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ambalaṭṭhikarāhulovādasuttaṃ (MN 61-암발랏티까에서 라훌라를 가르친 경)
2. bhikkhuvaggo, 1. ambalaṭṭhikarāhulovādasuttaṃ (MN 61-암발랏티까에서 라훌라를 가르친 경)
http://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3_09&wr_id=24에서 설명하였습니다.
이렇게 나는 들었다. — 한때 세존은 라자가하에서 웰루와나의 다람쥐 보호구역에 머물렀다. 그때 라훌라 존자는 암발랏티까에 머물렀다. 세존은 저녁에 홀로 머묾에서 일어나 암발랏티까로 라훌라 존자에게 갔다. 라훌라 존자는 멀리서 오고 있는 세존을 보았다. 보고서 의자와 발 씻을 물을 준비했다. 세존은 준비된 의자에 앉았다. 앉아서 발을 씻었다. 라훌라 존자는 세존에게 절한 뒤 한 곁에 앉았다.
그러자 세존은 조금 남아있는 물을 물그릇에 남겨 두고서 라훌라 존자에게 말했다. — “라훌라여, 그대는 이 물그릇에 남겨 둔 조금 남아있는 물을 보았는가?” “그렇습니다, 대덕이시여.” “라훌라여, 고의적 거짓말에 대한 부끄러움이 없는 자들에게 사문의 성품은 이렇게 작다.” 그리고 세존은 조금 남아있는 물을 버린 뒤에 라훌라 존자에게 말했다. — “라훌라여, 그대는 조금 남아있는 물이 버려진 것을 보았는가?” “그렇습니다, 대덕이시여.” “라훌라여, 고의적 거짓말에 대한 부끄러움이 없는 자들에게 사문의 성품은 이렇게 버려진다.” 그리고 세존은 그 물그릇을 뒤집은 뒤에 라훌라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 “라훌라여, 그대는 이 물그릇이 뒤집힌 것을 보았는가?” “그렇습니다, 대덕이시여.” “라훌라여, 고의적 거짓말에 대한 부끄러움이 없는 자들에게 사문의 성품은 이렇게 뒤집힌다.” 그리고 세존은 물그릇을 바르게 놓고 라훌라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 “라훌라여, 그대는 아무것도 없이 비어있는 이 물그릇을 보았는가?” “그렇습니다, 대덕이시여.” “라훌라여, 고의적 거짓말에 대한 부끄러움이 없는 자들에게 사문의 성품은 이렇게 아무것도 없이 비어있다.”
예를 들면, 라훌라여, 크고 혈통이 좋고 전쟁터에 종종 나간, 왕의 이사단따[마차 축 같은 약간 휘어진 상아를 가진] 코끼리는 앞발로도 전투를 치르고, 뒷발로도 전투를 치르고, 앞몸으로도 전투를 치르고, 뒷몸으로도 전투를 치르고, 머리로도 전투를 치르고, 귀로도 전투를 치르고, 상아로도 전투를 치르고, 꼬리로도 전투를 치르지만, 코는 보호한다. 그때 코끼리를 다루는 자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 — ‘크고 혈통이 좋고 전쟁터에 종종 나간, 왕의 이사단따 코끼리는 앞발로도 전투를 치르고, 뒷발로도 전투를 치르고, 앞몸으로도 전투를 치르고, 뒷몸으로도 전투를 치르고, 머리로도 전투를 치르고, 귀로도 전투를 치르고, 상아로도 전투를 치르고, 꼬리로도 전투를 치르지만, 코는 보호한다. 이 왕의 코끼리에게 목숨은 포기되지 않았다.’라고. 라훌라여, 크고 혈통이 좋고 전쟁터에 종종 나간, 왕의 이사단따 코끼리는 앞발로도 전투를 치르고, 뒷발로도 전투를 치르고, 앞몸으로도 전투를 치르고, 뒷몸으로도 전투를 치르고, 머리로도 전투를 치르고, 귀로도 전투를 치르고, 상아로도 전투를 치르고, 꼬리로도 전투를 치르고, 코로도 전투를 치른다. 그때 코끼리를 다루는 자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 — ‘크고 혈통이 좋고 전쟁터에 종종 나간, 이 왕의 이사단따 코끼리는 앞발로도 전투를 치르고, 뒷발로도 전투를 치르고, 앞몸으로도 전투를 치르고, 뒷몸으로도 전투를 치르고, 머리로도 전투를 치르고, 귀로도 전투를 치르고, 상아로도 전투를 치르고, 꼬리로도 전투를 치르고, 코로도 전투를 치른다. 이 왕의 코끼리에게 목숨은 포기되었다. 이제 이 왕의 코끼리에게 행해지지 않아야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고.
