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ndarakasuttaṃ (MN 51-깐다라까 경)
1. gahapativaggo, 1. kandarakasuttaṃ (MN 51-깐다라까 경)
이렇게 나는 들었다. — 한때 세존은 깜빠의 각가라 호숫가에서 큰 비구 상가와 함께 머물렀다. 그때 코끼리 조련사의 아들 뻿사와 깐다라까 유행승이 세존에게 왔다. 와서는 코끼리 조련사의 아들 뻿사는 세존에게 절한 뒤 한 곁에 앉았다. 깐다라까 유행승은 세존과 함께 인사를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만한 이야기를 주고받은 뒤 한 곁에 섰다. 한 곁에 선 깐다라까 유행승은 침묵하고 또 침묵하는 비구 상가를 본 뒤에 세존에게 이렇게 말했다. — “고따마 존자시여, 참으로 놀랍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참으로 신기합니다. 고따마 존자께서 이끄는 만큼 이 비구 상가는 바르게 실천하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지금의 고따마 존자께서 이끄는 만큼 이 비구 상가가 바르게 실천하게 되었듯이, 고따마 존자시여, 과거에 있었던 아라한–정등각인 그분 세존들께서도 그 비구 상가를 바르게 최상으로 실천하게 했습니다. 예를 들면 지금의 고따마 존자께서 이끄는 만큼 이 비구 상가가 바르게 실천하게 되었듯이, 고따마 존자시여, 미래에 있을 아라한–정등각인 그분 세존들께서도 그 비구 상가를 바르게 최상으로 실천하게 할 것입니다.”
“그것은 그렇습니다, 깐다라까여. 그것은 그렇습니다, 깐다라까여. 예를 들면 지금의 내가 이끄는 만큼 이 비구 상가가 바르게 실천하게 되었듯이, 깐다라까여, 과거에 있었던 아라한–정등각인 그분 세존들께서도 그 비구 상가를 바르게 최상으로 실천하게 했습니다. 예를 들면 지금의 내가 이끄는 만큼 이 비구 상가가 바르게 실천하게 되었듯이, 깐다라까여, 미래에 있을 아라한–정등각인 그분 세존들께서도 그 비구 상가를 바르게 최상으로 실천하게 할 것입니다.
깐다라까여, 이 비구 상가에는 번뇌가 다했고 삶을 완성했으며 해야 할 바를 했고 짐을 내려놓았으며 최고의 선(善)을 성취했고 존재의 족쇄를 완전히 부수었으며 바른 무위의 앎으로 해탈한 아라한들이 있습니다. 깐다라까여, 이 비구 상가에는 고요함이 담긴 계를 지닌 자, 고요함을 담고 머무는 자, 현명한 자, 현명하게 머무는 자인 유학(有學)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사념처에 잘 확립된 심(心)을 가진 자로 머뭅니다. 어떤 넷에서입니까? 여기, 깐다라까여, 비구는 신(身-몸)을 이어보면서 신(身)에 머뭅니다. 알아차리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옳음의 유지-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자는 세상에서 간탐과 고뇌를 제거합니다. 수(受-느낌/경험)를 이어보면서 수(受)에 머뭅니다. 알아차리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옳음의 유지-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자는 세상에서 간탐과 고뇌를 제거합니다. 심(心-마음)을 이어보면서 심(心)에 머뭅니다. 알아차리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옳음의 유지-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자는 세상에서 간탐과 고뇌를 제거합니다. 법(法-현상)을 이어보면서 법(法)에 머뭅니다. 알아차리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옳음의 유지-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자는 세상에서 간탐과 고뇌를 제거합니다.”
