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āneñjasappāyasuttaṃ (MN 106-흔들리지 않는 경지에 적합함 경)
6. āneñjasappāyasuttaṃ (MN 106-흔들리지 않는 경지에 적합함 경)
이렇게 나는 들었다. — 한때 세존은 꾸루에서 깜마사담마라는 꾸루의 번화가에 머물렀다. 거기서 세존은 “비구들이여.”라고 비구들을 불렀다. “대덕이시여.”라고 그 비구들은 세존에게 대답했다. 세존은 이렇게 말했다. — “비구들이여, 소유의 사유들은 무상(無常)하고, 헛되고, 거짓이고, 사실 아닌 것이다. 그것은, 비구들이여, 사기로 만들어진 것이고 어리석은 자의 읊조림이다. 지금여기에 속한 소유의 사유들과 다음 세상에 속한 소유의 사유들 그리고 지금여기에 속한 소유의 경향[욕상(慾想)]과 다음 세상에 속한 소유의 경향 — 이 두(네) 가지는 모두 마라의 왕국이고, 단지 마라의 경계이고, 단지 마라의 미끼이고, 단지 마라의 영역이다. 여기에서 악한 불선의 의(意)의 작용 때문에 이렇게 간탐도 진에도 격분도 있게 된다. 그것들은 여기에서 계속 노력하는 이 성스러운 제자에게 장애가 될 뿐이다. 거기서,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숙고한다. — ‘지금여기에 속한 소유의 사유들과 다음 세상에 속한 소유의 사유들 그리고 지금여기에 속한 소유의 경향과 다음 세상에 속한 소유의 경향 — 이 두(네) 가지는 모두 마라의 왕국이고, 단지 마라의 경계이고, 단지 마라의 미끼이고, 단지 마라의 영역이다. 여기에서 악한 불선의 의의 작용 때문에 이렇게 간탐도 진에도 격분도 있게 된다. 그것들은 계속 노력하는 이 성스러운 제자에게 장애가 될 뿐이다. 나는 크고 귀한 심(心)으로 머물고, 의(意)를 확고히 해서 세상을 극복해야겠다. 참으로 크고 귀한 심으로 머물고, 의를 확고히 해서 세상을 극복하는 나에게 악한 불선의 의의 작용 때문에 생기는 간탐도 진에도 격분도 없을 것이다. 그것들의 버려짐에 의해서 나의 심은 커지고 무량하게 잘 닦아질 것이다.’라고. 이렇게 실천하고 그렇게 많이 머무는 그에게 심은 그 경지에 확고해진다. 확고해질 때 지혜로써 흔들리지 않는 경지를 현재에 증득하거나 기운다.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식(識)이 흔들리지 않는 경지로 갈 것이라는 경우는 있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첫 번째 흔들리지 않는 경지에 적합한 실천이라고 선언된다.
다시,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숙고한다. — ‘지금여기에 속한 소유의 사유들과 다음 세상에 속한 소유의 사유들 그리고 지금여기에 속한 소유의 경향과 다음 세상에 속한 소유의 경향, 어떤 것이든 색(色)은 사대(四大)와 사대가 결합한 것이다.’라고. 이렇게 실천하고 그렇게 많이 머무는 그에게 심은 그 경지에 확고해진다. 확고해질 때 지혜로써 흔들리지 않는 경지를 현재에 증득하거나 기운다.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식이 흔들리지 않는 경지로 갈 것이라는 경우는 있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두 번째 흔들리지 않는 경지에 적합한 실천이라고 선언된다.
