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givacchasuttaṃ (MN 72-왓차 불 경)
3. paribbājakavaggo, 2. aggivacchasuttaṃ (MN 72-왓차 불 경)
이렇게 나는 들었다. — 한때 세존은 사왓티에서 제따와나의 아나타삔디까 사원에 머물렀다. 그때 왓차곳따 유행승이 세존에게 왔다. 와서는 세존과 함께 인사를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만한 이야기를 주고받은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왓차곳따 유행승은 세존에게 이렇게 말했다. —
“고따마 존자여, 고따마 존자는 ‘세상은 영원하다는 이것만이 참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는 견해가 있습니까?” “왓차여, 나는 ‘세상은 영원하다는 이것만이 참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는 견해가 없습니다.”
“그러면, 고따마 존자여, 고따마 존자는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는 이것만이 참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는 견해가 있습니까?” “왓차여, 나는 ‘세상은 영원하다는 이것만이 참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는 견해가 없습니다.”
“그러면, 고따마 존자여, 고따마 존자는 ‘세상은 끝이 있다는 이것만이 참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는 견해가 있습니까?” “왓차여, 나는 ‘세상은 끝이 있다는 이것만이 참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는 견해가 없습니다.”
“그러면, 고따마 존자여, 고따마 존자는 ‘세상은 끝이 없다는 이것만이 참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는 견해가 있습니까?” “왓차여, 나는 ‘세상은 끝이 없다는 이것만이 참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는 견해가 없습니다.”
“그러면, 고따마 존자여, 고따마 존자는 ‘그 생명이 그 몸이라는 이것만이 참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는 견해가 있습니까?” “왓차여, 나는 ‘그 생명이 그 몸이라는 이것만이 참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는 견해가 없습니다.”
“그러면, 고따마 존자여, 고따마 존자는 ‘다른 생명과 다른 몸이라는 이것만이 참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는 견해가 있습니까?” “왓차여, 나는 ‘다른 생명과 다른 몸이라는 이것만이 참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는 견해가 없습니다.”
“그러면, 고따마 존자여, 고따마 존자는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한다는 이것만이 참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는 견해가 있습니까?” “왓차여, 나는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한다는 이것만이 참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는 견해가 없습니다.”
“그러면, 고따마 존자여, 고따마 존자는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것만이 참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는 견해가 있습니까?” “왓차여, 나는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것만이 참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는 견해가 없습니다.”
“그러면, 고따마 존자여, 고따마 존자는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는 이것만이 참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는 견해가 있습니까?” “왓차여, 나는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는 이것만이 참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는 견해가 없습니다.”
“그러면, 고따마 존자여, 고따마 존자는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라는 이것만이 참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는 견해가 있습니까?” “왓차여, 나는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라는 이것만이 참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는 견해가 없습니다.”
“‘고따마 존자여, 고따마 존자는 ‘세상은 영원하다는 이것만이 참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는 견해가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왓차여, 나는 ‘세상은 영원하다는 이것만이 참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는 견해가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고따마 존자여, 고따마 존자는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는 이것만이 참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는 견해가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왓차여, 나는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는 이것만이 참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는 견해가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고따마 존자여, 고따마 존자는 ‘세상은 끝이 있다는 이것만이 참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는 견해가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왓차여, 나는 ‘세상은 끝이 있다는 이것만이 참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는 견해가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고따마 존자여, 고따마 존자는 ‘세상은 끝이 없다는 이것만이 참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는 견해가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왓차여, 나는 ‘세상은 끝이 없다는 이것만이 참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는 견해가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고따마 존자여, 고따마 존자는 ‘그 생명이 그 몸이라는 이것만이 참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는 견해가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왓차여, 나는 ‘그 생명이 그 몸이라는 이것만이 참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는 견해가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고따마 존자여, 고따마 존자는 ‘다른 생명과 다른 몸이라는 이것만이 참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는 견해가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왓차여, 나는 ‘다른 생명과 다른 몸이라는 이것만이 참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는 견해가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고따마 존자여, 고따마 존자는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한다는 이것만이 참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는 견해가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왓차여, 나는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한다는 이것만이 참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는 견해가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고따마 존자여, 고따마 존자는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것만이 참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는 견해가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왓차여, 나는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것만이 참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는 견해가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고따마 존자여, 고따마 존자는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는 이것만이 참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는 견해가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왓차여, 나는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는 이것만이 참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는 견해가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고따마 존자여, 고따마 존자는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라는 이것만이 참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는 견해가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왓차여, 나는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라는 이것만이 참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는 견해가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어떤 위험을 보기에 이렇게 이 모든 치우친 견해를 가까이하지 않습니까?”
