
"저는 고따마 존자에게 이런 분명함이 있습니다. ― ‘참으로 고따마 존자는 몸을 닦고 심(心)을 닦는 분이다.’라고." "악기웻사나여, 참으로 그대는 무례하고 비난 섞인 말을 했습니다. 그래도 나는 그대에게 말하겠습니다. 악기웻사나여, 내가 머리와 수염을 깎고 물들인 옷을 입고서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한 때로부터 생겨난 즐거운 느낌이 심(心)을 소진하여 머물거나, 생겨난 괴로운 느낌이 심(心)을 소진하여 머무는 그런 경우는 나에게 없었습니다."
“참으로 고따마 존자께는 생겨나면 심(心)을 소진하여 머무는 즐거운 느낌이 생기지 않고, 참으로 생겨나면 심(心)을 소진하여 머무는 괴로운 느낌이 생기지 않았습니까?”
• 즐거운 느낌[개발된 느낌의 과정]과 괴로운 느낌[고행(苦行)의 과정]이 생겨났지만 심(心)을 소진하여 머물지 않은 수행의 과정을 소개함
“악기웻사나여, 어떻게 없었겠습니까? 여기, 악기웻사나여, 깨달음 이전, 깨닫지 못한 보살이었을 때 나에게도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 ‘재가의 삶이란 압박이고 오염이 많지만, 출가는 열린 허공과 같다. 재가에 살면서 온전히 충만하고 온전히 청정하고 소라고둥처럼 빛나는 범행을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니 나는 머리와 수염을 깎고 물들인 옷을 입고서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해야겠다.’라고.”
악기웻사나여, 그런 나는 나중에 원치 않아 얼굴이 눈물에 젖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슬피 울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검은 머리의 소년이고 상서로운 젊음을 갖춘 초년기의 젊은 나이에 머리와 수염을 깎고, 노란 옷을 입고,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했습니다. 이렇게 무엇이 유익(有益)[선(善)]인지를 구하여 출가한 나는 위없이 평화롭고 고귀한 경지를 찾아 알라라 깔라마에게 갔습니다. 가서는 알라라 깔라마에게 ‘도반 깔라마여, 나는 이 법(法)과 율(律)에서 범행(梵行)을 실천하고자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말했을 때, 악기웻사나여, 알라라 깔라마는 나에게 ‘존자는 머무시오. 지혜로운 자라면 오래지 않아 자기 스승에게서 온 것을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머물 수 있는 이런 법이 있소.’라고 말했습니다. 오래지 않아, 악기웻사나여, 나는 빠르게 그 법을 완전히 익혔습니다. 악기웻사나여, 나는 바로 그만큼 자신의 입을 열고 자신의 말을 통해 앎과 확실함을 말했습니다. ‘나는 알고 본다.’라고 공언했고, 다른 사람들도 인정했습니다. 악기웻사나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 ‘알라라 깔라마는 이 법을 단지 믿음만으로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머문다.'라고 선언하는 것이 아니다. 참으로 알라라 깔라마는 이 법을 알고 보면서 머문다.’라고.
악기웻사나여, 나는 알라라 깔라마에게 갔습니다. 가서 알라라 깔라마에게 “도반 깔라마시여, 얼마만큼 이 법을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머문다고 선언하십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말했을 때, 악기웻사나여, 알라라 깔라마는 무소유처(無所有處)를 선언했습니다. 악기웻사나여, 그런 나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 '알라라 깔라마에게만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도 믿음이 있다. 알라라 깔라마에게만 정진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도 정진이 있다. 알라라 깔라마에게만 사띠가 있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도 사띠가 있다. 알라라 깔라마에게만 삼매가 있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도 삼매가 있다. 알라라 깔라마에게만 지혜가 있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도 지혜가 있다. 참으로 나는 알라라 깔라마가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머문다고 선언하는 그 법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리라.'라고. 오래지 않아, 악기웻사나여, 그런 나는 빠르게 그 법을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머물렀습니다.
