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hāsakuludāyisuttaṃ (MN 77-사꿀루다이 큰 경) - 전반부(237-246)
3. paribbājakavaggo, 7. mahāsakuludāyisuttaṃ (MN 77-사꿀루다이 큰 경)
「그것에 의해 나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숭상하고, 예배하는 제자들이 나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면서 머무는 내가 설한 법을 그대는 몇 가지나 봅니까?」라는 부처님의 질문에 사꿀루다이 유행승은 ‘세존은 ①적게 먹고, 적게 먹는 것을 칭찬하고, ②어떤 옷으로도 만족하고, 어떤 옷으로도 만족하는 것을 칭찬하고, ③ 어떤 탁발 음식으로도 만족하고, 어떤 탁발 음식으로도 만족하는 것을 칭찬하고, ④어떤 잠잘 자리로도 만족하고, 어떤 잠잘 자리로도 만족하는 것을 칭찬하고, ⑤여의고, 여의는 것을 칭찬하기 때문’이라고 다섯 가지로 답합니다. 부처님은 이 답변에 대한 각각의 오류를 지적한 뒤에 다른 다섯 가지로 설명하는데, ①계를 중시하는 자여서 최상의 계의 무더기[계온(戒蘊)]를 갖춘 높은 계(戒), ②오직 아는 것에 대해 ‘나는 안다.’라고 말하고, 오직 보는 것에 대해 ‘나는 본다.’라고 말하는 등의 지(知)와 견(見). ③지혜로운 자여서 최상의 지혜의 무더기[혜온(慧蘊)]를 갖춘 높은 지혜, ④사성제(四聖諦)의 설명, ⑤제자들에게 선언한 실천입니다.
이 경의 특징은, 특히, 제자들에게 선언한 실천입니다. 「내가 제자들에게 선언한 실천이 있습니다. 실천의 방법에 따라서 나의 제자들은 사념처(四念處)를 닦습니다.」의 형태로 사념처(四念處)-사정근(四正勤)-사여의족(四如意足)-오근(五根)-오력(五力)-칠각지(七覺支)-팔정도(八正道)[일곱 가지 보리분법(菩提分法)]에 이어 팔해탈(八解脫)-팔승처(八勝處)-열 가지 까시나의 영역-사선(四禪)-여덟 가지 앎[지(知)와 견(見)-의성신(意成身)-육신통(六神通)]을 자세히 설명합니다. 불교(佛敎) 안에 제시되는 실천법의 총괄입니다.
이렇게 나는 들었다. — 한때 세존은 라자가하에서 웰루와나의 다람쥐 기르는 곳에 머물렀다. 그때 아주 잘 알려진 많은 유행승이 모라나와빠에 있는 유행승들의 사원에 살고 있었다. 예를 들면, 안나바라, 와라다라, 사꿀루다이 유행승과 다른 아주 잘 알려진 유행승들이었다. 그때 세존께서는 오전에 옷차림을 바르게 하고 발우와 가사를 지니고 탁발을 위해서 라자가하로 들어갔다. 그런데 세존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탁발을 위해 라자가하로 가기에는 너무 이르다. 나는 모라나와빠에 있는 유행승들의 사원으로 사꿀루다이 유행승에게 가는 것이 어떨까!”라고. 그래서 세존은 모라나와빠에 있는 유행승들의 사원으로 갔다. 그때 사꿀루다이 유행승은 많은 유행승들의 무리와 함께 시끄럽고 큰 소리로 떠들썩하게, 예를 들면, ‘왕에 관한 이야기, 도둑에 관한 이야기, 대신에 관한 이야기, 군대에 관한 이야기, 두려움에 관한 이야기, 전쟁에 관한 이야기, 음식에 관한 이야기, 마실 것에 관한 이야기, 옷에 관한 이야기, 침대에 관한 이야기, 화환에 관한 이야기, 향에 관한 이야기, 친척에 관한 이야기, 탈 것에 관한 이야기, 마을에 관한 이야기, 번화가에 관한 이야기, 도시에 관한 이야기, 국가에 관한 이야기, 여자에 관한 이야기, 영웅에 관한 이야기, 거리에 관한 이야기, 장독대에 관한 이야기, 죽은 자에 관한 이야기, 다양성에 관한 이야기, 세상에 관한 이야기, 바다에 관한 이야기, 존재와 비존재에 관해 이러하다는 이야기’ 등 여러 가지 유치한 이야기를 하면서 앉아있었다. 