“‘세상은 영원하다.’라는 것은 치우친 견해이고, 얽힌 견해이고, 황폐한 견해이고, 몸부림치는 견해이고, 투쟁하는 견해이고, 묶인 견해입니다. 괴로움과 함께하고, 파괴와 함께하고, 절망과 함께하고, 열기와 함께합니다. 염오로, 이탐으로, 소멸로, 가라앉음으로, 실다운 지혜로, 깨달음으로, 열반으로 이끌지 않습니다. 왓차여,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라는 … ‘세상은 끝이 있다.’라는 … ‘세상은 끝이 없다.’라는 … ‘그 생명이 그 몸이다.’라는 … ‘다른 생명과 다른 몸이다.’라는 …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한다.’라는 …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는 …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것은 치우친 견해이고, 얽힌 견해이고, 황폐한 견해이고, 몸부림치는 견해이고, 투쟁하는 견해이고, 묶인 견해입니다. 괴로움과 함께하고, 파괴와 함께하고, 절망과 함께하고, 열기와 함께합니다. 염오로, 이탐으로, 소멸로, 가라앉음으로, 실다운 지혜로, 깨달음으로, 열반으로 이끌지 않습니다. 왓차여, 나는 이런 위험을 보기에 이렇게 이 모든 치우친 견해를 가까이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고따마 존자에게 치우친 견해가 어떤 것이라도 있습니까?” “왓차여, 여래에게 치우친 견해라는 것은 제거되었습니다. 여래는 이것을 보았습니다. — ‘이렇게 색(色)이 있고, 이렇게 색이 자라나고, 이렇게 색이 줄어든다. 이렇게 수(受)가 있고, 이렇게 수가 자라나고, 이렇게 수가 줄어든다. 이렇게 상(想)이 있고, 이렇게 상이 자라나고, 이렇게 상이 줄어든다. 이렇게 행(行)들이 있고, 이렇게 행들이 자라나고, 이렇게 행들이 줄어든다. 이렇게 식(識)이 있고, 이렇게 식이 자라나고, 이렇게 식이 줄어든다.’라고. 그러므로 여래는 생각된 모든 것, 동요된 모든 것, 모든 나를 만들고 나의 것을 만드는 자기화의 잠재성향들의 부서짐과 이탐과 소멸과 포기와 놓음 때문에 집착 없이 해탈한 자라고 나는 말합니다.”
