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 맛지마 니까야 관통 법회 - 86. 앙굴리말라 경[폭력을 멈춘 삶 - 바른 축원 - 잘 왔다](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
▣ 맛지마 니까야 관통 법회 - 86. 앙굴리말라 경[폭력을 멈춘 삶 - 바른 축원 - 잘 왔다](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230315)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57NOqEuZyaA
강도로 유명한 앙굴리말라 이야기입니다. 부처님은 온 힘을 다해서 다가가도 닿을 수 없게 하는 신통행을 펼친 뒤 폭력의 멈춤을 설하여 그를 귀화합니다. 그를 물리치고자 부처님을 찾아온 빠세나디 왕은 출가한 그를 공양하고 법답게 경계하고 장애로부터 보호하겠다고 약속합니다. 출가한 그는 난산으로 힘들어하는 여인을 위해 축원하는데, ‘부처님의 가피력’ 등 타력적 방법이 아니라 ‘청정한 수행자의 복전(福田) 됨’에 의지한 축원입니다. 아라한을 성취한 그는 사람들의 공격을 받는데, 이 몸으로의 과거에 지은 업의 보를 살아 있기 때문에 이 몸을 매개로 경험한 것입니다. 그는 해탈락을 경험하면서 잘 왔다는 감흥을 읊습니다.
• 강도 앙굴리말라 이야기 ― 「잔인하고, 손에 피를 묻히고, 해치고 죽이기를 일삼고, 살아있는 것들에 대한 연민이 없었다. 그 때문에 마을도 마을이 아니게 되고 도시도 도시가 아니게 되고 지방도 지방이 아니게 되었다. 그는 거듭 사람들을 죽인 뒤에 손가락으로 환을 만들어 둘렀다.」
1. 부처님이 앙굴리말라를 찾아가고, 마을 사람들이 말리는 정황을 설명함.
2. 앙굴리말라가 부처님의 목숨을 빼앗고자 다가오지만, 부처님은 온 힘을 다해서 다가가도 닿을 수 없게 하는 신통행을 펼침
• 신통행을 펼치다 ― ‘iddhābhisaṅkhāraṃ abhisaṅkh~’의 용례 ⇒ (MN 91-브라흐마유 경)에서 정리
3. 앙굴리말라와 부처님의 대화 & 앙굴리말라의 귀의
― “멈추라, 사문이여, 멈추라.” → “나는 멈추었다, 앙굴리말라여, 그대도 멈추라.”
⇒ “사꺄의 후손인 이 사문들은 진실을 말하고 진실을 인정한다. 그런데 가고 있는 이 사문이 ‘나는 멈추었다, 앙굴리말라여, 그대도 멈추라.’라고 말했다. 내가 이 사문에게 물어봐야겠다.”
→ “사문이여, 그대는 가고 있으면서 ‘나는 멈추었다.’라고 말하고 멈춘 나에게 ‘멈추지 않았다.’라고 말한다. 사문이여, 나는 그대에게 이 말의 의미를 묻는다. 어떻게 그대는 멈추었고, 나는 멈추지 않았는가?”라고.
→ “앙굴리말라여, 모든 존재에 대해 몽둥이를 내려놓고서 나는 항상 멈추어있다. 그러나 그대는 생명에 대해 제어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멈추었고 그대는 멈추지 않았다.”
→ “마침내 존경받을 왕, 진실을 말하는 분이 참으로 나의 큰 숲에 도착했다. 그러니 나는 진실에 연결된 그대의 게송을 듣고서 악을 버리고 살아갈 것입니다.”
4. 빠세나디 꼬살라 왕과의 일화
사왓티의 주민들이 빠세나디 꼬살라 왕에게 앙굴리말라를 물리쳐달라고 요청하고, 왕은 부처님을 찾아와서 앙굴리말라를 물리칠 것이라고 말함 → 부처님은 앙굴리말라가 출가하였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묻고 왕은 그를 공양하고, 법답게 경계하고, 장애로부터 보호할 것이라고 답함 → 부처님은 앙굴리말라 존자를 소개하고 왕은 앙굴리말라 존자에게 필수품의 공급을 약속하고, 앙굴리말라 존자는 이미 충분하다고 대답함 → 왕은 몽둥이로도 칼로도 길들이지 못한 자를 세존께서 몽둥이 없이 칼 없이 길들였다고 찬탄한 뒤 돌아감
▣ 주제의 확장 ― (83) 「출가한 비구를 어떻게 상대할까?」 ☞ http://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2_11&wr_id=242
5. 앙굴리말라 존자가 난산으로 힘들어하는 여인을 만나서 “그대여, 참으로 중생들은 젖어있다. 그대여, 참으로 중생들은 젖어있다.”라는 생각을 떠올림
; 생(生)-노사(老死)의 윤회하는 삶에 수반되는 수비고우뇌(愁悲苦憂惱) 즉 슬픔-비탄-고통-고뇌-절망의 삶은 눈물 젖은 삶이라는 측면으로 해석하였음.