다시,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숙고한다. — ‘지금여기에 속한 소유의 사유들과 다음 세상에 속한 소유의 사유들 그리고 지금여기에 속한 소유의 경향과 다음 세상에 속한 소유의 경향, 지금여기에 속한 색들과 다음 세상에 속한 색들 그리고 지금여기에 속한 색의 경향[색상(色想)]과 다음 세상에 속한 색의 경향 — 이들은 모두 무상(無常)하다. 무상한 것은 기뻐할 것이 못 되고, 드러낼 것이 못 되고, 묶일만한 것이 못 된다.’라고. 이렇게 실천하고 그렇게 많이 머무는 그에게 심은 그 경지에 확고해진다. 확고해질 때 지혜로써 흔들리지 않는 경지를 현재에 증득하거나 기운다.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식이 흔들리지 않는 경지로 갈 것이라는 경우는 있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세 번째 흔들리지 않는 경지에 적합한 실천이라고 선언된다.
다시,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숙고한다. — ‘지금여기에 속한 소유의 사유들과 다음 세상에 속한 소유의 사유들 그리고 지금여기에 속한 소유의 경향과 다음 세상에 속한 소유의 경향, 지금여기에 속한 색들과 다음 세상에 속한 색들 그리고 지금여기에 속한 색의 경향과 다음 세상에 속한 색의 경향, 흔들리지 않는 경지의 경향 — 이들은 모두 상(想)이다. 이들이 남김없이 소멸하는 곳 즉 무소유처(無所有處)는 평화롭고 뛰어나다.’라고. 이렇게 실천하고 그렇게 많이 머무는 그에게 심은 그 경지에 확고해진다. 확고해질 때 지혜로써 무소유처를 현재에 증득하거나 기운다.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식이 무소유처로 갈 것이라는 경우는 있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첫 번째 무소유처에 적합한 실천이라고 선언된다.
다시, 비구들이여, 숲으로 가거나 나무 밑으로 가거나 빈집으로 간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숙고한다. — ‘이것은 아(我)거나 아에 속하는 것에 의해 공하다.’라고. 이렇게 실천하고 그렇게 많이 머무는 그에게 심은 그 경지에 확고해진다. 확고해질 때 지혜로써 무소유처를 현재에 증득하거나 기운다.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식이 무소유처로 갈 것이라는 경우는 있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두 번째 무소유처에 적합한 실천이라고 선언된다.
다시,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숙고한다. — ‘어디에도 누구에게도 어떤 것에도 나는 없다. 어디에도 어떤 목적으로도 어떤 것으로도 나의 것은 없다.’라고. 이렇게 실천하고 그렇게 많이 머무는 그에게 심은 그 경지에 확고해진다. 확고해질 때 지혜로써 무소유처를 현재에 증득하거나 기운다.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식이 무소유처로 갈 것이라는 경우는 있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세 번째 무소유처에 적합한 실천이라고 선언된다.
다시,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제자는 이렇게 숙고한다. — ‘지금여기에 속한 소유의 사유들과 다음 세상에 속한 소유의 사유들 그리고 지금여기에 속한 소유의 경향과 다음 세상에 속한 소유의 경향, 지금여기에 속한 색들과 다음 세상에 속한 색들 그리고 지금여기에 속한 색의 경향과 다음 세상에 속한 색의 경향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경지의 상(想)과 무소유처의 상(想) — 이들은 모두 상(想)이다. 이들이 남김없이 소멸하는 곳 즉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는 평화롭고 뛰어나다.’라고. 이렇게 실천하고 그렇게 많이 머무는 그에게 심(心)은 그 경지에 확고해진다. 확고해질 때 지혜로써 비상비비상처를 현재에 증득하거나 기운다.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식이 비상비비상처로 갈 것이라는 경우는 있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비상비비상처에 적합한 실천이라고 선언된다.”
