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ūḷasakuludāyisuttaṃ (MN 79-사꿀루다이 짧은 경)
3. paribbājakavaggo, 9. cūḷasakuludāyisuttaṃ (MN 79-사꿀루다이 작은 경)
이렇게 나는 들었다. — 한때 세존은 라자가하에서 웰루와나의 다람쥐 기르는 곳에 머물렀다. 그때 사꿀루다이 유행승이 모라나와빠에 있는유행승의 사원에서 큰 유행승 집단과 함께 살고 있었다. 그때 세존은 오전에 옷차림을 바르게 하고 발우와 가사를 지니고 탁발을 위해서 라자가하로 들어갔다. 그때 세존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탁발을 위해 라자가하로 가기에는 너무 이르다. 나는 모라나와빠에 있는 유행승들의 사원으로 사꿀루다이 유행승에게 가는 것이 어떨까.”라고. 그래서 세존은 모라나와빠에 있는 유행승들의 사원으로 갔다.
그때 사꿀루다이 유행승은 큰 유행승 집단과 함께 시끄럽고 큰 소리로 떠들썩하게, 예를 들면, ‘왕에 관한 이야기, 도둑에 관한 이야기, 대신에 관한 이야기, 군대에 관한 이야기, 두려움에 관한 이야기, 전쟁에 관한 이야기, 음식에 관한 이야기, 마실 것에 관한 이야기, 옷에 관한 이야기, 침대에 관한 이야기, 화환에 관한 이야기, 향에 관한 이야기, 친척에 관한 이야기, 탈 것에 관한 이야기, 마을에 관한 이야기, 번화가에 관한 이야기, 도시에 관한 이야기, 국가에 관한 이야기, 여자에 관한 이야기, 영웅에 관한 이야기, 거리에 관한 이야기, 장독대에 관한 이야기, 죽은 자에 관한 이야기, 다양성에 관한 이야기, 세상에 관한 이야기, 바다에 관한 이야기, 존재와 비존재에 관해 이러하다는 이야기’ 등 여러 가지 유치한 이야기를 하면서 앉아있었다. 사꿀루다이 유행승은 멀리서 오고 있는 세존을 보았다. 본 뒤에 자기의 집단을 정돈시켰다. — “존자들은 조용히 하시오. 존자들은 소리를 내지 마시오. 이 사문 고따마가 오오. 그 존자는 조용하기를 원하고 조용함을 칭찬하오. 만약 조용한 모임이 있다고 알면 가봐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오.” 그래서 그 유행승들은 조용히 했다.
그러자 세존이 사꿀루다이 유행승에게 왔다. 사꿀루다이 유행승은 세존에게 이렇게 말했다. — “오십시오, 대덕이시여. 세존께서는 잘 오셨습니다. 세존께서는 여기에 오랜만에 오셨습니다. 세존께서는 준비된 이 자리에 앉으십시오.”라고. 세존은 준비된 자리에 앉았다. 사꿀루다이 유행승은 어떤 낮은 자리를 잡아서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사꿀루다이 유행승에게 세존은 “우다이여, 무슨 이야기를 위해 지금 여기에 함께 앉았습니까? 그대들 간에 끝내지 못한 이야기는 무엇입니까?”라고 말했다. “대덕이시여, 저희가 지금 모여 앉아서 하는 이야기는 내버려 두십시오. 대덕이시여, 이 이야기는 나중에라도 세존께서 듣기에 어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대덕이시여, 제가 이 모임에 오지 않을 때는 이 모임은 여러 가지 유치한 이야기를 하면서 앉아있습니다. 그런데 대덕이시여, 제가 이 모임에 올 때는 이 모임은 ‘우리는 사문 우다이가 우리에게 설하는 법을 들을 것이다.’라며 오직 저의 입을 보면서 앉아있습니다. 그러나 대덕이시여, 세존께서 이 모임에 오셨을 때는 저도 이 모임도 ‘우리는 세존께서 우리에게 설하는 법을 들을 것이다.’라며 세존의 입을 보면서 앉아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다이여, 여기서 나의 대답을 원하는 것에 대해 말해주십시오.”
