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부처님의 깨달음의 과정과 제자들을 깨달음으로 이끄는 과정을 설명하는 경으로는 (MN 26-덫 경)/(MN 36-삿짜까 큰 경)/(MN 85-보디 왕자 경)/(MN 100-상가라와 경)의 네 개가 있습니다. 특히, (MN 85-보디 왕자 경)은 전체 과정에 대한 완전한 형태를 설명하고, 다른 경들은 각각의 주제에 따라 이 범위 안에서 설명합니다.
Ⅰ. 4개의 경의 구조 분석
1. 주제
경 |
주제 |
MN 85-보디 왕자 경 |
• ‘참으로 행복에 의해 행복은 얻어지지 않는다. 참으로 괴로움에 의해 행복은 얻어진다.’라는 견해에 대한 부처님의 답변 ― 고정관념의 타파 → ‘행복으로 더 큰 행복을 일구는 불교’의 선언
• 부처님을 따라 배울 때 깨달음에 필요한 시간 |
MN 26-덫 경 |
• 성스러운 구함과 성스럽지 못한 구함의 두 가지 구함 → 성스러움을 구하는 자의 두 가지 할 일 ― 법담(法談)이거나 성스러운 침묵
• 성스럽지 못한 구함(anariyā pariyesanā) ― 재생의 조건(upadhi)을 구하는 것 • 성스러운 구함(ariyā pariyesanā) ― 열반(涅槃)을 구하는 것
• 성스러운 침묵-구함의 실천적 방법 ― 구차제정(九次第定) |
MN 36-삿짜까 큰 경 |
• 부처님의 제자들은 심(心)은 닦지만 몸은 닦지 않지요? → 몸도 닦고 심(心)도 닦는 것으로의 깨달음의 과정
• 혼란한 자와 혼란하지 않은 자
• 몸을 닦음 ― 즐거운 느낌에 대한 대응력 → 개발된 느낌을 감당 • 심(心)을 닦음 ― 괴로운 느낌에 대한 대응력 → 고행(苦行)을 감당 |
MN 100-상가라와 경 |
• 부처님이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서 스스로 법을 실답게 안 뒤에, 지금여기에서 실다운 지혜로 성취의 끝에 닿아서 범행의 근본을 공언하는 방법
• 신(神)은 있습니까? |
2. 깨달음의 과정에 대한 서술의 차이
【A】 『깨달음 이전, 깨닫지 못한 보살이었을 때』
• 출가의 이유 ― 경의 주제에 따라 각각 다르게 제시됨.
【B】 『출가(그런 나는 나중에~)로부터 알라라 깔라마-웃따까 라마뿟따를 거쳐 우루웰라의 장군총에 다다름(‘이곳은 정진하기에 충분하다.’라고 하면서 거기에 앉았다.)』
• 출가의 공통된 이유 ― 「so evaṃ pabbajito samāno kiṃkusalagavesī(*) anuttaraṃ santivarapadaṃ pariyesamāno ~ 이렇게 무엇이 유익(有益)/선(善)인지를 구하여 출가한 나는 위없이 평화롭고 고귀한 경지를 찾아 ~」
【C】 『세 가지 비유(나에게 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세 가지 비유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소유의 삶])로부터 고행(苦行) 그리고 함께하는 다섯 비구의 떠남에 이어 사선(四禪)-삼명(三明)으로의 깨달음(어둠이 부서지고 빛이 생긴 것이다.)까지』
【D】 『깨달음(내가 성취한 이 법은~)부터 범천의 요청을 거쳐 함께하는 다섯 비구를 만나고 설득하기(실현하고 성취하여 머물 것이다.)까지』
【E】 『설득된 함께하는 다섯 비구를 교육하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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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N 85-보디 왕자 경 |
MN 26-덫 경 |
MN 36-삿짜까 큰 경 |
MN 100-상가라와 경 |
A |
● |
● |
● |
● |
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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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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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서술 |
● + 서술 부가 |
● |
D |
● |
● |
× |
× |
E |
● |
● |
× |
× |
Ⅱ. 부처님의 깨달음의 과정의 분석
1. 출가의 목적 ― 「ariyā pariyesanā 성스러운 구함 = kiṃkusalagavesī 무엇이 유익(有益)인지 구함」
유사한 용례로는 「pabbajiṃ kiṃkusalānuesī 무엇이 유익(有益)/선(善)인지를 구하여 출가했다.」라고 말하는 (DN 16.35-대반열반경, 수밧다 유행승 이야기)가 있습니다.