사꿀루다이 유행승은 멀리서 오고 있는 세존을 보았다. 본 뒤에 자기의 무리를 정돈시켰다. — “존자들은 조용히 하십시오. 존자들은 소리를 내지 마십시오. 사문 고따마가 옵니다. 그 존자는 조용하기를 원하고 조용함을 칭찬합니다. 만약 조용한 모임이 있다고 알면 가봐야 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 유행승들은 조용히 했다. 그러자 세존이 사꿀루다이 유행승에게 왔다. 사꿀루다이 유행승은 세존에게 이렇게 말했다. — “오십시오, 대덕이시여. 세존께서는 잘 오셨습니다. 세존께서는 여기에 오랜만에 오셨습니다. 세존께서는 준비된 이 자리에 앉으십시오.”라고. 세존은 준비된 자리에 앉았다. 사꿀루다이 유행승은 어떤 낮은 자리를 잡아서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사꿀루다이 유행승에게 세존은 이렇게 말했다. —
“우다이여, 무슨 이야기를 위해 지금 여기에 함께 모여 앉았습니까? 그대들 간에 끝내지 못한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대덕이시여, 저희가 지금 모여 앉아서 하는 이야기는 내버려 두십시오. 대덕이시여, 이 이야기는 나중에라도 세존께서 듣기에 어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대덕이시여, 며칠 전, 좀 더 이전에 대화하는 장소에 많은 외도의 사문-바라문이 함께 모여 앉았을 때 그들 간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 ‘존자들이여, 앙가와 마가다 사람에게 참으로 이득입니다. 존자들이여, 앙가와 마가다 사람에게 참으로 큰 이득입니다. 따르는 자들의 무리[p.상가-승가(僧伽)]를 가졌고, 따르는 자들의 주인이고, 스승이고, 아는 자고, 유명하고, 교단(敎團)의 설립자고, 많은 사람에 의해 존경받는 이들 사문-바라문들이 안거를 지내기 위해 라자가하에 왔습니다. 따르는 자들의 무리를 가졌고, 따르는 자들의 주인이고, 스승이고, 아는 자고, 유명하고, 교단의 설립자고, 많은 사람에 의해 존경받는 뿌라나 깟사빠도 안거를 지내기 위해 라자가하에 왔습니다. … 막칼리 고살라도 … 아지따 께사깜발라도 … 빠꾸다 깟짜야나도 … 산자야 벨랏타뿟따도 … 따르는 자들의 무리를 가졌고, 따르는 자들의 주인이고, 스승이고, 아는 자고, 유명하고, 교단의 설립자고, 많은 사람에 의해 존경받는 니간타 나타뿟따도 안거를 지내기 위해 라자가하에 왔습니다. 따르는 자들의 무리를 가졌고, 따르는 자들의 주인이고, 스승이고, 아는 자고, 유명하고, 교단의 설립자고, 많은 사람에 의해 존경받는 사문 고따마도 안거를 지내기 위해 라자가하에 왔습니다. 따르는 자들의 무리를 가졌고, 따르는 자들의 주인이고, 스승이고, 아는 자고, 유명하고, 교단의 설립자고, 많은 사람에 의해 존경받는 이 사문-바라문 존자들 가운데 누가 제자들에게서 존경받고, 존중되고, 숭상되고, 예배받는지 그리고 제자들은 누구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면서 머뭅니까?’라고.