“대덕이시여, 며칠 전, 좀 더 이전에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보는 자라면서 ‘나에게는 걸을 때도 서 있을 때도 잠잘 때도 깨어있을 때도 항상 계속해서 앎과 봄이 나타난다.’라고 남김 없는 앎과 봄을 인정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저에게서 과거의 끝에 대한 질문을 받은 그는 다른 것에 의해 다른 것을 대처하고, 주제 밖의 이야기로 이야기를 떨쳐버리고, 성급함과 진(嗔)과 의혹을 드러냈습니다. 대덕이시여, 그런 저에게 ‘참으로 이 법들에 아주 능숙하신 세존께서 계신다. 참으로 선서(善逝)께서 계신다!’라고 세존에 대한 기억이 일어났습니다.”
“우다이여, 그대로부터 과거의 끝에 대한 질문을 받고 다른 것에 의해 다른 것을 대처하고, 주제 밖의 이야기로 이야기를 떨쳐버리고, 성급함과 진(嗔)과 의혹을 드러낸 사람,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보는 자라면서 ‘나는 가고 서고 자고 깰 때 언제나 항상 지와 견이 확립되어 있다.’라고 남김 없는 앎과 봄을 인정하는 그 사람은 누구입니까?”
“니간타 나따뿟따입니다, 대덕이시여.”
“우다이여, 한 번의 생, 두 번의 생, 세 번의 생, 네 번의 생, 다섯 번의 생, 열 번의 생, 스무 번의 생, 서른 번의 생, 마흔 번의 생, 쉰 번의 생, 백 번의 생, 천 번의 생, 십만 번의 생, 세계가 줄어드는[진화] 여러 겁, 세계가 자라나는[퇴보] 여러 겁, 세계가 줄어들고 자라나는 여러 겁을 ‘이러이러한 곳에서 나는 이런 이름이었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였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행복과 괴로움을 이렇게 경험했고, 수명의 한계는 이러했다. 나는 거기에서 죽어 이러이러한 곳에 태어났다. 그곳에서 나는 이런 이름이었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였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행복과 괴로움을 이렇게 경험했고, 수명의 한계는 이러했다. 나는 거기에서 죽어 여기에 태어났다.’라고 상태와 함께, 상세한 설명과 함께 여러 이전의 존재 상태를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이 나에게 과거의 끝에 대한 질문을 할 수 있고, 내가 그에게 과거의 끝에 대한 질문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는 그가 과거의 끝에 대한 질문을 위한 상세한 설명으로 나의 심(心)을 기쁘게 할 수 있고, 내가 과거의 끝에 대한 질문을 위한 상세한 설명으로 그의 심을 기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다이여,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천안(天眼)]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고, 저열하고 뛰어나고, 잘생기고 못생기고, 좋은 곳[선처(善處)]에 가고 나쁜 곳[악처(惡處)]에 가는 것을 보는 사람, 업에 따라서 가는 중생들을 분명히 아는 사람이 나에게 미래의 끝에 대한 질문을 할 수 있고, 내가 그에게 미래의 끝에 대한 질문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는 그가 미래의 끝에 대한 질문을 위한 상세한 설명으로 나의 심(心)을 기쁘게 할 수 있고, 내가 미래의 끝에 대한 질문을 위한 상세한 설명으로 그의 심을 기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쨌거나, 우다이여, 과거의 끝은 내버려 두고, 미래의 끝은 내버려 둡시다. 나는 그대에게 법을 설하겠습니다. — ‘이것이 있을 때 이것이 있다. 이것이 생길 때 이것이 생긴다. 이것이 없을 때 이것이 없다. 이것이 소멸할 때 이것이 소멸한다.’라고.”