또한, 부처님은 유익(有益)과 무익(無益)을 선언한 분이어서 유익과 무익의 기준 위에서 상황에 맞게 잘 분별하여 말하는 분이라는 의미의 분별설자(分別說者)- vibhajjavādo)를 말하는 (AN 10-94-왓지야마히따 경)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2. 깨달음의 과정 ―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서 스스로 법을 실답게 안 뒤에, 지금여기에서 실다운 지혜로 성취의 끝에 닿는 과정」
(MN 100-상가라와 경)은 지금여기에서 실다운 지혜로 성취의 끝에 닿아서 범행의 근본을 공언하는 사문-바라문들에 대해 ①전승에 의해 지금여기에서 실다운 지혜로 성취의 끝에 닿아서 범행의 근본을 공언하는, 전승을 잇는 삼명(三明) 바라문과 ②오직 믿음에 의해 지금여기에서 실다운 지혜로 성취의 끝에 닿아서 범행의 근본을 공언하는 딱끼-위망시 그리고 ③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서 스스로 법을 실답게 안 뒤에, 지금여기에서 실다운 지혜로 성취의 끝에 닿아서 범행의 근본을 공언하는 세 가지 부류를 설명하는데, 부처님은 ③의 부류에 속합니다. 이때, 지금여기에서 실다운 지혜로 성취의 끝에 닿아서 범행의 근본을 공언하기 위한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서 스스로 법을 실답게 아는 과정으로 부처님의 깨달음의 과정을 소개합니다.
• 이전에 들어본 법 = ①과 ② → 성취의 끝에 닿는가? ― 아니요. →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 → 스스로 법을 실답게 앎 → 성취의 끝에 닿음 → 범행의 근본을 공언
1) 삼매 수행
이런 목적을 가지고 출가한 수행자 고따마는 먼저 두 명의 스승을 만나 삼매를 닦습니다. 첫 번째 스승인 알라라 깔라마는 무소유처(無所有處)를, 두 번째 스승인 웃따까 라마뿟따는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를 성취한 스승입니다. 그런데 그 경지를 익히는 과정에서 수행자 고따마는 「알라라 깔라마-웃따까 라마뿟따는 이 법을 단지 믿음만으로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머문다.'라고 선언하는 것이 아니다. 참으로 알라라 깔라마-웃따까 라마뿟따는 이 법을 알고[지(知)] 보면서[견(見)] 머문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두 분 스승이 전승을 잇는 삼명(三明) 바라문도 아니고, 오직 믿음에 의해 접근하는 딱끼-위망시도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전승이나 믿음에 근거하는 방법을 넘어선 법으로 성취의 끝에 닿고자 하였지만, 그들이 알고[지(知)] 본[견(見)] 법은 단지 무소유처(無所有處)와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로 이끄는 길에 불과하여 태어나지 않기 위한 출가의 목적에 미치지 못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이전에 들어본 법의 영역을 넘어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의 영역에 접근하지만 지(知)와 견(見)이 낮아 깨닫지 못함
• 깨달음의 지(知)-견(見) = 열반(涅槃)
이렇게 무소유처와 비상비비상처에 태어남으로 이끄는 두 스승의 법에 대해 염오(厭惡)한 수행자 고따마는 떠나는데,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 즉 아직 알려지지 않은 길을 개척하여 스스로 법을 실답게 알기 위한 과정의 출발입니다. 이렇게 실다운 지혜로 성취의 끝에 닿아서 범행의 근본을 공언하기 위한 부처의 대장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또한, 유익(有益)을 구하여 출가한 부처님을 교주로 하는 불교가 하늘에 태어나기 위한 종교가 아니라는 점을 이렇게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2) 소유의 삶에 대한 세 가지 비유
(MN 85-보디 왕자 경)은 ‘행복은 행복에 의해 얻어지지 않고 괴로움에 의해 얻어진다.’라는 고정관념의 타파를 주제로 하는데, 소유의 삶에 대한 세 가지 비유는 행복에 의해 행복을 얻는 가르침으로의 불교의 특징을 말해줍니다.
‘①물 위에 놓인 젖은 나무토막 → ②물 밖에 있는 젖은 나무토막 → ③물 밖에 있는 마른 나무토막’의 순서로 소유의 삶을 몸과 심(心)으로 떠나 머물면서[물 밖] 소유의 관심, 소유의 갈망, 소유의 열중, 소유의 열기를 안으로 잘 버리고 잘 가라앉히면[마른 나무토막] 고행(苦行)을 하든[고(苦)] 하지 않든[락(樂)]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비유입니다.
이때, 소유의 삶을 떠나고 안으로 잘 가라앉힌 상태는 욕(慾-소유)을 넘어 유(有-존재)의 영역에 듦 즉 삼매를 말합니다. 그리고 소유를 넘어 존재의 영역에 들면 고행(苦行)의 여부와 관계없이 깨달을 수 있다는 생각이어서 깨달음이라는 락(樂-행복)이 ②괴로움에 의해서도 행복에 의해서도 얻어질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행복은 ①행복이 아니라 괴로움에 의해 얻어진다는 생각의 첫 번째 변화입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깨달음 이전 아직 고행을 시도하지 않은 때의 생각입니다. 부처님은 이어서 고행을 시도하지만, 고행 즉 고(苦)의 방법으로는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떠납니다. 그리고 사선(四禪)-삼명(三明)의 과정[팔정도(八正道)의 정정(正定)] 즉 개발된 느낌인 행복의 과정에서 깨달음을 성취합니다.
