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지마 니까야 관통 법회 - 94. 고따무카 경[부처님의 제자가 설한 경 또는 사후에 설해진 경](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23…
▣ 맛지마 니까야 관통 법회 - 94. 고따무카 경[부처님의 제자가 설한 경 또는 사후에 설해진 경](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230517)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MktF56ItjKw
부처님 사후에 우데나 존자와 고따무카 바라문 간의 일화입니다. 우데나 존자가 세상에 있는 네 부류의 사람과 두 부류의 무리를 소개하여 고따무카 바라문을 귀의케 하는데, 경의 큰 주제는 ①자신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여 스스로 힘든 삶을 사는 자 등 네 부류의 사람에 대한 설명입니다. 고따무카 바라문은 우데나 존자에게 귀의하여 재가 신자가 되기를 청하지만, 우데나 존자는 자기가 아니라 부처님을 의지처로 삼으라고 말합니다. 특히, 부처님은 이미 완전히 열반하신 다음인데, 스님이 아니라 법의 주인인 부처님을 의지처로 삼는 사람이 불교 신자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또한, 제자가 설한 경이 부처님이 설한 경과 대등하게 니까야에 속해 있는 이유도 설명하였습니다.
• 부처님 사후에 우데나 존자와 고따무카 바라문 간의 일화
1. 걷고 있던 두 사람이 만나서 대화하는 가운데 고따무카 바라문이 주제를 발의함 ― 법다운 유행승(遊行僧)은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우데나 존자 또는 그런 법을 가진 자를 보지 못해서일 것임.
; paribbaja → paribbāja = paribbājaka
; paribbājaka: a wandering religious mendicant. (m.) 유행승(遊行僧-떠도는 수행자) → 걷고 있던 가운데 만난 우데나 존자를 유행승이라고 표현한 것
2. 거처에 들어간 두 사람은 같은 주제로 대화를 나누는데, 인정되어야 하는 것은 인정하고 거부되어야 하는 것은 거부하고, 말한 것의 의미를 모르면 거기서 ‘대덕이시여, 어떻게 이렇습니까? 이것의 의미는 무엇입니까?’라고 더 되물어볼 것이 전제된 대화임.
3. 우데나 존자가 세상에 있는 네 부류의 사람을 소개함
①자신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여 스스로 힘든 삶을 사는 자,
②남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여 남을 힘들게 하는 자,
③자신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여 스스로 힘든 삶을 사는 자이면서 남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여 남을 힘들게 하는 자,
④자신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지 않아 스스로 힘든 삶을 살지 않는 자이면서 남을 괴롭히는 실천을 하지 않아 남을 힘들게 하지 않는 자 → 지금여기에서 원하지 않는 자, 꺼진 자, 청량한 자, 즐거움을 경험하는 자여서 스스로 성스러운 존재로 머묾
4. 누가 마음에 드는지 묻고 고따무카 바라문은 ①②③의 사람은 마음에 들지 않고, ④의 사람이 마음에 든다고 대답함
(우데나 존자) 이 세 사람은 왜 그대의 마음에 들지 않습니까?
(고따무카 바라문)
• 세 사람 ― 마음에 들지 않는 고통을 주고 괴롭혀서 마음에 들지 않음
• 네 번째 사람 ― 마음에 들지 않는 고통을 주지 않고 괴롭히지 않아서 마음에 듦
5. 우데나 존자는 두 가지 무리를 소개함
① 보석과 귀걸이에 대한 친밀에 물든 무리 ― 자식과 아내, 하녀와 하인, 밭과 대지, 금과 은을 추구
② 보석과 귀걸이에 대한 친밀에 물들지 않은 무리 ― 자식과 아내, 하녀와 하인, 밭과 대지, 금과 은을 버리고서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함 ― 네 번째 사람
; 탐(貪-rāga) → 탐(貪) 있음(sarāga) → 친밀(親密-sārāga) ↔ 이탐(離貪-virāga)
; 해피스님의 십이연기 특강 ― 탐진치 맛보기2. 친밀과 대응관계(근본경전연구회 190410) ☞ http://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4_05&wr_id=54
→ 그대는 두 무리 중에서 어떤 무리 가운데 어떤 사람을 많이 봅니까?
