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2.
Ⅲ. 제자들을 깨달음으로 이끄는 과정의 분석 ― 「(지금여기에서 실다운 지혜로 성취의 끝에 닿은 뒤) 범행의 근본을 공언하는 과정」
깨달음 이후 즉 범행의 근본을 공언하는 과정은 (MN 36-삿짜까 큰 경)과 (MN 100-상가라와 경)에는 나타나지 않고 (MN 26-덫 경)과 (MN 85-보디 왕자 경)에만 나타납니다.
1. 부처님이 성취한 법 ― 「atakkāvacaro ― takka[애(愛)의 형성 과정]의 영역을 넘어섬」
부처님이 성취한 법은 takka[애(愛)의 형성 과정]의 영역을 넘어선 현자에게만 경험될 수 있는 법인데, 사람들은 잡기(ālaya)를 즐기고 좋아하고 기뻐합니다. 그래서 여기에서의 조건성인 연기(緣起)와 열반(涅槃)의 두 가지 토대를 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법을 설해도 사람들이 알기 어려울 것이라는 주저함으로 기울게 됩니다.
2. 범천(梵天)의 권청(勸請)
깨달음을 성취한 뒤 심(心)이 법을 설함이 아니라 주저함으로 기운 상황은 주목해야 합니다. 주저하여 법을 설하지 않았다면 부처가 아니라 벽지불(辟支佛)이 되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함빠띠 범천의 요청을 받은 부처님은 vihiṃsasaññī를 극복하고 법을 설하는 과정을 말하는데, ‘그들에게 불사(不死)의 문은 열렸다. 귀를 가진 자들은 믿음을 버려라. 범천이여, 연민하지 않는 상(想)을 가진 나는 사람들에게 잘 실천되고 뛰어난 법을 말하지 않았다.’라고 하는데, vihiṃsasaññī를 연민하지 않는 상(想)을 가진 자로 해석한 이유는 이렇습니다. ― 「폭력으로 번역되는 vihiṃsā는 비(悲-karuṇā)의 반대 개념입니다. 그렇다면 비(悲)가 연민[그대가 아프지 않기를!]이기 때문에 vihiṃsā는 연민하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vihiṃsasaññī를 ‘연민하지 않는 상(想)을 가진 자’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깨달음을 성취한 후 아직 대중을 위한 연민의 마음을 일으키지 않은 상태에서 사함빠띠 범천의 청을 받아 비로소 중생들을 위한 연민의 마음을 일으켜 법을 설하게 되는 과정이라고 이해할 수 있는데, 만약 여기서 연민하지 않는(폭력의) 상(想)을 버리고 중생들에 대한 연민의 길을 나서지 않았다면 벽지불(辟支佛)이 되었지 여래(如來)-아라한(阿羅漢)-정등각(正等覺)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3. 아지와까인 우빠까를 만난 일화
• 아지와까(ajīvaka) = 사명외도(邪命外道)― 결실 없음(akiriya)을 주장하는 막칼리 고살라의 일파.
함께하는 다섯 비구에게 제일 먼저 법을 설하기로 한 부처님이 그들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아지와까인 우빠까를 만난 일화도 주목해야 합니다. 스승이 누구냐는 질문을 받은 부처님은 스승도 대등한 자도 없는 아라한-위없는 스승-정등각을 선언합니다. 또한, 불사(不死)의 북을 울리는 것으로의 전법륜(轉法輪-법륜을 굴림)을 선언하는데, 불교가 불사(不死)를 위한 가르침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은 번뇌의 부서짐의 성취를 통한 진정한 승리자를 다시 선언합니다.
4. 전법륜(轉法輪) ― 함께하는 다섯 비구에게 법륜(法輪)을 굴림
함께하는 다섯 비구를 만나고 설득한 부처님은 법륜(法輪)을 굴리는데, 그 과정은 이렇게 묘사됩니다. ― 「왕자여, 나는 함께하는 다섯 비구를 설득할 수 있었다. 왕자여, 나는 두 명의 비구를 가르치고, 세 명의 비구는 탁발했다. 세 명의 비구가 탁발하여 가져온 것으로 여섯 명이 먹었다. 나는 세 명의 비구를 가르치고, 두 명의 비구는 탁발했다. 두 명의 비구가 탁발하여 가져온 것으로 여섯 명이 먹었다.」
실망하여 떠난 함께하는 다섯 비구에게 깨달음을 인정하고 법을 듣도록 설득하는 과정이 힘들었다는 것을 경은 세 번의 거부 과정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구른 법륜은 거침없이 함께하는 다섯 비구를 깨달음으로 이끕니다.
