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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2-484 지금여기에서 실다운 지혜로 완전한 궁극의 경지를 성취해서 범행의 근본을 공언하는 방법(깨달음의 과정 - 고행 이…
482. “tassa mayhaṃ, bhāradvāja, etadahosi — ‘ye kho keci atītamaddhānaṃ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opakkamikā dukkhā tibbā kharā kaṭukā vedanā vedayiṃsu, etāvaparamaṃ, nayito bhiyyo; yepi hi keci anāgatamaddhānaṃ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opakkamikā dukkhā tibbā kharā kaṭukā vedanā vedayissanti, etāvaparamaṃ, nayito bhiyyo; yepi hi keci etarahi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opakkamikā dukkhā tibbā kharā kaṭukā vedanā vedayanti, etāvaparamaṃ, nayito bhiyyo. na kho panāhaṃ imāya kaṭukāya dukkarakārikāya adhigacchāmi uttari manussadhammā alamariyañāṇadassanavisesaṃ. siyā nu kho añño maggo bodhāyā’ti? tassa mayhaṃ bhāradvāja, etadahosi — ‘abhijānāmi kho panāhaṃ pitu sakkassa kammante sītāya jambucchāyāya nisinno vivicceva kāmehi vivicca akusalehi dhammehi savitakkaṃ savicāraṃ vivekajaṃ pītisukhaṃ paṭham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itā. siyā nu kho eso maggo bodhāyā’ti? tassa mayhaṃ, bhāradvāja, satānusāri viññāṇaṃ ahosi — ‘eseva maggo bodhāyā’ti. tassa mayhaṃ, bhāradvāja, etadahosi — ‘kiṃ nu kho ahaṃ tassa sukhassa bhāyāmi yaṃ taṃ sukhaṃ aññatreva kāmehi aññatra akusalehi dhammehī’ti? tassa mayhaṃ, bhāradvāja, etadahosi — ‘na kho ahaṃ tassa sukhassa bhāyāmi yaṃ taṃ sukhaṃ aññatreva kāmehi aññatra akusalehi dhammehī’ti.
그런 나에게, 바라드와자여,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과거의 어떤 사문들이나 바라문들이 경험했던 고행에 의해 야기되는 괴롭고 예리하고 거칠고 심한 느낌 중에서 이것이 가장 혹독한 것이어서 이것을 넘어서는 것은 이제 없다. 미래의 어떤 사문들이나 바라문들이 경험할 고행에 의해 야기되는 괴롭고 예리하고 거칠고 심한 느낌 중에서 이것이 가장 혹독한 것이어서 이것을 넘어서는 것은 이제 없다. 현재의 어떤 사문들이나 바라문들이 경험하는 고행에 의해 야기되는 괴롭고 예리하고 거칠고 심한 느낌 중에서 이것이 가장 혹독한 것이어서 이것을 넘어서는 것은 이제 없다. 그러나 나는 이 심한, 행하기 어려운 것을 행하면서도 인간을 넘어선 법인 성자들에게 적합한 차별적 지(知)와 견(見)을 얻지 못했다. 참으로 깨달음을 위한 다른 길이 있을까?’라고. 그런 나에게, 바라드와자여,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그런데 나는 아버지의 삭까 족의 행사에서 시원한 잠부 나무 그늘에 앉아있을 때 소유의 삶에서 벗어나고, 불선법(不善法)들에서 벗어나서, 위딱까가 있고 위짜라가 있고 떨침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의 초선(初禪)을 성취하여 머물렀던 것을 기억한다. 참으로 이것이 깨달음을 위한 길일까?’라고. 그런 나에게. 바라드와자여, 기억을 따르는 식(識)이 있었다. — ‘오직 이것이 깨달음을 위한 길이다.’라고. 그런 나에게, 바라드와자여,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그런데 나는 왜 소유의 삶과 다른 곳, 불선법(不善法)들과 다른 곳에 있는 행복을 두려워하는가?’라고. 그런 나에게, 바라드와자여,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나는 소유의 삶과 다른 곳, 불선법(不善法)들과 다른 곳에 있는 행복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라고."
