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 맛지마 니까야 관통 법회 - 43.교리문답의 큰 경4)[바른 견해-정견](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211201)
▣ 맛지마 니까야 관통 법회 - 43.교리문답의 큰 경4)[바른 견해-정견](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211201)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3JFjoYm6Bt8
바른 견해를 위해서는 남의 목소리와 여리작의라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이때, 남의 목소리는 부처님의 목소리 즉 완전한 깨달음의 가르침을 배워 알아야 하는 것을 말하고, 여리작의는 그 가르침을 실천하여 얻어지는 오류 없는 인식입니다. 그래서 바른 견해는 바른 스승을 만나서 배워 알고 실천하는 과정에서 얻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수업에서는 작은 순환고리의 관점에서 여리작의를 설명하였습니다. 그런데 바른 견해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①번뇌와 함께하고 공덕을 만드는 바른 견해와 ②번뇌 없고 세상을 넘어선 성스러운 바른 견해입니다. 경의 이어지는 문답은 ‘②번뇌 없고 세상을 넘어선 성스러운 바른 견해’의 관점에서 해석해야 하는 주제입니다.
바른 견해[정견(正見)-sammādiṭṭhi]를 주제로 자세히 설명한 수업입니다. ― 「“dve kho, āvuso, paccayā sammādiṭṭhiyā uppādāya — parato ca ghoso, yoniso ca manasikāro. ime kho, āvuso, dve paccayā sammādiṭṭhiyā uppādāyā”ti. 도반이여, 바른 견해가 생기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 남의 목소리와 여리작의(如理作意), 도반이여, 바른 견해를 생기게 하는 이런 두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바른 견해를 위해서는 남의 목소리와 여리작의(如理作意)라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이때, 남의 목소리는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한 부처님의 목소리 즉 완전한 깨달음의 가르침을 배워 알아야 하는 것을 말하고, 여리작의는 그 가르침을 실천하여 탐(貪)-진(嗔)-치(癡)를 제어함으로써 얻어지는 오류 없는 인식입니다. 그래서 바른 견해는 바른 스승을 만나서 배워 알고 실천하는 과정에서 얻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수업에서는 작은 순환고리의 관점에서 여리작의(如理作意)를 설명하였습니다.
• 남의 목소리 없이 바른 견해를 얻은 유일한 사람이 부처님입니다. 부처님은 스승이 없던 시절에 스스로 길을 찾아 깨달음을 성취함으로써 바른 견해를 완성한 분입니다. 그래서 불교의 교주이자 스승이 되었고, 그런 점에서 정등각(正等覺)이라고 불립니다. 또한, 번뇌를 완전히 부수고 깨달았기 때문에 아라한(阿羅漢)이라고 하는데,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지해 깨달은 제자인 아라한과 차별하여 부처님은 세존(世尊)-아라한(阿羅漢)-정등각(正等覺)[bhagavā arahaṃ sammāsambuddho] 또는 여래(如來)-아라한(阿羅漢)-정등각(正等覺)[tathāgato arahaṃ sammāsambuddho]이라고 부릅니다.
한편, āsāduppajahavaggo (AN 2.119-130-버리기 어려운 바람 품)은 바른 견해와 삿된 견해의 양면에서 두 가지 조건을 설명합니다.
“dveme, bhikkhave, paccayā micchādiṭṭhiyā uppādāya. katame dve? parato ca ghoso ayoniso ca manasikāro. ime kho, bhikkhave, dve paccayā micchādiṭṭhiyā uppādāyā”ti.
비구들이여, 두 가지 이런 조건으로부터 사견(邪見)이 생긴다. 어떤 둘인가? 남의 목소리와 비여리작의(非如理作意)이다. 비구들이여, 이런 두 가지 조건으로부터 사견(邪見)이 생긴다.
“dveme, bhikkhave, paccayā sammādiṭṭhiyā uppādāya. katame dve? parato ca ghoso, yoniso ca manasikāro. ime kho, bhikkhave, dve paccayā sammādiṭṭhiyā uppādāyā”ti.
비구들이여, 두 가지 이런 조건으로부터 정견(正見)이 생긴다. 어떤 둘인가? 남의 목소리와 여리작의(如理作意)이다. 비구들이여, 이런 두 가지 조건으로부터 정견(正見)이 생긴다.
그런데 바른 견해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①번뇌와 함께하고 공덕을 만들고 몸과 생명에 대한 애착을 익게 하는 바른 견해와 ②번뇌 없고 세상을 넘어섰고 길의 요소인 성스러운 바른 견해입니다. ― (MN 117-커다란 마흔의 경) ☞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5_12_07&wr_id=1
경은 이어서 「바른 견해는, 도반이여, 몇 가지 요소의 도움을 받은 심해탈(心解脫)의 과(果)와 심해탈의 과의 이익으로부터 생기고, 혜해탈(慧解脫)의 과(果)와 혜해탈의 과의 이익으로부터 생깁니까?」라는 문답을 진행하는데, ‘②번뇌 없고 세상을 넘어섰고 길의 요소인 성스러운 바른 견해’의 관점에서 해석해야 하는 주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