함께하는 다섯 비구의 깨달음은 부처님의 깨달음이 세상 사람들에게도 재현된다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스승 없이 깨달은 부처님의 과정에 비하면 스승에 의해 길이 알려진 깨달음의 과정은 훨씬 쉽다고 해야 하지만 번뇌를 부수고 깨닫는 과정이 하룻밤 사이는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다만, (MN 85-보디 왕자 경)에서 보디 왕자는 부처님에게서 가르침을 받아 깨닫는 데에는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질문하는데, 부처님은 다섯 가지 정진의 요소를 갖춘 자라면 ‘칠 년 ~ 저녁에 가르침을 들으면 아침에 특별함을 얻을 것이고, 아침에 가르침을 들으면 저녁에 특별함을 얻을 것’이라고 알려줍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굴려진 법륜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일반적으로 (SN 56.11-전법륜경)을 통해 법안(法眼)이 생기고, 이어서 (SN 22.59-무아상경)을 통해 아라한을 성취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모든 가르침의 근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법륜이 굴려진 뒤의 상황을 두 개의 경은 「나에게 이렇게 가르침을 받고 이렇게 도움을 받은 함께하는 다섯 비구는」의 형태로 각각 제시하는데, (MN 85-보디 왕자 경)은 「오래지 않아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바르게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하는 목적인 위없는 범행(梵行)의 완성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머물렀다.」라고 하고, (MN 26-덫 경)은 「자신들이 태어나는-늙는-병드는-죽는-슬픈-오염되는 존재이면서 태어나는-늙는-병드는-죽는-슬픈-오염되는 것에서 위험을 본 뒤에 태어남-늙음-병-죽음-슬픔-오염이 없는 위없는 유가안온(瑜伽安穩)인 열반(涅槃)을 성취했다. ‘나의 해탈은 흔들리지 않는다. 이것이 태어남의 끝이다. 이제 다시는 존재로 이끌리지 않는다.’라는 앎과 봄이 생겼다.」라고 합니다. 위없는 범행(梵行)의 완성이 열반의 성취에 이어지는 태어남의 끝 즉 윤회(輪廻)에서의 벗어남이라는 것을 설명해줍니다.
그런데 (MN 26-덫 경)은 이런 설명에 이어서 구차제정(九次第定)에 의한 번뇌들의 부서짐 즉 누진(漏盡)의 실천기법을 설명합니다. 성스러운 침묵의 실천으로 성스러운 구함을 실현할 것을 주제로 하는 이 경에서 부처님은 성스러운 침묵의 구체적 실천 방법으로 구차제정(九次第定)을 설명하고 함께 익힘으로써 제자들의 깨달음을 이끈 것입니다. 그래서 (MN 26-덫 경)은 법륜의 내용으로 구차제정을 제시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법륜의 내용은 교리 측면에서 (SN 56.11-전법륜경)의 사성제(四聖諦)와 (SN 22.59-무아상경)의 「무아(無我) → 여실지견(如實知見) → 염오(厭惡)-이탐(離貪)-해탈(解脫)-해탈지견(解脫知見)」의 두 가지 그리고 실천 측면에서 (MN 26-덫 경)의 구차제정(九次第定)으로 구성된다고 하겠습니다.
※ 사선(四禪)-삼명(三明)으로의 깨달음은 「초선(初禪) → 제이선(第二禪) → 제삼선(第三禪) → 제사선(第四禪) → 숙주명(宿住明) → 천안명(天眼明) → 누진명(漏盡明)」의 과정을 말합니다. 이때, 숙주명(宿住明)과 천안명(天眼明)은 깨달음을 위한 필요충분과정은 아닙니다. 깨달음은 누진(漏盡) 즉 번뇌의 부서짐에 의해 실현됩니다. 제사선(第四禪) 위에서 진행되는 과정인데, 공무변처(空無邊處)-식무변처(識無邊處)-무소유처(無所有處)-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에 이어지는 상수멸(想受滅)을 성취해서 머물면서 지혜로써 보아서 번뇌가 다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과정 즉 「초선(初禪) → 제이선(第二禪) → 제삼선(第三禪) → 제사선(第四禪) → 공무변처(空無邊處) → 식무변처(識無邊處) → 무소유처(無所有處) →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 → 상수멸(想受滅) - 누진(漏盡)」이 깨달음을 위한 필요충분과정인데, 구차제정(九次第定)입니다.
학자들에 따라서는 부처님이 사선(四禪)-삼명(三明)의 과정으로 깨달았기 때문에 구차제정(九次第定)은 부처님 깨달음의 길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이런 이해에 의하면, 사선(四禪)-삼명(三明)이 그대로 구차제정(九次第定)에 의한 깨달음입니다.