그때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 ‘따르는 자들의 무리를 가졌고, 따르는 자들의 주인이고, 스승이고, 아는 자고, 유명하고, 교단의 설립자고, 많은 사람에 의해 존경받는 뿌라나 깟사빠는 제자들에게서 존경받지 못하고, 존중되지 못하고, 숭상되지 못하고, 예배받지 못합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뿌라나 깟사빠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면서 머물지 않습니다. 이전에 뿌라나 깟사빠가 수백 명이 모인 자리에서 법을 설했습니다. 그때 뿌라나 깟사빠의 어떤 제자가 소리쳤습니다. — “존자들은 뿌라나 깟사빠에게 그것의 의미를 묻지 마십시오. 그는 그것을 알지 못하고, 우리는 그것을 압니다. 우리에게 그것의 의미를 물어보십시오. 우리가 그것을 존자들에게 설명하겠습니다.”라고. 그때 뿌라나 깟사빠는 두 손을 뻗치며 “존자들은 조용히 하시오. 존자들은 소리치지 마시오. 저들은 존자들에게 묻지 않았습니다. 저들은 우리에게 물었습니다. 우리가 저들에게 설명할 것입니다.”라고 큰 소리로 말했지만, 조용히 시키지 못했습니다. 더욱이 뿌라나 깟사빠의 많은 제자는 “그대는 이 법(法)과 율(律)을 알지 못합니다. 나는 이 법과 율을 압니다. 그대가 이 법과 율에 대해 알고자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대는 잘못 실천하는 자이고 나는 바르게 실천하는 자입니다. 나는 일관되지만, 그대는 일관되지 않습니다. 그대는 앞에 말해야 하는 것을 뒤에 말하고 뒤에 말해야 하는 것을 앞에 말합니다. 그대가 성취한 것은 파기되었습니다. 그대가 준비한 말은 비난받았습니다. 말을 취소하십시오. 아니면 할 수 있다면 설명해 보십시오.”라고 말한 뒤에 떠나갔습니다. 이렇게 뿌라나 깟사빠는 제자들에게서 존경받지 못하고, 존중되지 못하고, 숭상되지 못하고, 예배받지 못합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뿌라나 깟사빠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면서 머물지 않습니다. 뿌라나 깟사빠는 법에 대한 모욕으로 경멸당했습니다.’라고.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 ‘막칼리 고살라는 … 아지따 께사깜발라는 … 빠꾸다 깟짜야나는 … 산자야 벨랏타뿟따는 … 따르는 자들의 무리를 가졌고, 따르는 자들의 주인이고, 스승이고, 아는 자고, 유명하고, 교단의 설립자고, 많은 사람에 의해 존경받는 니간타 나타뿟따는 제자들에게서 존경받지 못하고, 존중되지 못하고, 숭상되지 못하고, 예배받지 못합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니간타 나타뿟따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면서 머물지 않습니다. 이전에 니간타 나타뿟따가 수백 명이 모인 자리에서 법을 설했습니다. 그때 니간타 나타뿟따의 어떤 제자가 소리쳤습니다. — “존자들은 니간타 나타뿟따에게 그것의 의미를 묻지 마십시오. 그는 그것을 알지 못하고, 우리는 그것을 압니다. 우리에게 그것의 의미를 물어보십시오. 우리가 그것을 존자들에게 설명하겠습니다.”라고. 그때 니간타 나타뿟따는 두 손을 뻗치며 “존자들은 조용히 하시오. 존자들은 소리치지 마시오. 저들은 존자들에게 묻지 않았습니다. 저들은 우리에게 물었습니다. 우리가 저들에게 설명할 것입니다.”라고 큰 소리로 말했지만, 조용히 시키지 못했습니다. 더욱이 니간타 나타뿟따의 많은 제자는 “그대는 이 법(法)과 율(律)을 알지 못합니다. 나는 이 법과 율을 압니다. 그대가 이 법과 율에 대해 알고자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대는 잘못 실천하는 자이고 나는 바르게 실천하는 자입니다. 나는 일관되지만, 그대는 일관되지 않습니다. 그대는 앞에 말해야 하는 것을 뒤에 말하고 뒤에 말해야 하는 것을 앞에 말합니다. 그대가 성취한 것은 파기되었습니다. 그대가 준비한 말은 비난받았습니다. 말을 취소하십시오. 아니면 할 수 있다면 설명해 보십시오.”라고 말한 뒤에 떠나갔습니다. 이렇게 니간타 나타뿟따는 제자들에게서 존경받지 못하고, 존중되지 못하고, 숭상되지 못하고, 예배받지 못합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니간타 나타뿟따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면서 머물지 않습니다. 니간타 나타뿟따는 법에 대한 모욕으로 경멸당했습니다.’라고.