악기웻사나여, 나는 알라라 깔라마에게 갔습니다. 가서는 알라라 깔라마에게 ‘도반 깔라마시여, 당신은 이만큼 이 법을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했다고 선언하십니까?’라고 말했습니다. ‘도반이여, 나는 이만큼 이 법을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했다고 선언합니다.’ ‘도반이시여, 나도 이만큼 이 법을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머뭅니다.’ ‘도반이여, 우리가 존자와 같은 동료 수행자를 보는 것은 참으로 이득이고 참으로 큰 이득입니다. 이렇게 내가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선언한 법을 그대가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머뭅니다. 그대가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머무는 법을 나는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선언합니다. 이렇게 내가 아는 법을 그대가 알고, 그대가 아는 법을 내가 압니다. 이렇게 그대는 나와 같고, 나는 그대와 같소. 오시오, 도반이여, 이제 둘이 함께 이 무리를 이끕시다.’ 악기웻사나여, 참으로 이렇게 나의 스승이었던 알라라 깔라마는 제자인 나를 자신과 동등한 위치에 놓고 나를 존중했습니다. 악기웻사나여, 그런 나에게 ‘이 법은 염오(厭惡)로 이탐(離貪)으로 소멸(消滅)로 가라앉음으로 실다운 지혜로 깨달음으로 열반(涅槃)으로 이끌지 못한다. 단지 무소유처(無所有處)에 태어남을 위해 이끌 뿐이다.’라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런 나는, 악기웻사나여, 그 법에 만족하지 못하고 그 법으로부터 염오하여 떠났습니다.
악기웻사나여, 그렇게 무엇이 유익인지를 구하는 나는 위없이 평화롭고 고귀한 경지를 찾아 웃다까 라마뿟따에게 갔습니다. 가서는 웃다까 라마뿟따에게 ‘도반이여, 나는 이 법과 율에서 범행을 실천하고자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말했을 때, 악기웻사나여, 웃다까 라마뿟따는 나에게 ‘존자는 머무시오. 지혜로운 자라면 오래지 않아 자기 스승에게서 온 것을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머물 수 있는 이런 법이 있소.’라고 말했습니다. 오래지 않아, 악기웻사나여, 나는 빠르게 그 법을 완전히 익혔습니다. 악기웻사나여, 나는 바로 그만큼 자신의 입을 열고 자신의 말을 통해 앎과 확실함을 말했습니다. ‘나는 알고 본다.’라고 공언했고, 다른 사람들도 인정했습니다. 악기웻사나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 ‘라마는 이 법을 단지 믿음만으로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머문다.'라고 선언하는 것이 아니다. 참으로 라마는 이 법을 알고 보면서 머문다.’ 악기웻사나여, 나는 웃다까 라마뿟따에게 갔습니다. 가서 웃다까 라마뿟따에게 “도반이시여, 라마는 얼마만큼 이 법을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머문다고 선언하십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말했을 때, 악기웻사나여, 웃다까 라마뿟따는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를 선언했습니다. 악기웻사나여, 그런 나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 '라마에게만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도 믿음이 있다. 라마에게만 정진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도 정진이 있다. 라마에게만 사띠가 있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도 사띠가 있다. 라마에게만 삼매가 있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도 삼매가 있다. 라마에게만 지혜가 있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도 지혜가 있다. 참으로 나는 라마가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머문다고 선언하는 그 법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리라.'라고. 오래지 않아, 악기웻사나여, 그런 나는 빠르게 그 법을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머물렀습니다.