“대덕이시여, 저는 저의 이 존재로 경험한 만큼을 상태와 함께, 상세한 설명과 함께 기억하는 것도 불가능한데, 어떻게 제가 세존처럼 여러 이전의 존재 상태를 기억할 것입니까? 즉 — 한 번의 생, 두 번의 생 … 이렇게 상태와 함께, 상세한 설명과 함께 여러 이전의 존재 상태를 기억할 것입니까?
대덕이시여, 저는 지금 더러운 곳에 있는 귀신도 보지 못하는데, 어떻게 제가 세존처럼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고, 저열하고 뛰어나고, 잘생기고 못생기고, 좋은 곳에 가고 나쁜 곳에 가는 것을 보고, 업에 따라서 가는 중생들을 분명히 알겠습니까?
또한, 대덕이시여, 세존께서 ‘어쨌거나, 우다이여, 과거의 끝은 내버려 두고, 미래의 끝은 내버려 둡시다. 나는 그대에게 법을 설하겠습니다. — ‘이것이 있을 때 이것이 있다. 이것이 생길 때 이것이 생긴다. 이것이 없을 때 이것이 없다. 이것이 소멸할 때 이것이 소멸한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저에게 더욱더 분명하지 않습니다.
대덕이시여, 저는 저희 스승의 가르침에 대한 질문의 상세한 설명으로 세존의 심(心)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 낫겠습니다.”
“우다이여, 그대들 스승의 가르침은 무엇입니까?” “대덕이시여, 저희 스승의 가르침에는 ‘이것이 최상의 광명이다. 이것이 최상의 광명이다.’라는 것이 있습니다.”
“우다이여, ‘이것이 최상의 광명이다. 이것이 최상의 광명이다.’라는 그대들 스승의 가르침에서 무엇이 그 최상의 광명입니까?” “대덕이시여, 더 높거나 더 뛰어난 다른 광명이 없을 때 그것이 최상의 광명입니다.”
“무엇이 그것보다 더 높거나 더 뛰어난 다른 광명이 없는 최상의 광명입니까?” “대덕이시여, 그것보다 더 높거나 더 뛰어난 다른 광명이 없을 때 그것이 최상의 광명입니다.”
“우다이여, 그대가 ‘대덕이시여, 그것보다 더 높거나 더 뛰어난 다른 광명이 없을 때 그것이 최상의 광명입니다.’라고 말하는 이것은 그대에게 오랫동안 펼쳐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대는 그 광명을 선언하지 못합니다. 예를 들면, 우다이여, 어떤 사람이 ‘나는 이 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원하고, 갈망한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에게 ‘이 사람아, 그대가 원하고 갈망하는, 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에 대해 끄샤뜨리야 여인인지, 바라문 여인인지, 와이샤 여인인지, 수드라 여인인지 그대는 아는가?’라고 말할 것입니다. 이렇게 질문받은 그는 ‘아니요.’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에게 ‘이 사람아, 그대가 원하고 갈망하는, 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에 대해 이런 이름, 이런 성이라고 그대는 아는가?’라고. … 키가 큰지 작은지 중간인지, 피부색이 검은지 어두운지 어두운 노랑인지 … 어떤 마을이나 번화가나 도시에 사는지 그대는 아는가?’라고 말할 것입니다. 이렇게 질문받은 그는 ‘아니요.’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에게 ‘이 사람아, 그대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것을 그대는 원하고 갈망하는가?’라고 말할 것입니다. 이렇게 질문받은 그는 ‘그렇소.’라고 말할 것입니다.
우다이여, 그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렇게 말했을 때 그 사람은 쓸모없는 말을 한 것이 아닙니까?” “참으로 대덕이시여, 이렇게 말했을 때 그 사람은 쓸모없는 말을 한 것입니다.”
“이처럼, 우다이여, 그대가 ‘대덕이시여, 그것보다 더 높거나 더 뛰어난 다른 광명이 없을 때 그것이 최상의 광명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대는 그 광명을 선언하지 못합니다.
