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 맛지마 니까야 관통 법회 - 43.교리문답의 큰 경6[초선 & 근(根)-의(意)-생명력(살아있음과 죽음의 차이)](…
▣ 맛지마 니까야 관통 법회 - 43.교리문답의 큰 경6[초선 & 근(根)-의(意)-생명력(살아있음과 죽음의 차이)](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211208)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xF14zNUWEDE
초선(初禪)은 ①소유의 삶과 불선법에서 벗어남, ②심(心)이 하나의 대상에 집중되었기[심일경성] 때문에 순일해진 위딱까-위짜라가 있음, ③개발된 느낌으로의 떨침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의 세 가지 측면으로 정의되는 바른 삼매[정정(正定)]입니다. 안근-이근-비근-설근-신근의 다섯 가지 기능은 다른 대상과 다른 영역을 가져서 서로의 영역과 대상을 경험하지 않는데, 의(意)가 의지처이고 의가 그것들의 영역과 대상을 경험하며, 서로 조건 되는 생명력과 체열을 연하여 유지됩니다. 생명력의 형성작용들과 경험되는 법들[육외입처]은 하나로 묶인 것이 아닌데, 경은, 상수멸을 증득한 비구에게 출정이 알려지는 관점에서 설명합니다.
1. 초선(初禪-paṭhamaṃ jhānaṃ) ― ①초선은 소유의 삶과 불선법에서 벗어남, ②심(心)이 하나의 대상에 집중되었기[심일경성(心一境性)] 때문에 순일해진 위딱까-위짜라가 있음, ③개발된 느낌으로의 떨침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의 세 가지 측면으로 정의되는 바른 삼매[정정(正定)]입니다. 또한, 초선은 다섯 가지 장애를 버리고 성취하는 경지여서 소유의 관심-진에-해태혼침-들뜸후회-의심이 버려졌습니다. 그래서 초선을 증득한 비구는 다섯 가지 장애를 버렸고, 위딱까-위짜라-기쁨-즐거움-심일경성의 다섯 가지 요소를 갖추었습니다.
2. 안근(眼根)-이근(耳根)-비근(鼻根)-설근(舌根)-신근(身根)의 다섯 가지 기능
1) 다른 대상과 다른 영역을 가져서 서로의 영역과 대상을 경험하지 않음 ― 복수로 나타나는 육외입처(六外入處)의 영역(gocara)에서 지금 작의(作意) 된 대상(visaya)
2) 의(意)가 의지처이고 의(意)가 그것들의 영역과 대상을 경험함 ― 의(意)는 두 가지가 있는데, 의처(意處)의 의(意)와 심(心)-의(意)-식(識)의 의(意)입니다. 여기서 의지처인 의(意)는 식(識)이 몸과 함께한 상태를 지시하는 의(意)입니다. 여기의 의(意)를 의처(意處)의 의(意)로 이해한 것이 전통적 해석이라고 하겠는데, 이런 오해는 ‘뒤에 있는 마음’의 개념을 초래해서 유식(唯識)의 관점으로 전개되는 단초가 됩니다. 의(意)에 대한 이런 이해 위에서 (SN 48.42-운나바 바라문 경)은 다른 측면의 의지를 설명합니다. ☞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7_05_05&wr_id=2
3) 다섯 가지 기능의 유지 ― 서로 조건 되는 생명력(āyu)과 체열(usma)을 연(緣)하여 유지됨
※ 주제의 확장 ― (13)「무명과 번뇌의 서로 조건 됨 ─ 서로 조건 되는 네 가지 교리」☞ http://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2_11&wr_id=13&page=3
4) 생명력의 형성작용들(āyusaṅkhārā)과 경험되는 법들(vedaniyā dhammā) ― 경험되는 법들(vedaniyā dhammā)은 육외입처(六外入處)이고, 경험된 것(vedayita-受)과 다릅니다. vedaniyā는 vedeti의 grd(gerundive-미래수동분사)이고, vedayita는 pp(과거분사)여서 메커니즘 위에서 다른 위치를 지시합니다.
