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N 102-다섯이면서 셋 경) 복습
(MN 102-다섯이면서 셋 경) 복습
• 공부의 전개 ― 「(MN25-미끼 경) → 십사무기(十事無記) → (SN 24-견해 상윳따) → (DN 1-범망경) → (MN 102-다섯이면서 셋 경)」
Ⅰ. (MN25-미끼 경)
1. 사슴 사냥꾼이 미끼를 놓는 목적 ― 미끼에 유인되어 정신없이 먹고 주의를 놓쳐 방일해진 사슴을 원하는 대로 할 수 있기 위함.
2. 사슴 사냥꾼의 비유
1) 첫 번째 사슴 무리 ― 미끼에 유인되어 사슴 사냥꾼의 위력에서 벗어나지 못함
2) 두 번째 사슴 무리 ― 첫 번째 사슴 무리를 교훈 삼아 미끼 음식을 삼가고 숲에 있는 소굴로 들어가서 머물지만, 풀과 물이 소진되어 여위었을 때 미끼에 유인되어 사슴 사냥꾼의 위력에서 벗어나지 못함
3) 세 번째 사슴 무리 ― 미끼 가까이에 거처를 만든 뒤 미끼를 먹으면서도 주의를 놓치지 않고 방일하지 않아 사슴 사냥꾼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게 되지 않았지만, 사슴 사냥꾼이 전체 영역을 둘러싸는 큰 그물로 둘러싸자 잡히게 되어 사슴 사냥꾼의 위력에서 벗어나지 못함
4) 네 번째 사슴 무리 ― 사슴 사냥꾼이 가지 않는 곳에 거처를 만든 뒤 미끼를 먹으면서도 주의를 놓치지 않고 방일하지 않아 사슴 사냥꾼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게 되자 사슴 사냥꾼이 이 네 번째 무리를 무시하여 사슴 사냥꾼의 위력에서 벗어남
3. 비유의 의미 ― ①미끼 = 다섯 가지 소유의 사유에 묶인 것, ②사슴 사냥꾼 = 마라 빠삐만뜨, ③사슴 사냥꾼의 무리 = 마라의 무리, ④사슴 무리 = 사문-바라문들
4. 사문-바라문들
1) 첫 번째 사문-바라문들 ― 마라가 놓은 이런저런 미끼, 세상의 물질적인 이런저런 것들에 유인되어 마라의 위력에서 벗어나지 못함
2) 두 번째 사문-바라문들 ― 첫 번째 사문-바라문들을 교훈 삼아 모든 미끼 음식들, 세상의 물질적인 것들을 삼가고 숲에 있는 거처로 들어가서 머물지만, 풀과 물이 소진되어 여위었을 때 마라가 놓은 미끼에 유인되어 마라의 위력에서 벗어나지 못함
3) 세 번째 사문-바라문들 ― 마라가 놓은 이런저런 미끼, 세상의 물질적인 이런저런 것들 가까이에 거처를 만든 뒤 미끼를 먹으면서도 주의를 놓치지 않고 방일하지 않아 사슴 사냥꾼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게 되지 않았지만, ‘세상은 영원하다.’라고도,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라고도, ‘세상은 끝이 있다.’라고도, ‘세상은 끝이 없다.’라고도, ‘그 생명이 그 몸이다.’라고도, ‘다른 생명과 다른 몸이다.’라고도,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한다.’라고도,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도,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고도,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도 하는 견해를 가져 마라의 위력에서 벗어나지 못함
• (SN 44-무기(無記) 상윳따) ― 설명하지 않는 이유 ― 헤아려지지 않는 영역-이익되지 않는 시도 → 고(苦)와 고멸(苦滅)의 명제에 접근하지 않는 주제 ☞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6_04_10