“예를 들면, 대덕이시여, 연노랑 색의 담요 위에 놓인 깨끗하고 빛나고 팔각형으로 잘 가공된 하늘색 보석은 빛나고 밝고 눈부십니다. 이런 광명이 죽은 뒤에 병이 없는 아(我)입니다.”
“우다이여, 그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빛나고 밝고 눈부신 연노랑 색의 담요 위에 놓인 깨끗하고 빛나고 팔각형으로 잘 가공된 하늘색 보석과 깜깜한 밤의 반딧불이 ― 이 두 가지 광명 가운데 어떤 광명이 더 앞서고 더 뛰어납니까?” “대덕이시여, 깜깜한 밤의 반딧불이가 이 두 가지 광명 가운데 더 앞서고 더 뛰어납니다.”
“우다이여, 그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깜깜한 밤의 반딧불이와 깜깜한 밤의 기름 등불 ― 이 두 가지 광명 가운데 어떤 광명이 더 앞서고 더 뛰어납니까?” “대덕이시여, 깜깜한 밤의 기름 등불이 이 두 가지 광명 가운데 더 앞서고 더 뛰어납니다.”
“우다이여, 그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깜깜한 밤의 기름 등불과 깜깜한 밤의 커다란 불 무더기 ― 이 두 가지 광명 가운데 어떤 광명이 더 앞서고 더 뛰어납니까?” “대덕이시여, 깜깜한 밤의 커다란 불 무더기가 이 두 가지 광명 가운데 더 앞서고 더 뛰어납니다.”
“우다이여, 그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깜깜한 밤의 커다란 불 무더기와 밤이 지나고 구름 한 점 없는 깨끗한 새벽하늘의 밝은 별 ― 이 두 가지 광명 가운데 어떤 광명이 더 앞서고 더 뛰어납니까?” “대덕이시여, 밤이 지나고 구름 한 점 없는 깨끗한 새벽하늘의 밝은 별이 이 두 가지 광명 가운데 더 앞서고 더 뛰어납니다.”
“우다이여, 그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밤이 지나고 구름 한 점 없는 깨끗한 새벽하늘의 밝은 별과 보름의 포살 일에 구름 한 점 없는 깨끗한 하늘의 보름달 ― 이 두 가지 광명 가운데 어떤 광명이 더 앞서고 더 뛰어납니까?” “대덕이시여, 보름의 포살 일에 구름 한 점 없는 깨끗한 하늘의 보름달이 이 두 가지 광명 가운데 더 앞서고 더 뛰어납니다.”
“우다이여, 그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보름의 포살 일에 구름 한 점 없는 깨끗한 하늘의 보름달과 우기의 마지막 달에 우기를 뒤따르는 계절의 깨끗하고 비구름이 물러간 하늘에서 정오에 빛을 발하는 태양 ― 이 두 가지 광명 가운데 어떤 광명이 더 앞서고 더 뛰어납니까?” “대덕이시여, 우기의 마지막 달에 우기를 뒤따르는 계절의 깨끗하고 비구름이 물러간 하늘에서 정오에 빛을 발하는 태양이 이 두 가지 광명 가운데 더 앞서고 더 뛰어납니다.”
그렇듯이, 우다이여, 이런 해와 달의 빛이 미치지 않는 많은 신, 더 많은 신을 나는 분명히 압니다. 그렇지만 나는 ‘그것보다 더 높거나 더 뛰어난 다른 광명은 없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다이여, 그대는 ‘반딧불이보다 더 보잘것없고 더 미숙한 광명이 최상의 광명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광명을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세존께서는 이 이야기를 명료히 하셨습니다. 선서께서는 이 이야기를 명료히 하셨습니다!”
