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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aṇṇakasuttaṃ (MN 60-흠 없음 경) - 2(103-끝)
103. “santi, gahapatayo, eke samaṇabrāhmaṇā evaṃvādino evaṃdiṭṭhino — ‘natthi sabbaso āruppā’ti. tesaṃyeva kho, gahapatayo, samaṇabrāhmaṇānaṃ eke samaṇabrāhmaṇā ujuvipaccanīkavādā. te evamāhaṃsu — ‘atthi sabbaso āruppā’ti. taṃ kiṃ maññatha, gahapatayo, nanume samaṇabrāhmaṇā aññamaññassa ujuvipaccanīkavādā”ti? “evaṃ, bhante”. “tatra, gahapatayo, viññū puriso iti paṭisañcikkhati — ye kho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evaṃvādino evaṃdiṭṭhino — ‘natthi sabbaso āruppā’ti, idaṃ me adiṭṭhaṃ; yepi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evaṃvādino evaṃdiṭṭhino — ‘atthi sabbaso āruppā’ti, idaṃ me aviditaṃ. ahañceva kho pana ajānanto apassanto ekaṃsena ādāya vohareyyaṃ — idameva saccaṃ, moghamaññanti, na metaṃ assa patirūpaṃ. ye kho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evaṃvādino evaṃdiṭṭhino — ‘natthi sabbaso āruppā’ti, sace tesaṃ bhavataṃ samaṇabrāhmaṇānaṃ saccaṃ vacanaṃ, ṭhānametaṃ vijjati — ye te devā rūpino manomayā, apaṇṇakaṃ me tatrūpapatti bhavissati. ye pana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evaṃvādino evaṃdiṭṭhino — ‘atthi sabbaso āruppā’ti, sace tesaṃ bhavataṃ samaṇabrāhmaṇānaṃ saccaṃ vacanaṃ, ṭhānametaṃ vijjati — ye te devā arūpino saññāmayā, apaṇṇakaṃ me tatrūpapatti bhavissati. dissanti kho pana rūpādhikaraṇaṃ daṇḍādāna-satthādāna-kalaha-viggaha-vivāda-tuvaṃtuvaṃ-pesuñña-musāvādā. ‘natthi kho panetaṃ sabbaso arūpe’”ti. so iti paṭisaṅkhāya rūpānaṃyeva nibbidāya virāgāya nirodhāya paṭipanno hoti.
장자들이여, 이런 주장, 이런 견해를 가진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있습니다. — ‘전적으로 무색계(無色界)의 존재는 없다.'라고, 장자들이여, 그 사문-바라문들에게 정반대의 주장을 가진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 ‘전적으로 무색계의 존재는 있다.'라고, 장자들이여, ‘이 사문-바라문들은 서로 간에 정반대의 주장을 가졌다.’라는 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대덕이시여.”
장자들이여, 거기서 지혜로운 사람은 이렇게 숙고합니다. —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전적으로 무색계의 존재는 없다.’라는 이런 주장 이런 견해를 가졌다. 이것은 나에게 보이지 않는다.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전적으로 무색계의 존재는 있다.’라는 이런 주장 이런 견해를 가졌다. 이것도 나에게 알려지지 않는다. 만약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내가 한 측면에 의해 받아들인 뒤에 ‘이것만이 참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고 말한다면 이것은 나에게 적절하지 않다. 만약 ‘전적으로 무색계의 존재는 없다.’라는 이런 주장 이런 견해를 가진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색을 가진 의성(意成)의 신들, 나는 흠 없이 거기에 태어날 것이다.’라는 경우는 있다. 만약 ‘전적으로 무색계의 존재는 있다.’라는 이런 주장 이런 견해를 가진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무색(無色)을 가진 상성(想成)의 신들, 나는 흠 없이 거기에 태어날 것이다.’라는 경우는 있다. ‘색 때문에 몽둥이를 들고 무기를 들고 싸우고 말다툼하고 논쟁하고 상호비방하고 중상모략하고 거짓말하는 것들이 나타나는데, 전적으로 무색계에는 이것이 없다.’라고.