• (SN 33-왓차곳따 상윳따) ― 왜 생겨나는가? ―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과 그의 집(集)-멸(滅)-도(道)에 대한 무지(無知)-통찰 없음-관통 없음-깨닫지 못함-꿰뚫지 못함-통찰력 없음-분별력 없음-식별하지 못함-안정된 관찰 없음-창의성[대처능력] 없음-실현 없음 ☞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6_03_12
4) 네 번째 사문-바라문들 ― 마라와 마라의 무리가 가지 않는 곳에 거처를 만든 뒤 마라가 놓은 이런저런 미끼, 세상의 물질적인 이런저런 것들을 먹으면서도 주의를 놓치지 않고 방일하지 않은 그들은 마라의 위력에서 벗어남
5. 마라와 마라의 무리가 가지 않는 곳
1) 초선(初禪)-제이선(第二禪)-제삼선(第三禪)-제사선(第四禪)-공무변처(空無邊處)-식무변처(識無邊處)-무소유처(無所有處)-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를 성취하여 머묾 → 「이것이 ‘비구는 마라를 눈이 멀고, 발이 없게 만들었다. 마라의 눈을 부수었기 때문에 빠삐만뜨가 볼 수 없는 곳으로 갔다.’라고 불린다.」
2) 상수멸(想受滅)을 성취하여 머물면서 지혜로써 보아서 번뇌가 다함 → 「이것이 ‘비구는 마라를 눈이 멀고, 발이 없게 만들었다. 마라의 눈을 부수었기 때문에 빠삐만뜨가 볼 수 없는 곳으로 갔고, 세상에 대한 강한 붙잡음을 건넜다.’라고 불린다.」
※ 「bhikkhu andhamakāsi māraṃ, apadaṃ vadhitvā māracakkhuṃ adassanaṃ gato pāpimato 비구는 마라를 눈이 멀고, 발이 없게 만들었다. 마라의 눈을 부쉈기 때문에 빠삐만뜨가 볼 수 없는 곳으로 갔다.」의 용례
① (MN 25-미끼 경)
- 초선(初禪)~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 ― 용례의 서술
- 상수멸(想受滅) ― ‘ ~ 세상에 대한 강한 붙잡음을 건넜다.’
② (MN 26-덫 경)
- 초선(初禪)~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 ― 용례의 서술
- 상수멸(想受滅) ― ‘ ~ 세상에 대한 강한 붙잡음을 건넜다. 그는 확신을 가지고서 가고, 확신을 가지고서 서고, 확신을 가지고서 앉고, 확신을 가지고서 눕는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빠삐만뜨를 피했다.
③ (AN 9.39-신과 아수라의 전쟁 경)
- 초선(初禪)~제사선(第四禪) ― 두려움의 피난처에 가서 스스로 머문다. 마라와 함께해야 하는 것이 없다.
- 공무변처(空無邊處)~상수멸(想受滅) ― 비구는 마라를 눈이 멀고, 발이 없게 만들었다. 마라의 눈을 부수었기 때문에 빠삐만뜨가 볼 수 없는 곳으로 갔고, 세상에 대한 강한 붙잡음을 건넜다.
Ⅱ. 십사무기(十事無記)
십사무기(十事無記)는 부처님이 답하지 않는 열 가지 주제입니다. 세상이 시간-공간적으로 끝이 있는지 없는지의 4가지, 생명과 몸의 일치 여부 2가지, 여래 곧 아라한의 사후 존재 양태 4가지입니다.
이때, 앞의 둘은 중생의 삶에 속한 주제라면 아라한의 사후 존재 양태는 중생의 삶을 벗어난 상태에 대한 관심입니다. 무명(無明)과 애(愛)가 해소되지 않은 중생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몸으로 가서 태어나지만, 무명과 애가 해소된 아라한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몸으로 가지 않아서 태어나지 않는데, 몸이 없는 즉 태어나지 않은 상태는 어떤 양태를 보여주는지에 대한 질문입니다.
그런데 많은 경들은 이런 4가지만을 주제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말하자면, 사사무기(四事無記)를 주제로 하는 경들이라고 할 텐데, 십사무기의 10가지 주제 가운데 중심이 되는 태어나지 않음을 통한 불사(不死)의 실현이라는 불교의 지향에 대한 궁금함입니다.
