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taliyasuttaṃ (MN 54.1-뽀딸리야 경) ㅡ 31~45
1. gahapativaggo, 4. potaliyasuttaṃ (MN 54-뽀딸리야 경)
이렇게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은 앙굿따라빠에서 아빠나라는 앙굿따라빠들의 번화가에 머물렀다. 그때 세존은 오전에 옷차림을 바르게 하고 발우와 가사를 지니고 탁발을 위해서 아빠나로 들어갔다. 아빠나에서 탁발을 하여 공양을 마치고 탁발에서 돌아와 낮 동안의 머묾을 위해 밀림의 숲으로 갔다. 그 밀림의 숲에 들어간 뒤에 어떤 나무 밑에서 낮 동안을 앉아 있었다. 옷을 잘 갖춰 입고 일산을 들고 신발을 신고 걸으며 뒤따라 움직이던 뽀딸리야 장자도 그 밀림의 숲으로 갔다. 가서는 그 밀림의 숲으로 들어간 뒤에 세존에게 왔다. 와서는 세존과 함께 인사를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만한 이야기를 주고받은 뒤 한 곁에 섰다. 한 곁에 선 뽀딸리야 장자에게 세존은 이렇게 말했다. ㅡ “장자여, 자리들이 있습니다. 원한다면 앉으십시오.”라고. 이렇게 말하자 “사문 고따마는 장자라는 말로 나를 호칭한다.”라며 화나고 불쾌해진 뽀딸리야 장자는 아무런 말없이 있었다. 두 번째도 세존은 … 세 번째도 세존은 뽀딸리야 장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ㅡ “장자여, 자리들이 있습니다. 원한다면 앉으십시오.”라고. 이렇게 말하자 “사문 고따마는 장자라는 말로 나를 호칭한다.”라며 화나고 불쾌해진 뽀딸리야 장자는 세존에게 이렇게 말했다. ㅡ “고따마 존자여, 그대가 나에게 장자라는 말로 호칭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고, 어울리지 않습니다.”라고. “장자여, 그대에게 그대의 모습과 그대의 특성과 그대의 인상은 장자의 것과 같습니다.” “그렇지만, 고따마 존자여, 나는 모든 업(業)을 중단하였고, 모든 삶들을 놓았습니다.” “장자여, 그대는 어떻게 모든 업(業)을 중단하고, 모든 삶들을 놓았습니까?” “고따마 존자여, 여기 나에게 있던 재산이거나 곡물이거나 은이거나 금이거나 모든 것을 아들들에게 주었습니다. 거기서 훈계하지 않는 자이고 충고하지 않는 자인 나는 음식과 옷만으로 만족하며 삽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이렇게 나는 모든 업(業)을 중단하였고, 모든 삶들을 놓았습니다.” “장자여, 그대가 말하는 삶을 놓음과 성스러운 율(律)에서 삶을 놓음은 다릅니다.” “대덕이시여, 그렇다면 성스러운 율(律)에서 삶을 놓음은 어떻게 다릅니까? 대덕이시여, 저에게 성스러운 율(律)에서 삶을 놓는 법을 설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장자여, 듣고 잘 사고하십시오. 나는 말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대덕이시여.”라고 뽀딸리야 장자는 세존에게 대답했다.