악기웻사나여, 나는 웃다까 라마뿟따에게 갔습니다. 가서는 웃다까 라마뿟따에게 ‘도반이시여, 라마는 이만큼 이 법을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했다고 선언하십니까?’라고 말했습니다. ‘도반이여, 라마는 이만큼 이 법을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했다고 선언합니다.’ ‘도반이시여, 나도 이만큼 이 법을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머뭅니다.’ ‘도반이여, 우리가 존자와 같은 동료 수행자를 보는 것은 참으로 이득이고 참으로 큰 이득입니다. 이렇게 라마가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선언한 법을 그대가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머뭅니다. 그대가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머무는 법을 라마는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선언합니다. 이렇게 라마가 아는 법을 그대가 알고, 그대가 아는 법을 라마가 압니다. 이렇게 그대는 라마와 같고, 라마는 그대와 같소. 오시오, 도반이여, 이제 둘이 함께 이 무리를 이끕시다.’ 악기웻사나여, 참으로 이렇게 웃다까 라마뿟따는 나를 동등한 동료 수행자로 삼고, 스승의 자리에 나를 앉히고 나를 귀히 여기고 존중했습니다. 악기웻사나여, 그런 나에게 ‘이 법은 염오로 이탐으로 소멸로 가라앉음으로 실다운 지혜로 깨달음으로 열반으로 이끌지 못한다. 단지 비상비비상처에 태어남을 위해 이끌 뿐이다.’라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런 나는, 악기웻사나여, 그 법에 만족하지 못하고 그 법으로부터 염오하여 떠났습니다.
악기웻사나여, 그렇게 무엇이 유익인지를 구하는 나는 위없이 평화롭고 고귀한 경지를 찾아 마가다에서 차례로 유행하면서 우루웰라의 장군촌에 이르렀습니다. 그곳에서 마음에 드는 땅과 만족스런 숲과 투명하게 흐르는 강과 튼튼한 강둑과 주변 일대의 마음에 드는 탁발할 수 있는 마을을 보았습니다. 악기웻사나여, 그런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 ‘오! 마음에 드는 땅과 만족스런 숲과 투명하게 흐르는 강과 튼튼한 강둑과 주변 일대의 마음에 드는 탁발할 수 있는 마을이 있다. 참으로 이곳은 정진을 원하는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정진하기에 충분하다.’라고. 그런 나는, 악기웻사나여, ‘이곳은 정진하기에 충분하다.’라고 하면서 거기에 앉았습니다.
악기웻사나여, 나에게 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세 가지 비유가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예를 들면, 악기웻사나여, 물 위에 놓여있는 젖고 수액이 있는 나무토막이 있습니다. 그때 어떤 사람이 ‘불을 피워야겠다. 열을 일으켜야겠다.’라면서 부시 막대를 가지고 올 것입니다. 악기웻사나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물 위에 놓여있는 젖고 수액이 있는 그런 나무토막에 부시 막대를 가지고 비비는 그 사람은 불을 피우고 열을 일으킬 수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고따마 존자여. 그 원인은 무엇입니까? 고따마 존자여, 그 젖고 수액이 있는 나무토막은 또한 물 위에 놓여있어서 불을 피우고 열을 일으키기까지에는 그 사람이 지치고 짜증 날 것입니다.” “이처럼, 악기웻사나여, 만약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들이 몸으로도 심(心)으로도 소유의 삶에서 떠나지 못한 채 머물고, 또한 소유의 삶에서 소유의 관심, 소유의 갈망, 소유의 열중, 소유의 열기를 안으로 잘 버리지 못하고 잘 가라앉히지 못합니다. 만약 그들 사문-바라문 존자들이 고행에 의해 야기되는 괴롭고 예리하고 거칠고 심한 느낌을 경험하더라도 그들은 지(知)와 견(見)과 위없는 깨달음을 얻을 수 없습니다. 또한, 만약 그들 사문-바라문 존자들이 고행에 의해 야기되는 괴롭고 예리하고 거칠고 심한 느낌을 경험하지 않더라도 그들은 지(知)와 견(見)과 위없는 깨달음을 얻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악기웻사나여, 나에게 자연스럽게 떠오른, 전에 들어보지 못한 첫 번째 비유입니다.
