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gaṇakamoggallānasuttaṃ (MN 107-가나까목갈라나 경)
1. devadahavaggo, 7. gaṇakamoggallānasuttaṃ (MN 107-가나까목갈라나 경)
이렇게 나는 들었다. ― 한때 세존은 사왓티에서 동쪽 사원의 미가라마뚜 저택에 머물렀다. 그때 가나까목갈라나 바라문이 세존에게 왔다. 와서는 세존과 함께 인사를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만한 이야기를 주고받은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가나까목갈라나 바라문이 세존에게 이렇게 말했다. ―
“예를 들면, 고따마 존자여, 여기 미가라마뚜 저택에는 계단의 꼭대기 층까지 짓기 위한 점진적인 시도, 점진적인 행함, 점진적인 실천이 있습니다. 참으로 고따마 존자여, 바라문들에게도 베다 공부를 위한 점진적인 공부, 점진적인 행함, 점진적인 실천이 있습니다. 참으로 고따마 존자여, 궁수들에게도 활쏘기를 위한 점진적인 공부, 점진적인 행함, 점진적인 실천이 있습니다. 참으로 고따마 존자여, 우리 계산원들에게도 헤아림을 위한 점진적인 공부, 점진적인 행함, 점진적인 실천이 있습니다. 참으로 고따마 존자여, 우리는 제자를 거두면 첫 번째로 ‘1은 하나로 된 것, 2는 둘로 된 것, 3은 셋으로 된 것, 4는 넷으로 된 것, 5는 다섯으로 된 것, 6은 여섯으로 된 것, 7은 일곱으로 된 것, 8은 여덟으로 된 것, 9는 아홉으로 된 것, 10은 열로 된 것’이라고 헤아리게 시킵니다. 고따마 존자여, 우리는 100도 헤아리게 시키고, 더 많은 것도 헤아리게 시킵니다. 참으로 고따마 존자여, 이 법(法)과 율(律)에서도 이처럼 점진적인 시도, 점진적인 행함, 점진적인 실천을 선언할 수 있습니까?”
바라문이여, 이 법과 율에서도 점진적인 공부, 점진적인 행함, 점진적인 실천을 선언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바라문이여, 능숙한 말 조련사는 당당하고 좋은 혈통을 가진 말을 얻은 뒤에 첫 번째로 굴레를 채우고 훈련 시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간 훈련을 시킵니다. 이처럼, 바라문이여, 여래는 조어(調御)해야[길들여야] 할 사람을 얻은 뒤에 첫 번째로 이렇게 길들입니다. ― ‘오라, 비구여, 그대는 계(戒)를 중시하여라. 계목(戒目)의 단속으로 단속하는 자, 행실과 영역을 갖춘 자, 아주 작은 허물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보는 자로 머물러라. 학습계목들 위에서 받아 지닌 채 공부하여라.’라고.
바라문이여, 비구가 계를 중시하고, 계목의 단속으로 단속하는 자, 행실과 영역을 갖춘 자, 아주 작은 허물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보는 자로 머물고, 학습계목들 위에서 받아 지닌 채 공부할 때 여래는 그를 더 나아간 것으로 길들입니다. ― ‘오라, 비구여, 그대는 기능들에서 문을 보호하라. 안(眼)으로 색(色)을 보면서 상(相)을 붙잡지 않고, 뒤따르는 것[수(受)]을 붙잡지 말라. 그 안근(眼根)을 단속하지 않고 머무는 자에게 간탐과 고뇌와 악한 불선법들이 흘러들어올 것이기 때문에 그것의 단속을 위해 실천해야 한다. 안근을 보호하고, 안근에서 단속하라. 이(耳)로 성(聲)을 들으면서 … 비(鼻)로 향(香)을 맡으면서 … 설(舌)로 미(味)를 맛보면서 … 신(身)으로 촉(觸)을 닿으면서 … 의(意)로 법(法)을 인식하면서 상(相)을 붙잡지 않고, 뒤따르는 것을 붙잡지 말라. 그 의근(意根)을 단속하지 않고 머무는 자에게 간탐과 고뇌와 악한 불선법들이 흘러들어올 것이기 때문에 그것의 단속을 위해 실천해야 한다. 의근을 보호하고, 의근에서 단속하라.’라고.