이처럼, 라훌라여, 누구든지 고의적인 거짓말에 대해 부끄러움이 없는 자에게 어떤 것이든 행해지지 않을 악(惡)을 나는 말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라훌라여, ‘농담으로라도 나는 거짓을 말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라훌라여, 그대는 이렇게 공부해야 한다.
“라훌라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거울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비춰보기 위한 것입니다, 대덕이시여.” “그처럼 라훌라여, 비춰보고 비춰보면서 몸의 업(業)은 행해져야 한다. 비춰보고 비춰보면서 말의 업은 행해져야 한다. 비춰보고 비춰보면서 의(意)의 업은 행해져야 한다. 라훌라여, 그대가 몸의 업을 행하려 할 때 그대는 몸의 업을 비춰보아야 한다. — ‘내가 행하려 하는 나의 이 몸의 업은, 불선이고 괴로움을 낳는 것이고[과(果)] 괴로움을 경험케 하는 것[보(報)]이어서, 나도 해로움으로 이끌고 남도 해로움으로 이끌고 둘 모두도 해로움으로 이끄는가?’라고. 만약 라훌라여, 비춰보는 그대가 ‘내가 행하려 하는 나의 이 몸의 업은, 불선이고 괴로움을 낳는 것이고 괴로움을 경험케 하는 것이어서, 나도 해로움으로 이끌고 남도 해로움으로 이끌고 둘 모두도 해로움으로 이끈다.’라고 안다면, 라훌라여, 이런 몸의 업을 그대는 분명히 행하지 않아야 한다. 만약 라훌라여, 비춰보는 그대가 ‘내가 행하려 하는 나의 이 몸의 업은, 선이고 즐거움을 낳는 것이고 즐거움을 경험케 하는 것이어서, 나도 해로움으로 이끌지 않고 남도 해로움으로 이끌지 않고 둘 모두도 해로움으로 이끌지 않는다.’라고 안다면, 라훌라여, 이런 몸의 업을 그대는 분명히 행해야 한다.
• udraya: yielding; causing. (Only in cpds). (adj.)
• Udraya (& Uddaya) ( -- ˚) [perhaps a bastard form of uddaya = udaya yielding etc. The BSk. usually renders P. dd by dr. If so, then equal to adaya & uddaya;1 coming forth, result, consequence. Usually in foll. two phrases: dukkh˚; (yielding pain) & sukh˚; (giving pleasure)
라훌라여, 그대가 몸의 업을 행하고 있을 때도, 그대는 몸의 업을 비춰보아야 한다. — ‘내가 행하고 있는 나의 이 몸의 업은, 불선이고 괴로움을 낳는 것이고 괴로움을 경험케 하는 것이어서, 나도 해로움으로 이끌고 남도 해로움으로 이끌고 둘 모두도 해로움으로 이끄는가?’라고. 만약 라훌라여, 비춰보는 그대가 ‘내가 행하고 있는 나의 이 몸의 업은, 불선이고 괴로움을 낳는 것이고 괴로움을 경험케 하는 것이어서, 나도 해로움으로 이끌고 남도 해로움으로 이끌고 둘 모두도 해로움으로 이끈다.’라고 안다면, 라훌라여, 이런 몸의 업을 그대는 중단해야 한다. 만약 라훌라여, 비춰보는 그대가 ‘내가 행하고 있는 나의 이 몸의 업은, 선이고 즐거움을 낳는 것이고 즐거움을 경험케 하는 것이어서, 나도 해로움으로 이끌지 않고 남도 해로움으로 이끌지 않고 둘 모두도 해로움으로 이끌지 않는다.’라고 안다면, 라훌라여, 이런 몸의 업을 그대는 실행해도 좋다.