이렇게 십사무기는 사사무기를 포함하는 더 확장된 개념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십사무기(十事無記) ⊃ 사사무기(四事無記)」
한편, 십사무기를 포함하여 더 확장된 개념을 제시하는 경들도 있는데, (SN 24-견해 상윳따)의 경들입니다. 아(我)에 대한 4가지와 범행(梵行) 아닌 주장에 대한 4가지 그리고 십사무기를 더해 18가지 견해를 소개하는 제1품과 여기에 아(我)를 색(色)의 유무(有無)의 측면 4가지와 수(受)의 고(苦)-락(樂)의 측면 4가지를 더해 26가지 견해를 소개하는 제2품~제4품이어서 모두 96개의 경으로 구성됩니다.
제1품은 18가지 견해가 생기는 이유와 생기지 않는 방법을 설명한 뒤 예류자(預流者)를 정의합니다.
• 18가지 견해가 생기는 이유 ― 색(色)이 있을 때 색(色)을 집착하고 색(色)을 고집하여 이런 견해가 생김 … 수(受)-상(想)-행(行)-식(識)에 반복,
• 생기지 않는 방법 ― 무상(無常)-고(苦)-변하는 것(*)을 집착하지 않음
• 이런 경우들과 사성제(四聖諦)에 대한 불확실함을 버릴 때 → 「떨어지지 않는, 확실한, 깨달음을 겨냥한 예류자(預流者)」
(*) 무상(無常)-고(苦)-변하는 것 = ①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과 ②본 것-들은 것-닿아 안 것-인식한 것-얻은 것-조사한 것-의(意)로 접근한 것 ― ①지난 삶의 누적으로 형성된 오온(五蘊)과 ②오취온(五取蘊)의 활성화 과정 즉 내입처(內入處)-외입처(外入處)로 배분된 지금 삶의 과정으로 해석함.
제2품~제3품은 아(我)에 대해 죽은 뒤에 아픔이 없다는 공통점 위에서 색(色)의 유무(有無)의 측면 4가지[색(色)이 있는 아(我)-없는 아(我)-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아(我)-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아(我)]와 수(受)의 측면 4가지[오로지 즐거운 아(我)-오로지 괴로운 아(我)-즐겁기도 하고 괴롭기도 한 아(我)-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아(我)]의 8가지가 더해져 26가지로 반복하여 나타납니다.
이때, 세 품은 ‘고(苦)가 있을 때 ~ 견해가 생긴다(제2품).’, ‘무상(無常)한 것은 고(苦)다. 그것이 있을 때 ~ 견해가 생긴다(제3품).’, ‘(SN 22.59-무아상경)의 형태로 깨달음을 성취함(제4품)’의 형태로 차이를 보여줍니다.
이렇게 사사무기(四事無記)의 확장인 십사무기(十事無記)는 다시 (SN 24-견해 상윳따)로 확장됩니다. ― 「(SN 24-견해 상윳따) ⊃ 십사무기(十事無記) ⊃ 사사무기(四事無記)」
Ⅲ. 범망경(梵網經-brahmajālasuttaṃ)
● 도입
○ 숩삐야 유행승와 그의 제자인 젊은 브라흐마닷따
▷ 숩삐야 - 붓다를 비방하고 담마를 비방하고 상가를 비방함.
▷ 브라흐마닷따 - 붓다를 칭송하고 담마를 칭송하고 상가를 칭송함.
○ 남들의 비방과 칭송에 대한 부처님의 말씀
▷ 남들이 비방할 때 : 화를 내거나 불만스러워하거나 마음의 분노를 일으켜서는 안 됨[장애가 되어 내가 남들에게 말을 잘하고 있는지 잘못하고 있는지 알 수 없음]
→ 거짓을 거짓이라고 설명해야 함 ― ‘그래서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것은 거짓입니다. 우리에게는 이것이 없습니다. 또한, 이것은 우리에게서 찾아지지 않습니다.’라고.”
▷ 남들이 칭송할 때 : 기뻐하거나 만족스러워하거나 마음의 우쭐함을 일으켜서는 안 됨[장애가 되기 때문]
→ 사실을 사실이라고 설명해야 함 ― ‘그래서 이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참입니다. 우리에게는 이것이 있습니다. 또한, 이것은 우리에게서 찾아집니다.’라고.”
