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 맛지마 니까야 관통 법회 - 70. 끼따기리 경(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221012)
▣ 맛지마 니까야 관통 법회 - 70. 끼따기리 경(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221012)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i3gsS1sM1eI
저녁을 먹지 말라는 부처님의 지시를 거부하는 앗사지와 뿌납바수까 두 비구를 같은 느낌이라도 불선법은 늘어나고 선법은 줄어드는 경우는 버려야 하고, 불선법은 줄어들고 선법은 늘어나는 경우는 성취해서 머물러야 한다는 말씀으로 설득합니다. 이어서 모든 비구에게 ‘불방일로써 해야 하는 것이 있다.’거나 ‘불방일로써 해야 하는 것이 없다.’라고 말하지 않는다면서, 양면해탈자 등 세상에 존재하는 일곱 부류의 사람들을 정의합니다. 이때, 무위의 앎은 즉시에 성취되지 않고, 점진적인 공부-성과-실천으로 성취됩니다. 두 비구는 다시 반발하고, 부처님은 믿음을 가진 제자가 스승의 가르침에 들어갈 때 뒤따라야 하는 법을 설명하면서 경은 마무리됩니다.
1. 부처님은 저녁을 먹지 않는 삶의 잇점을 말하며 비구들도 저녁을 먹지 말 것을 지시하지만, 끼따기리에 사는 앗사지와 뿌납바수까라는 비구들은 저녁과 아침과 낮에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먹어도 같은 잇점을 누린다고 말하며 부처님의 지시를 거부함 ― “왜 눈에 보이는 것을 버리고 시간의 제약을 받는 것을 따르겠습니까? 우리는 저녁과 아침과 낮에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먹을 것입니다.”
• 저녁을 먹지 않는 삶의 잇점 ― 병이 없고, 아프지 않고, 몸이 가벼워 활력적이고, 힘 있고, 편히 머묾
• kālika: temporal 현세적인, 속세의. 시간의, 시간의 제약을 받는.
2. 부처님이 앗사지와 뿌납바수까 비구를 불러서 설득함 ― ①저녁과 아침과 낮에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먹는 경우와 ②밤의 식사로부터 다른 때에 먹는 경우의 ‘병이 없고, 아프지 않고, 몸이 가벼워 활력적이고, 힘 있고, 편히 머묾’이 같은 것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함
• ①의 경우 → 불선법(不善法)은 늘어나고 선법(善法)은 줄어듦
• ②의 경우 → 불선법(不善法)은 줄어들고 선법(善法)은 늘어남
1) 부처님은 락(樂)-고(苦)-불고불락(不苦不樂)의 느낌을 경험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불선법(不善法)은 줄어들고 선법(仙法)은 늘어난다고 법을 설하지 않음. 다만, ①어떤 느낌을 경험하는 사람에게는 불선법(不善法)은 늘어나고 선법(善法)은 줄어들고, ②어떤 느낌을 경험하는 사람에게는 불선법(不善法)은 줄어들고 선법(善法)은 늘어난다고 법을 설함
2) 부처님은 지혜로써 알고 보고 경험하고 실현하고 성취하지 못했다면 어떤 느낌은 버려야 하고 어떤 느낌은 성취하여 머물러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지만, 지혜로써 알고 보고 경험하고 실현하고 성취했기 때문에 어떤 느낌은 버려야 하고 어떤 느낌은 성취하여 머물러야 한다고 말함
3) 부처님은 모든 비구에게 ‘불방일(不放逸)로써 해야 하는 것이 있다.’라고 말하지도 않고, 모든 비구에게 ‘불방일로써 해야 하는 것이 없다.’라고 말하지도 않음
• 아라한인 비구에게는 ‘불방일로써 해야 하는 것이 없다.’라고 말함 ← 불방일에 의한 것은 행해졌고, 그들이 방일하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
• 유학(有學)인 비구에게는 ‘불방일(不放逸)로써 해야 하는 것이 있다.’라고 말함 ←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바르게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하는 목적인 그 위 없는 범행(梵行)의 완성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머물 것이기 때문