라훌라여, 그대가 몸의 업을 행한 뒤에도 그대는 몸의 업을 비춰보아야 한다. — ‘내가 행한 나의 이 몸의 업은, 불선이고 괴로움을 낳는 것이고 괴로움을 경험케 하는 것이어서, 나도 해로움으로 이끌고 남도 해로움으로 이끌고 둘 모두도 해로움으로 이끄는가?’라고. 만약 라훌라여, 비춰보는 그대가 ‘내가 행한 나의 이 몸의 업은, 불선이고 괴로움을 낳는 것이고 괴로움을 경험케 하는 것이어서, 나도 해로움으로 이끌고 남도 해로움으로 이끌고 둘 모두도 해로움으로 이끈다.’라고 안다면, 라훌라여, 이런 몸의 업을 그대는 스승과 현명한 동료수행자들에게 드러내고 공개하고 알려야 한다. 드러내고 공개하고 알림으로써 미래에 단속해야 한다. 만약 라훌라여, 비춰보는 그대가 ‘내가 행한 나의 이 몸의 업은, 선이고 즐거움을 낳는 것이고 즐거움을 경험케 하는 것이어서, 나도 해로움으로 이끌지 않고 남도 해로움으로 이끌지 않고 둘 모두도 해로움으로 이끌지 않는다.’라고 안다면, 라훌라여, 유익한 법들에서 밤낮을 이어 공부하는 그대는 그것으로 인해 희열과 환희로 머물게 될 것이다.
라훌라여, 그대가 말의 업을 행하려 할 때 그대는 말의 업을 비춰보아야 한다. — ‘내가 행하려 하는 나의 이 말의 업은, 불선이고 괴로움을 낳는 것이고 괴로움을 경험케 하는 것이어서, 나도 해로움으로 이끌고 남도 해로움으로 이끌고 둘 모두도 해로움으로 이끄는가?’라고. 만약 라훌라여, 비춰보는 그대가 ‘내가 행하려 하는 나의 이 말의 업은, 불선이고 괴로움을 낳는 것이고 괴로움을 경험케 하는 것이어서, 나도 해로움으로 이끌고 남도 해로움으로 이끌고 둘 모두도 해로움으로 이끈다.’라고 안다면, 라훌라여, 이런 말의 업을 그대는 분명히 행하지 않아야 한다. 만약 라훌라여, 비춰보는 그대가 ‘내가 행하려 하는 나의 이 말의 업은, 선이고 즐거움을 낳는 것이고 즐거움을 경험케 하는 것이어서, 나도 해로움으로 이끌지 않고 남도 해로움으로 이끌지 않고 둘 모두도 해로움으로 이끌지 않는다.’라고 안다면, 라훌라여, 이런 말의 업을 그대는 분명히 행해야 한다.