“우다이여, 왜 그대는 ‘세존께서는 이 이야기를 명료히 하셨습니다. 선서께서는 이 이야기를 명료히 하셨습니다!’라고 말합니까?” “대덕이시여, 저희 스승의 가르침에는 ‘이것이 최상의 광명이다. 이것이 최상의 광명이다.’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 저희는, 대덕이시여, 세존과 함께 교차하여 질문하고, 이유를 묻고, 함께 대화하면서 저희 스승의 가르침이 부족하고, 텅 비고, 실패인 것을 알았습니다.”
“우다이여, 오로지 행복한 세상이 있습니까, 오로지 행복한 세상을 실현하기 위한 조건을 갖춘 실천이 있습니까?” “대덕이시여, 저희 스승의 가르침에는 ‘오로지 행복한 세상이 있다. 오로지 행복한 세상을 실현하기 위한 조건을 갖춘 실천이 있다.’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면 우다이여, 오로지 행복한 세상을 실현하기 위한 조건을 갖춘 실천은 무엇입니까?” “여기, 대덕이시여, 어떤 사람이 생명을 해치는 행위를 버렸기 때문에 생명을 해치는 행위로부터 피하고,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행위를 버렸기 때문에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행위로부터 피하고, 음행에 대한 삿된 행위를 버렸기 때문에 음행에 대한 삿된 행위로부터 피하고, 거짓을 말하는 행위를 버렸기 때문에 거짓을 말하는 행위로부터 피합니다. 또는 어떤 고행에 속한 것을 받아들여 행합니다. 이것이, 대덕이시여, 오로지 행복한 세상을 실현하기 위한 조건을 갖춘 그 실천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우다이여, 생명을 해치는 행위를 버렸기 때문에 생명을 해치는 행위로부터 피할 때 아(我)는 오로지 행복합니까 또는 행복하기도 하고 괴롭기도 합니까?” “행복하기도 하고 괴롭기도 합니다, 대덕이시여.”
“그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우다이여,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행위를 버렸기 때문에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행위로부터 피할 때 아는 오로지 행복합니까 또는 행복하기도 하고 괴롭기도 합니까?” “행복하기도 하고 괴롭기도 합니다, 대덕이시여.”
“그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우다이여, 음행에 대한 삿된 행위를 버렸기 때문에 음행에 대한 삿된 행위로부터 피할 때 아는 오로지 행복합니까 또는 행복하기도 하고 괴롭기도 합니까?” “행복하기도 하고 괴롭기도 합니다, 대덕이시여.”
“그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우다이여, 거짓을 말하는 행위를 버렸기 때문에 거짓을 말하는 행위로부터 피할 때 아는 오로지 행복합니까 또는 행복하기도 하고 괴롭기도 합니까?” “행복하기도 하고 괴롭기도 합니다, 대덕이시여.”
“그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우다이여, 어떤 고행에 속한 것을 받아들여 행할 때 아는 오로지 행복합니까 또는 행복하기도 하고 괴롭기도 합니까?” “행복하기도 하고 괴롭기도 합니다, 대덕이시여.”
“그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우다이여, 행복과 괴로움이 섞인 실천으로도 오로지 행복한 세상을 실현할 수 있습니까?” “세존께서는 이 이야기를 명료히 하셨습니다. 선서께서는 이 이야기를 명료히 하셨습니다!”
“우다이여, 왜 그대는 ‘세존께서는 이 이야기를 명료히 하셨습니다. 선서께서는 이 이야기를 명료히 하셨습니다!’라고 말합니까?” “대덕이시여, 저희 스승의 가르침에는 ‘오로지 행복한 세상이 있다. 오로지 행복한 세상을 실현하기 위한 조건을 갖춘 실천이 있다.’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 저희는, 대덕이시여, 세존과 함께 교차하여 질문하고, 이유를 묻고, 함께 대화하면서 저희 스승의 가르침이 부족하고, 텅 비고, 실패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대덕이시여, 오로지 행복한 세상은 있습니까, 오로지 행복한 세상을 실현하기 위한 조건을 갖춘 실천은 있습니까?” “우다이여, 오로지 행복한 세상이 있고, 오로지 행복한 세상을 실현하기 위한 조건을 갖춘 실천이 있습니다.”