바라문이여, 비구가 기능들에서 문을 보호할 때 여래는 그를 더 나아간 것으로 길들입니다. ― ‘오라, 비구여, 그대는 음식에 대한 적당량을 알아라. 그대는 들어맞게[여리(如理)] 가늠하면서 음식을 먹어야 한다. ― ‘달리기 위해서도 아니고, 여분을 위해서도 아니고, 꾸밈을 위해서도 아니고, 장식을 위해서도 아니고, 오직 이 몸을 유지할 영양을 위한 만큼, 해침을 자제할 만큼, 범행에 도움이 되기 위한 만큼. 이렇게 나는 이전의 느낌을 부수고, 새로운 느낌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나의 삶은 흠 잡을 데 없고, 안락한 생활양식이 유지될 것이다.’라고.
바라문이여, 비구가 음식에 대한 적당량을 알 때 여래는 그를 더 나아간 것으로 길들입니다. ― ‘오라, 비구여, 그대는 깨어있음을 실천하며 머물러라. 낮 동안에는 경행(輕行)을 수반한 앉음을 통해 장애가 되는 법들로부터 심(心)을 청정케 해야 한다. 밤의 초삼분(初三分) 동안에는 경행을 수반한 앉음을 통해 장애가 되는 법들로부터 심(心)을 청정케 해야 한다. 밤의 중삼분(中三分) 동안에는 발에 발을 포개고, 사띠와 바른 앎을 가지고 일어남의 상(想)을 작의(作意)한 후 오른쪽으로 사자처럼 누워야 한다. 밤의 후삼분(後三分) 동안에는 자리에서 일어나 경행을 수반한 앉음을 통해 장애가 되는 법들로부터 심(心)을 청정케 해야 한다.’라고.
바라문이여, 비구가 깨어있음을 실천하며 머물때 여래는 그를 더 나아간 것으로 길들입니다. ― ‘오라, 비구여, 그대는 염(念)-정지(正知)를 갖추어라. 나아갈 때도 물러날 때도 옳고 그름을 판단하면서 행하고, 앞을 볼 때도 돌아볼 때도 옳고 그름을 판단하면서 행하고, 구부릴 때도 펼 때도 옳고 그름을 판단하면서 행하고, 대가사와 발우와 가사를 지닐 때도 옳고 그름을 판단하면서 행하고, 먹을 때도 마실 때도 씹을 때도 맛볼 때도 옳고 그름을 판단하면서 행하고, 똥과 오줌을 눌 때도 옳고 그름을 판단하면서 행하고, 갈 때도-서 있을 때도-앉아 있을 때도-잠잘 때도-깨어있을 때도-말할 때도-침묵할 때도 옳고 그름을 판단하면서 행해야 한다.’라고.
바라문이여, 비구가 염(念)-정지(正知)를 갖출때 여래는 그를 더 나아간 것으로 길들입니다. ― ‘오라, 비구여, 그대는 숲속이나 나무 아래나 산이나 골짜기나 산속 동굴이나 묘지나 밀림이나 열린 장소나 짚더미와 같은 외딴 처소를 의지하라.’라고. 그는 숲속이나 나무 아래나 산이나 골짜기나 산속 동굴이나 묘지나 밀림이나 열린 장소나 짚더미와 같은 외딴 처소를 의지합니다. 오후에 탁발하여 공양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다리를 교차하고, 몸을 곧게 뻗치고 콧구멍 주위에 사띠를 준비한 채 앉아 있습니다. 그는 세상에 대한 간탐을 버린 뒤에 간탐에서 벗어난 심(心)으로 머물고, 간탐으로부터 심을 청정케 합니다. 진에의 결점을 버린 뒤에 분노하지 않는 심으로 모든 생명의 이익을 위하여 연민하며 머물고, 진에의 결점으로부터 심을 청정케 합니다. 해태-혼침을 버린 뒤에 해태-혼침 없이 광명상(光明想)을 가지고 사띠와 삼빠자나를 갖춘 자로 머물고, 해태-혼침으로부터 심을 청정케 합니다. 들뜸-후회를 버린 뒤에 휘저어지지 않아 안으로 가라앉은 심으로 머물고, 들뜸-후회로부터 심을 청정케 합니다. 의심을 버린 뒤에 의심을 건너 유익한 법들에 대해 불확실함을 가지지 않은 자로 머물고, 의심으로부터 심을 청정케 합니다.