그는 이렇게 숙고한 뒤에 색들을 염오하고 이탐하고 소멸하기 위해 실천합니다.
104. “santi, gahapatayo, eke samaṇabrāhmaṇā evaṃvādino evaṃdiṭṭhino — ‘natthi sabbaso bhavanirodho’ti. tesaṃyeva kho, gahapatayo, samaṇabrāhmaṇānaṃ eke samaṇabrāhmaṇā ujuvipaccanīkavādā. te evamāhaṃsu — ‘atthi sabbaso bhavanirodho’ti. taṃ kiṃ maññatha, gahapatayo, nanume samaṇabrāhmaṇā aññamaññassa ujuvipaccanīkavādā”ti? “evaṃ, bhante”. “tatra, gahapatayo, viññū puriso iti paṭisañcikkhati — ye kho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evaṃvādino evaṃdiṭṭhino — ‘natthi sabbaso bhavanirodho’ti, idaṃ me adiṭṭhaṃ; yepi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evaṃvādino evaṃdiṭṭhino — ‘atthi sabbaso bhavanirodho’ti, idaṃ me aviditaṃ. ahañceva kho pana ajānanto apassanto ekaṃsena ādāya vohareyyaṃ — idameva saccaṃ, moghamaññanti, na metaṃ assa patirūpaṃ. ye kho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evaṃvādino evaṃdiṭṭhino — ‘natthi sabbaso bhavanirodho’ti, sace tesaṃ bhavataṃ samaṇabrāhmaṇānaṃ saccaṃ vacanaṃ, ṭhānametaṃ vijjati — ye te devā arūpino saññāmayā apaṇṇakaṃ me tatrūpapatti bhavissati. ye pana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evaṃvādino evaṃdiṭṭhino — ‘atthi sabbaso bhavanirodho’ti, sace tesaṃ bhavataṃ samaṇabrāhmaṇānaṃ saccaṃ vacanaṃ, ṭhānametaṃ vijjati — yaṃ diṭṭheva dhamme parinibbāyissāmi. ye kho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evaṃvādino evaṃdiṭṭhino — ‘natthi sabbaso bhavanirodho’ti, tesamayaṃ diṭṭhi sārāgāya santike, saṃyogāya santike, abhinandanāya santike, ajjhosānāya santike, upādānāya santike. ye pana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evaṃvādino evaṃdiṭṭhino — ‘atthi sabbaso bhavanirodho’ti, tesamayaṃ diṭṭhi asārāgāya santike, asaṃyogāya santike, anabhinandanāya santike, anajjhosānāya santike, anupādānāya santike’”ti. so iti paṭisaṅkhāya bhavānaṃyeva nibbidāya virāgāya nirodhāya paṭipanno hoti.
장자들이여, 이런 주장, 이런 견해를 가진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있습니다. — ‘전적으로 존재의 소멸은 없다.’라고, 장자들이여, 그 사문-바라문들에게 정반대의 주장을 가진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 ‘전적으로 존재의 소멸은 있다.’라고, 장자들이여, ‘이 사문-바라문들은 서로 간에 정반대의 주장을 가졌다.’라는 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대덕이시여.”
장자들이여, 거기서 지혜로운 사람은 이렇게 숙고합니다. —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전적으로 존재의 소멸은 없다.’라는 이런 주장 이런 견해를 가졌다. 이것은 나에게 보이지 않는다.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전적으로 존재의 소멸은 있다.’라는 이런 주장 이런 견해를 가졌다. 이것도 나에게 알려지지 않는다. 만약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내가 한 측면에 의해 받아들인 뒤에 ‘이것만이 참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고 말한다면 이것은 나에게 적절하지 않다. 만약 ‘전적으로 존재의 소멸은 없다.’라는 이런 주장 이런 견해를 가진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무색을 가진 상성의 신들, 나는 흠 없이 거기에 태어날 것이다.’라는 경우는 있다. 만약 ‘전적으로 존재의 소멸은 있다.’라는 이런 주장 이런 견해를 가진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나는 지금여기에서 완전히 꺼질 것이다.’라는 경우는 있다. ‘전적으로 존재의 소멸은 없다는 이런 주장 이런 견해를 가진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의 이 견해는 친밀에 가깝고, 족쇄에 가깝고, 기뻐함에 가깝고, 묶임에 가깝고, 집착에 가깝다. 전적으로 존재의 소멸은 있다는 이런 주장 이런 견해를 가진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의 이 견해는 친밀 없음에 가깝고, 족쇄 없음에 가깝고, 기뻐하지 않음에 가깝고, 묶이지 않음에 가깝고, 집착 없음에 가깝다.’라고.