이렇게 말했을 때, 코끼리 조련사의 아들 뻿사가 세존에게 이렇게 말했다. — “대덕이시여, 참으로 놀랍습니다. 대덕이시여, 참으로 신기합니다. 대덕이시여, 세존께서 잘 선언하셨듯이, 이 사념처는 중생들의 청정을 위한, 슬픔[수(愁)]과 비탄[비(悲)]을 건너기 위한, 고통[고(苦)]과 고뇌[우(憂)]의 줄어듦을 위한, 방법을 얻기 위한, 열반을 실현하기 위한 것입니다. 대덕이시여, 흰옷을 입은 저희 재가자들도 적당한 때에 이 사념처에 잘 확립된 심(心)을 가진 자로 머뭅니다. 여기, 대덕이시여, 저희는 신(身-몸)을 이어보면서 신(身)에 머뭅니다. 알아차리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옳음의 유지-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자는 세상에서 간탐과 고뇌를 제거합니다. 수(受-느낌/경험)를 이어보면서 수(受)에 머뭅니다. 알아차리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옳음의 유지-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자는 세상에서 간탐과 고뇌를 제거합니다. 심(心-마음)을 이어보면서 심(心)에 머뭅니다. 알아차리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옳음의 유지-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자는 세상에서 간탐과 고뇌를 제거합니다. 법(法-현상)을 이어보면서 법(法)에 머뭅니다. 알아차리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옳음의 유지-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자는 세상에서 간탐과 고뇌를 제거합니다. 대덕이시여, 참으로 놀랍습니다. 대덕이시여, 참으로 신기합니다. 대덕이시여, 세존께서 이렇게 속을 알 수 없고, 이렇게 고약하고, 이렇게 교활한 인간에 대해 중생들의 이익과 손해를 아시듯이, 대덕이시여, 인간은 참으로 속을 알 수 없습니다. 대덕이시여, 짐승들은 분명히 드러냅니다. 대덕이시여, 저는 코끼리를 조련하여 이끌 수 있습니다. 깜빠의 사이를 오가는 동안 그들 모두는 교활과 사기와 속임수와 거짓을 드러낼 것입니다. 대덕이시여, 그러나 하인이나 심부름꾼이나 직원들은 저희에게 마치 다른 몸으로 행동하고, 마치 다른 말로 행동하고, 마치 그들에게 다른 심(心)이 있는 것 같습니다. 대덕이시여, 참으로 놀랍습니다. 대덕이시여, 참으로 신기합니다. 대덕이시여, 세존께서 이렇게 속을 알 수 없고, 이렇게 고약하고, 이렇게 교활한 인간에 대해 중생들의 이익과 손해를 아시듯이, 대덕이시여, 인간은 참으로 속을 알 수 없습니다. 대덕이시여, 짐승들은 분명히 드러냅니다.”
“그것은 그렇다, 뻿사여. 그것은 그렇다, 뻿사여. 뻿사여, 인간은 속을 알 수 없다. 뻿사여, 짐승은 분명히 드러낸다.
뻿사여, 세상에는 이런 네 부류의 사람들이 존재한다. 어떤 넷인가? 뻿사여, 여기 어떤 사람은 자신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여 스스로 힘든 삶을 사는 자이다. 뻿사여, 여기 어떤 사람은 남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여 남을 힘들게 하는 자이다. 뻿사여, 여기 어떤 사람은 자신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여 스스로 힘든 삶을 사는 자이면서 남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여 남을 힘들게 하는 자이다. 뻿사여, 여기 어떤 사람은 자신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지 않아 스스로 힘든 삶을 살지 않는 자이면서 남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지 않아 남을 힘들게 하지 않는 자이다. 스스로 힘든 삶을 살지 않는 자이고 남을 힘들게 하지 않는 자인 그는 지금여기에서 원하지 않는 자, 꺼진 자, 청량한 자, 즐거움을 경험하는 자여서 스스로 성스러운 존재로 머문다. 뻿사여, 이 네 가지 부류의 사람 가운데 어떤 사람이 그대의 마음에 드는가?”