그렇다면 부처님이 (MN 26-덫 경)에서 구차제정(九次第定)을 설한 것은 당신의 깨달음의 과정을 그대로 제자들의 깨달음을 위한 실천의 기법으로 이끈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Ⅳ. 부가된 주제들
[1] (MN 85-보디 왕자 경) ― 부처님을 따라 배울 때 깨달음에 필요한 시간
1. (MN 85-보디 왕자 경) ― 「다섯 가지 정진의 요소를 갖추고 칠 년 동안 큰 스승인 여래에게 가르침을 받는 비구는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바르게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하는 목적인 위없는 범행(梵行)의 완성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머물 것이다. 왕자여, 칠 년은 그만두고 육 년 동안 … 오 년 동안 … 사 년 동안 … 삼 년 동안 … 이 년 동안 … 일 년 동안 … 일곱 달 동안 … 여섯 달 동안 … 다섯 달 동안 … 네 달 동안 … 세 달 동안 … 두 달 동안 … 한 달 동안 … 반달 동안 … 일곱 주야 동안 … 여섯 주야 동안 … 다섯 주야 동안 … 네 주야 동안 … 세 주야 동안 … 두 주야 동안 … 하루 주야 동안 … 하루 주야는 그만두고 이런 다섯 가지 정진의 요소를 갖추고 큰 스승인 여래에게 가르침을 받는 비구는 저녁에 가르침을 들으면 아침에 특별함을 얻을 것이고, 아침에 가르침을 들으면 저녁에 특별함을 얻을 것이다.」
2. (DN 22.-대념처경)/(MN 10-대념처경) ― 「비구들이여, 누구든지 이 사념처(四念處)를 이렇게 칠 년을 닦는 사람은 두 가지 결과 중의 하나를 기대할 수 있으니 지금 여기서 무위(無爲)의 앎을 얻거나, 집착이 남아 있으면 불환자(不還者)의 상태[불환과(不還果)]이다. 비구들이여, 칠 년은 그만두고 누구든지 이 사념처를 이렇게 육 년을 닦는 사람은 … 오 년을 … 사 년을 … 삼 년을 … 이 년을 … 일 년을 … 일곱 달을 … 다섯 달을 … 네 달을 … 세 달을 … 두 달을 … 한 달을 … 반달을 … 칠 일을 닦는 사람은 두 가지 결과 중의 하나를 기대할 수 있으니 지금 여기서 무위(無爲)의 앎을 얻거나, 집착이 남아 있으면 불환자(不還者)의 상태이다.」
3. (DN 25-우둠바리까 경) ― 「니그로다여, 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 ‘정직하고 속이지 않고 올곧음을 갖춘 지혜로운 사람은 오라! 나는 가르치고, 나는 법을 설한다. 칠 년을 가르친 대로 실천하는 자는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집으로부터 집 없는 곳으로 바르게 출가한 위없는 목적인 범행(梵行)의 끝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머물 것이다. 니그로다여, 칠 년을 그만두고 육 년을 … 오 년을 … 사 년을 … 삼 년을 … 이 년을 … 일 년을 … 일곱 달을 … 여섯 달을 … 다섯 달을 … 네 달을 … 세 달을 … 두 달을 … 한 달을 … 반 달을 … 칠 일을 가르친 대로 실천하는 자는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집으로부터 집 없는 곳으로 바르게 출가한 위없는 목적인 범행(梵行)의 끝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머물 것이다.’라고.」