● 붓다에 대한 칭송 방법
• 계를 통한 칭송 ― 사소하고 비중이 적은 것
○ 짧은 길이의 계
○ 중간 길이의 계
○ 긴 길이의 계
• 법을 통한 칭송 → 이 경의 주제
― 여래가 스스로 실답게 알았기 때문에 실현한 뒤 선언한 법들
「“비구들이여, ①여래가 스스로 실답게 알았기 때문에 실현한 뒤 선언하였고, ②바르게 말하는 자는 그 법들로부터 사실에 따른 여래의 칭송을 말해야 하는 ③심오하고, 보기 어렵고, 깨닫기 어렵고, 평화롭고, 숭고하고, takka[애(愛)의 형성 과정]의 영역을 넘어섰고, 독창적이고, 현자에게만 경험될 수 있는 다른 법들이 있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①여래가 스스로 실답게 알았기 때문에 실현한 뒤 선언하였고, ②바르게 말하는 자는 그 법들로부터 사실에 따른 여래의 칭송을 말해야 하는 ③심오하고, 보기 어렵고, 깨닫기 어렵고, 평화롭고, 숭고하고, takka[애(愛)의 형성 과정]의 영역을 넘어섰고, 독창적이고, 현자에게만 경험될 수 있는 그 법들인가?”」
1. 18가지 과거에 속한 것들
“비구들이여, 18가지 기반에 의해 과거에 속하고, 과거에 대한 회의적 견해를 가졌고, 과거에 대한 여러 가지 교리를 선언하는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있다. 그러면 무엇에 근거하고 무엇에 의거 한 18가지 기반에 의해 그 사문-바라문들은 과거에 속하고, 과거에 대한 회의적 견해를 가졌고, 과거에 대한 여러 가지 교리를 선언하는가?”
1) 영속론들 - 네 가지를 기반으로 영속하는 아(我)와 세상을 선언함.
2) 일부영속-일부비영속론들 - 네 가지를 기반으로 아(我)와 세상이 일부는 영속하고 일부는 영속하지 않는다고 선언함.
3) 유한함-무한함의 이론들 - 네 가지를 기반으로 세상이 유한하거나 무한하다고 선언함.
4) 애매모호 한 이론들 - 네 가지를 기반으로 이런저런 것에 대해서 어지러운 말을 애매모호 하게 늘어놓음.
5) 무인무연론(無因無緣論)들 - 두 가지를 기반으로 아(我)와 세상은 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이 발생한다고 선언함.
2. 44가지 미래에 속하는 것들
“비구들이여, 44가지 기반에 의해 미래에 속하고, 미래에 대한 회의적 견해를 가졌고, 미래에 대한 여러 가지 교리를 선언하는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있다. 그러면 무엇에 근거하고 무엇에 의거 한 44가지 기반에 의해 그 사문-바라문들은 미래에 속하고, 미래에 대한 회의적 견해를 가졌고, 미래에 대한 여러 가지 교리를 선언하는가?”
1) 사후에 상(想)을 가진 아(我)를 설하는 이론 - 열여섯 가지를 기반으로 사후에 상(想)을 가진 아(我)를 선언함.
2) 사후에 상(想)을 가지지 않은 아(我)를 설하는 이론 - 여덟 가지를 기반으로 사후에 상(想)을 가지지 않은 아(我)를 선언함.
3) 사후에 상(想)을 가진 것도 아니고 상(想)을 가지지 않은 것도 아닌 아(我)를 설하는 이론 - 여덟 가지를 기반으로 사후에 상(想)을 가진 것도 아니고 상(想)을 가지지 않은 것도 아닌 아(我)를 선언함.
4) 단멸론(斷滅論) - 일곱 가지를 기반으로 존재하는 중생들의 단멸과 상실과 존재에서 벗어남을 선언함(sato sattassa ucchedaṃ vināsaṃ vibhavaṃ paññapenti).
