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N 43-교리문답의 큰 경) 449-451 [혜(慧)-식(識)-수(受)-상(想)의 결합과 차이]
mahāvedallasuttaṃ (MN 43-교리문답의 큰 경) 중에서[혜(慧)-식(識)-수(受)-상(想)의 결합과 차이]
이렇게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은 사왓티에서 제따와나의 아나타삔디까 사원에 머물렀다. 저녁에 홀로 앉음에서 일어난 마하꼿티까 존자가 사리뿟따 존자에게 왔다. 와서는 사리뿟따 존자와 함께 인사를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만한 이야기를 주고받은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마하꼿티까 존자는 사리뿟따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ㅡ
“‘duppañño duppañño’ti, āvuso, vuccati. kittāvatā nu kho, āvuso, duppaññoti vuccatī”ti?
“벗이여, ‘지혜롭지 못한 자, 지혜롭지 못한 자.’라고 불립니다. 벗이여, 어떻게 지혜롭지 못한 자라고 불립니까?”
“‘꿰뚫어 알지 못한다, 꿰뚫어 알지 못한다.’고 하여, 벗이여, 지혜롭지 못한 자라고 불립니다. 무엇을 꿰뚫어 알지 못합니까? ‘이것은 괴로움이다.’라고 꿰뚫어 알지 못하고, ‘이것은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꿰뚫어 알지 못하고,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꿰뚫어 알지 못하고,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실천이다.’라고 꿰뚫어 알지 못합니다. ‘꿰뚫어 알지 못한다, 꿰뚫어 알지 못한다.’고 하여, 벗이여, 지혜롭지 못한 자라고 불립니다.
• 분명히 알다 ㅡ 확실하게 알다.
분명(分明)히 [부사]
1. 모습이나 소리 따위가 흐릿함이 없이 똑똑하고 뚜렷하게.
2. 태도나 목표 따위가 흐릿하지 않고 확실하게.
3. 어떤 사실이 틀림이 없이 확실하게.
• 꿰뚫어 알다 ㅡ 어떤 일의 내용이나 본질을 잘 알다.
존자 마하 꼿티따는 “벗이여, 훌륭합니다.”라고 존자 사리뿟따의 말에 기뻐하고 환희하며 다시 존자 사리뿟따에게 이와 같이 질문했다. ㅡ “벗이여, ‘지혜로운 자, 지혜로운 자’라고 불립니다. 벗이여, 어떻게 지혜로운 자라고 불립니까?”
“벗이여, ‘꿰뚫어 안다, 꿰뚫어 안다.’라고 하므로, 벗이여, 지혜로운 자라고 불립니다. 무엇을 꿰뚫어 압니까? ‘이것은 괴로움이다.’라고 꿰뚫어 알고, ‘이것은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꿰뚫어 알고,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꿰뚫어 알고,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실천이다.’라고 꿰뚫어 압니다. ‘꿰뚫어 안다, 꿰뚫어 안다.’라고 하여, 벗이여, 지혜로운 자라고 불립니다.
“벗이여, ‘식(識), 식(識)’이라고 불립니다. 벗이여, 어떻게 식(識)이라고 불립니까?” “벗이여, ‘인식(認識)한다[분별(分別)해서 안다], 인식한다.’라고 하여, 벗이여, 식(識)이라고 불립니다. 무엇을 인식합니까? 즐거움이라고도 인식하고, 괴로움이라고도 인식하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이라고도 인식합니다. 벗이여, ‘인식한다, 인식한다.’라고 하여, 벗이여, 식(識)이라고 불립니다.”
