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 맛지마 니까야 관통 법회 - 78.사문 문디까 경[의를 닦아야 하는 비구 & 최상의 경지를 얻은 정복할 수 없는 자…
▣ 맛지마 니까야 관통 법회 - 78.사문 문디까 경[의를 닦아야 하는 비구 & 최상의 경지를 얻은 정복할 수 없는 자](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221221)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hWEEyqz3ztE
경은 초입에 ‘세존은 홀로 머무시는 분-의(意)를 닦아야 하는 비구들은 홀로 머무시는 분들’이라는 표현을 담고 있는데, 부처님의 제자들을 왜 심(心)이 아니라 ‘의(意)를 닦아야 하는 비구’라고 말하는지에 대해 설명하였습니다. 경은 선(善)을 갖춘 자, 궁극의 선, 최상의 경지를 얻은 정복할 수 없는 사문을 설명하는데, 사문 문디까의 아들인 욱가하마나 유행승은 몸과 말과 의의 나쁜 행위와 악한 생활을 하지 않는 네 가지 법을 갖춘 사람이라고 하고, 부처님은 무학의 십정도를 갖춘 사람이라고 합니다. 또한, 부처님은 욱가하마나 유행승의 네 가지 법에 대해 집(集)-멸(滅)-도(道)의 관점에서 자세하게 설명합니다.
[Ⅰ] 의(意)를 닦아야 하는 비구(manobhāvaniya bhikkhu)
경은 초입에 ‘세존(bhagavā)은 홀로 머무시는 분-의(意)를 닦아야 하는 비구(manobhāvaniya bhikkhu)들은 홀로 머무시는 분들’이라는 표현을 담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제자들을 왜 ‘심(心)을 닦아야 하는 비구’라고 말하지 않고 의(意)를 닦아야 하는 비구라고 말하는지에 대해 설명하였습니다.
⇒ takka의 안팎에 대한 이해의 측면에서 공부의 완성은 여실지견(如實知見)-실다운 지혜(abhiññā)입니다. 밖에서의 접근은 삼매의 제한 위에서 여실지견에 닿는 과정(사념처)이고, 안에서의 접근은 삼매의 제한을 해소함으로써 일상에서의 완성된 삶을 실현하기 위해 번뇌를 부수는 과정(사마타-위빳사나)입니다.
이때, 밖에서의 접근은 의(意) 즉 마음이 몸과 함께하는 작용의 영역이고, 안에서의 접근은 몸과 함께하지 않는 작용의 영역입니다. 그러나 밖으로부터든 안으로부터든 그 접근의 완성은 마음이 몸과 함께 세상을 만나는 삶의 영역에서 나의 문제가 해소된 경지입니다. 그래서 공부를 통한 삶의 완성은 몸과 함께한 심(心) 또는 식(識)의 상태를 지시하는 의(意)의 완성이라고 설명되는 것입니다.
⇒ manobhāvaniya 또는 manobhāvanīya의 용례 ― (DN 16-대반열반경), (DN 25-우둠바리까 경), (MN 78-사문 문디까 경), (MN 143-아나타삔디까에 대한 가르침 경), (SN 22.1-나꿀라삐따 경), (SN 55.21-마하나마 경1), (SN 55.22-마하나마 경2), (AN 6.27- 경우 경1), (AN 6.28- 경우 경2), (AN 10.93-어떤 견해를 가짐 경), (AN 10.94-왓지야마히따 경)
[Ⅱ] 경의 주제
1. 사문 문디까의 아들인 욱가하마나 유행승의 주장 : 선(善)을 갖춘 자, 궁극의 선(善), 최상의 경지를 얻은 정복할 수 없는 사문 ― 몸으로 악한 업을 짓지 않고, 악한 말을 하지 않고, 악한 사유를 하지 않고, 악한 생활을 하지 않음의 네 가지 법을 갖춘 사람
2. 빤짜깡가 건축가는 부처님에게 와서 이 대화를 보고함
3. 부처님의 말씀
1) 사문 문디까의 아들인 욱가하마나 유행승의 말이 사실이라면, 어리고 게으르며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는 어린아이가 선(善)을 갖춘 자, 궁극의 선(善), 최상의 경지를 얻은 정복할 수 없는 자일 것