5) 지금여기에서의 열반(涅槃)을 설하는 이론들 - 다섯 가지를 기반으로 지금여기에서의 구경(究竟)의 열반(涅槃)(paramadiṭṭhadhammanibbāna)을 선언함.
3. 62가지 견해에 대한 결론
비구들이여, 이런 62가지 기반에 의해 그 사문-바라문들은 과거에 속하고, 미래에 속하고, 과거와 미래에 속하고, 과거와 미래에 대한 회의적 견해를 가졌고, 과거와 미래에 대한 여러 가지 교리를 선언한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과거에 속하고, 미래에 속하고, 과거와 미래에 속하고, 과거와 미래에 대한 회의적 견해를 가졌고, 과거와 미래에 대한 여러 가지 교리를 선언하더라도 그것은 모두 이 62가지 기반에 의하는 것이다. 어떤 방법에 의해서도 여러 가지 교리의 선언들에게는 여기의 밖은 없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이것을 꿰뚫어 안다. ― ‘이렇게 붙잡고 이렇게 집착된 이 경우의 견해 때문에 이런 이끌림이 있고 이런 다시 태어남이 있다.’라고. 여래는 이것을 꿰뚫어 알고, 이보다 더 높은 것도 꿰뚫어 안다. 그러나 그 앎을 집착하지 않는다. 집착하지 않는 자에게 개별적으로 꺼짐이 알려진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수(受)의 자라남과 줄어듦과 매력과 위험과 해방을 있는 그대로 안 뒤에 집착 없이 해탈한 자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참으로 ①여래가 스스로 실답게 알았기 때문에 실현한 뒤 선언하였고, ②바르게 말하는 자는 그 법들로부터 사실에 따른 여래의 칭송을 말해야 하는 ③심오하고, 보기 어렵고, 깨닫기 어렵고, 평화롭고, 숭고하고, takka[애(愛)의 형성 과정]의 영역을 넘어섰고, 독창적이고, 현자에게만 경험될 수 있는 그 법들이다.
● 62견에 대한 정의
1. 62견은 애(愛) 때문에 경험된 것이고 동요이고 몸부림일 뿐
거기서 비구들이여, 62가지 기반에 의해 그 사문-바라문들이 과거에 속하고, 미래에 속하고, 과거와 미래에 속하고, 과거와 미래에 대한 회의적 견해를 가졌고, 과거와 미래에 대한 여러 가지 교리를 선언하는 것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그 사문-바라문들에게 애(愛) 때문에 경험된 것이고 동요이고 몸부림일 뿐이다.
2. 62견은 촉(觸)을 조건으로 하는 것
거기서 비구들이여, 62가지 기반에 의해 그 사문-바라문들이 과거에 속하고, 미래에 속하고, 과거와 미래에 속하고, 과거와 미래에 대한 회의적 견해를 가졌고, 과거와 미래에 대한 여러 가지 교리를 선언하는 것은 촉(觸)을 조건으로 하는 것이다.
3. 62견이 촉(觸)으로부터 다른 곳에서 경험될 것이라는 경우 없음
거기서 비구들이여, 62가지 기반에 의해 그 사문-바라문들이 과거에 속하고, 미래에 속하고, 과거와 미래에 속하고, 과거와 미래에 대한 회의적 견해를 가졌고, 과거와 미래에 대한 여러 가지 교리를 선언하는 것이 참으로 촉(觸)으로부터 다른 곳에서 경험될 것이라는 그런 경우는 없다.
