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dhirājakumārasuttaṃ (MN 85-보디 왕자 경) 335 ㅡ 5.수행의 전환 - 불교의 출발 - '나는 소유…
그런 나에게, 왕자여,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과거의 어떤 사문들이나 바라문들이 경험했던 고행에 의해 야기되는 괴롭고 예리하고 거칠고 심한 느낌 중에서 이것이 가장 혹독한 것이어서 이것을 넘어서는 것은 이제 없다. 미래의 어떤 사문들이나 바라문들이 경험할 고행에 의해 야기되는 괴롭고 예리하고 거칠고 심한 느낌 중에서 이것이 가장 혹독한 것이어서 이것을 넘어서는 것은 이제 없다. 현재의 어떤 사문들이나 바라문들이 경험하는 고행에 의해 야기되는 괴롭고 예리하고 거칠고 심한 느낌 중에서 이것이 가장 혹독한 것이어서 이것을 넘어서는 것은 이제 없다. 그러나 나는 이 심한, 행하기 어려운 것을 행하면서도 인간을 넘어선 법인 성자들에게 적합한 차별적 지와 견을 얻지 못했다. 참으로 깨달음을 위한 다른 길이 있을까?’라고. 그런 나에게, 왕자여,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그런데 나는 아버지의 삭까 족의 행사에서 시원한 잠부 나무 그늘에 앉아있을 때 소유의 삶에서 벗어나고, 불선법들에서 벗어나서, 위딱까가 있고 위짜라가 있고 떨침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의 초선을 성취하여 머물렀던 것을 기억한다. 참으로 이것이 깨달음을 위한 길일까?’라고. 그런 나에게. 왕자여, 사띠를 따르는(사띠가 기억하는) 식(識)이 있었다. — ‘오직 이것이 깨달음을 위한 길이다.’라고. 그런 나에게, 왕자여,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그런데 나는 왜 소유의 삶과 다른 곳, 불선법들과 다른 곳에 있는 행복을 두려워하는가?’라고. 그런 나에게, 왕자여,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나는 소유의 삶과 다른 곳, 불선법들과 다른 곳에 있는 행복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라고."
그런 나에게, 왕자여,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이렇게 극도로 여윈 몸을 가지고 그런 행복을 얻기는 쉽지 않다. 나는 덩어리진 음식, 쌀밥과 응유를 먹어야겠다.’라고. 그런 나는, 왕자여, 덩어리진 음식, 쌀밥과 응유를 먹었다. 그때, 왕자여, 나에게 ‘사문 고따마는 법을 증득할 것이다. 그 법을 우리에게 말해줄 것이다.’라면서 함께하는 다섯 비구가 있었다. 왕자여, 내가 덩어리진 음식, 쌀밥과 응유를 먹었을 때, 그 함께하는 다섯 비구는 나에게 ‘사문 고따마는 풍족하게 사는 자이다. 노력을 포기하고, 풍족한 삶으로 되돌아갔다.’라고 염오하고 떠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