“그러면 대덕이시여, 오로지 행복한 세상을 실현하기 위한 조건을 갖춘 그 실천은 무엇입니까?” “여기 우다이여, 비구는 소유의 삶에서 벗어나고 … 초선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위딱까와 위짜라의 가라앉음으로 인해 … 제2선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기쁨의 바램으로부터 … 제3선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 이것이, 우다이여, 오로지 행복한 세상을 실현하기 위한 조건을 갖춘 그 실천입니다.”
“대덕이시여, 그것은 오로지 행복한 세상을 실현하기 위한 조건을 갖춘 실천이 아닙니다. 참으로 대덕이시여, 이만큼이 오로지 행복한 세상의 실현입니다” “참으로 우다이여, 이만큼이 오로지 행복한 세상의 실현이 아닙니다. 단지 오로지 행복한 세상을 실현하기 위한 조건을 갖춘 실천일 뿐입니다.”
이렇게 말했을 때, 사꿀루다이 유행승의 집단은 시끄럽고 큰 소리로 떠들썩해졌다. ― “여기에 우리는 스승에게서 전승된 것이 없는가? 여기에 우리는 스승에게서 전승된 것이 없는가? 우리는 이것을 능가하는 더 높은 것을 분명히 알지 못한다.”라고.
그러자 사꿀루다이 유행승은 그 유행승들을 조용히 시킨 뒤 세존에게 “그러면 대덕이시여, 얼마만큼의 오로지 행복한 세상의 실현이 있습니까?”라고 말했다. “여기 우다이여, 비구는 즐거움의 버림과 … 제4선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그는 오로지 행복한 세상에 태어난 그 신들과 함께 지내고 대화하고 토론합니다. 참으로 우다이여, 이만큼이 오로지 행복한 세상의 실현입니다.
“참으로 대덕이시여, 이런 오로지 행복한 세상의 실현을 원인으로 비구들은 세존에게서 범행의 삶을 삽니까?” “우다이여, 오로지 행복한 세상의 실현을 원인으로 비구들이 나에게서 범행의 삶을 살지는 않습니다. 참으로 우다이여, 더 높고 더 뛰어난 다른 법들이 있습니다. 비구들은 그것의 실현을 원인으로 나에게서 범행의 삶을 삽니다.”
“그러면 대덕이시여, 비구들이 그것의 실현을 원인으로 세존에게서 범행의 삶을 사는 더 높고 더 뛰어난 다른 법들은 무엇입니까?”
“여기 우다이여, 아라한-정등각-명행족-선서-세간해-무상조어장부-천인사-불-세존인 여래(如來)가 세상에 출현합니다 … 그는 지혜를 무력화시키는 심(心)의 오염원인 이런 다섯 가지 장애를 버리고서 소유의 삶에서 벗어나고 … 초선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이것도, 우다이여, 비구들이 그것의 실현을 원인으로 나에게서 범행의 삶을 사는 더 높고 더 뛰어난 다른 법입니다.
다시 우다이여, 비구는 위딱까와 위짜라의 가라앉음으로 인해 … 제2선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제3선을 … 제4선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이것도, 우다이여, 비구들이 그것의 실현을 원인으로 나에게서 범행의 삶을 사는 더 높고 더 뛰어난 다른 법입니다.
그는 이렇게 심(心)이 삼매를 닦고, 청정하고 아주 깨끗하고 침착하고 오염원이 없고 유연하고 준비되고 안정되고 흔들림 없음에 도달했을 때, 이전의 존재 상태에 대한 기억의 앎으로 심을 기울게 합니다[전생 기억]. 그는 여러 이전의 존재 상태[전생]를 기억합니다. 즉 — 한 번의 생, 두 번의 생 … 이렇게 상태와 함께, 상세한 설명과 함께 여러 이전의 존재 상태를 기억합니다. 이것도, 우다이여, 비구들이 그것의 실현을 원인으로 나에게서 범행의 삶을 사는 더 높고 더 뛰어난 다른 법입니다.