483. “tassa mayhaṃ, bhāradvāja, etadahosi — ‘na kho taṃ sukaraṃ sukhaṃ adhigantuṃ evaṃ adhimattakasimānaṃ pattakāyena. yaṃnūnāhaṃ oḷārikaṃ āhāraṃ āhāreyyaṃ odanakummāsan’ti. so kho ahaṃ, bhāradvāja, oḷārikaṃ āhāraṃ āhāresiṃ odanakummāsaṃ. tena kho pana maṃ, bhāradvāja, samayena pañcavaggiyā bhikkhū paccupaṭṭhitā honti — ‘yaṃ kho samaṇo gotamo dhammaṃ adhigamissati taṃ no ārocessatī’ti. yato kho ahaṃ, bhāradvāja, oḷārikaṃ āhāraṃ āhāresiṃ odanakummāsaṃ, atha me te pañcavaggiyā bhikkhū nibbijja pakkamiṃsu — ‘bāhulliko samaṇo gotamo padhānavibbhanto āvatto bāhullāyā’ti.
그런 나에게, 바라드와자여,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이렇게 극도로 여윈 몸을 가지고 그런 행복을 얻기는 쉽지 않다. 나는 덩어리진 음식, 쌀밥과 응유를 먹어야겠다.’라고. 그런 나는, 바라드와자여, 덩어리진 음식, 쌀밥과 응유를 먹었다. 그때, 바라드와자여, 나에게 ‘사문 고따마는 법을 증득할 것이다. 그 법을 우리에게 말해줄 것이다.’라면서 함께하는 다섯 비구가 있었다. 바라드와자여, 내가 덩어리진 음식, 쌀밥과 응유를 먹었을 때, 그 함께하는 다섯 비구는 나에게 ‘사문 고따마는 풍족하게 사는 자이다. 노력을 포기하고, 풍족한 삶으로 되돌아갔다.’라고 염오하고 떠나갔다.
“so kho ahaṃ, bhāradvāja, oḷārikaṃ āhāraṃ āhāretvā balaṃ gahetvā vivicceva kāmehi ... pe ... paṭham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āsiṃ. vitakkavicārānaṃ vūpasamā ajjhattaṃ sampasādanaṃ cetaso ekodibhāvaṃ avitakkaṃ avicāraṃ samādhijaṃ pītisukhaṃ dutiyaṃ jhānaṃ... tatiyaṃ jhānaṃ... catutth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āsiṃ.
그런 나는, 바라드와자여, 덩어리진 음식을 먹고서 힘을 얻은 뒤에 소유의 삶에서 벗어나고, 불선법(不善法)들에서 벗어나서, 위딱까가 있고 위짜라가 있고 떨침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의 초선(初禪)을 성취하여 머물렀다. 위딱까와 위짜라의 가라앉음으로 인해, 안으로 평온함과 마음의 집중된 상태가 되어, 위딱까도 없고 위짜라도 없이, 삼매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의 제이선(第二禪)을 성취하여 머물렀다. 기쁨의 바램으로부터 평정하게 머물고, 사띠-삼빠자나 하면서 머물고, 몸으로 즐거움을 경험한다. 성인들이 '평정을 가진 자, 사띠를 가진 자, 즐거움에 머무는 자[사념락주(捨念樂住)].'라고 말하는 제삼선(第三禪)을 성취하여 머물렀다. 즐거움의 버림과 괴로움의 버림으로부터, 이미 만족과 불만들의 줄어듦으로부터, 괴로움도 즐거움도 없고 평정과 청정한 사띠[사념청정(捨念淸淨)]의 제사선(第四禪)을 성취하여 머물렀다.
“so evaṃ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pubbenivāsānussatiñāṇāya cittaṃ abhininnāmesiṃ. so anekavihitaṃ pubbenivāsaṃ anussarāmi, seyyathidaṃ — ekampi jātiṃ dvepi jātiyo ... pe ... iti sākāraṃ sauddesaṃ anekavihitaṃ pubbenivāsaṃ anussarāmi. ayaṃ kho me, bhāradvāja, rattiyā paṭhame yāme paṭhamā vijjā adhigatā, avijjā vihatā, vijjā uppannā; tamo vihato, āloko uppanno; yathā taṃ appamattassa ātāpino pahitattassa viharato.