세존은 이렇게 말했다. ㅡ “장자여, 여덟 가지 이런 법들이 성스러운 율에서 삶을 놓음으로 이끕니다. 어떤 여덟입니까? 생명을 해치지 않음을 의지하여 생명을 해침이 버려져야합니다. 주어진 것을 가짐을 의지하여 주지 않는 것을 가짐이 버려져야 합니다. 진실을 말함을 의지하여 거짓을 말함이 버려져야 합니다. 험담하지 않음을 의지하여 험담하는 말이 버려져야 합니다. 애착과 망(望) 없음을 의지하여 애착과 망(望)이 버려져야 합니다. 비난과 진(嗔) 없음을 의지하여 비난과 진(嗔)이 버려져야 합니다. 성냄과 절망 없음을 의지하여 성냄과 절망이 버려져야 합니다. 오만 않음을 의지하여 오만이 버려져야 합니다. 장자여, 이것이, 상세한 분석 없이 간략하게 말해진, 성스러운 율에서 삶을 놓음으로 이끄는 여덟 가지 법들입니다.” “대덕이시여, 세존에 의해 저에게 상세한 설명 없이 간략하게 말해진, 성스러운 율에서 삶을 놓음으로 이끄는 이 여덟 가지 법들을 연민을 일으켜 상세히 분석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렇다면, 장자여, 듣고 잘 사고하십시오. 나는 말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대덕이시여.”라고 뽀딸리야 장자는 세존에게 대답했다. 세존은 이렇게 말했다. ㅡ
“이렇게 ‘생명을 해치지 않음을 의지하여 생명을 해침이 버려져야 한다.’라고 말해진 이것은 무엇을 연(緣)하여 말해진 것입니까? 여기, 장자여,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숙고합니다. ㅡ ‘어떤 족쇄들을 원인으로 내가 생명을 해치는 자일 것인 그 족쇄들을 나는 버린 뒤에 놓음을 위해 실천한다. 내가 만약 생명을 해치는 자라면 생명을 해침의 조건으로부터 나 자신도 나를 비난할 것이고, 생명을 해침의 조건으로부터 나를 알고 있는 현명한 자들도 나를 비난할 것이다. 생명을 해침의 조건으로부터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비참한 존재가 예상된다. 생명을 해침은 족쇄이고 장애이다. 그러나 번뇌들과 걱정과 열기들을 생기게 할 조건인 생명을 해침으로부터 이렇게 스스로 피한 자에게 번뇌들과 걱정과 열기들이 없다.’라고. 이렇게 ‘생명을 해치지 않음을 의지하여 생명을 해침이 버려져야 한다.’라고 말해진 이것은 이것을 연(緣)하여 말해진 것입니다.
이렇게 ‘주어진 것을 가짐을 의지하여 주지 않는 것을 가짐이 버려져야 한다.’라고 말해진 이것은 무엇을 연(緣)하여 말해진 것입니까? 여기, 장자여,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숙고합니다. ㅡ ‘어떤 족쇄들을 원인으로 내가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자일 것인 그 족쇄들을 나는 버린 뒤에 놓음을 위해 실천한다. 내가 만약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자라면 주지 않는 것을 가짐의 조건으로부터 나 자신도 나를 비난할 것이고, 주지 않는 것을 가짐의 조건으로부터 나를 알고 있는 현명한 자들도 나를 비난할 것이다. 주지 않는 것을 가짐의 조건으로부터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비참한 존재가 예상된다. 주지 않는 것을 가짐은 족쇄이고 장애이다. 그러나 번뇌들과 걱정과 열기들을 생기게 할 조건인 주지 않는 것을 가짐으로부터 이렇게 스스로 피한 자에게 번뇌들과 걱정과 열기들이 없다.’라고. 이렇게 ‘주어진 것을 가짐을 의지하여 주지 않는 것을 가짐이 버려져야 한다.’라고 말해진 이것은 이것을 연(緣)하여 말해진 것입니다.
이렇게 ‘진실을 말함을 의지하여 거짓을 말함이 버려져야 한다.’라고 말해진 이것은 무엇을 연(緣)하여 말해진 것입니까? 여기, 장자여,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숙고합니다. ㅡ ‘어떤 족쇄들을 원인으로 내가 거짓을 말하는 자일 것인 그 족쇄들을 나는 버린 뒤에 놓음을 위해 실천한다. 내가 만약 거짓을 말하는 자라면 거짓을 말함의 조건으로부터 나 자신도 나를 비난할 것이고, 거짓을 말함의 조건으로부터 나를 알고 있는 현명한 자들도 나를 비난할 것이다. 거짓을 말함의 조건으로부터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비참한 존재가 예상된다. 거짓을 말함은 족쇄이고 장애이다. 그러나 번뇌들과 걱정과 열기들을 생기게 할 조건인 거짓을 말함으로부터 이렇게 스스로 피한 자에게 번뇌들과 걱정과 열기들이 없다.’라고. 이렇게 ‘진실을 말함을 의지하여 거짓을 말함이 버려져야 한다.’라고 말해진 이것은 이것을 연(緣)하여 말해진 것입니다.