그는 이렇게 심이 삼매를 닦고, 청정하고 아주 깨끗하고 침착하고 오염원이 없고 유연하고 준비되고 안정되고 흔들림 없음에 도달했을 때, 죽고 다시 태어남의 앎으로 심을 기울게 합니다. 그는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천안(天眼)]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고, 저열하고 뛰어나고, 잘생기고 못생기고, 좋은 곳[선처(善處)]에 가고 나쁜 곳[악처(惡處)]에 가는 것을 봅니다 … 업에 따라서 가는 중생들을 분명히 압니다. 이것도, 우다이여, 비구들이 그것의 실현을 원인으로 나에게서 범행의 삶을 사는 더 높고 더 뛰어난 다른 법입니다.
그는 이렇게 심이 삼매를 닦고, 청정하고 아주 깨끗하고 침착하고 오염원이 없고 유연하고 준비되고 안정되고 흔들림 없음에 도달했을 때, 번뇌들의 부서짐의 앎으로 심을 기울게 합니다. 그는 ‘이것이 고(苦)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이것이 고집(苦集)이다.’라고 … ‘이것이 고멸(苦滅)이다.’라고 … ‘이것이 고멸(苦滅)로 이끄는 실천이다.’라고 … ‘이것들이 번뇌[루(漏)]들이다.’라고 … ‘이것이 번뇌의 집(集)이다.’라고 … ‘이것이 번뇌의 멸(滅)이다.’라고 … ‘이것이 번뇌의 멸(滅)로 이끄는 실천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압니다. 그가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볼 때 소유의 번뇌[욕루(慾漏)]에서도 심이 해탈하고, 존재의 번뇌[유루(有漏)]에서도 심이 해탈하고, 무명(無明)의 번뇌[무명루(無明漏)]에서도 심이 해탈합니다. 해탈했을 때 ‘나는 해탈했다’라는 앎이 있습니다. ‘태어남은 다했다. 범행은 완성되었다. 해야 할 일을 했다. 다음에는 현재 상태[유(有)]가 되지 않는다.’라고 분명히 압니다. 이것도, 우다이여, 비구들이 그것의 실현을 원인으로 나에게서 범행의 삶을 사는 더 높고 더 뛰어난 다른 법입니다.”라고.
이렇게 말했을 때, 사꿀루다이 유행승이 세존에게 이렇게 말했다. ― “정말 기쁩니다, 대덕이시여. 정말 기쁩니다, 대덕이시여! 예를 들면, 대덕이시여, 넘어진 자를 일으킬 것입니다. 덮여있는 것을 걷어낼 것입니다. 길 잃은 자에게 길을 알려줄 것입니다. ‘눈 있는 자들은 모습들을 본다.’라며 어둠 속에서 기름 등불을 들 것입니다. 이처럼,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법을 설하셨습니다. 대덕이시여, 길을 찾는 저는 의지처인 세존(世尊) 그리고 가르침과 비구 상가에게로 갑니다. 대덕이시여, 저는 세존의 앞에서 출가하고자 합니다. 구족계를 받고자 합니다.”
이렇게 말했을 때, 사꿀루다이 유행승의 집단은 사꿀루다이 유행승에게 이렇게 말했다. ― “우다이여, 존자께서는 사문 고따마에게서 범행의 삶을 살지 마십시오. 우다이여, 스승이었던 존자께서 제자의 삶을 살지 마십시오. 예를 들면, 큰 물동이였다가 작은 물동이가 될 것입니다. 우다이 존자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우다이여, 존자께서는 사문 고따마에게서 범행의 삶을 살지 마십시오. 우다이여, 스승이었던 존자께서 제자의 삶을 살지 마십시오.”라고. 이렇게 세존에게서 범행의 삶을 살기 위해 오는 사꿀루다이 유행승에게 이 사꿀루다이 유행승의 집단은 장애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