나는 이렇게 심(心)이 삼매를 닦고, 청정하고 아주 깨끗하고 침착하고 오염원이 없고 유연하고 준비되고 안정되고 흔들림 없음에 도달했을 때, 이전의 존재 상태에 대한 기억의 앎[전생의 기억의 앎]으로 심(心)을 기울게 했다. 나는 여러 이전의 존재 상태[전생]를 기억했다. 즉 — 한 번의 생, 두 번의 생, 세 번의 생, 네 번의 생, 다섯 번의 생, 열 번의 생, 스무 번의 생, 서른 번의 생, 마흔 번의 생, 쉰 번의 생, 백 번의 생, 천 번의 생, 십만 번의 생, 세계가 자라나는[퇴보] 여러 겁, 세계가 줄어드는[진화] 여러 겁, 세계가 자라나고 줄어드는 여러 겁을 기억했다. — ‘이러이러한 곳에서 나는 이런 이름이었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였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행복과 괴로움을 이렇게 경험했고, 수명의 한계는 이러했다. 나는 거기에서 죽어 이러이러한 곳에 태어났다. 그곳에서 나는 이런 이름이었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였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행복과 괴로움을 이렇게 경험했고, 수명의 한계는 이러했다. 나는 거기에서 죽어 여기에 태어났다.’라고. 이처럼 상태와 함께, 상세한 설명과 함께 여러 이전의 존재 상태[전생]를 기억했다. 바라드와자여, 이것이 밤의 초삼분(初三分)에 나에게 얻어진 첫 번째 명(明)이다.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굳세게 머무는 자에게 무명(無明)이 부서지고 명(明)이 생긴 것이다. 어둠이 부서지고 빛이 생긴 것이다.
484. “so evaṃ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sattānaṃ cutūpapātañāṇāya cittaṃ abhininnāmesiṃ. so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satte passāmi cavamāne upapajjamāne hīne paṇīte suvaṇṇe dubbaṇṇe sugate duggate yathākammūpage satte pajānāmi ... pe ... ayaṃ kho me, bhāradvāja, rattiyā majjhime yāme dutiyā vijjā adhigatā, avijjā vihatā, vijjā uppannā; tamo vihato, āloko uppanno; yathā taṃ appamattassa ātāpino pahitattassa viharato.
나는 이렇게 심(心)이 삼매를 닦고, 청정하고 아주 깨끗하고 침착하고 오염원이 없고 유연하고 자기 활동성을 회복하고 안정되고 흔들림 없음에 도달했을 때, 죽고 다시 태어남의 앎으로 심(心)을 기울게 했다. 나는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천안(天眼)]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고, 저열하고 뛰어나고, 잘생기고 못생기고, 좋은 곳[선처(善處)]에 가고 나쁜 곳[악처(惡處)]에 가는 것을 보았다. 업에 따라서 가는 중생들을 분명히 알았다. — ‘이들은 신(身)으로 나쁜 삶을 살고 구(口)로 나쁜 삶을 살고 의(意)로 나쁜 삶을 살고, 성자들을 비방하고, 삿된 견해를 가졌고, 사견업(邪見業)을 지었다. 이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상실과 비탄의 상태, 비참한 존재, 벌 받는 상태, 지옥에 태어났다. 그러나 이들은 신(身)으로 좋은 삶을 살고 구(口)로 좋은 삶을 살고 의(意)로 좋은 삶을 살고, 성자들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지니고, 정견업(正見業)을 지었다. 이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하늘 세상에 태어났다.’라고. 이처럼 나는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고, 저열하고 뛰어나고, 잘생기고 못생기고, 좋은 곳에 가고 나쁜 곳에 가는 것을 보았다. 업에 따라서 가는 중생들을 분명히 알았다. 바라드와자여, 이것이 밤의 중삼분(中三分)에 나에게 얻어진 두 번째 명(明)이다.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굳세게 머무는 자에게 무명(無明)이 부서지고 명(明)이 생긴 것이다. 어둠이 부서지고 빛이 생긴 것이다.
“so evaṃ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āsavānaṃ khayañāṇāya cittaṃ abhininnāmesiṃ. so ‘idaṃ dukkhan’ti yathābhūtaṃ abbhaññāsiṃ, ‘ayaṃ dukkhasamudayo’ti yathābhūtaṃ abbhaññāsiṃ, ‘ayaṃ dukkhanirodho’ti yathābhūtaṃ abbhaññāsiṃ, ‘ayaṃ dukkhanirodhagāminī paṭipadā’ti yathābhūtaṃ abbhaññāsiṃ; ‘ime āsavā’ti yathābhūtaṃ abbhaññāsiṃ, ‘ayaṃ āsavasamudayo’ti yathābhūtaṃ abbhaññāsiṃ, ‘ayaṃ āsavanirodho’ti yathābhūtaṃ abbhaññāsiṃ, ‘ayaṃ āsavanirodhagāminī paṭipadā’ti yathābhūtaṃ abbhaññāsiṃ. tassa me evaṃ jānato evaṃ passato kāmāsavāpi cittaṃ vimuccittha, bhavāsavāpi cittaṃ vimuccittha, avijjāsavāpi cittaṃ vimuccittha. vimuttasmiṃ vimuttamiti ñāṇaṃ ahosi. ‘khīṇā jāti, vusitaṃ brahmacariyaṃ, kataṃ karaṇīyaṃ, nāparaṃ itthattāyā’ti abbhaññāsiṃ. ayaṃ kho me, bhāradvāja, rattiyā pacchime yāme tatiyā vijjā adhigatā, avijjā vihatā, vijjā uppannā; tamo vihato, āloko uppanno; yathā taṃ appamattassa ātāpino pahitattassa viharato”ti.