그는 이렇게 숙고한 뒤에 존재들을 염오하고 이탐하고 소멸하기 위해 실천합니다.
105. “cattārome, gahapatayo, puggalā santo saṃvijjamānā lokasmiṃ. katame cattāro? idha, gahapatayo, ekacco puggalo attantapo hoti attaparitāpanānuyogamanuyutto. idha, gahapatayo, ekacco puggalo parantapo hoti paraparitāpanānuyogamanuyutto. idha, gahapatayo, ekacco puggalo attantapo ca hoti attaparitāpanānuyogamanuyutto parantapo ca paraparitāpanānuyogamanuyutto. idha, gahapatayo, ekacco puggalo nevattantapo hoti nāttaparitāpanānuyogamanuyutto na parantapo na paraparitāpanānuyogamanuyutto; so anattantapo aparantapo diṭṭheva dhamme nicchāto nibbuto sītībhūto sukhappaṭisaṃvedī brahmabhūtena attanā viharati.
장자들이여, 세상에는 이런 네 부류의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어떤 넷입니까? 장자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자신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여 스스로 힘든 삶을 사는 자입니다. 장자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남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여 남을 힘들게 하는 자입니다. 장자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자신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여 스스로 힘든 삶을 사는 자이면서 남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여 남을 힘들게 하는 자입니다. 장자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자신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지 않아 스스로 힘든 삶을 살지 않는 자이면서 남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지 않아 남을 힘들게 하지 않는 자입니다. 스스로 힘든 삶을 살지 않는 자이고 남을 힘들게 하지 않는 자인 그는 지금여기에서 원하지 않는 자, 꺼진 자, 청량한 자, 즐거움을 경험하는 자여서 스스로 성스러운 존재로 머뭅니다.
106. “katamo ca, gahapatayo, puggalo attantapo attaparitāpanānuyogamanuyutto? idha, gahapatayo, ekacco puggalo acelako hoti muttācāro hatthāpalekhano ... pe ... iti evarūpaṃ anekavihitaṃ kāyassa ātāpanaparitāpanānuyogamanuyutto viharati. ayaṃ vuccati, gahapatayo, puggalo attantapo attaparitāpanānuyogamanuyutto.