이렇게 말했을 때, 아난다 존자가 세존에게 이렇게 말했다. — “여기, 대덕이시여, 비구는 이렇게 실천합니다. — ‘있지 않고 나의 것도 아니라면, 그것은 없을 것이고 나의 것도 없을 것이다. 있는 것, 활성 존재를 나는 버린다.’라고. 그는 이렇게 평정을 얻습니다. 대덕이시여, 그 비구는 완전히 꺼지게 됩니까 아니면 완전히 꺼지지 못합니까?”라고. “여기서, 아난다여, 어떤 비구는 완전히 꺼질 것이고, 여기서 어떤 비구는 완전히 꺼지지 못할 것이다.” “대덕이시여, 어떤 비구는 완전히 꺼지고, 여기서 어떤 비구는 완전히 꺼지지 못하는 데는 무슨 원인, 무슨 조건이 있습니까?” “여기, 아난다여, 비구는 이렇게 실천한다. — ‘있지 않고 나의 것도 아니라면, 그것은 없을 것이고 나의 것도 없을 것이다. 있는 것, 활성 존재를 나는 버린다.’라고. 그는 이렇게 평정을 얻는다. 그는 그 평정을 기뻐하고 드러내고 묶여 머문다. 그 평정을 기뻐하고 드러내고 묶여 머무는 그에게 식은 그것을 의지하고 그것을 집착한다. 아난다여, 집착이 있는 비구는 완전히 꺼지지 못한다.” “대덕이시여, 집착하는 그 비구는 어디에서 집착합니까?” “비상비비상처이다, 아난다여.” “대덕이시여, (비상비비상처에) 집착하는 그 비구가 참으로 맨 앞에 있는 집착에 집착하는 것입니까?” “아난다여, (비상비비상처에) 집착하는 그 비구가 참으로 맨 앞에 있는 집착에 집착하는 것이다. 아난다여, 비상비비상처는 참으로 맨 앞에 있는 집착이다.
여기, 아난다여, 비구는 이렇게 실천한다. — ‘있지 않고 나의 것도 아니라면, 그것은 없을 것이고 나의 것도 없을 것이다. 있는 것, 활성 존재를 나는 버린다.’라고. 그는 이렇게 평정을 얻는다. 그는 그 평정을 기뻐하지 않고 드러내지 않고 묶여 머물지 않는다. 그 평정을 기뻐하지 않고 드러내지 않고 묶여 머물지 않는 그에게 식은 의지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는다. 아난다여, 집착하지 않는 비구는 완전히 꺼진다.“
“대덕이시여, 참으로 놀랍습니다. 대덕이시여, 참으로 신기합니다. 참으로, 대덕이시여, 세존께서는 저희에게 거듭 의지하여 폭류를 건너는 것을 선언하셨습니다. 그런데 대덕이시여, 성스러운 해탈은 무엇입니까?” “여기, 아난다여, 성스러운 제자인 비구는 이렇게 숙고한다. — ‘지금여기에 속한 소유의 사유들과 다음 세상에 속한 소유의 사유들 그리고 지금여기에 속한 소유의 경향과 다음 세상에 속한 소유의 경향, 지금여기에 속한 색들과 다음 세상에 속한 색들 그리고 지금여기에 속한 색의 경향과 다음 세상에 속한 색의 경향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경지의 상(想)과 무소유처의 상과 비상비비상처의 상 — 유신(有身)이 있는 한 이것이 유신이다. 집착하지 않음에 의한 심의 해탈이 불사(不死)이다.
이렇게, 아난다여, 나는 흔들리지 않는 경지에 적합한 실천을 설했고, 무소유처에 적합한 실천을 설했고, 비상비비상처에 적합한 실천을 설했고, 거듭 의지하여 폭류를 건너는 것을 설했고, 성스러운 해탈을 설했다.
아난다여, 제자들을 위해 베푸는 자인 스승이 행해야 하는 것을, 연민하기 때문에, 나는 그대들을 위해서 했다. 아난다여, 나무 밑이 있고, 빈집이 있다. 아난다여, 선(禪)을 하라. 방일하지 마라. 나중에 뉘우침이 있게 하지 마라. 이것이 그대들을 위한 우리의 가르침의 근본(이어지는 가르침)이다.
세존은 이렇게 말했다. 아난다 존자는 즐거워하면서 세존의 말씀을 기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