※ vijānāti[인식하다]의 격변화에 대한 메커니즘적 이해 ☞ http://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7_10&wr_id=29
생명력의 형성작용이 경험되는 법들 즉 육외입처와[인식객관] 함께 나타나는 점에서 생명력은 육내입처[인식주관]와 관련된 현상이라는 것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생명의 유지 즉 살아있다는 것은 몸과 마음이 함께한 상태가 유지되는 것을 말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몸이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살아있는 상태여야 합니다. 이때, 몸을 살아있는 상태로 만들어 주는 어떤 요소를 생명력이라고 할 것인데, 체열을 조건으로 존재하고, 또한, 체열을 유지해주는 조건으로 작용하기도 한다는 이해입니다. 몸에 제약된 중생의 식(識)은 이렇게 생명력과 체열에 의해 유지되는 몸을 집착하여 붙잡음으로써 존재를 구성한다고 하겠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식(識)은 다섯 가지 기능인 몸을 붙잡는데, 몸의 기능이 부서져 더 이상 몸을 붙잡을 수 없게 되면 ‘몸이 무너져 죽는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렇게 생명력을 형성하는 작용이 생명력을 지속해서 형성해 줄 때 체열을 가진 몸이 유지되어 식(識)과 함께한 인식주관 즉 육내입처가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때, 경은 생명력의 형성작용과 경험되는 법들은 같은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데, 육내입처와 육외입처가 다른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내용은 (SN 35.185-꼿티까 경)의 ‘내입처와 외입처는 서로에게 족쇄가 아니고, 이 둘을 연(緣)하여 생기는 욕탐(欲貪)이 족쇄’라는 설명을 통해 이해해야 합니다. 내입처와 외입처는 묶이지 않은 각각의 것인데, 공동주관인 욕탐(欲貪)에 묶여서 하나의 묶임 즉 같은 것이 되어 있다는 설명입니다.
경은, 만약 이 두 가지가 같은 것이라면 상수멸(想受滅)을 증득한 비구에게 출정(出定)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상수멸은, 삼매 상태에서, 공동주관인 욕탐의 근원인 상(想)의 멸(滅) 즉 누진(漏盡-번뇌의 부서짐) 상태로 진행되는 인식 과정에 의한 수(受)의 멸(滅)이어서, 무명(無明)에 조건 지어지지 않은 수(受)[해탈락(解脫樂)-열반락(涅槃樂)]의 실현 상태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가 같은 것이라면 공동주관의 참여를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수(受)의 멸(滅)은 내입처와 외입처의 활성화의 중단 즉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런 경우에 수(受)의 멸(滅)의 상태를 증득한 수행자는 죽은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 둘이 같은 것이 아님 즉 공동주관인 욕탐(欲貪)에 의해 묶여 있는 상태입니다. 이때, 상수멸(想受滅)은 상(想)의 멸(滅) 즉 공동주관의 족쇄로서의 상태가 수행을 통해 해소된 것이어서 죽음이 아닌 해탈된 삼매의 상태이고, 살아있기 때문에 출정(出定)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특히, 죽음 즉 몸이 무감각한 나무토막처럼 되는 경우를 생명력과 체열과 식(識)의 떠남으로 설명하는데, 상수멸은 이 세 가지가 떠나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래서 죽은 자와 상수멸을 증득한 수행자는 신행(身行)-구행(口行)-심행(心行)이 그치고 진정된다는 공통점 위에서 생명력과 체열과 기능의 상태의 차별을 보여줍니다. 죽은 자는 생명력이 다하고 체열이 식고 기능들이 부서지지만, 상수멸을 증득한 수행자는 생명력이 다하지 않고 체열이 식지 않고 기능들이 아주 깨끗합니다. 즉 높은 수준으로 살아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