그는 지혜를 무력화시키는 심(心)의 오염원인 다섯 가지 장애를 버리고서 소유의 삶에서 벗어나고, 불선법들에서 벗어나서, 위딱까가 있고 위짜라가 있고 떨침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의 초선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위딱까와 위짜라의 가라앉음으로 인해, 안으로 평온함과 마음의 집중된 상태가 되어, 위딱까도 없고 위짜라도 없이, 삼매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의 제2선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기쁨의 바램으로부터 평정하게 머물고, 사띠와 바른 앎을 가지고 몸으로 즐거움을 경험하면서, 성인들이 '평정을 가진 자, 사띠를 가진 자, 즐거움에 머무는 자[사념락주(捨念樂住)].'라고 말하는 제3선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즐거움의 버림과 괴로움의 버림으로부터, 이미 만족과 불만들의 줄어듦으로부터, 괴로움도 즐거움도 없고 평정과 청정한 사띠[사념청정(捨念淸淨)]의 제4선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이런 이것이, 바라문이여, 위없는 유가안온을 지향하며 머무는 의(意)로써 성취하지 못한 유학(有學)인 비구들에 대한 나의 가르침의 근본(이어지는 가르침)입니다. 또한, 번뇌가 다했고 삶을 완성했으며 해야 할 바를 했고 짐을 내려놓았으며 최고의 선(善)을 성취했고 존재의 족쇄를 완전히 부수었으며 바른 무위의 앎으로 해탈한 아라한인 비구들에게 이 법들은 지금여기의 행복한 머묾과 염(念)-정지(正知)로 이끕니다.”라고.
이렇게 말했을 때, 가나까목갈라나 바라문이 세존에게 이렇게 말했다. ― “고따마 존자의 이런 지도와 이런 이어지는 가르침을 받은 고따마 존자의 제자들은 모두 궁극의 완성인 열반을 얻습니까, 아니면 어떤 자들은 얻지 못합니까?” “바라문이여, 이런 지도와 이런 이어지는 가르침을 받은 나의 제자들은 어떤 자들은 궁극의 완성인 열반을 얻고 어떤 자들은 얻지 못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열반이 있고 열반으로 이끄는 길도 있고 이끄는 자인 고따마 존자도 있는데 무슨 원인, 무슨 조건 때문에 고따마 존자의 이런 지도와 이런 이어지는 가르침을 받은 고따마 존자의 제자들 가운데 어떤 자들은 궁극의 완성인 열반을 얻고 어떤 자들은 얻지 못합니까?”
“바라문이여, 그렇다면 여기서 나는 이것을 되묻겠습니다. 그대에게 좋아 보이는 대로 그것을 설명하십시오. 바라문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대는 라자가하로 가는 길에 익숙합니까?” “그렇습니다, 존자여. 저는 라자가하로 가는 길에 익숙합니다.” “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바라문이여? 여기 라자가하로 가고자 하는 어떤 사람이 올 것입니다. 그는 그대에게 와서 ‘대덕이시여, 저는 라자가하로 가고자 합니다. 라자가하로 가는 길을 알려주십시오.’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런 그에게 그대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 ‘여보시게. 오시오. 이 길이 라자가하로 갑니다. 이 길을 따라 조금 가시오. 이 길을 따라 조금 가면 어떤 마을을 보게 될 것이오. 그 길을 따라 조금 가시오. 그 길을 따라 조금 가면 어떤 도시를 보게 될 것이오. 그 길을 따라 조금 가시오. 그 길을 따라 조금 가면 라자가하의 아름다운 공원과 아름다운 숲과 아름다운 들판과 아름다운 호수를 보게 될 것이오.’라고. 그는 그대에게 이렇게 지도받고 이렇게 가르침을 받았지만 잘못된 길로 들어서서 서쪽을 향해서 갈 것입니다. 그리고 라자가하로 가고자 하는 두 번째 사람이 올 것입니다. 그는 그대에게 와서 ‘대덕이시여, 저는 라자가하로 가고자 합니다. 라자가하로 가는 길을 알려주십시오.’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런 그에게 그대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 ‘여보시게. 오시오. 이 길이 라자가하로 갑니다. 이 길을 따라 조금 가시오. 이 길을 따라 조금 가면 어떤 마을을 보게 될 것이오. 그 길을 따라 조금 가시오. 그 길을 따라 조금 가면 어떤 도시를 보게 될 것이오. 그 길을 따라 조금 가시오. 그 길을 따라 조금 가면 라자가하의 아름다운 공원과 아름다운 숲과 아름다운 들판과 아름다운 호수를 보게 될 것이오.’라고. 그대에게 이렇게 지도받고 이렇게 가르침을 받은 그는 안전하게 라자가하에 갈 것입니다. 바라문이여, 라자가하가 있고 라자가하로 가는 길도 있고 이끄는 자인 그대도 있습니다. 그런데 무슨 원인, 무슨 조건 때문에 그대에게 이렇게 지도받고 이렇게 가르침을 받은 자 가운데 한 사람은 잘못된 길로 들어서서 서쪽을 향해 가고, 한 사람은 안전하게 라자가하에 가게 됩니까?” “고따마 존자여, 여기서 제가 무엇을 합니까? 고따마 존자여, 저는 길을 가리키는 자입니다.”