4. 62견은 육촉처(六觸處)를 원인으로 경험되고, 괴로움을 생기게 함
비구들이여, 여기서 4가지 기반에 의해 그 사문-바라문들이 영속을 말하고, 영속하는 아(我)와 세상을 선언하는 것은 … 일부는 영속에 속하고 일부는 영속하지 않음에 속하는 … 유한-무한에 속하는 … 애매모호 함에 속하는 … 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는 발생에 속하는 … 과거에 속한 … 사후에 속하는 상(想)을 가진 자를 말하는 … 사후에 속하는 상(想)을 가지지 않은 자를 말하는 … 사후에 속하는 상(想)을 가진 것도 아니고 상(想)을 가지지 않은 것도 아닌 자를 말하는 … 단멸(斷滅)을 말하는 … 지금여기에서의 열반을 말하는 … 미래에 속하는 … 62가지 기반에 의해 그 사문-바라문들이 과거에 속하고, 미래에 속하고, 과거와 미래에 속하고, 과거와 미래에 대한 회의적 견해를 가졌고, 과거와 미래에 대한 여러 가지 교리를 선언하는 것도 모두 육촉처(六觸處)에 의한 반복 닿음을 원인으로 경험하게 한다. 그들에게 수(受)를 조건으로 애(愛)가 있고, 애(愛)를 조건으로 취(取)가 있고, 취(取)를 조건으로 유(有)가 있고, 유(有)를 조건으로 생(生)이 있고, 생(生)을 조건으로 노사(老死) 수비고우뇌(愁悲苦憂惱)가 생긴다.
5. 62견의 그물과 그물에 걸리지 않는 삶 - 존재로 이끄는 도관(導管)이 끊어진 몸
비구들이여, 비구가 육촉처(六觸處)의 자라남과 줄어듦과 매력과 위험과 해방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 때 이것(*1)이 이 모든 것(*2)에 비해 더 높음을 꿰뚫어 안다.
*1 ― 육촉처(六觸處)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매력(魅力)과 위험(危險)과 해방(解放)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앎.
*2 ― 62가지 삿된 견해
비구들이여, 무엇이든지 사문-바라문들이 과거에 속하고, 미래에 속하고, 과거와 미래에 속하고, 과거와 미래에 대한 회의적 견해를 가졌고, 과거와 미래에 대한 여러 가지 교리를 선언하는 것은 모두 62가지 기반에 의한 그물 안에 있다. 위로 오르는 자들은 여기서 매인 채 오른다. 위로 오르는 자들은 여기서 그물에 완전히 갇힌 채 오른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존재로 이끄는 도관(導管)이 끊어진 몸으로 남아있다. 이 몸이 남아있을 때까지 신과 사람들은 그를 본다. 몸이 무너져 생명이 다하면 신과 사람들은 그를 보지 못한다.
● 맺는말
“대덕이시여, 참으로 놀랍습니다. 대덕이시여, 참으로 신기합니다. 대덕이시여, 이 법문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아난다여, 그렇다면 그대는 이 법문을 뜻의 그물[의망(義網)]이라고 받아들여라. 법의 그물[법망(法網)]이라고도 받아들여라. 범천의 그물[범망(梵網)]이라고도 받아들여라. 견해의 그물[견망(見網)]이라고도 받아들여라. 전쟁에서의 위없는 승리라고도 받아들여라.”
Ⅳ. (MN 102-다섯이면서 셋 경)
1. 경의 개요
(MN102-다섯이면서 셋 경)은 「과거에 대한 견해를 놓고, 미래에 대한 견해를 놓고, 모든 소유의 족쇄를 버린 사문-바라문이 개발된 느낌의 향상 과정의 끝에 위없는 평화롭고 뛰어난 경지의 깨달음에 닿는 과정」을 설명하는데, 이런 설명을 위해 미래에 대한 견해와 과거에 대한 견해를 먼저 설명합니다.
미래의 견해에 대해서는 ①죽은 뒤에 아픔이 없는 아(我)의 존재의 선언, ②존재하고 있는 중생의 단멸과 상실과 존재에서 벗어남의 선언, ③지금여기의 열반의 선언의 세 가지로 설명하는 방법과 ①을 상(想)이 있거나, 상(想)이 없거나, 상(想)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상(想)이 없는 것도 아닌 세 가지 경우로 세분하여 다섯 가지로 설명하는 방법을 소개하는데, 다섯이면서 셋이라는 경의 이름의 의미입니다. 경은 ①과 ②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③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은 채 미래에 대한 견해는 모두 이 다섯 가지 경우거나 그들 가운데 어떤 것이라고 말합니다.
과거에 대한 견해에 대해서는 아(我)와 세상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는데, 믿음-성향-전승-온전한 떠오름의 출현-견해와 통찰의 지속에서 생겨나는 견해라고 말합니다.