이렇게 ‘험담하지 않음을 의지하여 험담하는 말이 버려져야 한다.’라고 말해진 이것은 무엇을 연(緣)하여 말해진 것입니까? 여기, 장자여,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숙고합니다. ㅡ ‘어떤 족쇄들을 원인으로 내가 험담하는 말을 하는 자일 것인 그 족쇄들을 나는 버린 뒤에 놓음을 위해 실천한다. 내가 만약 험담하는 말을 하는 자라면 험담하는 말의 조건으로부터 나 자신도 나를 비난할 것이고, 험담하는 말의 조건으로부터 나를 알고 있는 현명한 자들도 나를 비난할 것이다. 험담하는 말의 조건으로부터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비참한 존재가 예상된다. 험담하는 말은 족쇄이고 장애이다. 그러나 번뇌들과 걱정과 열기들을 생기게 할 조건인 험담하는 말로부터 이렇게 스스로 피한 자에게 번뇌들과 걱정과 열기들이 없다.’라고. 이렇게 ‘험담하지 않음을 의지하여 험담하는 말이 버려져야 한다.’라고 말해진 이것은 이것을 연(緣)하여 말해진 것입니다.
이렇게 ‘애착과 망(望) 없음을 의지하여 애착과 망(望)이 버려져야 한다.’라고 말해진 이것은 무엇을 연(緣)하여 말해진 것입니까? 여기, 장자여,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숙고합니다. ㅡ ‘어떤 족쇄들을 원인으로 내가 애착과 망(望)을 가진 자일 것인 그 족쇄들을 나는 버린 뒤에 놓음을 위해 실천한다. 내가 만약 애착과 망(望)을 가진 자라면 애착과 망(望)의 조건으로부터 나 자신도 나를 비난할 것이고, 애착과 망(望)의 조건으로부터 나를 알고 있는 현명한 자들도 나를 비난할 것이다. 애착과 망(望)의 조건으로부터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비참한 존재가 예상된다. 애착과 망(望)은 족쇄이고 장애이다. 그러나 번뇌들과 걱정과 열기들을 생기게 할 조건인 애착과 망(望)으로부터 이렇게 스스로 피한 자에게 번뇌들과 걱정과 열기들이 없다.’라고. 이렇게 ‘애착과 망(望) 없음을 의지하여 애착과 망(望)이 버려져야 한다.’라고 말해진 이것은 이것을 연(緣)하여 말해진 것입니다.
이렇게 ‘비난과 진(嗔) 없음을 의지하여 비난과 진(嗔)이 버려져야 한다.’라고 말해진 이것은 무엇을 연(緣)하여 말해진 것입니까? 여기, 장자여,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숙고합니다. ㅡ ‘어떤 족쇄들을 원인으로 내가 비난과 진(嗔)을 가진 자일 것인 그 족쇄들을 나는 버린 뒤에 놓음을 위해 실천한다. 내가 만약 비난과 진(嗔)을 가진 자라면 비난과 진(嗔)의 조건으로부터 나 자신도 나를 비난할 것이고, 비난과 진(嗔)의 조건으로부터 나를 알고 있는 현명한 자도 나를 비난할 것이다. 비난과 진(嗔)의 조건으로부터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비참한 존재가 예상된다. 비난과 진(嗔)은 족쇄이고 장애이다. 그러나 번뇌들과 걱정과 열기들을 생기게 할 조건인 비난과 진(嗔)으로부터 이렇게 스스로 피한 자에게 번뇌들과 걱정과 열기들이 없다.’라고. 이렇게 ‘비난과 진(嗔) 없음을 의지하여 비난과 진(嗔)이 버려져야 한다.’라고 말해진 이것은 이것을 연(緣)하여 말해진 것입니다.