“이처럼, 바라문이여, 열반이 있고, 열반으로 이끄는 길도 있고, 이끄는 자인 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에 의해 이런 지도와 이런 이어지는 가르침을 받은 나의 제자들 가운데 어떤 자들은 궁극의 완성인 열반을 얻고 어떤 자들은 얻지 못합니다. 바라문이여, 여기서 내가 무엇을 합니까? 바라문이여, 여래는 길을 가리키는 자입니다.”
이렇게 말했을 때, 가나까목갈라나 바라문이 세존에게 이렇게 말했다. ― “고따마 존자여, 믿음이 아니라 생계를 목적으로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한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교활하고 속이고 사기 치고 들뜨고 오만하고 촐랑대고 수다스럽고 함부로 말합니다. 그들은 기능들에서 문을 단속하지 않고, 음식에 대해 적당한 양을 모르고, 깨어있음을 닦지 않습니다. 사문에 대한 추구가 없고, 공부의 꿰뚫음을 존중하지 않고, 풍족하게 살고, 해이하고, 들어갈 때는 앞서고, 여읨에서는 짐을 내려놓고, 게으르고 노력하지 않고 ,사띠를 잊고, 삼빠자나 하지 않고, 삼매를 닦지 못해서 산란한 심(心) 때문에 지혜가 없고 멍청이입니다. 고따마 존자는 그들과 함께 머물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한 좋은 가문의 아들들은 교활하지 않고 속이지 않고 사기 치지 않고 들뜨지 않고 오만하지 않고 촐랑대지 않고 수다스럽지 않고 함부로 말하지 않습니다. 기능들에서 문을 단속하고, 음식에 대해 적당한 양을 알고, 깨어있음을 닦습니다. 사문에 대한 추구가 있고, 공부의 꿰뚫음을 존중하고, 풍족하게 살지 않고 해이하지 않고, 들어갈 때는 짐을 내려놓고, 여읨에서는 앞서가고, 열심히 노력하고 스스로 정진하고 사띠를 확립하고, 삼빠자나 하고, 삼매를 닦아서 집중된 심(心) 때문에 지혜가 있고 멍청이가 아닙니다. 고따마 존자는 그들과 함께 머뭅니다.
예를 들면, 고따마 존자여, 뿌리의 향기들은 어떤 것이든 안식향이 그들 가운데 으뜸이라 불립니다. 예를 들면, 고따마 존자여, 속재목의 향기들은 어떤 것이든 붉은 전단향이 그들 가운데 으뜸이라 불립니다. 예를 들면, 고따마 존자여, 꽃의 향기들은 어떤 것이든 재스민 꽃이 그들 가운데 으뜸이라 불립니다. 이처럼 고따마 존자의 지도는 오늘의 법들 가운데서 으뜸입니다.
“정말 기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정말 기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예를 들면, 고따마 존자시여, 넘어진 자를 일으킬 것입니다. 덮여있는 것을 걷어낼 것입니다. 길 잃은 자에게 길을 알려줄 것입니다. ‘눈 있는 자들은 모습들을 본다.’라며 어둠 속에서 기름 등불을 들 것입니다. 이처럼 고따마 존자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법을 설하셨습니다. 이런 저는 의지처인 고따마 존자 그리고 가르침과 비구 상가에게로 갑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를 오늘부터 살아 있는 동안 귀의한 재가 신자로 받아 주십시오.”
gaṇakamoggallānasuttaṃ niṭṭhitaṃ sattama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