그래서 행복과 관련한 결론은 ③괴로움이 아니라 행복에 의해 얻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보디 왕자의 바르지 못한 생각을 바로잡아 주기 위한 부처님의 설명입니다. ― 「①고(苦)에 의한 락(樂)의 성취[인도의 고정관념] → ②고(苦)와 락(樂)에 의한 락(樂)의 성취[관념의 1차 전환] → ③락(樂)에 의한 락(樂)의 성취[체험적 결론]」의 과정으로 ‘행복으로 더 큰 행복을 일구는 불교 수행’의 성립을 말해줌
두 분 스승을 떠난 뒤 깨달음의 과정에서 고행 이전에 소유의 삶과 관련한 세 가지 비유를 소개하는 데는 이런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 고행(苦行)
이 과정에서 고행(苦行)은 심(心)으로 심(心)을 억제하는 수행 한 단계와 숨을 멈추는 수행 다섯 단계 그리고 소식(小食)의 수행으로 구성됩니다. 하지만 확고한 노력에 의해 잊히지 않는 사띠는 확립되었지만, 앞의 둘은 몸이 진정되지 않고 뒤의 하나는 몸이 파괴되는 부작용 때문에 깨달음으로 이끄는 길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고(苦)에 의한 락(樂)의 성취 불가능]. 그래서 ‘깨달음을 위한 다른 길이 있을까?’라면서 고행(苦行)을 떠납니다.
이때, 부처님은 심(心)으로 심(心)을 억제하는 수행 한 단계와 숨을 멈추는 수행 다섯 단계에 대해 ‘심(心)을 닦았기 때문에 생겨난 괴로운 느낌이 나의 심(心)을 소진하여 머물지 않았다.’라고 회상하는데, (MN 36-삿짜까 큰 경)의 주제입니다.
4) 사선(四禪)-삼명(三明)[팔정도(八正道)의 정정(正定)]에 의한 깨달음
고행(苦行)을 떠난 뒤 깨달음을 위한 바른길이라고 판단한 초선(初禪)의 기억 가운데 ‘나는 소유의 삶과 다른 곳, 불선법(不善法)들과 다른 곳에 있는 행복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라며 ‘③락(樂)에 의한 락(樂)의 성취’의 길을 선택한 것은 깨달음의 과정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고정관념의 극복].
그리고 몸을 회복하기 위해 덩어리진 음식을 먹는 수행자 고따마를 보고 함께하는 다섯 비구가 실망하여 떠나는 것도 불교의 성립 과정에서 중요한 일화입니다. 덩어리진 음식을 먹고 몸을 회복한 수행자 고따마는 사선(四禪)-삼명(三明) 즉 팔정도(八正道)의 정정(正定)의 과정으로 깨달음을 성취하는데, 무명(無明)이 부서지고 명(明)이 생긴 것이고, 어둠이 부서지고 빛이 생긴 것이라고 경은 설명합니다.
이때, 부처님은 사선(四禪)과 삼명(三明)의 일곱 단계에 대해 ‘몸을 닦았기 때문에 생겨난 즐거운 느낌이 나의 심(心)을 소진하여 머물지 않았다.’라고 회상하는데, (MN 36-삿짜까 큰 경)의 주제입니다.
한편, 소유의 삶에 대한 세 가지 비유와 고행 그리고 사선(四禪)-삼명(三明)에 의한 깨달음의 과정은 태어남-늙음-병-죽음-슬픔-오염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온(瑜伽安穩)인 열반의 성취 과정으로 묘사되어 불교의 목적-지향을 말해주는데, (MN 26-덫 경)의 주제입니다. 또한, (MN 36-삿짜까 큰 경)은 「여래에게 오염원이고 미래에 태어나고 늙고 죽어야 하는 존재로 다시 이끌고 두렵고 보(報)가 괴로움인 번뇌들은 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생겨나지 않는 상태가 되었습니다.」라고 하는데, 오염원인 번뇌가 버려져 오염이 없는 상태가 곧 열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수행자 고따마는 보살(菩薩)의 삶을 마감하고 부처가 됩니다. 이것이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서 스스로 법을 실답게 안 뒤에, 지금여기에서 실다운 지혜로 완전한 궁극의 경지를 성취해서 범행의 근본을 공언하는 부처님의 방법인데, (MN 100-상가라와 경)의 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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