“대덕이시여, 자신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여 스스로 힘든 삶을 사는 이 사람은 저의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대덕이시여, 남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여 남을 힘들게 하는 이 사람도 저의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대덕이시여, 자신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여 스스로 힘든 삶을 살면서 남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여 남을 힘들게 하는 이 사람도 저의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대덕이시여, ‘자신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지 않아 스스로 힘든 삶을 살지 않는 자이면서 남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지 않아 남을 힘들게 하지 않는 자이다. 스스로 힘든 삶을 살지 않는 자이고 남을 힘들게 하지 않는 자인 그는 지금여기에서 원하지 않는 자, 꺼진 자, 청량한 자, 즐거움을 경험하는 자여서 스스로 성스러운 존재로 머문다.’라는 이 사람이 저의 마음에 듭니다.”
“뻿사여, 이 세 사람은 왜 그대의 마음에 들지 않는가?” “대덕이시여, 자신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여 스스로 힘든 삶을 사는 이 사람은 행복을 원하는 자기에게 마음에 들지 않는 고통을 주고 괴롭힙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저의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대덕이시여, 남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여 남을 힘들게 하는 이 사람은 행복을 원하는 남에게 마음에 들지 않는 고통을 주고 괴롭힙니다. 그래서 이 사람도 저의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대덕이시여, 자신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여 스스로 힘든 삶을 살면서 남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여 남을 힘들게 하는 이 사람은 행복을 원하는 자기와 남에게 마음에 들지 않는 고통을 주고 괴롭힙니다. 그래서 이 사람도 저의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대덕이시여, ‘자신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지 않아 스스로 힘든 삶을 살지 않는 자이면서 남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지 않아 남을 힘들게 하지 않는 자이다. 스스로 힘든 삶을 살지 않는 자이고 남을 힘들게 하지 않는 자인 그는 지금여기에서 원하지 않는 자, 꺼진 자, 청량한 자, 즐거움을 경험하는 자여서 스스로 성스러운 존재로 머문다.’라는 이 사람은 행복을 원하는 자기와 남에게 마음에 들지 않는 고통을 주지 않고 괴롭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저의 마음에 듭니다. 대덕이시여, 이제 저희는 가겠습니다. 의무가 많은 저희는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뻿사여, 그대에게 적당한 시간을 이제 그대가 생각하라.” 그러자 코끼리 조련사의 아들 뻿사는 세존의 말씀을 기뻐하고 감사한 뒤에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에게 절하고 오른쪽으로 돈 뒤에 돌아갔다.
