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saṅgāravasuttaṃ (MN 100-상가라와 경) 473-474
이렇게 나는 들었다. ― 한때 세존은 꼬살라에서 큰 비구 상가와 함께 돌아다니며 살고 있었다. 그때 불(佛)과 법(法)과 승(僧)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가진 다난자니라는 바라문 여인이 짠짤리깝빠에 살고 있었다. 그때 다난자니 바라문 여인이 발을 헛디뎌 비틀거리면서 “그분 세존(世尊)-아라한(阿羅漢)-정등각(正等覺)께 절합니다. 그분 세존-아라한-정등각께 절합니다. 그분 세존-아라한-정등각께 절합니다.”라고 세 번 감흥을 읊었다.
그때 세 가지 베다와 제사어휘와 문자와 어원과 다섯 번째로 역사를 통달했고, 베다의 문장에 숙달됐고, 문법을 알고, 대중철학과 대인상(大人相)에 대해 부족함이 없는 상가라와라는 젊은 바라문이 짠짤리깝빠에 살고 있었다. 젊은 바라문 상가라와가 다닌자니 바라문 여인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듣고는 다난자니 바라문 여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 “이 다난자니 바라문 여인은 저급하다. 이 다난자니 바라문 여인은 바깥의 사람이다. (삼명) 바라문들 가운데 있으면서, 삭발한 사문을 칭찬하는 말을 한다.”라고. “잘생긴 젊은이여, 정말 그대는 그분 세존의 계(戒)와 혜(慧)를 모릅니다. 만약, 잘생긴 젊은이여, 그대가 그분 세존의 계와 혜를 안다면, 잘생긴 젊은이여, 그분 세존을 비난하고 질책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못할 겁니다.” “그렇다면, 여사님, 사문 고따마가 짠짤리깝빠에 오면 저에게 알려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잘생긴 분이여”라고 다난자니 바라문 여인은 젊은 바라문 상가라와에게 대답했다.
꼬살라에서 차츰차츰 움직이던 세존이 짠짤리깝빠에 도착했다. 거기서 세존은 짠짤리깝빠에 있는 또데이야 바라문의 망고숲에 머물렀다. 다난자니 바라문 여인은 짠짤리깝빠에 도착한 세존이 또데이야 바라문의 망고 숲에 머물고 있다고 들었다. 다난자니 바라문 여인은 젊은 바라문 상가라와에게 갔다. 가서는 젊은 바라문 상가라와에게 “잘생긴 젊은이여, 그분 세존께서 짠짤리깝빠에 도착해서 또데이야 바라문의 망고 숲에 머물고 있습니다. 이제, 잘생긴 젊은이여, 적당한 시간을 생각하세요.”
“알겠습니다, 여사님.”이라고 젊은 바라문 상가라와는 다난자니 바라문 여인에게 대답한 뒤 세존에게 왔다. 와서는 세존과 함께 인사를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만한 이야기를 주고받은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젊은 바라문 상가라와는 세존에게 이렇게 말했다. ― “고따마 존자여, 지금여기에서 실다운 지혜로 성취의 끝에 닿아서 범행의 근본을 공언하는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있습니다. 거기서, 고따마 존자여, 고따마 존자는 지금여기에서 실다운 지혜로 성취의 끝에 닿아서 범행의 근본을 공언하는 사문-바라문들 가운데 한 사람입니까?”
“바라드와자여, 지금여기에서 실다운 지혜로 성취의 끝에 닿아서 범행의 근본을 공언하는 사문-바라문들에게도 차이가 있다고 나는 말한다. 바라드와자여, 전승을 잇는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있다. 그들은 전승에 의해 지금여기에서 실다운 지혜로 성취의 끝에 닿아서 범행의 근본을 공언하는데, 예를 들면, 삼명(三明) 바라문이다. 그리고 바라드와자여, 온전하게 오직 믿음에 의해 지금여기에서 실다운 지혜로 성취의 끝에 닿아서 범행의 근본을 공언하는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있는데, 예를 들면, 딱끼-위망시이다, 바라드와자여,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서 스스로 법을 실답게 안 뒤에, 지금여기에서 실다운 지혜로 성취의 끝에 닿아서 범행의 근본을 공언하는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있다. 거기서, 바라드와자여, 나는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서 스스로 법을 실답게 안 뒤에, 지금여기에서 실다운 지혜로 성취의 끝에 닿아서 범행의 근본을 공언하는 사문-바라문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때, 바라드와자여, 내가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서 스스로 법을 실답게 안 뒤에, 지금여기에서 실다운 지혜로 성취의 끝에 닿아서 범행의 근본을 공언하는 사문-바라문들 가운데 한 사람이라는 것은 이런 방법으로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