“고따마 존자여, 이렇게 해탈한 심(心)을 가진 자는 어디에 태어납니까?” “왓차여, ‘태어난다.’라는 현상으로 가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여, 그러면 태어나지 않습니까?” “왓차여, ‘태어나지 않는다.’라는 현상으로 가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여, 그러면 태어나기도 하고 태어나지 않기도 합니까?” “왓차여, ‘태어나기도 하고 태어나지 않기도 한다.’라는 현상으로 가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여, 그러면 태어나지도 않고 태어나지 않지도 않습니까?” “왓차여, ‘태어나지도 않고 태어나지 않지도 않는다.’라는 현상으로 가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여, 이렇게 해탈한 심을 가진 자는 어디에 태어납니까?’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왓차여, ‘태어난다.’라는 현상으로 가지 않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고따마 존자여, 그러면 태어나지 않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왓차여, ‘태어나지 않는다.’라는 현상으로 가지 않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고따마 존자여, 그러면 태어나기도 하고 태어나지 않기도 합니까?’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왓차여, ‘태어나기도 하고 태어나지 않기도 한다.’라는 현상으로 가지 않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고따마 존자여, 그러면 태어나지도 않고 태어나지 않지도 않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왓차여, ‘태어나지도 않고 태어나지 않지도 않는다.’라는 현상으로 가지 않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고따마 존자여, 저는 모르겠습니다. 여기서 저는 당황스럽습니다. 예전에 우정 어린 대화를 통해 고따마 존자에게 있었던 만큼의 믿음마저도 이제 나에게서 사라졌습니다.” “왓차여, 그대가 모르겠는 것은 당연합니다. 당황스러운 것은 당연합니다. 왓차여, 이 법은 심오하고, 보기 어렵고, 깨닫기 어렵고, 평화롭고, 숭고하고, takka[애(愛)의 형성 과정]의 영역을 넘어섰고, 독창적이고, 현자에게만 경험될 수 있습니다. 다른 견해, 다른 믿음, 다른 성향이 있고, 다른 방법으로 수행하고, 다른 스승을 따르는 그대에게 이 법은 알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왓차여, 여기서 그것을 되묻겠습니다. 좋다면, 그대에게 좋아 보이는 대로 그것을 설명하십시오. 왓차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만약 그대의 앞에서 불이 타고 있다면 그대는 ‘내 앞에서 이 불이 타고 있다.’라고 알 수 있습니까?” “만약, 고따마 존자여, 제 앞에서 불이 타고 있다면 저는 ‘내 앞에서 이 불이 타고 있다.’라고 알 수 있습니다.”
“만약에 왓차여, 그대에게 ‘그대 앞에서 타고 있는 이 불은 무엇을 조건으로 타고 있는가?’라고 질문한다면, 왓차여, 이렇게 질문받은 그대는 무엇이라고 설명할 것입니까?” “만약에 고따마 존자여, 저에게 ‘그대 앞에서 타고 있는 이 불은 무엇을 조건으로 타고 있는가?’라고 질문한다면, 고따마 존자여, 이렇게 질문받은 저는 이렇게 설명할 것입니다. — ‘제 앞에서 타고 있는 이 불은 풀과 나무토막이라는 연료를 조건으로 타고 있습니다.’라고.”
“만약에 왓차여, 그대 앞에서 그 불이 꺼진다면 그대는 ‘내 앞에서 이 불이 꺼졌다.’라고 알 수 있습니까?” “고따마 존자여, 만약 제 앞에서 그 불이 꺼진다면 ‘내 앞에서 이 불이 꺼졌다.’라고 알 수 있습니다.”
“만약에 왓차여, 그것을 ‘그대의 앞에서 꺼진 그 불은 동쪽이나 남쪽이나 서쪽이나 북쪽의 어느 방향으로 갔습니까?’라고 질문한다면, 이렇게 질문받은 그대는 무엇이라고 설명할 것입니까?” “고따마 존자여, 어느 방향으로도 가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여, 풀과 나무토막이라는 연료를 조건으로 꺼진 그 불은 연료가 다 소비되고 다른 것을 공급받지 못했기 때문에 자량이 없어 꺼진 것이라는 이름을 얻을 뿐입니다.”
“이처럼, 왓차여, 묘사하는 자가 어떤 색에 의해 여래를 묘사할 수 있다면, 그런 색은 여래에게 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생겨나지 않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왓차여, 색에 의한 헤아림에서 해탈한 여래는, 예를 들면 큰 바다처럼, 깊고 측량할 수 없고 관통하기 어렵습니다. ‘태어난다’라는 현상으로 가지 않고, ‘태어나지 않는다’라는 현상으로 가지 않고, ‘태어나기도 하고 태어나지 않기도 한다’라는 현상으로 가지 않고, ‘태어나지도 않고 태어나지 않지도 않는다’라는 현상으로 가지 않습니다.