장자들이여, 어떤 사람이 자신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여 스스로 힘든 삶을 사는 사람입니까? 장자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품행에 얽매이지 않은 자이고, 음식을 받은 뒤에 핥아먹는 자이고, ‘오시오!’라는 초대를 받지 않는 자이고, ‘서시오!’라는 초대를 받지 않는 자인데, 주어지지 않은 것과 배당되지 않은 것과 초대되지 않은 것을 받지 않습니다. 그는 항아리의 가장자리로부터 받지 않고, 그릇의 가장자리로부터 받지 않고, 중간에 문지방이 있는 것, 중간에 몽둥이가 있는 것, 중간에 절굿공이가 있는 것, 두 사람이 먹고 있는 것, 임신부의 것, 젖을 먹이는 여자의 것, 남자에게 안긴 여자의 것을 받지 않고 모여 있는 곳에서 받지 않고, 개가 대기하고 있는 곳에서 받지 않고, 파리 떼가 득실거리는 곳에서 받지 않고, 어류를 받지 않고, 고기를 받지 않고, 술과 발효주와 발효하여 끓인 것을 마시지 않습니다. 그는 한 집에서 한 입의 음식을, 두 집에서 두 입의 음식을 … 일곱 집에서 일곱 입의 음식을 받아먹습니다. 작은 그릇 한 개의 음식으로 삶을 유지하고, 작은 그릇 두 개의 음식으로 삶을 유지하고, … 작은 그릇 일곱 개의 음식으로 삶을 유지한다. 하루에 한 번 음식을 먹고, 이틀에 한 번 음식을 먹고, … 이레에 한 번 음식을 먹습니다. — 이와 같은 식으로 보름에 한 번 음식을 먹는 방법의 음식을 먹는 것을 실천하며 머뭅니다. 그는 야채를 먹기도 하고, 수수를 먹기도 하고, 생쌀을 먹기도 하고, 부드러운 뼈를 먹기도 하고, 수초를 먹기도 하고, 왕겨를 먹기도 하고, 뜨물을 먹기도 하고, 참깨가루를 먹기도 하고, 풀을 먹기도 하고, 쇠똥을 먹기도 하고, 나무뿌리와 열매를 음식으로 삶을 유지하고, 떨어진 열매를 먹고 삶을 유지합니다.
그는 삼베옷도 입고, 삼베와 다른 원료를 섞어 짠 거친 옷도 입고, 수의도 입고, 분소의도 입고, 나무껍질을 엮은 옷도 입고, 치타 가죽옷도 입고, 치타 가죽 망토도 입고, 꾸사 풀 옷도 입고, 나무껍질 옷도 입고, 나무의 편편한 조각으로 만든 옷도 입고, 머리카락으로 만든 담요도 입고, 뱀 껍질로 만든 담요도 입고, 올빼미 깃털로 만든 옷도 입습니다.
머리카락과 턱수염을 뽑는 수행을 실천하는 자여서 머리카락과 턱수염도 뽑고, 앉는 것을 거부하는 자여서 똑바로 서기도 하고, 쪼그려 앉는 정진을 실천하는 자여서 쪼그려 앉기도 하고, 가시에 기대는 자여서 가시로 된 침대를 사용합니다. 저녁에 세 번 물에 들어가는 수행을 실천하면서 머뭅니다. — 이와 같은 식의 다양한 방법으로 몸을 괴롭히는 고행을 실천하며 머뭅니다. 장자들이여, 이것이 자신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여 스스로 힘든 삶을 사는 사람이라고 불립니다.
“katamo ca, gahapatayo, puggalo parantapo paraparitāpanānuyogamanuyutto? idha, gahapatayo, ekacco puggalo orabbhiko hoti sūkariko ... pe ... ye vā panaññepi keci kurūrakammantā. ayaṃ vuccati, gahapatayo, puggalo parantapo paraparitāpanānuyogamanuyutto.
장자들이여, 어떤 사람이 남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여 남을 힘들게 하는 사람입니까? 장자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양 도살자, 돼지 도살자, 새 잡는 사람, 사슴 사냥꾼, 사냥꾼, 어부, 도둑, 도둑의 집행자, 죄수, 또는 누구든지 모진 행위를 하는 다른 사람입니다. 장자들이여, 이것이 남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여 남을 힘들게 하는 사람이라고 불립니다.
“katamo ca, gahapatayo, puggalo attantapo ca attaparitāpanānuyogamanuyutto parantapo ca paraparitāpanānuyogamanuyutto? idha, gahapatayo, ekacco puggalo rājā vā hoti khattiyo muddhāvasitto ... pe ... tepi daṇḍatajjitā bhayatajjitā assumukhā rudamānā parikammāni karonti. ayaṃ vuccati, gahapatayo, puggalo attantapo ca attaparitāpanānuyogamanuyutto parantapo ca paraparitāpanānuyogamanuyutto.