이런 과거와 미래에 대한 견해를 놓고, 모든 소유의 족쇄를 버림 즉 아(我)의 관점과 소유의 삶에서 벗어난 사문-바라문은 개발된 느낌의 향상 과정을 통해 열반에 적합한 실천을 하게 되고, 깨달음으로 나아갑니다.
그런데 미래의 견해에 속하는 ‘③지금여기의 열반’은, (DN 1-범망경)에 의하면, 다섯 가지 소유의 사유에 묶인 것을 마음껏 충분히 즐김, 초선(初禪)을 성취하여 머묾, 제2선(第二禪)을 성취하여 머묾, 제3선(第三禪)을 성취하여 머묾, 제4선(第四禪)을 성취하여 머묾으로 나타나는데, 개발된 느낌의 향상 과정인 ‘여읨의 희열 → 개발된 느낌인 행복 →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과 대응합니다. 그래서 열반에 적합한 실천은 ‘③지금여기의 열반’의 범주에서의 완성이라고 이해할 수 있는데, 여래에 의한 위없는 평화롭고 뛰어난 경지의 깨달음입니다. ― 「육촉처(六觸處)의 자라남-줄어듦-매력-위험-해방을 있는 그대로 안 뒤에 집착 없이 해탈함」
2. 무색계(無色界)의 이해 ― ①죽은 뒤에 아픔이 없는 아(我)의 존재의 선언
ⓐ 죽은 뒤에 아픔이 없는 아(我)의 존재 가운데 상(想)이 있는 아(我)에 대한 설명은 색(色)의 있음-없음-있기도 하고 없기도 함-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님의 네 가지와 상(想)의 단일-다양, 제한-무한의 여덟 가지 경우를 제시한 뒤 이것을 넘어선 어떤 자들 가운데 어떤 자들은 무한하고 흔들림 없는 식(識)의 까시나를 선언한다고 하는데, 공무변처(空無邊處)와 식무변처(識無邊處)로 이해하였습니다. 또한, 상(想)들 가운데 청정(淸淨)하고 최상이고 으뜸이고 위없다고 알려진 무한하고 흔들림 없는 무소유처(無所有處)도 설명됩니다.
; ‘이것은 유위(有爲)이고 거친 것이다. 그러나 행(行)들의 소멸은 있다. 그것은 있다’라고 이렇게 안 뒤에 그것의 해방(解放)을 보는 자인 여래는 그것을 넘어섰다.
ⓑ 반면에 상(想)이 없는 아(我)를 선언하는 사문-바라문들은 상(想)은 아픔이고 종기고 화살이지만 상(想)이 없음은 평화롭고 뛰어나다는 이유로 상(想)이 있는 아(我)를 선언하는 사문-바라문들을 비난합니다.
; ‘이것은 유위(有爲)이고 거친 것이다. 그러나 행(行)들의 소멸은 있다. 그것은 있다’라고 이렇게 안 뒤에 그것의 해방(解放)을 보는 자인 여래는 그것을 넘어섰다.
ⓒ 그리고 상(想)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아(我)를 선언하는 사문-바라문들은 상(想)은 아픔이고 종기고 화살이고, 상(想)이 없음은 당황[혼란스러움]이지만 상(想)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상(想)이 없는 것도 아님[비상비비상(非想非非想)]은 평화롭고 뛰어나다는 이유로 상(想)이 있는 아(我) 또는 상(想)이 없는 아(我)를 선언하는 사문-바라문들을 비난합니다. 이런 방법으로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도 설명됩니다.
; 보인 것, 들린 것, 닿아 안 것, 인식되어야 하는 것과 행(行)들에 의해 이 경지의 증득을 선언하는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누구든지, 비구들이여, 그것은 이 경지의 증득을 위해서는 방해되는 것이라고 알려진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이 경지는 행(行)의 증득으로 얻어지는 것이라고 알려지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 경지는 남아있는 행(行)들의 증득으로 얻어지는 것이라고 알려진다.