묘사하는 자가 어떤 수에 의해 여래를 묘사할 수 있다면, 그런 수는 여래에게 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생겨나지 않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왓차여, 수에 의한 헤아림에서 해탈한 여래는, 예를 들면 큰 바다처럼, 깊고 측량할 수 없고 관통하기 어렵습니다. ‘태어난다’라는 현상으로 가지 않고, ‘태어나지 않는다’라는 현상으로 가지 않고, ‘태어나기도 하고 태어나지 않기도 한다’라는 현상으로 가지 않고, ‘태어나지도 않고 태어나지 않지도 않는다’라는 현상으로 가지 않습니다.
묘사하는 자가 어떤 상에 의해 여래를 묘사할 수 있다면, 그런 상은 여래에게 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생겨나지 않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왓차여, 상에 의한 헤아림에서 해탈한 여래는, 예를 들면 큰 바다처럼, 깊고 측량할 수 없고 관통하기 어렵습니다. ‘태어난다’라는 현상으로 가지 않고, ‘태어나지 않는다’라는 현상으로 가지 않고, ‘태어나기도 하고 태어나지 않기도 한다’라는 현상으로 가지 않고, ‘태어나지도 않고 태어나지 않지도 않는다’라는 현상으로 가지 않습니다.
묘사하는 자가 어떤 행들에 의해 여래를 묘사할 수 있다면, 그런 행들은 여래에게 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생겨나지 않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왓차여, 행들에 의한 헤아림에서 해탈한 여래는, 예를 들면 큰 바다처럼, 깊고 측량할 수 없고 관통하기 어렵습니다. ‘태어난다’라는 현상으로 가지 않고, ‘태어나지 않는다’라는 현상으로 가지 않고, ‘태어나기도 하고 태어나지 않기도 한다’라는 현상으로 가지 않고, ‘태어나지도 않고 태어나지 않지도 않는다’라는 현상으로 가지 않습니다.
묘사하는 자가 어떤 식에 의해 여래를 묘사할 수 있다면, 그런 식은 여래에게 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생겨나지 않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왓차여, 식에 의한 헤아림에서 해탈한 여래는, 예를 들면 큰 바다처럼, 깊고 측량할 수 없고 관통하기 어렵습니다. ‘태어난다’라는 현상으로 가지 않고, ‘태어나지 않는다’라는 현상으로 가지 않고, ‘태어나기도 하고 태어나지 않기도 한다’라는 현상으로 가지 않고, ‘태어나지도 않고 태어나지 않지도 않는다’라는 현상으로 가지 않습니다.”
이렇게 말했을 때, 왓차곳따 유행승은 세존에게 이렇게 말했다. — “예를 들면, 고따마 존자여, 마을이나 번화가의 멀지 않은 곳에 커다란 살라 나무가 있습니다. 그것들은 무상함 때문에 가지와 잎사귀들은 떨어질 것이고, 껍질과 바깥 껍질은 벗겨질 것이고, 심재를 둘러싼 부분은 제거될 것입니다. 나중에 그것은 가지와 잎들도 없고, 껍질과 바깥 껍질도 없고, 심재를 둘러싼 부분도 없이 심재에 대해 확립되어 순일해질 것입니다. 이처럼 고따마 존자의 말씀은 가지와 잎들도 없고, 껍질과 바깥 껍질도 없고, 심재를 둘러싼 부분도 없이 심재에 대해 확립된 순일한 것입니다. 정말 기쁩니다, 대덕이시여. 정말 기쁩니다, 대덕이시여! 예를 들면, 대덕이시여, 넘어진 자를 일으킬 것입니다. 덮여있는 것을 걷어낼 것입니다. 길 잃은 자에게 길을 알려줄 것입니다. ‘눈 있는 자들은 모습들을 본다.’라며 어둠 속에서 기름 등불을 들 것입니다. 이처럼 고따마 존자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법을 설하셨습니다. 대덕이시여, 저는 의지처인 세존 그리고 가르침과 비구 상가에게로 갑니다. 세존께서는 저를 오늘부터 살아 있는 동안 귀의한 재가 신자로 받아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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