세존은 코끼리 조련사의 아들 뻿사가 돌아간 뒤 오래지 않았을 때 비구들에게 말했다. — “비구들이여, 코끼리 조련사의 아들 뻿사는 현명한 사람이다. 비구들이여, 코끼리 조련사의 아들 뻿사는 큰 지혜를 가진 사람이다. 비구들이여, 만약 내가 이 네 부류의 사람들에 대해 상세하게 분석할 때까지 코끼리 조련사의 아들 뻿사가 조금 더 앉아있었다면 그는 큰 이익을 얻었을 것이다. 그러나 비구들이여, 그만큼으로도 코끼리 조련사의 아들 뻿사는 큰 이익을 얻었다.” “세존께서 이 네 부류의 사람들에 대해 상세하게 분석하시기에, 세존이시여, 지금이 적당한 때입니다. 선서시여, 지금이 적당한 때입니다. 세존에게 듣고 비구들은 명심할 것입니다.” “비구들이여, 그렇다면 듣고 잘 사고하라. 나는 말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대덕이시여.”라고 그 비구들은 세존에게 대답했다. 세존은 이렇게 말했다. —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이 자신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여 스스로 힘든 삶을 사는 사람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품행에 얽매이지 않은 자이고, 음식을 받은 뒤에 핥아 먹는 자이고, ‘오시오!’라는 초대를 받지 않는 자이고, ‘서시오!’라는 초대를 받지 않는 자인데, 주어지지 않은 것과 배당되지 않은 것과 초대되지 않은 것을 받지 않는다. 그는 항아리의 가장자리로부터 받지 않고, 그릇의 가장자리로부터 받지 않고, 중간에 문지방이 있는 것, 중간에 몽둥이가 있는 것, 중간에 절굿공이가 있는 것, 두 사람이 먹고 있는 것, 임신부의 것, 젖을 먹이는 여자의 것, 남자에게 안긴 여자의 것을 받지 않고 모여 있는 곳에서 받지 않고, 개가 대기하고 있는 곳에서 받지 않고, 파리 떼가 득실거리는 곳에서 받지 않고, 어류를 받지 않고, 고기를 받지 않고, 술과 발효주와 발효하여 끓인 것을 마시지 않는다. 그는 한 집에서 한 입의 음식을, 두 집에서 두 입의 음식을 … 일곱 집에서 일곱 입의 음식을 받아먹는다. 작은 그릇 한 개의 음식으로 삶을 유지하고, 작은 그릇 두 개의 음식으로 삶을 유지하고, … 작은 그릇 일곱 개의 음식으로 삶을 유지한다. 하루에 한 번 음식을 먹고, 이틀에 한 번 음식을 먹고, … 이레에 한 번 음식을 먹는다. ㅡ 이와 같은 식으로 보름에 한 번 음식을 먹는 방법의 음식을 먹는 것을 실천하며 머문다. 그는 야채를 먹기도 하고, 수수를 먹기도 하고, 생쌀을 먹기도 하고, 부드러운 뼈를 먹기도 하고, 수초를 먹기도 하고, 왕겨를 먹기도 하고, 뜨물을 먹기도 하고, 참깻가루를 먹기도 하고, 풀을 먹기도 하고, 쇠똥을 먹기도 하고, 나무뿌리와 열매를 음식으로 삶을 유지하고, 떨어진 열매를 먹고 삶을 유지한다.
그는 삼베옷도 입고, 삼베와 다른 원료를 섞어 짠 거친 옷도 입고, 수의(壽衣)도 입고, 분소의(糞掃衣)도 입고, 나무껍질을 엮은 옷도 입고, 치타 가죽옷도 입고, 치타 가죽 망토도 입고, 꾸사 풀 옷도 입고, 나무껍질 옷도 입고, 나무의 편편한 조각으로 만든 옷도 입고, 머리카락으로 만든 담요도 입고, 뱀 껍질로 만든 담요도 입고, 올빼미 깃털로 만든 옷도 입는다.
머리카락과 턱수염을 뽑는 수행을 실천하는 자여서 머리카락과 턱수염도 뽑고, 앉는 것을 거부하는 자여서 똑바로 서기도 하고, 쪼그려 앉는 정진을 실천하는 자여서 쪼그려 앉기도 하고, 가시에 기대는 자여서 가시로 된 침대를 사용한다. 저녁에 세 번 물에 들어가는 수행을 실천하면서 머문다. ― 이와 같은 식의 다양한 방법으로 몸을 괴롭히는 고행을 실천하며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자신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여 스스로 힘든 삶을 사는 사람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이 남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여 남을 힘들게 하는 사람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양 도살자, 돼지 도살자, 새 잡는 사람, 사슴 사냥꾼, 사냥꾼, 어부, 도둑, 도둑의 집행자, 죄수, 또는 누구든지 모진 행위를 하는 다른 사람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남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여 남을 힘들게 하는 사람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이 자신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여 스스로 힘든 삶을 살면서 남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여 남을 힘들게 하는 사람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머리에 의식을 치르고 왕위에 오른 끄샤뜨리야 왕이거나 큰 재력을 가진 바라문이다. 그는 도시의 동쪽에 새로운 공회(公會)를 짓게 하고 머리와 수염을 깎고 거친 가죽옷을 입고 버터와 기름을 몸에 바르고 사슴뿔로 등을 긁으면서 첫째 왕비와 왕실의 바라문 제관과 함께 새로운 공회(公會)로 들어간다. 