무소유처(無所有處)까지는 상(想)의 증득으로 얻어지고,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는 남아있는 행(行)들의 증득으로 얻어진다는 설명인데, takka[애(愛)의 형성 과정]의 안팎의 차이라고 이해하였습니다. 무소유처까지는 takka 밖 즉 몸과 함께하는 작용의 영역에서 행(行)에 의한 상(想)의 증득으로 얻어지지만, 비상비비상처는 몸과 함께하지 않는 작용의 영역 즉 takka 안에서 진행되는 형성작용[남아있는 행(行)]에 의해서 얻어진다는 이해입니다. 이런 이해는 상수멸(想受滅)의 증득에 크게 도움 되는 것으로의 사마타-위빳사나와도 궤를 같이합니다.
; ‘이것은 유위(有爲)이고 거친 것이다. 그러나 행(行)들의 소멸은 있다. 그것은 있다’라고 이렇게 안 뒤에 그것의 해방(解放)을 보는 자인 여래는 그것을 넘어섰다.
3. 단멸론자들은 유신(有身)을 두려워하고 유신을 혐오하는 특징을 말합니다.
; ‘이것은 유위(有爲)이고 거친 것이다. 그러나 행(行)들의 소멸은 있다. 그것은 있다’라고 이렇게 안 뒤에 그것의 해방(解放)을 보는 자인 여래는 그것을 넘어섰다.
4. 과거에 대한 견해를 놓고, 미래에 대한 견해를 놓고, 모든 소유의 족쇄를 버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평화롭고 뛰어난 경지로 ‘[우(憂-domanassa-고뇌) →] 여읨의 희열 → 개발된 느낌인 행복 →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단계적으로 제시한 뒤 ‘나는 평화롭고, 나는 꺼졌고, 나는 집착이 없다.’라고 관찰하는데, 이것이 열반(涅槃)에 적합한 실천입니다.
; ‘이것은 유위(有爲)이고 거친 것이다. 그러나 행(行)들의 소멸은 있다. 그것은 있다’라고 이렇게 안 뒤에 그것의 해방(解放)을 보는 자인 여래는 그것을 넘어섰다.
5. 여래는 그 경지를 넘어섬
「‘이것은 유위(有爲)이고 거친 것이다. 그러나 행(行)들의 소멸은 있다. 그것은 있다’라고 이렇게 안 뒤에 그것의 해방(解放)을 보는 자인 여래는 그것을 넘어섰다.」라고 하여 부처님이 각각의 사문-바라문이 접근한 경지를 모두 넘어섰다고 알려주는데, 육촉처(六觸處)의 자라남-줄어듦-매력-위험-해방을 있는 그대로 안 뒤에 집착 없이 해탈하였기 때문입니다.
6. 평화롭고 뛰어난 경지의 전개
각각의 경지에서 사문-바라문들은 ‘etaṃ santaṃ etaṃ paṇītaṃ yadidaṃ ~ 이것은 평화롭고 이것은 뛰어나니 즉 ~’이라고 말하는데, 「상(想)이 없음 → 비상비비상 → 여읨의 희열 → 개발된 느낌인 행복 →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입니다. 이때, 비상비비상까지는 아(我)의 관점에서의 접근이고, 그 이후는 벗어남의 과정에서의 접근인데 미래의 견해에 속하는 지금여기의 열반과 대응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경지를 넘어서서 여래에 의한 위없는 평화롭고 뛰어난 경지의 깨달음이 제시되는데, 「육촉처의 자라남과 줄어듦과 매력과 위험과 해방을 있는 그대로 안 뒤에 집착 없이 해탈한 것」입니다. 이렇게 불교의 입장에서 평화롭고 뛰어난 것은 열반입니다. ― 「‘etaṃ santaṃ etaṃ paṇītaṃ yadidaṃ sabbasaṅkhārasamatho sabbūpadhipaṭinissaggo taṇhākkhayo virāgo nirodho nibbānan’ti 이것은 평화롭고 이것은 뛰어나다. 즉 모든 행(行)의 그침이고, 모든 재생의 근저를 놓음이고, 애(愛)의 부서짐이고, 이탐(離貪)이고, 소멸(消滅)인 열반(涅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