장자들이여, 어떤 사람이 자신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여 스스로 힘든 삶을 살면서 남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여 남을 힘들게 하는 사람입니까? 장자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머리에 의식을 치르고 왕위에 오른 끄샤뜨리야 왕이거나 큰 재력을 가진 바라문입니다. 그는 도시의 동쪽에 새로운 공회(公會)를 짓게 하고 머리와 수염을 깎고 거친 가죽옷을 입고 버터와 기름을 몸에 바르고 사슴뿔로 등을 긁으면서 첫째 왕비와 왕실의 바라문 제관과 함께 새로운 공회(公會)로 들어갑니다. 그는 거기서 이어지는 적당하고 황갈색으로 얼룩진 땅에 자리를 만들게 합니다. 같은 색깔의 송아지가 있는 한 마리의 암소의 첫 번째 젖꼭지에서 생긴 우유로 왕이 연명합니다. 두 번째 젖꼭지에서 생긴 젖으로 첫째 왕비가 연명합니다. 세 번째 젖꼭지에서 생긴 젖으로 왕실의 바라문 제관이 연명합니다. 네 번째 젖꼭지에서 생긴 젖으로 불에 붓습니다. 나머지로 송아지가 연명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 ‘제사를 위해서 이만큼의 황소들을 도살하라. 제사를 위해서 이만큼의 젖을 뗀 수송아지들을 도살하라. 제사를 위해서 이만큼의 젖을 뗀 암송아지들을 도살하라. 제사를 위해서 이만큼의 암염소들을 도살하라. 제사를 위해서 이만큼의 숫양들을 도살하라. (제사를 위해서 이만큼의 말들을 도살하라.) 제사 기둥을 위해서 이만큼의 나무를 베어라. 제사 풀을 위해서 이만큼의 다르바 풀을 거둬라.’라고. 그러면 그의 하인이나 심부름꾼이나 직원들은 처벌을 두려워하고 무서움을 두려워하고 눈물을 흘리는 얼굴로 한탄하면서 준비를 합니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자신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여 스스로 힘든 삶을 살면서 남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여 남을 힘들게 하는 사람이라고 불립니다.
“katamo ca, gahapatayo, puggalo nevattantapo nāttaparitāpanānuyogamanuyutto na parantapo na paraparitāpanānuyogamanuyutto; so anattantapo aparantapo diṭṭheva dhamme nicchāto nibbuto sītībhūto sukhappaṭisaṃvedī brahmabhūtena attanā viharati? idha, gahapatayo, tathāgato loke uppajjati arahaṃ sammāsambuddho ... pe ... so ime pañca nīvaraṇe pahāya cetaso upakkilese paññāya dubbalīkaraṇe vivicceva kāmehi vivicca akusalehi dhammehi savitakkaṃ savicāraṃ vivekajaṃ pītisukhaṃ paṭham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vitakkavicārānaṃ vūpasamā ajjhattaṃ sampasādanaṃ cetaso ekodibhāvaṃ avitakkaṃ avicāraṃ samādhijaṃ pītisukhaṃ dutiyaṃ jhānaṃ ... pe ... tatiyaṃ jhānaṃ... catutth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ati.