“벗이여, 혜(慧)와 식(識) ㅡ 이 법들은 결합된 것입니까 아니면 개별적인 것입니까? 이 법들을 위해 분리하고 분리하여 다르게 만들어 드러내는 것이 가능합니까?" “벗이여, 혜(慧)와 식(識) ㅡ 이 법들은 결합된 것이지 개별적인 것이 아닙니다. 이 법들을 위해 분리하고 분리하여 다르게 만들어 드러내는 것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벗이여, 꿰뚫어 아는 것을 분별하여 알고, 분별하여 아는 것을 꿰뚫어 압니다. 그러므로 이 법들은 결합된 것이지 개별적인 것이 아닙니다. 이 법들을 위해 분리하고 분리하여 다르게 만들어 드러내는 것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벗이여, 혜(慧)와 식(識) ㅡ 이 법들이 결합된 것이지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면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벗이여, 혜(慧)와 식(識) ㅡ 이 법들은 결합된 것이지 개별적인 것이 아닙니다, 혜(慧)는 닦아져야 하고 식(識)은 완전히 알려져야 합니다. 이것이 이것들의 차이입니다”
“벗이여, ‘수(受), 수(受)’라고 불립니다. 벗이여, 어떻게 수(受)라고 불립니까?” “벗이여, ‘경험한다, 경험한다.’라고 하여, 벗이여, 수(受)라고 불립니다. 무엇을 경험합니까? 즐거움도 경험하고 괴로움도 경험하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도 경험합니다. 벗이여, ‘경험한다, 경험한다.’라고 하여, 벗이여, 수(受)라고 불립니다.”
“벗이여, ‘상(想), 상(想)’이라고 불립니다. 벗이여, 어떻게 상(想)이라고 불립니까?” “벗이여, ‘함께 안다[상(想)한다], 함께 안다.’라고 하여, 벗이여, 상(想)이라고 불립니다. 무엇을 함께 압니까? 파란색을 함께 알기도 하고, 노란색을 함께 알기도 하고, 빨간색을 함께 알기도 하고, 하얀색을 함께 알기도 합니다. 벗이여, ‘함께 안다[상(想)한다], 함께 안다.’라고 하여, 벗이여, 상(想)이라고 불립니다.”
“벗이여, 수(受)와 상(想)과 식(識) ㅡ 이 법들은 결합된 것입니까 아니면 개별적인 것입니까? 이 법들을 위해 분리하고 분리하여 다르게 만들어 드러내는 것이 가능합니까?" “벗이여, 수(受)와 상(想)과 식(識) ㅡ 이 법들은 결합된 것이지 개별적인 것이 아닙니다. 이 법들을 위해 분리하고 분리하여 다르게 만들어 드러내는 것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경험하는 것[수(受)]을 상(想)하고, 상(想)하는 것을 인식합니다[분별해서 압니다]. 그러므로 이 법들은 결합된 것이지 개별적인 것이 아닙니다. 이 법들을 위해 분리하고 분리하여 다르게 만들어 드러내는 것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 nissaraṇa: 1. going out; departure; 2. escape. (nt.)
• nissaṭṭha: given up; dismissed; handed over. (pp. of nissajati)
• neyya: to be led or carried; to be inferred or understood. (adj.)
“벗이여, 다섯 가지 기능을 포기한 청정한 의식(意識)은 무엇을 이끕니까?” “벗이여, 다섯 가지 기능을 포기한 청정한 의식(意識)은 ‘무한한 허공’이라는 공무변처(空無邊處)를 이끌고, ‘무한한 식(識)’이라는 식무변처(識無邊處)를 이끌고, ‘아무것도 없다.’라는 무소유처(無所有處)를 이끕니다.” “벗이여, 그러면 이끄는 법을 무엇이 꿰뚫어 압니까?” “벗이여, 이끄는 법을 혜안(慧眼)이 꿰뚫어 압니다.”
“paññā panāvuso, kimatthiyā”ti? “paññā kho, āvuso, abhiññatthā pariññatthā pahānatthā”ti.
"벗이여, 혜(慧)는 무엇이 목적입니까?" "벗이여, 혜(慧)는 실(實)다운 지혜가 목적이고, 완전한 지혜가 목적이고, 버림이 목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