이렇게 ‘성냄과 절망 없음을 의지하여 성냄과 절망이 버려져야 한다.’라고 말해진 이것은 무엇을 연(緣)하여 말해진 것입니까? 여기, 장자여,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숙고합니다. ㅡ ‘어떤 족쇄들을 원인으로 내가 성냄과 절망을 가진 자일 것인 그 족쇄들을 나는 버린 뒤에 놓음을 위해 실천한다. 내가 만약 성냄과 절망을 가진 자라면 성냄과 절망의 조건으로부터 나 자신도 나를 비난할 것이고, 성냄과 절망의 조건으로부터 나를 알고 있는 현명한 자도 나를 비난할 것이다. 성냄과 절망의 조건으로부터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비참한 존재가 예상된다. 성냄과 절망은 족쇄이고 장애이다. 그러나 번뇌들과 걱정과 열기들을 생기게 할 조건인 성냄과 절망으로부터 이렇게 스스로 피한 자에게 번뇌들과 걱정과 열기들이 없다.’라고. 이렇게 ‘성냄과 절망 없음을 의지하여 성냄과 절망이 버려져야 한다.’라고 말해진 이것은 이것을 연(緣)하여 말해진 것입니다.
이렇게 ‘오만 않음을 의지하여 오만이 버려져야 한다.’라고 말해진 이것은 무엇을 연(緣)하여 말해진 것입니까? 여기, 장자여,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숙고합니다. ㅡ ‘어떤 족쇄들을 원인으로 내가 오만한 자일 것인 그 족쇄들을 나는 버린 뒤에 놓음을 위해 실천한다. 내가 만약 오만한 자라면 오만의 조건으로부터 나 자신도 나를 비난할 것이고, 오만의 조건으로부터 나를 알고 있는 현명한 자도 나를 비난할 것이다. 오만의 조건으로부터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비참한 존재가 예상된다. 오만은 족쇄이고 장애이다. 그러나 번뇌들과 걱정과 열기들을 생기게 할 조건인 오만으로부터 이렇게 스스로 피한 자에게 번뇌들과 걱정과 열기들이 없다.’라고. 이렇게 ‘오만 않음을 의지하여 오만이 버려져야 한다.’라고 말해진 이것은 이것을 연(緣)하여 말해진 것입니다.
장자여, 이것이 성스러운 율에서 삶을 놓음으로 이끄는 간략하게 말해진 여덟 가지 법들에 대한 상세한 분석입니다. 그러나 오직 그만큼이 성스러운 율에서 모든 것에 의한 모든, 모든 방법에 의한 모든 삶의 놓음인 것은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그러면 어떻게 성스러운 율에서 모든 것에 의한 모든, 모든 방법에 의한 모든 삶의 놓음이 있습니까? 대덕이시여, 성스러운 율에서 모든 것에 의한 모든, 모든 방법에 의한 모든 삶의 놓음에 해당하는 법을 세존에 의해 저에게 설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장자여, 듣고 잘 사고하십시오. 나는 말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대덕이시여.”라고 뽀딸리야 장자는 세존에게 대답했다. 세존은 이렇게 말했다. ㅡ
“예를 들면, 장자여, 배고프고 허약해서 고통 받는 개가 도살장 앞에 나타날 것입니다. 숙련된 백정이나 백정의 제자가 배고프고 허약한 그 개에게 살점은 한 점도 없이 완전히 발라졌고 피만 조금 묻은 뼈다귀를 던져줄 것입니다. 장자여, 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 개가 살점은 한 점도 없이 완전히 발라졌고 피만 조금 묻은 이 뼈다귀를 핥아서 배고프고 허약함을 달랠 수 있겠습니까?”
“no hetaṃ, bhante”.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taṃ kissa hetu”?
“그 원인은 무엇입니까?”