나는 이렇게 심(心)이 삼매를 닦고, 청정하고 아주 깨끗하고 침착하고 오염원이 없고 유연하고 준비되고 안정되고 흔들림 없음에 도달했을 때, 번뇌들의 부숨의 앎으로 심(心)을 기울게 했다. 나는 ‘이것이 고(苦)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았고, ‘이것이 고집(苦集)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았고, ‘이것이 고멸(苦滅)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았고, ‘이것이 고멸(苦滅)로 이끄는 실천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았다. ‘이것이 번뇌[루(漏)]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았고, ‘이것이 번뇌의 집(集)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았고, ‘이것이 번뇌의 멸(滅)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았고, ‘이것이 번뇌의 멸(滅)로 이끄는 실천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았다. 내가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볼 때 소유의 번뇌[욕루(慾漏)]들로부터도 심(心)이 해탈했고, 존재의 번뇌[유루(有漏)]들로부터도 심(心)이 해탈했고, 무명(無明)의 번뇌[무명루(無明漏)]들로부터도 심(心)이 해탈했다. 해탈했을 때 ‘나는 해탈했다’라는 앎이 있었다. '태어남은 다했다. 범행은 완성되었다. 해야 할 일을 했다. 다음에는 현재 상태[유(有)]가 되지 않는다.'라고 분명히 알았다. 바라드와자여, 이것이 밤의 후삼분(後三分)에 나에게 얻어진 세 번째 명(明)이다.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굳세게 머무는 자에게 무명(無明)이 부서지고 명(明)이 생긴 것이다. 어둠이 부서지고 빛이 생긴 것이다.”
“so evaṃ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pubbenivāsānussatiñāṇāya cittaṃ abhininnāmesiṃ. so anekavihitaṃ pubbenivāsaṃ anussarāmi, seyyathidaṃ — ekampi jātiṃ dvepi jātiyo ... pe ... iti sākāraṃ sauddesaṃ anekavihitaṃ pubbenivāsaṃ anussarāmi. ayaṃ kho me, bhāradvāja, rattiyā paṭhame yāme paṭhamā vijjā adhigatā, avijjā vihatā, vijjā uppannā; tamo vihato, āloko uppanno; yathā taṃ appamattassa ātāpino pahitattassa viharato.
나는 이렇게 심(心)이 삼매를 닦고, 청정하고 아주 깨끗하고 침착하고 오염원이 없고 유연하고 준비되고 안정되고 흔들림 없음에 도달했을 때, 이전의 존재 상태에 대한 기억의 앎[전생의 기억의 앎]으로 심(心)을 기울게 했다. 나는 여러 이전의 존재 상태[전생]를 기억했다. 즉 — 한 번의 생, 두 번의 생, 세 번의 생, 네 번의 생, 다섯 번의 생, 열 번의 생, 스무 번의 생, 서른 번의 생, 마흔 번의 생, 쉰 번의 생, 백 번의 생, 천 번의 생, 십만 번의 생, 세계가 진화하는[줄어드는] 여러 겁, 세계가 퇴보하는[자라나는] 여러 겁, 세계가 진화하고 퇴보하는 여러 겁을 기억했다. — ‘이러이러한 곳에서 나는 이런 이름이었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였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행복과 괴로움을 이렇게 경험했고, 수명의 한계는 이러했다. 나는 거기에서 죽어 이러이러한 곳에 태어났다. 그곳에서 나는 이런 이름이었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였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행복과 괴로움을 이렇게 경험했고, 수명의 한계는 이러했다. 나는 거기에서 죽어 여기에 태어났다.’라고. 이처럼 상태와 함께, 상세한 설명과 함께 여러 이전의 존재 상태[전생]를 기억했다.
왕자여, 이것이 밤의 초삼분(初三分)에 나에게 얻어진 첫 번째 명(明)이다.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굳세게 머무는 자에게 무명(無明)이 부서지고 명(明)이 생긴 것이다. 어둠이 부서지고 빛이 생긴 것이다.
[왕자여, 가 아니라 바라드와자여, 가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