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vekhanasasuttaṃ (MN 80-웨카나사 경)
3. paribbājakavaggo, 10. vekhanasasuttaṃ (MN 80-웨카나사 경)
이렇게 나는 들었다. ― 한때 세존은 사왓티에서 제따와나의 아나타삔디까 사원에 머물렀다. 그때 웨카나사 유행승이 세존에게 왔다. 와서는 세존과 함께 인사를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만한 이야기를 주고받은 뒤 한 곁에 섰다. 한 곁에 선 웨카나사 유행승은 세존의 곁에서 감흥을 읊었다. ― “이것이 최상의 광명이다. 이것이 최상의 광명이다.”라고.
“그런데 깟짜나여, 그대는 ‘이것이 최상의 광명이다. 이것이 최상의 광명이다.’라고 말했습니까? 깟짜나여, 무엇이 그 최상의 광명입니까?”
“고따마 존자여, 그것보다 더 높거나 더 뛰어난 다른 광명이 없을 때 그것이 최상의 광명입니다.”
“그러면 깟짜나여, 무엇이 그것보다 더 높거나 더 뛰어난 다른 광명이 없는 최상의 광명입니까?”
“고따마 존자여, 그것보다 더 높거나 더 뛰어난 다른 광명이 없을 때 그것이 최상의 광명입니다.”
“깟짜나여, 그대가 ‘고따마 존자여, 그것보다 더 높거나 더 뛰어난 다른 광명이 없을 때 그것이 최상의 광명입니다.’라고 말하는 이것은 그대에게 오랫동안 펼쳐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대는 그 광명을 선언하지 못합니다. 예를 들면, 깟짜나여, 어떤 사람이 ‘나는 이 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원하고, 갈망한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에게 ‘이 사람아, 그대가 원하고 갈망하는, 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에 대해 끄샤뜨리야 여인인지, 바라문 여인인지, 와이샤 여인인지, 수드라 여인인지 그대는 아는가?’라고 말할 것입니다. 이렇게 질문받은 그는 ‘아니요.’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에게 ‘이 사람아, 그대가 원하고 갈망하는, 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에 대해 이런 이름, 이런 성이라고 그대는 아는가?’라고. … 키가 큰지 작은지 중간인지, 피부색이 검은지 어두운지 어두운 노랑인지 … 어떤 마을이나 번화가나 도시에 사는지 그대는 아는가?’라고 말할 것입니다. 이렇게 질문받은 그는 ‘아니요.’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에게 ‘이 사람아, 그대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것을 그대는 원하고 갈망하는가?’라고 말할 것입니다. 이렇게 질문받은 그는 ‘그렇소.’라고 말할 것입니다.
“깟짜나여, 그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렇게 말했을 때 그 사람은 쓸모없는 말을 한 것이 아닙니까?” “참으로 고따마 존자시여, 이렇게 말했을 때 그 사람은 쓸모없는 말을 한 것입니다.” “이처럼, 깟짜나여, 그대가 ‘고따마 존자시여, 그것보다 더 높거나 더 뛰어난 다른 광명이 없을 때 그것이 최상의 광명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대는 그 광명을 선언하지 못합니다.” “예를 들면, 고따마 존자시여, 연노랑 색의 담요 위에 놓인 깨끗하고 빛나고 팔각형으로 잘 가공된 하늘색 보석은 빛나고 밝고 눈부십니다. 이런 광명이 죽은 뒤에 병이 없는 아(我)입니다.”
“깟짜나여, 그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빛나고 밝고 눈부신 연노랑 색의 담요 위에 놓인 깨끗하고 빛나고 팔각형으로 잘 가공된 하늘색 보석과 깜깜한 밤의 반딧불이 ― 이 두 가지 광명 가운데 어떤 광명이 더 앞서고 더 뛰어납니까?” “고따마 존자시여, 깜깜한 밤의 반딧불이가 이 두 가지 광명 가운데 더 앞서고 더 뛰어납니다.”
“깟짜나여, 그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깜깜한 밤의 반딧불이와 깜깜한 밤의 기름 등불 ― 이 두 가지 광명 가운데 어떤 광명이 더 앞서고 더 뛰어납니까?” “고따마 존자시여, 깜깜한 밤의 기름 등불이 이 두 가지 광명 가운데 더 앞서고 더 뛰어납니다.”
