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지마 니까야 관통 법회 - 43.[특강]교리문답의 큰 경[(SN 13-관통 상윳따)와 실다운 지혜](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
▣ 맛지마 니까야 관통 법회 - 43.[특강]교리문답의 큰 경[(SN 13-관통 상윳따)와 실다운 지혜](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220213)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GOnwgcGUweQ
(MN 43-교리문답의 큰 경)의 「“paññā kho, āvuso, abhiññatthā pariññatthā pahānatthā”ti. 참으로 도반이여, 혜(慧)는 실다운 지혜와 완전한 지혜와 버림을 위한 것입니다.」에서 실다운 지혜에 대한 수업입니다.
(AN 4.254-실다운 지혜 경 ☞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8_09_06&wr_id=1) 등은 「실답게 안 뒤에 완전히 알아야 하는 법들, 실답게 안 뒤에 버려야 하는 법들, 실답게 안 뒤에 닦아야 하는 법들,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해야 하는 법들이 있다(심층적인 사성제).」라고 하는데, 실답게 안다는 것은 실다운 지혜와 함께 식(識)이 인식하는 것이고, 완전히 아는 것은 완전한 지혜와 함께 식이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깨달음의 과정은 두 단계로 진행되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실다운 지혜(abhiññā)를 얻은 뒤에 완전한 지혜(pariññā)로 완성됩니다. 이때, 완전한 지혜는 (MN 13-괴로움 무더기 큰 경) 등에서 욕(慾)-색(色)-수(受)에 대한 완전한 지혜로 나타나는데, 탐(貪)-진(嗔)-치(癡)의 부서짐에 의해 깨달은 아라한의 경지입니다(SN 22.23-완전한 지혜 경). 그러면 실다운 지혜의 경지는 어디입니까?
(SN 13-관통 상윳따 ☞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6_02_02)의 1~10번 경은 견해를 가진 자, 법을 관통하고 법안(法眼)을 얻은 예류자(預流者)에게 남아있는 최대 일곱 생은 부서지고 소진된 생들과 비할 바 없이 적다고 하고, 11번 경은 견해를 갖춘 성스러운 제자의 성취는 외도의 사문-바라문-유행승들의 성취와 비할 바 없이 크다고 하는데(*), 견해를 갖춘 사람은 이렇게 큰 실다운 지혜를 가졌다고 말합니다(mahābhiñño-큰 실다운 지혜를 가진 자). 그래서 실다운 지혜가 예류자의 경지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외도의 수행자들은 소유의 삶을 넘어서 존재의 삶에 오르면 더 높은 존재 상태로 올라가는 수행을 하지만, 불교 수행자는 존재의 삶에 오른 뒤 존재에서 벗어나는 수행을 합니다. 더 높은 존재 상태는 다만 벗어남의 완성을 위한 토대로 작용합니다. 이때, 존재에서 벗어나 해탈된 삶을 실현하는 것이 더 높은 존재 상태를 실현하는 것보다 더 큰 성과입니다[고멸(苦滅)].
실다운 지혜의 경지는 이런 방법으로 ‘큰 실다운 지혜를 가진 자’의 용례에서 확인되는데, 특히, (SN 52.3-수따누 경) 등 아누룻다 존자와 관련된 경들에 의하면 사념처에 의해 성취됩니다. ⇒ 답글 참조
이렇게 실다운 지혜가 사념처에 의해 성취되는 예류자의 경지라는 이해는 수행의 관점과 연결되는데, ①[사념처 → 사마타-위빳사나]의 수행 체계, ②수행의 중심 개념, ③takka 안팎의 문제 해소 ― 수행지도(修行地圖)입니다.
①사념처로 시작해서 사마타-위빳사나로 완성되는 불교 수행 체계는 ②심(心)을 차지한 다섯 가지 장애를 사념처로 밀어내고, 사념처에 잘 확립된 심(心)을 가진 자는 칠각지(七覺支)를 있는 그대로 닦아서 명(明)과 해탈을 이끕니다. 그래서 칠각지를 있는 그대로 닦는 것이 사마타-위빳사나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③사념처로 장애를 밀어내는 과정이 takka의 밖에서 삼매를 닦아 여실지견(如實知見)한 예류자의 경지로써 완성되면 takka의 안에서 염오(厭惡)-이탐(離貪)의 사마타와 소멸(消滅)의 위빳사나로 번뇌를 부수고 해탈하여 아라한을 성취하는 과정입니다.
한편, 많은 경들은 두 단계의 깨달음을 설명하는데, ①있는 그대로 꿰뚫어 아는 자(yathābhūtaṃ pajānāti)와 ②있는 그대로 안 뒤 집착 없이 해탈한 자(yathābhūtaṃ viditvā anupādāvimutto hoti)입니다. 이때, ①은 법을 관통하고 법안을 얻어 여실지견(如實知見)하는 예류자고, ②는 번뇌가 부서져[누진(漏盡)] 번뇌 다한 아라한입니다. 그리고 ①의 경지는 실다운 지혜(abhiññā)고, ②의 경지는 완전한 지혜(pariññ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