그는 거기서 이어지는 적당하고 황갈색으로 얼룩진 땅에 자리를 만들게 한다. 같은 색깔의 송아지가 있는 한 마리의 암소의 첫 번째 젖꼭지에서 생긴 우유로 왕이 연명한다. 두 번째 젖꼭지에서 생긴 젖으로 첫째 왕비가 연명한다. 세 번째 젖꼭지에서 생긴 젖으로 왕실의 바라문 제관이 연명한다. 네 번째 젖꼭지에서 생긴 젖으로 불에 붓는다. 나머지로 송아지가 연명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 ‘제사를 위해서 이만큼의 황소들을 도살하라. 제사를 위해서 이만큼의 젖을 뗀 수송아지들을 도살하라. 제사를 위해서 이만큼의 젖을 뗀 암송아지들을 도살하라. 제사를 위해서 이만큼의 암염소들을 도살하라. 제사를 위해서 이만큼의 숫양들을 도살하라. (제사를 위해서 이만큼의 말들을 도살하라.) 제사 기둥을 위해서 이만큼의 나무를 베어라. 제사 풀을 위해서 이만큼의 다르바 풀을 거둬라.’라고. 그러면 그의 하인이나 심부름꾼이나 직원들은 처벌을 두려워하고 무서움을 두려워하고 눈물을 흘리는 얼굴로 한탄하면서 준비를 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자신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여 스스로 힘든 삶을 살면서 남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여 남을 힘들게 하는 사람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이 ‘자신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지 않아 스스로 힘든 삶을 살지 않는 자이면서 남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지 않아 남을 힘들게 하지 않는 자이다. 스스로 힘든 삶을 살지 않는 자이고 남을 힘들게 하지 않는 자인 그는 지금여기에서 원하지 않는 자, 꺼진 자, 청량한 자, 즐거움을 경험하는 자여서 스스로 성스러운 존재로 머문다.’라는 사람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아라한(阿羅漢)-정등각(正等覺)-명행족(明行足)-선서(善逝)-세간해(世間解)-무상조어장부(無上調御丈夫)-천인사(天人師)-불(佛)-세존(世尊)인 여래(如來)가 세상에 출현한다. 그는 신과 함께하고 마라와 함께하고 범천과 함께하는 세상과 사문-바라문과 함께하고 신과 사람과 함께하는 존재를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선언한다. 그는 처음도 좋고 중간에도 좋고 끝도 좋은, 의미를 갖추고 표현을 갖춘 법을 설하고, 온전하게 완전하고 청정한 범행(梵行)을 드러낸다. 이런 법을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나 다른 가문에 태어난 자가 듣는다. 그는 이 법을 듣고서 여래에게 믿음을 얻는다. 얻어진 그 믿음을 갖춘 그는 이렇게 숙고한다. — ‘재가의 삶이란 압박이고 오염이 많지만, 출가는 열린 허공과 같다. 재가에 살면서 온전히 충만하고 온전히 청정하고 소라고둥처럼 빛나는 범행을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니 나는 머리와 수염을 깎고 물들인 옷을 입고서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해야겠다.’라고. 그는 나중에 적은 재산을 버리거나 많은 재산을 버리거나 주변의 적은 친척을 버리거나 주변의 많은 친척을 버린 뒤에 머리와 수염을 깎고, 노란 옷을 입고,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한다.
이렇게 출가하여 비구들의 공부와 생활규칙을 갖춘 그는 생명을 해치는 행위를 버렸기 때문에 생명을 해치는 행위로부터 피한 자이다. 몽둥이를 내려놓았고, 칼을 내려놓았고, 겸손하고, 연민하고, 모든 생명에게 우정과 동정으로 머문다.
그는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행위를 버렸기 때문에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행위로부터 피한 자이다. 준 것만을 받는 자이고, 준 것만을 바라는 자이다. 스스로 훔치지 않는 청정한 존재로 머문다.
그는 범행(梵行) 아닌 행위를 버렸기 때문에 범행을 닦는 자이다. 멀리 사는 자이고, 저속한 성행위를 멀리 여의었다.
그는 거짓을 말하는 행위를 버렸기 때문에 거짓을 말하는 행위로부터 피한 자이다. 진실을 말하는 자이고, 믿을만하고, 신뢰할 수 있고, 기대할 수 있고, 세상을 위해 진실을 말한다.