“깟짜나여, 그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깜깜한 밤의 기름 등불과 깜깜한 밤의 커다란 불 무더기 ― 이 두 가지 광명 가운데 어떤 광명이 더 앞서고 더 뛰어납니까?” “고따마 존자시여, 깜깜한 밤의 커다란 불 무더기가 이 두 가지 광명 가운데 더 앞서고 더 뛰어납니다.”
“깟짜나여, 그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깜깜한 밤의 커다란 불 무더기와 밤이 지나고 구름 한 점 없는 깨끗한 새벽하늘의 밝은 별 ― 이 두 가지 광명 가운데 어떤 광명이 더 앞서고 더 뛰어납니까?” “고따마 존자시여, 밤이 지나고 구름 한 점 없는 깨끗한 새벽하늘의 밝은 별이 이 두 가지 광명 가운데 더 앞서고 더 뛰어납니다.” “깟짜나여, 그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밤이 지나고 구름 한 점 없는 깨끗한 새벽하늘의 밝은 별과 보름의 포살 일에 구름 한 점 없는 깨끗한 하늘의 보름달 ― 이 두 가지 광명 가운데 어떤 광명이 더 앞서고 더 뛰어납니까?” “고따마 존자시여, 보름의 포살 일에 구름 한 점 없는 깨끗한 하늘의 보름달이 이 두 가지 광명 가운데 더 앞서고 더 뛰어납니다.” “깟짜나여, 그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보름의 포살 일에 구름 한 점 없는 깨끗한 하늘의 보름달과 우기의 마지막 달에 우기를 뒤따르는 계절의 깨끗하고 비구름이 물러간 하늘에서 정오에 빛을 발하는 태양 ― 이 두 가지 광명 가운데 어떤 광명이 더 앞서고 더 뛰어납니까?” “고따마 존자시여, 우기의 마지막 달에 우기를 뒤따르는 계절의 깨끗하고 비구름이 물러간 하늘에서 정오에 빛을 발하는 태양이 이 두 가지 광명 가운데 더 앞서고 더 뛰어납니다.” 그렇듯이, 깟짜나여, 이런 해와 달의 빛이 미치지 않는 많은 신, 더 많은 신을 나는 분명히 압니다. 그렇지만 나는 ‘그것보다 더 높거나 더 뛰어난 다른 광명은 없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깟짜나여, 그대는 ‘반딧불이보다 더 보잘것없고 더 미숙한 광명이 최상의 광명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광명을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깟짜나여, 이런 다섯 가지 소유의 사유에 묶인 것이 있습니다. 어떤 다섯 가지입니까?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소유의 사유를 수반하며 좋아하기 마련인 안(眼)으로 인식되는 색(色)들, … 이(耳)로 인식되는 성(聲)들, … 비(鼻)로 인식되는 향(香)들, … 설(舌)로 인식되는 미(味)들, …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소유의 사유를 수반하며 좋아하기 마련인 신(身)으로 인식되는 촉(觸)들 ― 이것이 깟짜나여, 다섯 가지 소유의 사유에 묶인 것입니다. 깟짜나여, 이런 다섯 가지 소유의 사유에 묶인 것을 연(緣)하여 생기는 즐거움과 만족이 소유의 즐거움[욕락(慾樂)]이라고 불립니다. 이렇게 소유의 삶으로부터 소유의 즐거움이 있습니다. 소유의 즐거움에서 벗어나 소유의 끝에서 만나는 즐거움이 거기에서 으뜸이라고 선언됩니다.
이렇게 말했을 때, 웨카나사 유행승이 세존에게 이렇게 말했다. ― “놀랍습니다, 고따마 존자여. 신기합니다, 고따마 존자여! 고따마 존자께서는 ‘소유의 삶으로부터 소유의 즐거움이 있다. 소유의 즐거움에서 벗어나 소유의 끝에서 만나는 즐거움이 거기에서 으뜸이라고 선언된다.’라고 잘 말씀하셨습니다.”
“깟짜나여, 다른 견해, 다른 믿음, 다른 성향이 있고, 다른 방법으로 수행하고, 다른 스승을 따르는 그대는 소유의 삶이거나 소유의 즐거움이거나 소유의 끝에서 만나는 즐거움이라는 이 법을 알기 어렵습니다. 번뇌가 다했고 삶을 완성했으며 해야 할 바를 했고 짐을 내려놓았으며 최고의 선(善)을 성취했고 존재의 족쇄를 완전히 부수었으며 바른 무위의 앎으로 해탈한 아라한인 비구들이 소유의 삶이거나 소유의 즐거움이거나 소유의 끝에서 만나는 즐거움을 알 수 있습니다.”