장자들이여, 어떤 사람이 ‘자신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지 않아 스스로 힘든 삶을 살지 않는 자이면서 남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지 않아 남을 힘들게 하지 않는 자이다. 스스로 힘든 삶을 살지 않는 자이고 남을 힘들게 하지 않는 자인 그는 지금여기에서 원하지 않는 자, 꺼진 자, 청량한 자, 즐거움을 경험하는 자여서 스스로 성스러운 존재로 머문다.’라는 사람입니까? 장자들이여, 여기 여래가 이 세상에 출현합니다. 그는 아라한(阿羅漢)-정등각(正等覺) … 그는 혜(慧)를 무력하게 하는 심(心)의 오염원인 이런 다섯 가지 장애를 버리고서 소유의 삶에서 벗어나고, 불선법들에서 벗어나서, 위딱까가 있고 위짜라가 있고 떨침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의 초선(初禪)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위딱까와 위짜라의 가라앉음으로 인해, 안으로 평온함과 마음의 집중된 상태가 되어, 위딱까도 없고 위짜라도 없이, 삼매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의 제이선(第二禪)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 제삼선(第三禪)을 … 제사선(第四禪)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so evaṃ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pubbenivāsānussatiñāṇāya cittaṃ abhininnāmeti. so anekavihitaṃ pubbenivāsaṃ anussarati seyyathidaṃ — ekampi jātiṃ dvepi jātiyo ... pe ... iti sākāraṃ sauddesaṃ anekavihitaṃ pubbenivāsaṃ anussarati. so evaṃ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sattānaṃ cutūpapātañāṇāya cittaṃ abhininnāmeti. so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satte passati cavamāne upapajjamāne hīne paṇīte suvaṇṇe dubbaṇṇe, sugate duggate ... pe ... yathākammūpage satte pajānāti. so evaṃ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āsavānaṃ khayañāṇāya cittaṃ abhininnāmeti. so ‘idaṃ dukkhan’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 pe ... ‘ayaṃ āsavanirodhagāminī paṭipadā’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tassa evaṃ jānato evaṃ passato kāmāsavāpi cittaṃ vimuccati, bhavāsavāpi cittaṃ vimuccati, avijjāsavāpi cittaṃ vimuccati. vimuttasmiṃ vimuttamiti ñāṇaṃ hoti. ‘khīṇā jāti, vusitaṃ brahmacariyaṃ, kataṃ karaṇīyaṃ, nāparaṃ itthattāyā’ti pajānāti. ayaṃ vuccati, gahapatayo, puggalo nevattantapo nāttaparitāpanānuyogamanuyutto na parantapo na paraparitāpanānuyogamanuyutto; so anattantapo aparantapo diṭṭheva dhamme nicchāto nibbuto sītībhūto sukhappaṭisaṃvedī brahmabhūtena attanā viharatī”ti.
그는 이렇게 심(心)이 삼매를 닦고, 청정하고 아주 깨끗하고 침착하고 오염원이 없고 유연하고 준비되고 안정되고 흔들림 없음에 도달했을 때, 이전의 존재 상태에 대한 기억의 앎으로 심(心)을 기울게 합니다[전생 기억]. 그는 여러 이전의 존재 상태[전생]를 기억합니다. 즉 — 한 번의 생, 두 번의 생, 세 번의 생, 네 번의 생, 다섯 번의 생, 열 번의 생, 스무 번의 생, 서른 번의 생, 마흔 번의 생, 쉰 번의 생, 백 번의 생, 천 번의 생, 십만 번의 생, 세계가 줄어드는[진화] 여러 겁, 세계가 자라나는[퇴보] 여러 겁, 세계가 줄어들고 자라나는 여러 겁을 기억합니다. — ‘이러이러한 곳에서 나는 이런 이름이었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였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행복과 괴로움을 이렇게 경험했고, 수명의 한계는 이러했다. 나는 거기에서 죽어 이러이러한 곳에 태어났다. 그곳에서 나는 이런 이름이었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였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행복과 괴로움을 이렇게 경험했고, 수명의 한계는 이러했다. 나는 거기에서 죽어 여기에 태어났다.’라고. 이처럼 상태와 함께, 상세한 설명과 함께 여러 이전의 존재 상태를 기억합니다.
그는 이렇게 심(心)이 삼매를 닦고, 청정하고 아주 깨끗하고 침착하고 오염원이 없고 유연하고 준비되고 안정되고 흔들림 없음에 도달했을 때, 죽고 다시 태어남의 앎으로 심(心)을 기울게 합니다. 그는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천안(天眼)]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고, 저열하고 뛰어나고, 잘생기고 못생기고, 좋은 곳[선처(善處)]에 가고 나쁜 곳[악처(惡處)]에 가는 것을 봅니다. 업에 따라서 가는 중생들을 분명히 압니다. — ‘이들은 몸으로 나쁜 삶을 살고 말로 나쁜 삶을 살고 의(意)로 나쁜 삶을 살고, 성자들을 비방하고, 삿된 견해를 가졌고, 사견업(邪見業)을 지었다. 이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상실과 비탄의 상태, 비참한 존재, 벌 받는 상태, 지옥에 태어났다. 그러나 이들은 몸으로 좋은 삶을 살고 말로 좋은 삶을 살고 의(意)로 좋은 삶을 살고, 성자들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지니고, 정견업(正見業)을 지었다. 이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하늘 세상에 태어났다.’라고. 이렇게 그는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는 것을 본다. 저열하고 뛰어나고, 잘생기고 못생기고, 좋은 곳에 가고 나쁜 곳에 가는 등 업에 따라서 가는 중생들을 분명히 압니다.