그는 험담하는 행위를 버렸기 때문에 험담하는 행위로부터 피한 자이다. 여기서 들은 뒤 저기서 말함으로부터 이것들의 해체로 이끌지 않고, 저기서 들은 뒤 이들에게 말함으로부터 이러한 해체로 이끌지 않는다, 이렇게 파괴를 회유하는 자이거나 단결을 가져오는 자이다. 화합을 좋아하고 화합을 꾀하고 화합을 즐기고 화합을 만드는 말을 말한다.
그는 거칠게 말하는 행위를 버렸기 때문에 거칠게 말하는 행위로부터 피한 자이다. 침이 튀지 않고, 귀에 즐겁고, 애정이 넘치고, 매력적이고, 예의 바르고, 대중들이 좋아하고, 대중들의 마음에 드는 그런 말을 말한다.
그는 쓸모없고 허튼 말하는 행위를 버렸기 때문에 쓸모없고 허튼 말하는 행위로부터 피한 자이다. 적절한 때에 말하고, 진실 되게 말하고, 이익되게 말하고, 법에 맞게 말하고, 율에 맞게 말한다. 적절한 때에, 근거를 갖춘, 절제된, 이익되는 말을 말한다.
1) 그는 씨앗과 초목을 손상하는 행위를 피하고, 2) 하루에 한 끼만 먹는 자여서 밤에 먹는 것을 삼가고, 규정되지 않은 때에 먹는 것을 멀리 여의고, 3) 춤, 노래, 음악, 관람을 피하고, 4) 화환, 향, 화장품, 몸에 지니는 것, 장식품, 꾸민 상태를 버렸기 때문에 춤, 노래, 음악, 관람, 화환, 향, 화장품, 몸에 지니는 것, 장식품, 꾸민 상태를 피하고, 5) 높고 큰 침상을 피하고, 6) 금과 은을 받는 것을 피하고, 7) 요리하지 않은 낱알을 받는 것을 피하고, 8) 요리하지 않은 고기를 받는 것을 피하고, 9) 여인이나 여자아이를 받는 것을 피하고, 10) 하인과 하녀를 받는 것을 피하고, 11) 염소와 숫양을 받는 것을 피하고, 12) 닭과 돼지를 받는 것을 피하고, 13) 코끼리와 소와 말과 암말을 받는 것을 피하고, 14) 밭이나 땅을 받는 것을 피하고, 15) 심부름이나 전령으로 가는 것을 피하고, 16) 상행위를 하는 것을 피하고, 17) 저울추를 속이고, 사기를 치고, 치수를 속이는 것을 피하고, 18) 뇌물을 주고, 속이고, 사기 치고 정직하지 않은 것을 피하고, 19) 절단, 살상, 포박, 노상강도, 약탈, 폭행을 피한다.
그는 몸을 유지하기 위한 가사와 내장을 유지하기 위한 탁발 음식으로 만족한다. 그는 어디를 가더라도 이것들만 가지고 간다. 예를 들면 날개 가진 새는 어디를 날아가더라도 오직 자기의 양 날개를 옮기며 날아간다. 이처럼 비구는 몸을 유지하기 위한 가사와 내장을 유지하기 위한 탁발 음식으로 만족한다. 그가 어디를 가더라도 이것들만 가지고 간다. 이런 성스러운 계온(戒蘊)을 갖춘 그는 안으로 피하지 않아도 되는 행복을 경험한다.
그는 안(眼)으로 색(色)을 보면서 상(相)을 붙잡지 않고 뒤따르는 것(受)을 붙잡지 않는다. 안근(眼根)을 단속하지 않고 머물면 간탐과 불만과 악한 불선법들이 흘러들어 올 것이기 때문에 그것의 단속을 위해 실천한다. 안근을 보호하고, 안근에서 단속한다. 이(耳)로 성(聲)을 들으면서 … 비(鼻)로 향(香)을 맡으면서 … 설(舌)로 미(味)를 맛보면서 … 신(身)으로 촉(觸)을 닿으면서 … 의(意)로 법(法)을 인식하면서 상을 붙잡지 않고 뒤따르는 것(受)을 붙잡지 않는다. 의근(意根)을 단속하지 않고 머물면 간탐과 불만과 악한 불선법들이 흘러들어 올 것이기 때문에 그것의 단속을 위해 실천한다. 의근을 보호하고, 의근에서 단속한다. 이 성스러운 기능의 단속을 갖춘 그는 안으로 뿌려지지 않는 행복을 경험한다.