다시, 악기웻사나여, 전에 들어보지 못한 두 번째 비유가 뒤따라 나에게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예를 들면, 악기웻사나여, 물에서 멀리 떨어진 땅에 놓여있는 젖고 수액이 있는 나무토막이 있습니다. 그때 어떤 사람이 ‘불을 피워야겠다. 열을 일으켜야겠다.’라면서 부시 막대를 가지고 올 것입니다. 악기웻사나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런 물에서 멀리 떨어진 땅에 놓여있는 젖고 수액이 있는 나무토막에 부시 막대를 가지고 비비는 그 사람은 불을 피우고 열을 일으킬 수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고따마 존자여. 그 원인은 무엇입니까? 고따마 존자여, 아무리 물에서 멀리 떨어진 땅에 놓여있을지라도 그 젖고 수액이 있는 나무토막은 불을 피우고 열을 일으키기까지에는 그 사람이 지치고 짜증 날 것입니다.” “이처럼, 악기웻사나여, 만약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들이 몸으로도 심(心)으로도 소유의 삶에서 떠나 머물지만, 소유의 삶에서 소유의 관심, 소유의 갈망, 소유의 열중, 소유의 열기를 안으로 잘 버리지 못하고 잘 가라앉히지 못합니다. 만약 그들 사문-바라문 존자들이 고행에 의해 야기되는 괴롭고 예리하고 거칠고 심한 느낌을 경험하더라도 그들은 지(知)와 견(見)과 위없는 깨달음을 얻을 수 없습니다. 또한, 만약 그들 사문-바라문 존자들이 고행에 의해 야기되는 괴롭고 예리하고 거칠고 심한 느낌을 경험하지 않더라도 그들은 지(知)와 견(見)과 위없는 깨달음을 얻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악기웻사나여, 나에게 자연스럽게 떠오른, 전에 들어보지 못한 두 번째 비유입니다.
다시, 악기웻사나여, 전에 들어보지 못한 세 번째 비유가 뒤따라 나에게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예를 들면, 악기웻사나여, 물에서 멀리 떨어진 땅에 놓여있는 마르고 수액이 없는 나무토막이 있습니다. 그때 어떤 사람이 ‘불을 피워야겠다. 열을 일으켜야겠다.’라면서 부시 막대를 가지고 올 것입니다. 악기웻사나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런 물에서 멀리 떨어진 땅에 놓여있는 마르고 수액이 없는 나무토막에 부시 막대를 가지고 비비는 그 사람은 불을 피우고 열을 일으킬 수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고따마 존자여. 그 원인은 무엇입니까? 고따마 존자여, 그 마르고 수액이 없는 나무토막은 또한 물에서 멀리 떨어진 땅에 놓여있습니다.” “이처럼, 악기웻사나여, 만약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들이 몸으로도 심(心)으로도 소유의 삶에서 떠나 머물고 또한 소유의 삶에서 소유의 관심, 소유의 갈망, 소유의 열중, 소유의 열기를 안으로 잘 버리고 잘 가라앉힙니다. 만약 그들 사문-바라문 존자들이 고행에 의해 야기되는 괴롭고 예리하고 거칠고 심한 느낌을 경험하더라도 그들은 지(知)와 견(見)과 위없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또한, 만약 그들 사문-바라문 존자들이 고행에 의해 야기되는 괴롭고 예리하고 거칠고 심한 느낌을 경험하지 않더라도 그들은 지(知)와 견(見)과 위없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악기웻사나여, 나에게 자연스럽게 떠오른, 전에 들어보지 못한 세 번째 비유입니다. 악기웻사나여, 나에게 전에 들어보지 못한 이런 세 가지 비유가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그런 나는, 왕자여, 덩어리진 음식을 먹고서 힘을 얻은 뒤에 소유의 삶에서
<왕자여, > 가 아니라 악기웻사나여 가 맞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