그는 이렇게 심(心)이 삼매를 닦고, 청정하고 아주 깨끗하고 침착하고 오염원이 없고 유연하고 준비되고 안정되고 흔들림 없음에 도달했을 때, 번뇌들의 부서짐의 앎으로 심(心)을 기울게 합니다. 그는 ‘이것이 고(苦)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압니다. ‘이것이 고집(苦集)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압니다. ‘이것이 고멸(苦滅)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압니다. ‘이것이 고멸(苦滅)로 이끄는 실천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압니다. ‘이것이 번뇌[루(漏)]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압니다. ‘이것이 번뇌의 집(集)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압니다. ‘이것이 번뇌의 멸(滅)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압니다. ‘이것이 번뇌의 멸(滅)로 이끄는 실천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압니다. 그가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볼 때 소유의 번뇌[욕루(慾漏)]로부터도 심(心)이 해탈합니다. 존재의 번뇌[유루(有漏)]로부터도 심(心)이 해탈합니다. 무명(無明)의 번뇌[무명루(無明漏)]로부터도 심(心)이 해탈합니다. ‘해탈했을 때나는 해탈했다’라는 앎이 있습니다. '태어남은 다했다. 범행은 완성되었다. 해야 할 일을 했다. 다음에는 현재 상태[유(有)]가 되지 않는다.'라고 분명히 압니다.
장자들이여, 이것이 ‘자신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지 않아 스스로 힘든 삶을 살지 않는 자이면서 남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지 않아 남을 힘들게 하지 않는 자이다. 스스로 힘든 삶을 살지 않는 자이고 남을 힘들게 하지 않는 자인 그는 지금여기에서 원하지 않는 자, 꺼진 자, 청량한 자, 즐거움을 경험하는 자여서 스스로 성스러운 존재로 머문다.’라고 불립니다.
evaṃ vutte, sāleyyakā brāhmaṇagahapatikā bhagavantaṃ etadavocuṃ — “abhikkantaṃ, bho gotama, abhikkantaṃ, bho gotama! seyyathāpi, bho gotama, nikkujjitaṃ vā ukkujjeyya, paṭicchannaṃ vā vivareyya, mūḷhassa vā maggaṃ ācikkheyya, andhakāre vā telapajjotaṃ dhāreyya ‘cakkhumanto rūpāni dakkhantī’ti; evamevaṃ bhotā gotamena anekapariyāyena dhammo pakāsito. ete mayaṃ bhavantaṃ gotamaṃ saraṇaṃ gacchāma dhammañca bhikkhusaṅghañca. upāsake no bhavaṃ gotamo dhāretu ajjatagge pāṇupetaṃ saraṇaṃ gate”ti.
이렇게 말했을 때, 살라에 사는 바라문 장자들은 세존에게 이렇게 말했다. — “정말 기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정말 기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예를 들면, 고따마 존자시여, 넘어진 자를 일으킬 것입니다. 덮여있는 것을 걷어낼 것입니다. 길 잃은 자에게 길을 알려줄 것입니다. ‘눈 있는 자들은 모습들을 본다.’라며 어둠 속에서 기름 등불을 들 것입니다. 이처럼, 고따마 존자에 의해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설해진 법이 있습니다. 이런 저희는 의지처인 고따마 존자 그리고 가르침과 비구 상가에게로 갑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희를 오늘부터 살아있는 동안 귀의한 재가 신자로 받아주십시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