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 ‘따르는 자들의 무리를 가졌고, 따르는 자들의 주인이고, 스승이고, 아는 자고, 유명하고, 교단의 설립자고, 많은 사람에 의해 존경받는 사문 고따마는 제자들에게서 존경받고, 존중되고, 숭상되고, 예배받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사문 고따마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면서 머뭅니다. 이전에 사문 고따마가 수백 명이 모인 자리에서 법을 설했습니다. 그때 사문 고따마의 어떤 제자가 기침을 했습니다. 어떤 동료수행자가 그를 무릎으로 건드렸습니다. — “존자는 조용히 하십시오. 존자는 소리를 내지 마십시오. 스승이신 세존께서 우리에게 법을 설하십니다.”라고. 사문 고따마가 수백 명이 모인 자리에서 법을 설할 때 사문 고따마의 제자들은 재채기나 기침을 하지 않습니다. 많은 대중은 ‘세존께서 우리에게 설하실 법을 우리는 들을 것이다.’라는 기대를 품고 앉아있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사거리에서 순수한 작은 벌집을 으깨면 많은 사람이 기대를 품고 그 앞에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사문 고따마가 수백 명이 모인 자리에서 법을 설할 때 사문 고따마의 제자들은 재채기나 기침을 하지 않습니다. 많은 대중은 ‘세존께서 우리에게 설하실 법을 우리는 들을 것이다.’라는 기대를 품고 앉아있습니다. 동료들과 싸운 뒤 공부를 포기하고 낮은 삶으로 돌아간 사문 고따마의 제자들도 스승을 칭찬하는 말을 하고, 법을 칭찬하는 말을 하고, 상가를 칭찬하는 말을 하고, “우리는 운이 없었다. 우리는 공덕이 없었다. 그런 우리는 이렇게 잘 설해진 법과 율에 출가한 뒤에 죽을 때까지 온전하게 완전하고 청정한 범행(梵行)을 실천하는 것이 불가능했다.”라고 자신을 탓하지 남을 탓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사원에 속한 사람이 되거나 재가 신자가 되어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고 살아갑니다. 이렇게 사문 고따마는 제자들에게서 존경받고, 존중되고, 숭상되고, 예배받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사문 고따마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면서 머뭅니다.’라고.”
“그러면 우다이여, 나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숭상하고, 예배하는 제자들이 나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면서 머물게 하는 내가 설한 법을 그대는 몇 가지나 봅니까?” “대덕이시여, 저는 세존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숭상하고, 예배하는 제자들이 세존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면서 머물게 하는 다섯 가지 법을 세존에게서 봅니다. 어떤 다섯 가지입니까? 대덕이시여, 세존은 적게 먹고, 적게 먹는 것을 칭찬합니다. 대덕이시여, 세존께서 적게 먹고, 적게 먹는 것을 칭찬하는 것이, 대덕이시여, 제가 세존에게서 보는 세존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숭상하고, 예배하는 제자들이 세존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면서 머물게 하는 첫 번째 법입니다.
다시 대덕이시여, 세존은 어떤 옷으로도 만족하고, 어떤 옷으로도 만족하는 것을 칭찬합니다. 대덕이시여, 세존께서 어떤 옷으로도 만족하고, 어떤 옷으로도 만족하는 것을 칭찬하는 것이, 대덕이시여, 제가 세존에게서 보는 세존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숭상하고, 예배하는 제자들이 세존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면서 머물게 하는 두 번째 법입니다.
다시 대덕이시여, 세존은 어떤 탁발 음식으로도 만족하고, 어떤 탁발 음식으로도 만족하는 것을 칭찬합니다. 대덕이시여, 세존께서 어떤 탁발 음식으로도 만족하고, 어떤 탁발 음식으로도 만족하는 것을 칭찬하는 것이, 대덕이시여, 제가 세존에게서 보는 세존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숭상하고, 예배하는 제자들이 세존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면서 머물게 하는 세 번째 법입니다.
