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 맛지마 니까야 관통 법회 - 74. 디가나카 경[중에 의해 설한 법 - 버리고 놓음](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221…
▣ 맛지마 니까야 관통 법회 - 74. 디가나카 경[중에 의해 설한 법 - 버리고 놓음](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221109)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uFKjdRZFGMk
(MN 74-디가나카 경)은 사리뿟따 존자의 깨달음의 현장을 묘사하는 경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모든 것을 인정한다거나 모든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거나 어떤 것은 인정하고 어떤 것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세 가지 견해의 문제를 지적한 뒤 그 견해들을 버리고 놓고서 색(色)과 수(受)로부터 해방될 것을 설명합니다. 이때, 모든 것을 인정한다는 것은 존재의 긍정 즉 유(有)의 견해이고, 모든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존재의 부정 즉 무(無)의 견해로 간주하여 (SN 12.15-깟짜나곳따 경)의 중(中)에 의해 설해진 법과 연결하여 그 의미를 설명하였습니다. 한편, 법안이 생겨서다른 스승을 의지하지 않게 된 디가나카 유행승은 귀의하여 재가 신자가 됩니다.
(MN 74-디가나카 경)은 사리뿟따 존자의 깨달음의 현장을 묘사하는 경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모든 것을 인정한다거나 모든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거나 어떤 것은 인정하고 어떤 것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세 가지 견해의 문제를 지적한 뒤 그 견해들을 버리고 놓고서 색(色)과 수(受)로부터 해방될 것을 설명합니다.
이때, 모든 것을 인정한다는 것은 존재의 긍정 즉 유(有)의 견해이고, 모든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존재의 부정 즉 무(無)의 견해로 간주하여 (SN 12.15-깟짜나곳따 경)의 중(中)에 의해 설해진 법과 연결하여 그 의미를 설명하였습니다.
1. 디가나카 유행승의 주장과 견해 ― ‘나는 모든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 존재의 부정 = 무(無)[허무] ↔ 존재의 긍정 = 유(有) ⇒ (SN 12.15-깟짜나곳따 경) ― 중(中)에 의해 설해진 법 ☞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6_02_01&wr_id=22
(부처님의 지적) 그 견해도 그대에게 인정되지 않습니까?
(디가나카 유행승) 저에게 이 견해가 인정된다고 해도 그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처님) ‘그것도 마찬가지입니다.’라고 말하지만, 그 견해를 버리지 않고 다른 견해를 붙잡는 사람이 세상에는 더 많음(*) & 그 견해를 버리고 다른 견해를 붙잡지 않는 사람이 세상에는 더 적음
(*) 디가나카 유행승처럼 자기의 견해 위에서 그 견해에 어긋나는 견해를 붙잡는 사람
• 세 가지 주장-견해
1) ‘나는 모든 것을 인정한다.’라는 주장과 견해를 가진 그들에게 그 견해는 친밀에 가깝고, 족쇄에 가깝고, 기쁨에 가깝고, 묶임에 가깝고, 집착에 가까움
2) ‘나는 모든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라는 주장과 견해를 가진 그들에게 그 견해는 친밀하지 않음에 가깝고, 족쇄 아님에 가깝고, 기뻐하지 않음에 가깝고, 묶이지 않음에 가깝고, 집착하지 않음에 가까움
이때, 디가나카 유행승은 부처님이 자기의 견해를 칭찬한다고 말하지만, 부처님은 세 번째 주장-견해를 설명함
3) ‘나는 어떤 것은 인정하고 어떤 것은 인정하지 않는다.’라는 주장과 견해를 가진 그들에게, 자신이 인정하는 견해는 친밀 ~ 집착에 가깝지만, 자신이 인정하지 않는 견해는 친밀하지 않음 ~ 집착하지 않음에 가까움
2. 현명한 사람의 숙고 ― 세 가지 견해의 어느 한 가지 견해에 완고하게 집착하는 경향을 가지고 ‘이것만이 진리요, 다른 것은 쓸모가 없다.’라고 말한다면(*), 다른 두 가지 견해를 가진 사람이 이의를 제기할 것 → 이렇게 이의제기가 있을 때 다툼이 있고, 다툼이 있을 때 성가심이 있고, 성가심이 있을 때 짜증이 있을 것(이의제기 → 다툼 → 성가심 → 짜증)
→ 이렇게 자신에게서 이의제기와 다툼과 성가심과 짜증을 관찰하는 그는 그 견해를 버리고 다른 견해를 붙잡지 않음 → 이렇게 그 견해들을 버리고 놓음
(*) 진리의 보호 ― [진리에 대한 불교의 입장2)] 참조 ☞ http://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2_12&wr_id=154
3. 부처님의 설법 ― 그 견해들 대신에 색(色)과 수(受)의 해방을 설함
1) 몸 ― 몸은 물질이어서 사대(四大)로 구성된 것이고, 부모에 속한 것에서 생겨난 것이고, 밥과 응유가 집적된 것이고, 무상하고 쇠퇴하고 부서지고 해체되고 흩어지는 것 → 무상(無常)하고 고(苦)이고 아픔이고 종기고 화살이고 재난이고 결점이고 남[他]이고 부서지는 것이고 공(空)이고 무아(無我)라고 관찰해야 → 몸에 대한 관심, 몸에 대한 애정, 몸에 대한 순종이 몸에서 버려짐 = 색(色)의 해방 ― (MN 13-괴로움 무더기 큰 경) 참조 ☞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5_02_03&wr_id=1
2) 수(受) ―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 → 오직 한 가지 느낌만 경험함 → 무상(無常)하고 유위(有爲)이고 연기(緣起)되었고 부서지는 것이고 무너지는 것이고 바래는 것이고 소멸하는 것이라고 봄 → 느낌들에 대해 염오(厭惡)함 → 이탐(離貪) → 해탈(解脫) → 해탈지견(解脫知見) → 「이렇게 해탈된 심(心)을 가진 비구는 누구에 대해서도 동의하지 않고, 누구와도 다투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말해진 것을 붙잡지 않고 살아갑니다.」 = 수(受)의 해방 ― (MN 13-괴로움 무더기 큰 경)/(SN 12.63-아들의 고기 비유 경) 참조 ☞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6_02_01&wr_id=61
4. 사리뿟따 존자의 깨달음
세존에게 부채를 부치면서 세존의 뒤에 서 있던 사리뿟따 존자에게 이런 생각이 떠오름 — “참으로 세존께서는 거듭 그 법들을 실다운 지혜로 안 뒤에 버리는 것을 말씀하셨다. 참으로 선서께서는 거듭 그 법들을 실다운 지혜로 안 뒤에 놓는 것을 말씀하셨다.” → 이렇게 이것을 숙고하는 사리뿟따 존자의 심(心)은 집착에서 벗어나 번뇌들로부터 해탈함
• 실다운 지혜로 안 뒤에 ↔ 완고하게 집착하는 성향을 가지고
5. 디가나카 유행승에게 법안(法眼)이 생김
‘자라나는 것은 무엇이든지 모두 소멸하는 것이다.’라는 티끌이 없고 때가 없는 법의 눈[법안(法眼)]이 생김 → 그렇게 법을 보고, 법을 얻고, 법을 알고, 법을 관통하고, 의심을 건너고, 불확실에서 벗어나고, 자기 확신을 얻고, 스승의 가르침에서 다른 스승을 의지하지 않게 됨 → 귀의하여 재가 신자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