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 맛지마 니까야 관통 법회 - 43.교리문답의 큰 경3)[의식의 이끌림 - 무색계](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21112…
▣ 맛지마 니까야 관통 법회 - 43.교리문답의 큰 경3)[의식의 이끌림 - 무색계](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211124)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fz0X4P7k88E
이 경의 두 번째 주제는 물질 영역의 족쇄에서 풀려났을 때 의식(意識)이 무색계로 이끌리는 현상에 대한 설명입니다. ‘안식(眼識)~신식(身識)이 풀려나서 의식(意識)이 청정한가?’ 아니면 ‘안근(眼根)~신근(身根)의 청정으로 안식~신식은 풀려났지만, 의식은 아직 청정하지 못한가?’의 관점에서 살펴야 하는데, 후자이고, 의식의 청정을 위한 무색계의 과정으로 이끌리는 것을 설명합니다. 한편, 혜(慧)는 실다운 지혜(abhiññā)와 완전한 지혜(pariññā)와 버림(pahāna)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특히, 버림은 (SN 22.79-삼켜버림 경)을 참고할 수 있는데, 오온의 무상-무아에 의한 여실지견의 과정이어서 실다운 지혜로 이어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 이 경의 두 번째 주제는 물질 영역의 족쇄에서 풀려났을 때 의식(意識)이 무색계(無色界)로 이끌리는 현상에 대한 설명입니다.
nissaṭṭhena pañcahi indriyehi parisuddhena manoviññāṇena는 [nissaṭṭha pañca indriya parisuddha manoviññāṇa]가 같은 격으로 묶여서 하나의 복합된 개념을 지시하는 경우입니다. 그래서 ①nissaṭṭha(풀려남)-②pañca indriya(다섯 가지 기능)-③parisuddha(완전한 청정)-④manoviññāṇa(의식)의 네 가지 개념을 어떻게 연결해서 해석해야 하는지가 이 주제의 본질입니다.
• 안식(眼識)~신식(身識)이 풀려나서 의식(意識)이 청정한가?
• 안근(眼根)~신근(身根)의 청정으로 안식(眼識)~신식(身識)은 풀려났지만, 의식(意識)은 아직 청정하지 못한가?
이 주제는 육내입처(六內入處)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는데, 내입처(內入處)는 식온(識蘊)과 근(根)이 함께한 인식주관입니다.
그간의 해석으로는 ‘다섯 가지 기능에서 벗어난 청정한 의식(意識)’이지만, 이 의식에 의해서 공무변처(空無邊處)-식무변처(識無邊處)-무소유처(無所有處)의 무색계(無色界)가 이끌린다는 설명에 의하면, 의식은 아직 청정해지지 않은 상태라고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청정해진 것은 의식이 아니라 다섯 가지 기능이라고 해석됩니다. 그래서 다섯 가지 기능[안근(眼根)-입근(入覲)-비근(鼻根)-설근(舌根)-신근(身根)]의 청정 때문에 물질 영역[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의 족쇄[욕탐(欲貪)-chandarāga]에서 풀려난, 그러나 의(意)와 법(法)의 족쇄에서는 아직 풀려나지 못한 상태에서의 의식(意識)이 물질 영역 즉 색계(色界)를 넘어서서 무색계(無色界)로 이끌린다는 이해입니다. 이런 이해는 (DN 2-사문과경 ☞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4_01_02&wr_id=53 )이 말하는, 제사선(第四禪)에서 지(知)와 견(見)으로 심(心)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할 때 ‘나의 이 몸은 물질이어서 사대(四大)로 구성된 것이고, 부모에 속한 것에서 생겨난 것이고, 밥과 응유가 집적된 것이고, 무상하고 쇠퇴하고 부서지고 해체되고 흩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나의 이 식(識)은 여기에 의지하고 여기에 묶여 있다.’라고 꿰뚫어 안다는 설명과 연결하면 타당합니다.
이렇게 이 두 개의 경은 보완적으로, 식(識)이 색(色)의 족쇄에 의지하고 묶여 있음을 꿰뚫어 알 때, 색(色)의 영역에 속한 안근(眼根)~신근(身根)이 청정해져 안식(眼識)~신식(身識)은 족쇄에서 풀려나고, 이때, 식(識)의 나머지 부분 즉 의식(意識)은 의(意)와 법(法)을 연(緣)한 족쇄에서 풀려나기 위한 과정으로 무색계(無色界)를 이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그래서 “nissaṭṭhena hāvuso, pañcahi indriyehi parisuddhena manoviññāṇena kiṃ neyyan”ti?를 “참으로 도반이여, 다섯 가지 기능이 청정해서 풀려났을 때 의식(意識)에 의해 무엇이 이끌립니까?”라고 해석하였습니다.
2. 이때, 이끌리는 법 즉 공무변처(空無邊處)-식무변처(識無邊處)-무소유처(無所有處)를 혜안(慧眼)으로 꿰뚫어 안다고 하는데, (DN 33.6-합송경, 세 가지로 구성된 법들)은 세 가지 눈을 소개합니다. ― 「“tīṇi cakkhūni — maṃsacakkhu, dibbacakkhu, paññācakkhu. 세 가지 눈 ― 육체의 눈[육안(肉眼)], 하늘 눈[천안(天眼)], 지혜의 눈[혜안(慧眼)]」
3. 혜(慧)는 실다운 지혜(abhiññā)와 완전한 지혜(pariññā)와 버림(pahāna)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는데, 각각의 의미를 설명하였습니다. 특히, 버림(pahāna)은 (SN 22.79-삼켜버림 경 ☞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6_03_01&wr_id=5&sca=khajjan%C4%ABya)을 참고할 수 있는데, 오온(五蘊)의 무상(無常)-무아(無我)에 의한 여실지견(如實知見)의 과정이어서 실다운 지혜로 이어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