다시 대덕이시여, 세존은 어떤 잠 잘 자리로도 만족하고, 어떤 잠 잘 자리로도 만족하는 것을 칭찬합니다. 대덕이시여, 세존께서 어떤 잠 잘 자리로도 만족하고, 어떤 잠 잘 자리로도 만족하는 것을 칭찬하는 것이, 대덕이시여, 제가 세존에게서 보는 세존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숭상하고, 예배하는 제자들이 세존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면서 머물게 하는 네 번째 법입니다.
※ 위의 세 가지는 (AN 4.28-성자의 계보 경)의 네 가지 성자의 계보 가운데 세 가지임.
다시 대덕이시여, 세존은 여의고, 여읨을 칭찬합니다. 대덕이시여, 세존께서 여의고, 여읨을 칭찬하는 것이, 대덕이시여, 제가 세존에게서 보는 세존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숭상하고, 예배하는 제자들이 세존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면서 머물게 하는 다섯 번째 법입니다.
대덕이시여, 저는 세존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숭상하고, 예배하는 제자들이 세존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면서 머물게 하는 이런 다섯 가지 법을 세존에게서 봅니다.”
“만약에, 우다이여, 나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숭상하고, 예배하는 제자들이 ‘사문 고따마는 적게 먹고, 적게 먹는 것을 칭찬한다.’라는 것에 의해 나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면서 머물 것이라면, 우다이여, 한 컵의 음식을 먹거나, 컵의 절반의 음식을 먹거나, 빌바 나무 열매만큼의 음식을 먹거나, 빌바 나무 열매의 절반의 음식을 먹는 나의 제자들이 있습니다. 더구나 우다이여, 나는 때때로 이 발우 가득 음식을 먹기도 하고, 더 먹기도 합니다. 만약에, 우다이여, 나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숭상하고, 예배하는 제자들이 ‘사문 고따마는 적게 먹고, 적게 먹는 것을 칭찬한다.’라는 것에 의해 나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면서 머물 것이라면, 우다이여, 한 컵의 음식을 먹거나, 컵의 절반의 음식을 먹거나, 빌바 나무 열매만큼의 음식을 먹거나, 빌바 나무 열매의 절반의 음식을 먹는 나의 제자들은 이것에 의해서 나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숭상하고, 예배하지 않을 것이며, 나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면서 머물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에, 우다이여, 나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숭상하고, 예배하는 제자들이 ‘사문 고따마는 어떤 옷으로도 만족하고, 어떤 옷으로도 만족하는 것을 칭찬한다.’라는 것에 의해 나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면서 머물 것이라면, 우다이여, 분소의를 입고, 해진 옷을 입는 나의 제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묘지에 버리거나 쓰레기더미에 버리거나 시신을 염한 누더기를 주워서 가사를 만들어 입습니다. 더구나 우다이여, 나는 때때로 튼튼하고, 거친 실로 잘 만든 장자의 옷을 받습니다. 만약에, 우다이여, 나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숭상하고, 예배하는 제자들이 ‘사문 고따마는 어떤 옷으로도 만족하고, 어떤 옷으로도 만족하는 것을 칭찬한다.’라는 것에 의해 나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면서 머물 것이라면, 우다이여, 묘지에 버리거나 쓰레기더미에 버리거나 시신을 염한 누더기를 주워서 가사를 만들어 입는 나의 제자들은 이것에 의해서 나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숭상하고, 예배하지 않을 것이며, 나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면서 머물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에, 우다이여, 나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숭상하고, 예배하는 제자들이 ‘사문 고따마는 어떤 탁발 음식으로도 만족하고, 어떤 탁발 음식으로도 만족하는 것을 칭찬한다.’라는 것에 의해 나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면서 머물 것이라면, 우다이여, 탁발 음식만 먹고, 순서대로 탁발하고, 먹을 것을 위해 이삭을 모으면서도 기뻐하는 나의 제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집안에 들어갔을 때 자리에 앉으라는 말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더구나 우다이여, 나는 때때로 초청받아서 좋은 쌀로 지은 밥과 검은 낱알로 지은 밥과 여러 가지 수프와 여러 가지 카레를 먹습니다. 