“대덕이시여, 이 뼈다귀는 살점은 한 점도 없이 완전히 발라졌고 피만 조금 묻어 있습니다. 오히려 그 개는 지치고 짜증이 날 것입니다.”
“그와 같이, 장자여,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숙고합니다. ㅡ ‘뼈다귀의 비유로서 세존에 의해 말해진 소유의 삶은 괴로움이 많고, 절망이 많다. 여기에 위험은 더 많다.’라고 이렇게 이것을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아서 다양함에 의지한 다양함의 평정을 버린 뒤에 물질 세상에 대한 집착이 온전하게 남김없이 소멸된 곳에서 단일함에 의지한 단일함의 평정을 닦습니다.
예를 들면, 장자여, 독수리나 까마귀나 매가 고기조각을 물고 날아갈 것입니다. 그것을 독수리들이나 까마귀들이나 매들이 뒤따라 날아가서 부리로 쫄 것이고, 발톱으로 공격할 것입니다. 장자여, 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만약 그 독수리나 까마귀나 매가 그 고기조각을 빨리 놓지 않으면 그 때문에 그는 죽거나 죽을 만큼의 고통을 겪지 않겠습니까?”
“evaṃ, bhante”.
“그렇습니다, 대덕이시여.”
“그와 같이, 장자여,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숙고합니다. ㅡ ‘고기조각의 비유로서 세존에 의해 말해진 소유의 삶은 괴로움이 많고, 절망이 많다. 여기에 위험은 더 많다.’라고 이렇게 이것을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아서 다양함에 의지한 다양함의 평정을 버린 뒤에 물질 세상에 대한 집착이 온전하게 남김없이 소멸된 곳에서 단일함에 의지한 단일함의 평정을 닦습니다.
예를 들면, 장자여, 어떤 사람이 불타는 건초 횃불을 가지고 바람을 향해서 갈 것입니다. 장자여, 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만약 그 사람이 그 불타는 건초 횃불을 빨리 놓지 않으면 그 때문에 그는 손을 데거나, 팔을 데거나, 여기저기 다른 부위들을 델 것입니다. 그는 죽거나 죽을 만큼의 고통을 겪지 않겠습니까?”
“evaṃ, bhante”.
“그렇습니다, 대덕이시여.”
“그와 같이, 장자여,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숙고합니다. ㅡ ‘건초 횃불의 비유로서 세존에 의해 말해진 소유의 삶은 괴로움이 많고, 절망이 많다. 여기에 위험은 더 많다.’라고 이렇게 이것을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아서 다양함에 의지한 다양함의 평정을 버린 뒤에 물질 세상에 대한 집착이 온전하게 남김없이 소멸된 곳에서 단일함에 의지한 단일함의 평정을 닦습니다.
예를 들면, 장자여, 사람 키 남짓하고 불꽃이나 연기가 없는 숯으로 가득한 숯불 구덩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살기를 원하고 죽기를 원하지 않고 즐거움을 원하고 괴로움을 혐오하는 사람이 올 것입니다. 그를 힘 센 두 사람이 한 팔씩을 잡고 숯불구덩이로 밀어 넣을 것입니다. 장자여, 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 사람은 빠지지 않기 위해 몸을 웅크리지 않겠습니까?”
“evaṃ, bhante”.
“그렇습니다, 대덕이시여.”
“taṃ kissa hetu”?
“그 원인은 무엇입니까?”
“대덕이시여, 그 사람은 ‘나는 숯불구덩이 떨어질 것이다. 그러면 죽거나 죽을 만큼의 고통을 겪을 것이다.’라고 압니다.”
“그와 같이, 장자여,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숙고합니다. ㅡ ‘숯불구덩이의 비유로서 세존에 의해 말해진 소유의 삶은 괴로움이 많고, 절망이 많다. 여기에 위험은 더 많다.’라고 이렇게 이것을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보아서 다양함에 의지한 다양함의 평정을 버린 뒤에 물질 세상에 대한 집착이 온전하게 남김없이 소멸된 곳에서 단일함에 의지한 단일함의 평정을 닦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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