― 부처님의 지시를 받아 ‘자매여, 나는 성스러운 태어남으로 태어날 때부터 고의로 살아있는 생명을 죽인 것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이런 사실에 의해 그대가 편안하기를, 태 중의 아이가 편안하기를’이라고 축원하자 여인과 태중의 아이가 편안해짐
; 축원은 ‘부처님의 가피력’ 등 타력적 방법으로 제시되지 않고 청정한 수행자의 복전(福田) 됨에 의지한 축원이 제시됨.
6. 홀로 외딴곳에서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확고한 의지로써 머문 앙굴리말라 존자는 오래지 않아 아라한을 성취함
7. 탁발을 위해 사왓티에 들어갔을 때 사람들의 공격을 받아 부상하여 돌아온 앙굴리말라 존자에게 부처님이 말함 ― 「그대는 인내해야 한다, 바라문이여, 그대는 인내해야 한다, 바라문이여, 바라문이여, 그대가 여러 해, 여러 백 년, 여러 천 년 동안 지옥에서 겪어야 했을 업(業)의 보(報)를, 바라문이여, 그대는 지금여기에서 겪은 것이다.」
; 아라한을 성취하지 못했으면 살생의 업으로 지옥에 태어나서 그 업(業)의 보(報)를 경험해야 했을 것이나 아라한을 성취했기 때문에 태어나지 않음에 의해 업장(業障)은 소멸하였음. 그러나 몸으로 살아있는 동안은 이 몸으로의 과거에 지은 업의 과(果)에 따르는 보(報)를 이 몸을 매개로 경험하는 것임. → (MN 121-공(空)에 대한 작은 경) 참조 ☞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5_13_01&wr_id=1
― 「그는 이렇게 분명히 안다. ― ‘욕루(慾漏)를 연(緣)한 불안들은 여기에 없다. 유루(有漏)를 연(緣)한 불안들은 여기에 없다. 무명루(無明漏)를 연(緣)한 불안들은 여기에 없다. 그러나 생명의 조건 때문에 단지 이 몸을 조건으로 하는 육처(六處)에 속하는 것만큼의 불안은 있다.’라고. 그는 ‘욕루(慾漏) 상태의 상(想)에 속한 것은 공(空)하다.’라고 분명히 알고, ‘유루(有漏) 상태의 상(想)에 속한 것은 공(空)하다.’라고 분명히 알고, ‘무명루(無明漏) 상태의 상(想)에 속한 것은 공(空)하다.’라고 분명히 알고, ‘생명의 조건 때문에 단지 이 몸을 연(緣)한 육처(六處)에 속하는 것의 공(空)하지 않음은 있다.’라고 분명히 안다. 이렇게 그는 거기에 없는 것에 의해 그것의 공(空)을 관찰하고, 거기에 남아있는 것을 ‘존재하는 이것은 있다.’라고 분명히 안다. 아난다여, 이렇게도 사실에 따르고, 전도되지 않았고 청정한 공(空)에 들어감이 있다.」
8. 앙굴리말라 존자는 해탈락(解脫樂)을 경험하면서 감흥을 읊음 ― 「잘 왔다. 사라진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나에게 잘못 안내된 것이 아니다. 잘 분별 된 법들에서 으뜸에 도달했다. 잘 왔다. 사라진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나에게 잘못 안내된 것이 아니다. 삼명(三明)을 성취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현했다.」
※ 해탈락(解脫樂) ⇒ 「불교입문(2-사실) 미리보기(210311) - 삼법인[4]락(樂)-락의 영역에서의 진보」(첨부) 참조 ☞ http://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9_03&wr_id=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