라훌라여, 그대가 말의 업을 행하고 있을 때도, 그대는 말의 업을 비춰보아야 한다. — ‘내가 행하고 있는 나의 이 말의 업은, 불선이고 괴로움을 낳는 것이고 괴로움을 경험케 하는 것이어서, 나도 해로움으로 이끌고 남도 해로움으로 이끌고 둘 모두도 해로움으로 이끄는가?’라고. 만약 라훌라여, 비춰보는 그대가 ‘내가 행하고 있는 나의 이 말의 업은, 불선이고 괴로움을 낳는 것이고 괴로움을 경험케 하는 것이어서, 나도 해로움으로 이끌고 남도 해로움으로 이끌고 둘 모두도 해로움으로 이끈다.’라고 안다면, 라훌라여, 이런 말의 업을 그대는 중단해야 한다. 만약 라훌라여, 비춰보는 그대가 ‘내가 행하고 있는 나의 이 말의 업은, 선이고 즐거움을 낳는 것이고 즐거움을 경험케 하는 것이어서, 나도 해로움으로 이끌지 않고 남도 해로움으로 이끌지 않고 둘 모두도 해로움으로 이끌지 않는다.’라고 안다면, 라훌라여, 이런 말의 업을 그대는 실행해도 좋다.
라훌라여, 그대가 말의 업을 행한 뒤에도 그대는 말의 업을 비춰보아야 한다. — ‘내가 행한 나의 이 말의 업은, 불선이고 괴로움을 낳는 것이고 괴로움을 경험케 하는 것이어서, 나도 해로움으로 이끌고 남도 해로움으로 이끌고 둘 모두도 해로움으로 이끄는가?’라고. 만약 라훌라여, 비춰보는 그대가 ‘내가 행한 나의 이 말의 업은, 불선이고 괴로움을 낳는 것이고 괴로움을 경험케 하는 것이어서, 나도 해로움으로 이끌고 남도 해로움으로 이끌고 둘 모두도 해로움으로 이끈다.’라고 안다면, 라훌라여, 이런 말의 업을 그대는 스승과 현명한 동료수행자들에게 드러내고 공개하고 알려야 한다. 드러내고 공개하고 알림으로써 미래에 단속해야 한다. 만약 라훌라여, 비춰보는 그대가 ‘내가 행한 나의 이 말의 업은, 선이고 즐거움을 낳는 것이고 즐거움을 경험케 하는 것이어서, 나도 해로움으로 이끌지 않고 남도 해로움으로 이끌지 않고 둘 모두도 해로움으로 이끌지 않는다.’라고 안다면, 라훌라여, 유익한 법들에서 밤낮을 이어 공부하는 그대는 그것으로 인해 희열과 환희로 머물게 될 것이다.
라훌라여, 그대가 의(意)의 업을 행하려 할 때 그대는 의의 업을 비춰보아야 한다. — ‘내가 행하려 하는 나의 이 의의 업은, 불선이고 괴로움을 낳는 것이고 괴로움을 경험케 하는 것이어서, 나도 해로움으로 이끌고 남도 해로움으로 이끌고 둘 모두도 해로움으로 이끄는가?’라고. 만약 라훌라여, 비춰보는 그대가 ‘내가 행하려 하는 나의 이 의의 업은, 불선이고 괴로움을 낳는 것이고 괴로움을 경험케 하는 것이어서, 나도 해로움으로 이끌고 남도 해로움으로 이끌고 둘 모두도 해로움으로 이끈다.’라고 안다면, 라훌라여, 이런 의의 업을 그대는 분명히 행하지 않아야 한다. 만약 라훌라여, 비춰보는 그대가 ‘내가 행하려 하는 나의 이 의의 업은, 선이고 즐거움을 낳는 것이고 즐거움을 경험케 하는 것이어서, 나도 해로움으로 이끌지 않고 남도 해로움으로 이끌지 않고 둘 모두도 해로움으로 이끌지 않는다.’라고 안다면, 라훌라여, 이런 의의 업을 그대는 분명히 행해야 한다.