(고따무카 바라문) 보석과 귀걸이에 대한 친밀에 물들지 않은 무리 가운데에서 네 번째 사람을 많이 봄
(우데나 존자) “그런데도(*) 바라문이여, 이제 그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 ‘우리는 이렇게 압니다. ― ‘반갑습니다, 사문이여. 여기서 나는 ‘법다운 유행승(遊行僧-떠도는 수행자)은 없다.’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존자 같은 분을 만나지 못해서일 것입니다. 또는 여기서 그런 법을 가진 자를 보지 못해서일 것입니다.’”
(*) ‘보석과 귀걸이에 대한 친밀에 물들지 않은 무리 가운데에서 네 번째 사람을 많이 보면서도’
(고따무카 바라문) 도움이 필요하다는 말을 그렇게 표현한 것일 뿐, ‘법다운 유행승은 있다.’라고 생각함 → 네 가지 사람에 대한 상세한 분석을 요청
6. 고따무카 바라문이 네 가지 사람에 대해 상세히 분석함
; 이 주제를 직접 설명하는 경으로 (AN 4.198-자기를 괴롭히는 자 경)이 있고, (MN 51-깐다라까 경)/(MN 60-흠 없음 경)/(MN 94-고따무까 경)에 반복하여 나타남
• (AN 4.198-자기를 괴롭히는 자 경) ☞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8_08_10&wr_id=9
• (MN 51-깐다라까 경) ☞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5_06_01&wr_id=2
• (MN 60-흠 없음 경) ☞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5_06_10&wr_id=4
7. 고따무카 바라문은 우데나 존자에게 귀의하여 재가 신자가 되기를 청하지만, 우데나 존자는 자기가 아니라 자기가 의지처로 삼은 그분 세존을 의지처로 삼으라고 일러줌. 고따무카 바라문은 아라한-정등각인 그분 고따마 존자께서는 지금 어디에 계시느냐고 묻고 우데나 존자는 완전히 열반하셨다고 알려줌.
▣ 주제의 확장 ― (82) 「부처님의 사후에 설해진 경들」 ☞ http://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2_11&wr_id=230
; 스님이 아니라 법의 주인인 부처님을 의지처로 삼는 사람이 불교 신자입니다. 지금 우리도 스님이 아니라 부처님을 의지처로 살아가야 바른 믿음입니다.
8. 고따무카 바라문은 부처님이 아무리 먼 곳에 계신다고 해도 찾아가 뵐 것인데, 비록 돌아가셨다고 해도 불(佛)-법(法)-승(僧) 삼보(三寶)에 귀의함
; 이 경은 부처님 사후에 설해진 경이고 동시에 부처님이 아닌 제자에 의해서 설해진 경입니다. 제자가 설한 경이 부처님이 설한 경과 대등하게 니까야에 속해 있는 이유를 설명하였는데, (AN 8.8-웃따라 실패 경)이 말하는 하나의 무더기에서 가져온 가르침이기 때문입니다. ☞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9_06_01&wr_id=4
그렇다면 지금 우리도 하나의 무더기에서 가져와서 법을 설하면, 그것은 그대로 부처님 가르침입니다.
9. 앙가의 왕에게서 매일 지속해서 받는 보시를 나누어 우데나 존자에게 지속해서 보시하겠다고 말함 → 우데나 존자는 금과 은을 받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대답함 → 고따무카 바라문은 우데나 존자를 위해 승원을 지어드리겠다고 하지만 우데나 존자는 빠딸리뿟따의 상가를 위한 강당을 지을 것을 추천함 → 고따무카 바라문이 빠딸리뿟따의 상가를 위한 강당을 지음 → 지금 그것은 ‘고따무키’라고 불림
; 빠딸리뿟따의 상가라는 언급에서도 이 경은 부처님 사후에 설해진 경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ghoṭamukha + in → ghoṭamukhin(고따무카의 것-소유) → (주격) ghoṭamukh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