그는 나아갈 때도 물러날 때도 옳고 그름을 판단하면서 행한다. 앞을 볼 때도 돌아볼 때도 옳고 그름을 판단하면서 행한다. 구부릴 때도 펼 때도 옳고 그름을 판단하면서 행한다. 대가사와 발우와 가사를 지닐 때도 옳고 그름을 판단하면서 행한다. 먹을 때도 마실 때도 씹을 때도 맛볼 때도 옳고 그름을 판단하면서 행한다. 똥과 오줌을 눌 때도 옳고 그름을 판단하면서 행한다. 갈 때도-설 때도-앉을 때도-잠잘 때도-깨어있을 때도-말할 때도-침묵할 때도 옳고 그름을 판단하면서 행한다.
이런 성스러운 계의 무더기를 갖추고, (이런 성스러운 만족을 갖추고) 이런 성스러운 기능의 단속을 갖추고, 이런 성스러운 사띠와 바른 앎을 갖춘 그는 숲속이나 나무 아래나 산이나 골짜기나 산속 동굴이나 묘지나 밀림이나 노지나 짚더미와 같은 외딴 처소를 의지한다. 탁발하여 공양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오후에 다리를 교차하고 몸을 곧게 뻗치고 콧구멍 주위에 사띠를 준비한 채 앉아있다. 는 세상에 대한 간탐을 버린 뒤에 간탐에서 벗어난 심(心)으로 머물고, 간탐으로부터 심을 청정케 한다. 진에의 거침을 버린 뒤에 거슬리지 않은 심으로 모든 생명의 이익을 위하여 연민하며 머물고, 진에의 거침으로부터 심(心)을 청정케 한다. 해태-혼침을 버린 뒤에 해태-혼침 없이 광명상(光明想)을 가지고 사띠와 바른 앎을 갖추어 머물고, 해태-혼침으로부터 심을 청정케 한다. 들뜸-후회를 버린 뒤에 휘저어지지 않아 안으로 가라앉은 심으로 머물고, 들뜸-후회로부터 심을 청정케 한다. 의심을 버린 뒤에 의심을 건너 유익한 법들에 대해 불확실함을 가지지 않고 머물고, 의심으로부터 심을 청정케 한다.
그는 지혜를 무력화시키는 심(心)의 오염원인 이런 다섯 가지 장애를 버리고서 소유의 삶에서 벗어나고, 불선법들에서 벗어나서, 위딱까가 있고 위짜라가 있고 떨침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의 초선(初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위딱까와 위짜라의 가라앉음으로 인해, 안으로 평온함과 마음의 집중된 상태가 되어, 위딱까도 없고 위짜라도 없이, 삼매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의 제이선(第二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쁨의 바램으로부터 평정하게 머물고, 사띠와 바른 앎을 가지고 몸으로 즐거움을 경험하면서, 성인들이 ‘평정을 가진 자, 사띠를 가진 자, 즐거움에 머무는 자[사념락주(捨念樂住)]’라고 말하는 제삼선(第三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즐거움의 버림과 괴로움의 버림으로부터, 이미 만족과 불만들의 줄어듦으로부터, 괴로움도 즐거움도 없고 평정과 청정한 사띠[사념청정(捨念淸淨)]의 제사선(第四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그는 이렇게 심(心)이 삼매를 닦고, 청정하고 아주 깨끗하고 침착하고 오염원이 없고 유연하고 준비되고 안정되고 흔들림 없음에 도달했을 때, 이전의 존재 상태에 대한 기억의 앎으로 심(心)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한다[전생 기억]. 그는 여러 이전의 존재 상태[전생]를 기억한다. 즉 — 한 번의 생, 두 번의 생, 세 번의 생, 네 번의 생, 다섯 번의 생, 열 번의 생, 스무 번의 생, 서른 번의 생, 마흔 번의 생, 쉰 번의 생, 백 번의 생, 천 번의 생, 십만 번의 생, 세계가 줄어드는[진화] 여러 겁, 세계가 자라나는[퇴보] 여러 겁, 세계가 줄어들고 자라나는 여러 겁을 기억한다. — ‘이러이러한 곳에서 나는 이런 이름이었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였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행복과 괴로움을 이렇게 경험했고, 수명의 한계는 이러했다. 나는 거기에서 죽어 이러이러한 곳에 태어났다. 그곳에서 나는 이런 이름이었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였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행복과 괴로움을 이렇게 경험했고, 수명의 한계는 이러했다. 나는 거기에서 죽어 여기에 태어났다.’라고. 이처럼 상태와 함께, 상세한 설명과 함께 여러 이전의 존재 상태를 기억한다.