(*)(**) PTS : yath'ānusiṭṭhaṃ tathā paṭipajjamāno na cirass'eva sāmaṃ ñeva ñassati sāmaṃ dakkhiti. Evaṃ kira sammā bandhanā vippamokkho hoti yad idaṃ avijjābandhanā.
; sāmañña: conformity; generality; the state of a monk. (nt.) → (DN 2-사문과경 – sāmaññaphalasuttaṃ)
; paṭhamasāmaññasuttaṃ (SN 45.35-사문 됨 경1) ― sāmañña (nt.) [abstr. fr. samaṇa] samaṇaship
; sāmaññavaggo (AN 8.91-116-일반 품)
이렇게 말했을 때, 화가 나고 즐겁지 못한 웨카나사 유행승은 세존에게 악담을 퍼붓고자, 세존을 경멸하고자, 세존에게 “사문 고따마의 말은 잘못이다.”라고 말하고자 세존에게 이렇게 말했다. ― “이처럼 과거의 끝을 모르고 미래의 끝을 보지 못하는 여기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다른 한편으로 ‘‘태어남은 다했다. 범행은 완성되었다. 해야 할 일을 했다. 다음에는 현재 상태[유(有)]가 되지 않는다.’라고 분명히 안다.’라고 공언합니다. 그들에게 이 말은 참으로 궁핍하고, 단지 이름만 얻는 것이고, 공허하고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라고. “깟짜나여, 과거의 끝을 모르고 미래의 끝을 보지 못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태어남은 다했다. 범행은 완성되었다. 해야 할 일을 했다. 다음에는 현재 상태[유(有)]가 되지 않는다.’라고 분명히 안다.’라고 공언하는 사문-바라문들에게 그런 비판을 하는 같은 종교를 가진 사람(유행승)(*)이 있습니다. 그러나 깟짜나여, 과거의 끝은 그만두고, 미래의 끝도 그만둡시다. ‘정직하고 속이지 않고 올곧음을 갖춘 지혜로운 사람은 오라!’ 나는 가르치고, 나는 법을 설합니다. 가르친 대로 실천하는 자는 오래지 않아 스스로 사문 됨에 대해 알고 볼 것입니다. ― 참으로 이렇게 무명(無明)의 속박에서 바르게 풀려날 것입니다. 예를 들면, 깟짜나여, 어리고 게으르며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는 어린아이가 실 끈에 목을 다섯 번째로 묶여있을 것입니다. 그가 성장하고 기능이 성숙하면 그 묶임에서 풀려날 것입니다. 그는 ‘나는 풀려났다.’라고 알 것이고, 속박이 없을 것입니다. 이처럼, 깟짜나여, ‘정직하고 속이지 않고 올곧음을 갖춘 지혜로운 사람은 오라!’ 나는 가르치고, 나는 법을 설합니다. 가르친 대로 실천하는 자는 오래지 않아 스스로 사문 됨을 알고 볼 것입니다. ― 참으로 이렇게 무명(無明)의 속박에서 바르게 풀려날 것입니다.
(*) 그런 비판을 하는 같은 종교를 가진 사람(유행승) = 수시마 ― (SN 12.70-수시마 경)
• sahadhammika: co-religionist. (adj.) 같은 종교의 사람
이렇게 말했을 때, 웨카나사 유행승은 세존에게 이렇게 말했다. ― “정말 기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정말 기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예를 들면, 고따마 존자시여, 넘어진 자를 일으킬 것입니다. 덮여있는 것을 걷어낼 것입니다. 길 잃은 자에게 길을 알려줄 것입니다. ‘눈 있는 자들은 모습들을 본다.’라며 어둠 속에서 기름 등불을 들 것입니다. 이처럼, 고따마 존자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법을 설하셨습니다. 길을 찾는 저는 의지처인 고따마 존자 그리고 가르침과 비구 상가에게로 갑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를 오늘부터 살아있는 동안 귀의한 재가 신자로 받아 주십시오”라고.
vekhanasasuttaṃ niṭṭhitaṃ dasamaṃ.
열 번째 웨카나사 경이 끝남
paribbājakavaggo niṭṭhito tatiyo.
세 번째 유행승 품이 끝남
tassuddānaṃ —
puṇḍarī-aggisaha-kathināmo, dīghanakho puna bhāradvājagotto.
sandakaudāyimuṇḍikaputto, maṇiko tathākaccāno varavag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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