4. (AN 10.46-삭까 경) ― 포살(布薩)과 관련해서 재가자를 위한 가르침 ― 「그렇지만, 삭까들이여, 여기 나의 가르침대로 실천하며 십 년을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단호한 의지를 가지고 머무는 나의 제자는 백 년도 만 년도 십만 년도 온전한 행복을 경험하며 머물 수 있다. 그리고 그는 일래자(一來者)거나 불환자(不還者)거나 진실로 예류자(預流者)가 된다. 삭까들이여, 십 년은 그만두고 나의 가르침대로 실천하며 구 년을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단호한 의지를 가지고 머무는 나의 제자는 … 팔 년을 … 칠 년을 … 육 년을 … 오 년을 … 사 년을 … 삼 년을 … 이 년을 … 일 년을 … 열 달을 … 아홉 달을 … 여덟 달을 … 일곱 달을 … 여섯 달을 … 다섯 달을 … 네 달을 … 세 달을 … 두 달을 … 한 달을 … 반 달을 … 열 주야를 … 아홉 주야를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단호한 의지를 가지고 머무는 나의 제자는 … 여덟 주야를 … 일곱 주야를 … 여섯 주야를 … 다섯 주야를 … 네 주야를 … 세 주야를 … 두 주야를 … 하루 주야를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단호한 의지를 가지고 머무는 나의 제자는 백 년도 만 년도 십만 년도 온전한 행복을 경험하며 머물 수 있다. 그리고 그는 일래자(一來者)거나 불환자(不還者)거나 진실로 예류자(預流者)가 된다.」
[2] (MN 26-덫 경) ― 성스러운 침묵 → 「비구들이여, 그대들이 함께 모이면 두 가지 할 일이 있으니, 법담(法談)이거나 성스러운 침묵이다.」
1. (MN 26-덫 경) ― 성스러운 구함을 위한 성스러운 침묵에 대한 구체적 방법으로 함께하는 다섯 비구를 마라의 덫에서 벗어나 깨달음으로 이끄는 실천으로의 구차제정(九次第定)을 설함 → 실천 측면에서의 전법륜(轉法輪)의 내용
2. (AN 9.4-난다까 경)
• 부처님 ― 성스러운 침묵에 대해 설명 → 「 비구가 믿음이 있고 계를 중시하고 내적인 심(心)의 삼매를 얻고 높은 지혜에 의한 법의 위빳사나를 얻을 때, 이렇게 그는 그 요소에 의해 마땅해진다.」
• 난다까 존자 ― 법담(法談)에 대해 설명 → 「때맞춰 법을 듣고 때맞춰 법을 토론하면 다섯 가지 이익이 있습니다.」
3. (SN 21.1-꼴리따 경) ― 성스러운 침묵이 위딱까와 위짜라의 가라앉음에 의한 무심무사(無尋無伺)의 삼매 즉 제이선(第二禪) 이후의 삼매의 과정인 것을 알려줌 → 「목갈라나여 목갈라나여, 바라문이여, 성스러운 침묵에서 방일하지 말라. 성스러운 침묵에서 심(心)을 진정시켜라. 성스러운 침묵에서 심(心)을 집중하고, 성스러운 침묵에서 심(心)을 삼매에 들게 하라.’라고. 도반들이여, 그런 나는 나중에 위딱까와 위짜라의 가라앉음으로 인해, 안으로 평온함과 마음의 집중된 상태가 되어, 위딱까도 없고 위짜라도 없이, 삼매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의 제이선(第二禪)을 성취하여 머물렀습니다.」
[3] (MN 36-삿짜까 큰 경) ― 신(身)을 닦음과 심(心)을 닦음
1. (MN 36-삿짜까 큰 경) ― 부처님의 깨달음의 과정에서 의미를 설명함
• 신(身)을 닦음 ― 즐거운 느낌에 대한 대응력 → 개발된 느낌을 감당
• 심(心)을 닦음 ― 괴로운 느낌에 대한 대응력 → 고행(苦行)을 감당
2. 신(身)을 닦고 계(戒)를 닦고 심(心)을 닦고 혜(慧)를 닦은 자
1) (SN 35.110-바라드와자 경) ― 젊고 어린 비구들이 살아 있는 동안 완전하고 청정한 범행을 실천하고, 오랫동안 행하게 하는 원인-조건
① 어머니 정도의 여자들에 대해서는 어머니라는, 누이 정도의 여자들에 대해서는 누이라는, 딸 정도의 여자들에 대해서는 딸이라는 심(心)을 유지해야 한다.
→ 심(心)은 갈망하는 것, 다른 원인-다른 조건이 있습니까?
② 부정관(不淨觀) ― 발바닥으로부터 올라가며, 머리카락으로부터 내려가며, 이 몸에 대해 피부의 경계를 채우는 여러 가지 부정(不淨)한 것들을 관찰해야 한다.
→ 신(身)-계(戒)-심(心)-혜(慧)를 닦은 비구에게는 쉽지만 닦지 못한 비구에게는 어려움, 다른 원인-다른 조건이 있습니까?
③ 기능들에서 문을 보호하며 머물러야 한다.