그는 이렇게 심(心)이 삼매를 닦고, 청정하고 아주 깨끗하고 침착하고 오염원이 없고 유연하고 준비되고 안정되고 흔들림 없음에 도달했을 때, 죽고 다시 태어남의 앎으로 심(心)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한다. 그는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천안(天眼)]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고, 저열하고 뛰어나고, 잘생기고 못생기고, 좋은 곳[선처(善處)]에 가고 나쁜 곳[악처(惡處)]에 가는 것을 본다. 업에 따라서 가는 중생들을 분명히 안다. — ‘이들은 몸으로 나쁜 삶을 살고 말로 나쁜 삶을 살고 의(意)로 나쁜 삶을 살고, 성자들을 비방하고, 삿된 견해를 가졌고, 사견업(邪見業)을 지었다. 이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상실과 비탄의 상태, 비참한 존재, 벌 받는 상태, 지옥에 태어났다. 그러나 이들은 몸으로 좋은 삶을 살고 말로 좋은 삶을 살고 의(意)로 좋은 삶을 살고, 성자들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지니고, 정견업(正見業)을 지었다. 이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하늘 세상에 태어났다.’라고. 이렇게 그는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는 것을 본다. 저열하고 뛰어나고, 잘생기고 못생기고, 좋은 곳에 가고 나쁜 곳에 가는 등 업에 따라서 가는 중생들을 분명히 안다.
그는 이렇게 심(心)이 삼매를 닦고, 청정하고 아주 깨끗하고 침착하고 오염원이 없고 유연하고 준비되고 안정되고 흔들림 없음에 도달했을 때, 번뇌들의 부서짐의 앎으로 심(心)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한다. 그는 ‘이것이 고(苦)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이것이 고집(苦集)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이것이 고멸(苦滅)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이것이 고멸(苦滅)로 이끄는 실천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들이 번뇌[루(漏)]들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이것이 번뇌의 집(集)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이것이 번뇌의 멸(滅)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이것이 번뇌의 멸(滅)로 이끄는 실천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그가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볼 때 소유의 번뇌[욕루(慾漏)]에서도 심(心)이 해탈하고, 존재의 번뇌[유루(有漏)]에서도 심(心)이 해탈하고, 무명(無明)의 번뇌[무명루(無明漏)]에서도 심(心)이 해탈한다. 해탈했을 때 ‘나는 해탈했다’라는 앎이 있다. ‘태어남은 다했다. 범행은 완성되었다. 해야 할 일을 했다. 다음에는 현재 상태[유(有)]가 되지 않는다.’라고 분명히 안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자신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지 않아 스스로 힘든 삶을 살지 않는 자이면서 남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지 않아 남을 힘들게 하지 않는 자이다. 스스로 힘든 삶을 살지 않는 자이고 남을 힘들게 하지 않는 자인 그는 지금여기에서 원하지 않는 자, 꺼진 자, 청량한 자, 즐거움을 경험하는 자여서 스스로 성스러운 존재로 머문다.’라고 불린다.
세존은 이렇게 말했다. 그 비구들은 즐거워하면서 세존의 말씀을 기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