3. 세상에 존재하는 일곱 부류의 사람들의 정의 ― 양면해탈자(兩面解脫者), 혜해탈자(慧解脫者), 몸으로 실현한 자, 견해를 성취한 자, 믿음으로 해탈한 자, 법을 따르는 자, 믿음을 따르는 자
※ (AN 7.56-띳사 범천 경)을 참조하여 보충 설명할 것
※ 법을 따르는 자, 믿음을 따르는 자에서 육차 결집본과 PTS본의 차이가 있음
육차결집본 ― paññāya cassa disvā ekacce āsavā parikkhīṇā honti 지혜로써 보면서 번뇌들의 일부가 다하고
PTS본 ― paññāya c'assa disvā āsavā apari-k-khīṇā honti 통찰지로 보지만 아직 번뇌들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한다(초기불전연구원)/지혜로써 보아 번뇌를 아직 부수지 못하였으나(한국빠알리성전협회)/his taints are not yet destroyed by his seeing with wisdom 지혜로써 보면서 그의 번뇌가 아직 부서지지 않았다(bhikkhu bodhi)
; (SN 25-들어감 상윳따)에 의하면, 법을 따르는 자와 믿음을 따르는 자도 범부의 경지를 극복한 자(vītivatto puthujjanabhūmiṃ)입니다. 이때, 범부와 성자의 차이를 번뇌가 일부라도 다했는지의 차이로 볼 때, 이 차이는 육차 결집본이 옳다고 보아야 합니다. ☞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6_03_04&wr_id=1
4. 무위(無爲)의 앎은 즉시에 성취되지 않음 → 점진적인 공부, 점진적인 성과, 점진적인 실천(*)으로부터 무위(無爲)의 앎은 성취됨
• 점진적 과정 ― 믿음이 생김 → 가까이함 → 섬김 → 귀를 기울임 → 법을 배움 → 법을 명심함 → 명심한 법들의 의미를 조사함 → 의미를 조사하는 자에게 법들은 기쁨을 줌 → 법이 기쁨을 줄 때 관심이 생김 → 관심이 생긴 자는 시도함 → 판단함 → 정진함 → 단호한 의지를 가진 자는 몸으로 궁극의 진리(眞理)[참]을 실현하고, 지혜로써 그것을 꿰뚫어 봄
(*) 점진적 과정 ― 「anupubbasikkhā anupubbakiriyā anupubbapaṭipadā 점진적인 공부, 점진적인 성과, 점진적인 실천」의 용례 → (MN 70-끼따기리 경)/(MN 107-가나까목갈라나 경)/(AN 8.19-빠하라다 경)/(AN 8.20-포살 경)
5. 앗사지와 뿌납바수까 비구를 질책함 ― 믿음이 없고, 가까이함도 없고, 섬김도 없고, 귀를 기울임도 없고, 법을 배움도 없고, 법을 명심함도 없고, 의미를 조사함도 없고, 법은 기쁨을 주지도 않았고, 관심도 생기지 않고, 시도도 없고, 판단도 없고, 정진도 없음 →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잘못된 행동이 있었고,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잘못된 실천이 있었다. 비구들이여, 이 쓸모없는 자들은 이 법(法)과 율(律)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
6. 부처님이 네 구절로 된 설명[사구게(四句偈)]을 알려주려 하지만 두 비구의 반발 때문에 알려주지 못함 ― “저희는 누구이고, 대덕이시여, 법을 아는 자는 누구입니까?”
7. 부처님은 믿음을 가진 제자가 스승의 가르침에 들어갈 때 뒤따라야 하는 법을 설명함
1) 믿음을 가진 제자가 스승의 가르침에 들어갈 때 이런 법이 뒤따라야 한다. — ‘세존은 스승이시고, 나는 제자다. 세존은 알고, 나는 모른다.’라고. → 스승의 가르침은 원기를 북돋워 주고 자양이 될 것
2) 믿음을 가진 제자가 스승의 가르침에 들어갈 때 이런 법이 뒤따라야 한다. — ‘참으로 피부와 힘줄과 뼈만 남고, 몸에서 살과 피가 말라버려라! 남자의 힘과 남자의 정진과 남자의 노력으로 얻어야 하는 것을 얻지 않는 한 정진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라고. → 지금여기에서 무위의 앎을 성취하거나, 집착이 있을 때 불환자(不還者)의 상태를 성취하는 두 가지 결과 중의 하나가 예상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