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īghanakhasuttaṃ (MN 74-디가나카 경) 201-204.
3. paribbājakavaggo, 4. dīghanakhasuttaṃ (MN 74-디가나카 경)
이렇게 나는 들었다. ㅡ 한때 세존은 라자가하에서 독수리봉 산의 수까라카따에 머물렀다. 그때 디가나카 유행승이 세존에게 왔다. 와서는 세존과 함께 인사를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만한 이야기를 주고받은 뒤 한 곁에 섰다. 한 곁에 선 디가나카 유행승은 세존에게 이렇게 말했다. ㅡ “고따마 존자여, 나는 이렇게 주장하고 이런 견해를 가졌습니다. ㅡ ‘모든 것은 나에게 인정되지 않는다.’라고.” “악기웻사나여, ‘모든 것은 나에게 인정되지 않는다.’라는 견해도 그대에게 인정되지 않습니까?” “고따마 존자여, 저에게 이 견해는 인정된다고 해도 그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악기웻사나여, ‘그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도 마찬가지입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그 견해를 버리지 않고 또 다른 견해를 붙잡습니다. 그런 사람이 세상에는 많고, 더욱 많습니다. 악기웻사나여, ‘그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도 마찬가지입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그 견해를 버리고 또 다른 견해를 붙잡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이 세상에는 적고, 더욱 적습니다. 악기웻사나여, ‘모든 것은 나에게 인정된다.’라고 이렇게 주장하고 이런 견해를 가진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있습니다. 악기웻사나여, ‘모든 것은 나에게 인정되지 않는다.’라고 이렇게 주장하고 이런 견해를 가진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있습니다. 악기웻사나여, ‘어떤 것은 나에게 인정되고, 어떤 것은 나에게 인정되지 않는다.’라고 이렇게 주장하고 이런 견해를 가진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있습니다. 거기서, 악기웻사나여, ‘모든 것은 나에게 인정된다.’라고 이렇게 주장하고 이런 견해를 가진 그들의 이 견해는 친밀에 가깝고, 족쇄에 가깝고, 기쁨에 가깝고, 묶임에 가깝고, 집착에 가깝습니다. 거기서, 악기웻사나여, ‘모든 것은 나에게 인정되지 않는다.’라고 이렇게 주장하고 이런 견해를 가진 그들의 이 견해는 친밀 없음에 가깝고, 족쇄 없음에 가깝고, 기쁨 없음에 가깝고, 묶임 없음에 가깝고, 집착 없음에 가깝습니다.”
이렇게 말하자, 디가나카 유행승은 세존에게 이렇게 말했다. ㅡ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의 치우친 견해를 칭찬합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의 치우친 견해를 매우 칭찬합니다.”라고.
“거기서 악기웻사나여, ‘어떤 것은 나에게 인정되고, 어떤 것은 나에게 인정되지 않는다.’라고 이렇게 주장하고 이런 견해를 가진 그 사문-바라문들에게, 인정하는 그들의 견해는 친밀에 가깝고, 족쇄에 가깝고, 기쁨에 가깝고, 묶임에 가깝고, 집착에 가깝습니다. 인정하지 않는 그들의 견해는 친밀 없음에 가깝고, 족쇄 없음에 가깝고, 기쁨 없음에 가깝고, 묶임 없음에 가깝고, 집착 없음에 가깝습니다. 거기서 악기웻사나여, ‘모든 것은 나에게 인정된다.’라고 이렇게 주장하고 이런 견해를 가진 그 사문-바라문들 가운데 현명한 사람은 이렇게 숙고합니다. ㅡ ‘모든 것은 나에게 인정된다는 나의 이런 견해를 만약 내가 강하고 집착하고 경향을 가지고 ‘이것만이 진리요, 다른 것은 쓸모가 없다.’라고 말한다면, 나에게 두 사람과 더불어 다툼이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은 나에게 인정되지 않는다.’라고 이렇게 주장하고 이런 견해를 가진 그 사문이나 바라문 그리고 ‘어떤 것은 나에게 인정되고, 어떤 것은 나에게 인정되지 않는다.’라고 이렇게 주장하고 이런 견해를 가진 그 사문이나 바라문 ㅡ 이런 두 사람과 더불어 다툼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다툼이 있을 때 논쟁이 있고, 논쟁이 있을 때 분함이 있고, 분함이 있을 때 해침이 있다. 이렇게 자신에게서 다툼과 논쟁과 분함과 해침을 관찰하는 그는 그 견해를 버리고 다른 견해를 붙잡지 않는다. 이렇게 그 견해들을 버린다. 이렇게 그 견해들을 놓는다.
거기서 악기웻사나여, ‘모든 것은 나에게 인정되지 않는다.’라고 이렇게 주장하고 이런 견해를 가진 그 사문-바라문들 가운데 현명한 사람은 이렇게 숙고합니다. ㅡ ‘모든 것은 나에게 인정되지 않는다는 나의 이런 견해를 만약 내가 강하고 집착하고 경향을 가지고 ‘이것만이 진리요, 다른 것은 쓸모가 없다.’라고 말한다면, 나에게 두 사람과 더불어 다툼이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은 나에게 인정된다.’라고 이렇게 주장하고 이런 견해를 가진 그 사문이나 바라문 그리고 ‘어떤 것은 나에게 인정되고, 어떤 것은 나에게 인정되지 않는다.’라고 이렇게 주장하고 이런 견해를 가진 그 사문이나 바라문 ㅡ 이런 두 사람과 더불어 다툼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다툼이 있을 때 논쟁이 있고, 논쟁이 있을 때 분함이 있고, 분함이 있을 때 해침이 있다. 이렇게 자신에게서 다툼과 논쟁과 분함과 해침을 관찰하는 그는 그 견해를 버리고 다른 견해를 붙잡지 않는다. 이렇게 그 견해들을 버린다. 이렇게 그 견해들을 놓는다.
거기서 악기웻사나여, ‘어떤 것은 나에게 인정되고, 어떤 것은 나에게 인정되지 않는다.’라고 이렇게 주장하고 이런 견해를 가진 그 사문-바라문들 가운데 현명한 사람은 이렇게 숙고합니다. ㅡ ‘어떤 것은 나에게 인정되고, 어떤 것은 나에게 인정되지 않는다는 나의 이런 견해를 만약 내가 강하고 집착하고 경향을 가지고 ‘이것만이 진리요, 다른 것은 쓸모가 없다.’라고 말한다면, 나에게 두 사람과 더불어 다툼이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은 나에게 인정된다.’라고 이렇게 주장하고 이런 견해를 가진 그 사문이나 바라문 그리고 ‘모든 것은 나에게 인정되지 않는다.’라고 이렇게 주장하고 이런 견해를 가진 그 사문이나 바라문 ㅡ 이런 두 사람과 더불어 다툼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다툼이 있을 때 논쟁이 있고, 논쟁이 있을 때 분함이 있고, 분함이 있을 때 해침이 있다. 이렇게 자신에게서 다툼과 논쟁과 분함과 해침을 관찰하는 그는 그 견해를 버리고 다른 견해를 붙잡지 않는다. 이렇게 그 견해들을 버린다. 이렇게 그 견해들을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