만약에, 우다이여, 나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숭상하고, 예배하는 제자들이 ‘사문 고따마는 어떤 탁발 음식으로도 만족하고, 어떤 탁발 음식으로도 만족하는 것을 칭찬한다.’라는 것에 의해 나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면서 머물 것이라면, 우다이여, 탁발 음식만 먹고, 순서대로 탁발하고, 먹을 것을 위해 이삭을 모으면서도 기뻐하며, 집안에 들어갔을 때 자리에 앉으라는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나의 제자들은 이것에 의해서 나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숭상하고, 예배하지 않을 것이며, 나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면서 머물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에, 우다이여, 나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숭상하고, 예배하는 제자들이 ‘사문 고따마는 어떤 잠 잘 자리로도 만족하고, 어떤 잠 잘 자리로도 만족하는 것을 칭찬한다.’라는 것에 의해 나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면서 머물 것이라면, 우다이여, 나무 밑에서만 살고, 열린 곳에서만 사는 나의 제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여덟 달 동안 덮인 곳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더구나 우다이여, 나는 때때로 석회로 칠해지고 바람이 차단되고 빗장이 채워지고 창문이 닫힌 뾰족지붕의 저택에 머뭅니다. 만약에, 우다이여, 나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숭상하고, 예배하는 제자들이 ‘사문 고따마는 어떤 잠 잘 자리로도 만족하고, 어떤 잠 잘 자리로도 만족하는 것을 칭찬한다.’라는 것에 의해 나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면서 머물 것이라면, 우다이여, 나무 밑에서만 살고, 열린 곳에서만 사는, 여덟 달 동안 덮인 곳에 들어가지 않는 나의 제자들은 이것에 의해서 나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숭상하고, 예배하지 않을 것이며, 나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면서 머물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에, 우다이여, 나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숭상하고, 예배하는 제자들이 ‘사문 고따마는 여의고, 여읨을 칭찬한다.’라는 것에 의해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면서 머물 것이라면, 우다이여, 격리된 숲에서 살고, 깊은 숲속, 외딴 거처에 들어가서 머무는 나의 제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계목(戒目)의 암송을 위해 보름에 한 번씩 상가에 옵니다. 더구나 우다이여, 나는 때때로 비구, 비구니, 남신자, 여신자, 왕, 왕의 대신, 외도, 외도의 제자들에 에워싸여 지냅니다. 만약에, 우다이여, 나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숭상하고, 예배하는 제자들이 ‘사문 고따마는 여의고, 여읨을 칭찬한다.’라는 것에 의해 나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면서 머물 것이라면, 우다이여, 격리된 숲에서 살고, 깊은 숲속, 외딴 거처에 들어가서 머물면서 계목의 암송을 위해 보름에 한 번씩 상가에 오는 나의 제자들은 이것에 의해서 나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숭상하고, 예배하지 않을 것이며, 나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면서 머물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우다이여, 나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숭상하고, 예배하는 제자들은 이런 다섯 가지 법 때문에 나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면서 머물지 않습니다.
우다이여, 나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숭상하고, 예배하는 나의 제자들이 나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면서 머물게 하는 다른 다섯 가지 법들이 있습니다. 어떤 다섯 가지입니까? 여기, 우다이여, 나의 제자들은 ‘사문 고따마는 계를 중시하는 자여서 최상의 계의 무더기[계온(戒蘊)]를 갖추었다.’라고 높은 계(戒) 때문에 존경합니다. 우다이여, 나의 제자들이 ‘사문 고따마는 계를 중시하는 자여서 최상의 계의 무더기를 갖추었다.’라고 높은 계 때문에 존경하는 것이, 우다이여, 나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숭상하고, 예배하는 나의 제자들이 나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면서 머물게 하는 첫 번째 법입니다.