라훌라여, 그대가 의의 업을 행하고 있을 때도, 그대는 의의 업을 비춰보아야 한다. — ‘내가 행하고 있는 나의 이 의의 업은, 불선이고 괴로움을 낳는 것이고 괴로움을 경험케 하는 것이어서, 나도 해로움으로 이끌고 남도 해로움으로 이끌고 둘 모두도 해로움으로 이끄는가?’라고. 만약 라훌라여, 비춰보는 그대가 ‘내가 행하고 있는 나의 이 의의 업은, 불선이고 괴로움을 낳는 것이고 괴로움을 경험케 하는 것이어서, 나도 해로움으로 이끌고 남도 해로움으로 이끌고 둘 모두도 해로움으로 이끈다.’라고 안다면, 라훌라여, 이런 의의 업을 그대는 중단해야 한다. 만약 라훌라여, 비춰보는 그대가 ‘내가 행하고 있는 나의 이 의의 업은, 선이고 즐거움을 낳는 것이고 즐거움을 경험케 하는 것이어서, 나도 해로움으로 이끌지 않고 남도 해로움으로 이끌지 않고 둘 모두도 해로움으로 이끌지 않는다.’라고 안다면, 라훌라여, 이런 의의 업을 그대는 실행해도 좋다.
라훌라여, 그대가 의의 업을 행한 뒤에도 그대는 의의 업을 비춰보아야 한다. — ‘내가 행한 나의 이 의의 업은, 불선이고 괴로움을 낳는 것이고 괴로움을 경험케 하는 것이어서, 나도 해로움으로 이끌고 남도 해로움으로 이끌고 둘 모두도 해로움으로 이끄는가?’라고. 만약 라훌라여, 비춰보는 그대가 ‘내가 행한 나의 이 의의 업은, 불선이고 괴로움을 낳는 것이고 괴로움을 경험케 하는 것이어서, 나도 해로움으로 이끌고 남도 해로움으로 이끌고 둘 모두도 해로움으로 이끈다.’라고 안다면, 라훌라여, 이런 의의 업을 그대는 걱정해야 하고 부끄러워해야 하고 혐오해야 한다. 걱정하고 부끄러워하고 혐오함으로써 미래에 단속해야 한다. 만약 라훌라여, 비춰보는 그대가 ‘내가 행한 나의 이 의의 업은, 선이고 즐거움을 낳는 것이고 즐거움을 경험케 하는 것이어서, 나도 해로움으로 이끌지 않고 남도 해로움으로 이끌지 않고 둘 모두도 해로움으로 이끌지 않는다.’라고 안다면, 라훌라여, 유익한 법들에서 밤낮을 이어 공부하는 그대는 그것으로 인해 희열과 환희로 머물게 될 것이다.
라훌라여, 누구든지 몸의 업을 청정케 했고 말의 업을 청정케 했고 의의 업을 청정케 했던 과거의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모두 이렇게 비춰보고 비춰보면서 몸의 업을 청정케 했고, 비춰보고 비춰보면서 말의 업을 청정케 했고, 비춰보고 비춰보면서 의의 업을 청정케 했다. 라훌라여, 누구든지 몸의 업을 청정케 하고 말의 업을 청정케 하고 의의 업을 청정케 할 미래의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모두 이렇게 비춰보고 비춰보면서 몸의 업을 청정케 할 것이고, 비춰보고 비춰보면서 말의 업을 청정케 할 것이고, 비춰보고 비춰보면서 의의 업을 청정케 할 것이다. 라훌라여, 누구든지 몸의 업을 청정케 하고 말의 업을 청정케 하고 의의 업을 청정케 하는 지금의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모두 이렇게 비춰보고 비춰보면서 몸의 업을 청정케 하고, 비춰보고 비춰보면서 말의 업을 청정케 하고, 비춰보고 비춰보면서 의의 업을 청정케 한다. 그러므로 라훌라여, ‘나는 비춰보고 비춰보면서 몸의 업을 청정케 할 것이고, 비춰보고 비춰보면서 말의 업을 청정케 할 것이고, 비춰보고 비춰보면서 의의 업을 청정케 할 것이다.’라고 그대는 공부해야 한다.
세존은 이렇게 말했다. 라훌라 존자는 즐거워하면서 세존의 말씀을 기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