2) (AN 3.101-소금 종지 경) ― 사소하게 지은 악업도 곧바로 지옥으로 이끄는 사람과 그만큼 사소하게 지은 악업이 지금여기에서 경험되는 사람
① 신(身)-계(戒)-심(心)-혜(慧)를 닦지 않은 하찮고 작은 존재여서 작은 것에 의해서도 괴롭게 머무는 사람 → 사소하게 지은 악업도 곧바로 지옥으로 이끎
② 신(身)-계(戒)-심(心)-혜(慧)를 닦은 하찮지 않고 큰 존재여서 무량하게 머무는 사람 → 사소하게 지은 악업은 지금여기에서 경험되어 아주 조금도 보이지 않음
3) (AN 5.79-오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 경3) ― 미래에 신(身)-계(戒)-심(心)-혜(慧)를 닦지 않은 비구들에 의한 법(法)과 율(律)의 오염에 대해 알고, 버리기 위해 정진해야 함
신(身)-계(戒)-심(心)-혜(慧)를 닦지 않은 비구들이
① 구족계(具足戒)를 주고 교육하지 못함 → 이런 구조의 전승 → 법(法)과 율(律)의 오염
② 의지(依支)를 주고 교육하지 못함 → 이런 구조의 전승 → 법(法)과 율(律)의 오염
③ 법에 대한 이야기, 교리문답 이야기를 설하고, 나쁜 법에 빠져 있는 그들은 깨닫지 못할 것 → 법(法)과 율(律)의 오염
④ 여래에 의해 말해진, 심오하고, 심오한 의미를 가진, 세상을 넘어선, 공(空)에 일관된 가르침들이 설해질 때 듣지 않을 것이고, 귀 기울이지 않을 것이고, 무위(無爲)의 앎을 가진 심(心)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고, 그 법들을 배워야 하고 숙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시인이 지은 것이고 아름다운 문자와 표현을 가진 시이고 외도의 제자들에 의해 말해진 가르침들이 설해질 때 들을 것이고, 귀 기울일 것이고, 무위(無爲)의 앎을 가진 심(心)을 일으킬 것이고, 그 법들을 배워야 하고 숙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할 것 → 법(法)과 율(律)의 오염
⑤ 장로 비구들은 풍족하게 살고, 해이하고, 들어갈 때는 앞서고, 여읨에서는 짐을 내려놓을 것이다. 얻지 못한 것을 얻기 위해, 성취하지 못한 것을 성취하기 위해, 실현하지 못한 것을 실현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지 않을 것이다. → 그들의 뒷사람들도 견해를 뒤따를 것 → 법(法)과 율(律)의 오염
4) (AN 10.24-마하쭌다 경) ― 신(身)-계(戒)-심(心)-혜(慧)를 닦음 = 수행(修行)
비구의 말의 사실 여부는 탐(貪)-진(嗔)-치(癡)-화-원한-저주-횡포-인색-악한 질투-악한 원함이 억눌러 머무는 지의 여부로 판단해야 함
① ‘나는 이 법을 알고, 나는 이 법을 본다.’라고 앎에 대한 말을 말하는 비구
② ‘나는 몸을 닦았고, 계(戒)를 닦았고, 심(心)을 닦았고, 혜(慧)를 닦았다.’라고 수행(修行)에 대한 말을 말하는 비구
③ ‘나는 이 법을 알고, 나는 이 법을 본다. 나는 몸을 닦았고, 계(戒)를 닦았고, 심(心)을 닦았고, 혜(慧)를 닦았다.’라고 앎에 대한 말과 수행(修行)에 대한 말을 말하는 비구
[4] (MN 100-상가라와 경) ― 신(神)은 있습니까?
1. (MN 100-상가라와 경) ― 「“참으로, 고따마 존자시여, 신(神)은 있습니까?” “바라드와자여, 나는 원인과 함께 높은 신을 안다.” “고따마 존자시여, ‘신(神)은 있습니까?’라고 물었는데 ‘바라드와자여, 나는 원인과 함께 높은 신을 안다.’라고 존자는 말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렇다면 공허한 거짓이 아닙니까?” “바라드와자여, ‘신(神)은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어떤 사람은 ‘신은 있다.’라고 말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원인과 함께 안다.’라고 말할 수도 있다. 여기서 현명한 사람은 ‘신은 있다.’라는 확실한 결론을 얻는다.” “그러면 왜 고따마 존자는 저에게 첫 번째 방법으로 설명하지 않았습니까?” “바라드와자여, ‘신은 있다.’라는 것은 세상에서 고귀한 사람들에 의해 동의된 것이다.”」
2. (MN 90-깐나깟탈라 경) ― 「“그런데 대덕이시여, 신(神)은 있습니까?” “대왕이여, 왜 그대는 ‘그런데 대덕이시여, 신(神)은 있습니까?’라고 말합니까?” “대덕이시여, 그 신들이 여기(인간 세상)로 오는 것인지요, 아니면 오지 않는 것인지요?” “대왕이여, 거슬림이 있는 그 신들은 여기로 오고, 거슬림이 없는 그 신들은 여기로 오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