다시 우다이여, 나의 제자들은 ‘사문 고따마는 오직 아는 것에 대해 ‘나는 안다.’라고 말하고, 사문 고따마는 오직 보는 것에 대해 ‘나는 본다.’라고 말한다. 사문 고따마는 실답게 알면서 법을 설하지 실답게 알지 못하면서 법을 설하지 않는다. 사문 고따마는 인연과 함께 법을 설하지 인연 없이 법을 설하지 않는다. 사문 고따마는 비범한 법을 설하지 평범한 법을 설하지 않는다.’라고 뛰어난 지(知)와 견(見) 때문에 존경합니다. 우다이여, 나의 제자들이 ‘사문 고따마는 오직 아는 것에 대해 ‘나는 안다.’라고 말하고, 사문 고따마는 오직 보는 것에 대해 ‘나는 본다.’라고 말한다. 사문 고따마는 실답게 알면서 법을 설하지 실답게 알지 못하면서 법을 설하지 않는다. 사문 고따마는 인연과 함께 법을 설하지 인연 없이 법을 설하지 않는다. 사문 고따마는 비범한 법을 설하지 평범한 법을 설하지 않는다.’라고 뛰어난 지와 견 때문에 존경하는 것이, 우다이여, 나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숭상하고, 예배하는 나의 제자들이 나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면서 머물게 하는 두 번째 법입니다.
다시 우다이여, 나의 제자들은 ‘사문 고따마는 지혜로운 자여서 최상의 지혜의 무더기[혜온(慧蘊)]를 갖추었다. 이 말의 미래의 궤적을 보지 못하거나, 일어난 다른 사람과의 대화에서 법과 함께함에 의해서 잘 책망하지 못할 것이라는 경우는 없다.’라고 높은 지혜 때문에 존경합니다. 우다이여, 그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는 나의 제자들이 중간중간 이야기를 방해하겠습니까?”
“no hetaṃ, bhante”.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그리고 우다이여, 나는 제자들에 대해 가르침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역으로 제자들은 나에게서 가르침을 기대합니다.
우다이여, 나의 제자들이 ‘사문 고따마는 지혜로운 자여서 최상의 지혜의 무더기를 갖추었다. 이 말의 미래의 궤적을 보지 못하거나, 일어난 다른 사람과의 대화에서 법과 함께함에 의해서 잘 책망하지 못할 것이라는 경우는 없다.’라고 높은 지혜 때문에 존경하는 것이, 우다이여, 나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숭상하고, 예배하는 나의 제자들이 나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면서 머물게 하는 세 번째 법입니다.
다시 우다이여, 어떤 괴로움에 의해 괴로움에 떨어지고 괴로움에 시달리는 나의 제자들은 나에게 와서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고성제(苦聖蹄)]를 묻습니다. 질문받은 나는 그들에게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를 설명합니다. 질문에 관해 설명함으로써 나는 그들의 심(心)을 기쁘게 합니다. 그들은 나에게 괴로움의 자라남의 성스러운 진리[고집성제(苦集聖諦)]를 …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고멸성제(苦滅聖諦)]를 …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실천의 성스러운 진리[고멸도성제(苦滅道聖諦)]를 묻습니다. 질문받은 나는 그들에게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실천의 성스러운 진리를 설명합니다. 질문에 관해 설명함으로써 나는 그들의 심을 기쁘게 합니다.
‘어떤 괴로움에 의해 괴로움에 떨어지고 괴로움에 시달리는 나의 제자들은 나에게 와서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를 묻습니다. 질문받은 나는 그들에게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를 설명합니다. 질문에 관해 설명함으로써 나는 그들의 심을 기쁘게 합니다. 그들은 나에게 괴로움의 자라남의 성스러운 진리를 …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를 …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실천의 성스러운 진리를 묻습니다. 질문받은 나는 그들에게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실천의 성스러운 진리를 설명합니다. 질문에 관해 설명함으로써 나는 그들의 심을 기쁘게 합니다.’라는 이것이, 우다이여, 나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숭상하고, 예배하는 나의 제자들이 나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면서 머물게 하는 네 번째 법입니다.
[이어집니다]
<문서> 에서 [ 다시 예를 들면, 대왕이여, ] 는 우다이여가 맞지 않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