※ ‘daharassa hi kumārassa mandassa uttānaseyyakassa 어리고 게으르며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는 어린아이에게는’의 용례 → (MN 64-말루꺄 큰 경) ☞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5_07_04
2) 결론 : 네 가지 법이 아니라 열 가지 법을 갖춘 사람이 선(善)을 갖춘 자, 궁극의 선(善), 최상의 경지를 얻은 정복할 수 없는 사문임 ― 무학(無學)의 정견(正見), 무학의 정사유(正思惟), 무학의 정어(正語), 무학의 정업(正業), 무학의 정명(正命), 무학의 정정진(正精進), 무학의 정념(正念), 무학의 정정(正定), 무학이 정지(正知), 무학의 정해탈(正解脫)
3) 사문 문디까의 아들인 욱가하마나 유행승이 말하는 네 가지 법에 대한 설명 ― 몸의 업/말의 업/생활 = 계행(戒行) + 사유
• 불선(不善)의 계행(戒行), 불선의 계행의 일어남, 불선의 계행의 남김 없는 소멸, 불선의 계행을 소멸하기 위한 실천
• 선(善)의 계행, 선의 계행의 일어남, 선의 계행의 남김 없는 소멸, 선의 계행을 소멸하기 위한 실천
4) 불선의 계행 ― 불선의 몸의 업, 불선의 말의 업, 악한 생활 ↔ (MN 117-커다란 마흔의 경) ― 삿된 말/삿된 행위/삿된 생활 ☞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5_12_07&wr_id=1
• 일어남 ― 탐(貪)-진(嗔)-치(癡)가 있는 심(心)의 일어남
• 남김 없는 소멸 ― 신(身)-구(口)-의(意)의 나쁜 행위를 버리고 좋은 행위를 닦음, 삿된 생활을 버리고 바른 생활로 생계를 유지
• 소멸하기 위한 실천 ― 사정근(四正勤) = 정정진(正精進)
5) 선의 계행 ― 선의 몸의 업, 선의 말의 업 & 청정한 생활 → (MN 117-커다란 마흔의 경) ― ①번뇌와 함께하고 공덕을 이끌고 재생의 조건을 익게 하는 바른말/바른 행위/바른 생활, ②번뇌 없고 세상을 넘어섰고 길의 요소인 성스러운 바른말/바른 행위/바른 생활
• 일어남 ― 탐(貪)-진(嗔)-치(癡)가 없는 심(心)의 일어남
• 남김 없는 소멸 ― ①계를 중시함 → 번뇌와 함께하는 계행의 소멸, ②선의 계행이 남김없이 소멸하는 심해탈(心解脫)과 혜해탈(慧解脫)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앎 → 번뇌 없는 성스러운 계행의 소멸
• 소멸하기 위한 실천 ― 사정근(四正勤) = 정정진(正精進)
6) 불선의 사유 ― 소유의 사유, 분노의 사유, 폭력의 사유 ↔ (MN 117-커다란 마흔의 경) ― 삿된 사유
• 일어남 ― 소유의 상(想), 분노의 상(想), 폭력의 상(想)의 일어남
• 남김 없는 소멸 ― 초선(初禪)을 성취하여 머묾 ↔ dhammavitakka → (수행경전 특강 221218) 참조 ☞ http://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5_01&wr_id=80
• 소멸하기 위한 실천 ― 사정근(四正勤) = 정정진(正精進)
7) 선의 사유 ― 출리의 사유, 분노하지 않는 사유, 비폭력의 사유 ↔ (MN 117-커다란 마흔의 경) ― ①번뇌와 함께하고 공덕을 이끌고 재생의 조건을 익게 하는 바른 사유
• 일어남 ― 출리의 상(想), 분노하지 않는 상(想), 비폭력의 상(想)의 일어남
• 남김 없는 소멸 ― 제이선(第二禪)을 성취하여 머묾 ↔ avitakka-avicāra
• 소멸하기 위한 실천 ― 사정근(四正勤) = 정정진(正精進)
※ 사유의 남김 없는 소멸이 초선(初禪)과 제이선(第二禪)으로 나타나는 데서 사유 즉 의업(意業)의 제어는 계(戒)를 넘어서 수행의 영역이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제이선을 제시하는 것은 [위딱까 → 탐-진 → 무명-번뇌]의 제어 과정이 사유의 제어 이후에 뒤따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