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gopakamoggallānasuttaṃ (MN 108-고빠까목갈라나 경)
1. devadahavaggo, 8. gopakamoggallānasuttaṃ (MN 108-고빠까목갈라나 경)
이렇게 나는 들었다. ― 한때 아난다 존자는 라자가하에서 웰루와나의 다람쥐 보호구역에 머물렀는데, 세존이 완전히 열반하고 오래지 않아서였다. 그때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투 웨데히뿟따는 빳조따 왕을 의심하여 라자가하를 보수하였다. 그때 아난다 존자가 오전에 옷차림을 바르게 하고 발우와 가사를 지니고 탁발을 위해 라자가하에 들어갔다. 그런데 아난다 존자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탁발을 위해 라자가하로 가기에는 너무 이르다. 나는 고빠까목갈라나 바라문의 작업장으로 고빠까목갈라나 바라문에게 가야겠다.”라고.
그래서 아난다 존자는 고빠까목갈라나 바라문의 작업장으로 고빠까목갈라나 바라문에게 갔다. 고빠까목갈라나 바라문이 멀리서 오고 있는 아난다 존자를 보았다. 보고서 아난다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 “오십시오, 아난다 존자여. 아난다 존자께서는 잘 오셨습니다. 아난다 존자께서는 여기에 오랜만에 오셨습니다. 아난다 존자께서는 준비된 이 자리에 앉으십시오.”라고. 아난다 존자는 준비된 자리에 앉았다. 고빠까목갈라나 바라문도 어떤 낮은 자리를 잡아서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고빠까목갈라나 바라문이 아난다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 “아난다 존자여, 아라한-정등각이었던 그분 고따마 존자께서 갖추었던 법을 모든 관점에서 완전하게 모두 갖춘 비구가 한 명이라도 있습니까?”라고. “바라문이여, 그분 세존-아라한-정등각께서 갖추었던 법을 모든 관점에서 완전하게 모두 갖춘 비구는 한 명도 없습니다. 참으로 바라문이여, 그분 세존은 생겨나지 않은 길을 생겨나게 하셨고, 일어나지 않은 길을 일어나게 하셨고, 선언되지 않은 길을 선언하셨고, 길을 아는 분, 길에 능숙한 분, 길에 정통한 분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제자들은 길을 따르고, 나중에 갖추어 머뭅니다.”라고. 그러나 아난다 존자와 고빠까 바라문이 함께한 이 이야기는 서로 간에 끝을 내지 못했다.
그때 라자가하의 공사 현장을 방문한 마가다의 대신 왓사까라 바라문이 고빠까목갈라나 바라문의 작업장으로 아난다 존자에게 왔다. 와서는 아난다 존자와 함께 인사를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만한 이야기를 주고받은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왓사까라 바라문이 아난다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 “아난다 존자여, 무슨 이야기를 위해 지금 여기에 함께 모여 앉았습니까? 두 분 사이에 끝내지 못한 이야기는 무엇입니까?”라고. “바라문이여, 여기 고빠까 목갈라나 바라문이 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 ‘아난다 존자여, 아라한-정등각이었던 그분 고따마 존자께서 갖추었던 법을 모든 관점에서 완전하게 모두 갖춘 비구가 한 명이라도 있습니까?’라고. 이렇게 말했을 때, 바라문이여, 나는 고빠까목갈라나 바라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 ‘바라문이여, 그분 세존-아라한-정등각께서 갖추었던 법을 모든 관점에서 완전하게 모두 갖춘 비구는 한 명도 없습니다. 참으로 바라문이여, 그분 세존은 생겨나지 않은 길을 생겨나게 하셨고, 일어나지 않은 길을 일어나게 하셨고, 선언되지 않은 길을 선언하셨고, 길을 아는 분, 길에 능숙한 분, 길에 정통한 분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제자들은 길을 따르고, 나중에 갖추어 머뭅니다.’라고. 이것이 바라문이여, 내가 고빠까목갈라나 바라문과 함께 서로 나눈 이야기인데 끝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대가 도착했습니다.”라고.
“아난다 존자여, 그분 고따마 존자에 의해 ‘이 사람이 나의 죽음 이후에 그대들의 의지처가 될 것이다.’라고 정해졌고, 지금 그대들이 따라야 하는 한 사람의 비구라도 있습니까?” “바라문이여, 아시는 분, 보시는 분, 그분 세존-아라한-정등각에 의해 ‘이 사람이 나의 죽음 이후에 그대들의 의지처가 될 것이다.’라고 정해졌고, 지금 우리가 따라야 하는 비구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아난다 존자여, ‘이 사람이 세존의 죽음 이후에 우리의 의지처가 될 것이다.’라고 상가가 동의하고, 많은 장로가 결정한 그리고 지금 그대들이 따라야 하는 비구가 한 사람이라도 있습니까?” “바라문이여, ‘이 사람이 세존의 죽음 이후에 우리의 의지처가 될 것이다.’라고 상가가 동의하고, 많은 장로가 결정한 그리고 지금 우리가 따라야 하는 비구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아난다 존자여, 이렇게 의지처가 없을 때, 누가 화합의 원인이 됩니까?” “바라문이여, 우리는 의지처가 없지 않습니다. 바라문이여, 우리는 의지처가 있습니다. 법이 의지처입니다.”
“‘아난다 존자여, 그분 고따마 존자에 의해 ‘이 사람이 나의 죽음 이후에 그대들의 의지처가 될 것이다.’라고 정해졌고, 지금 그대들이 따라야 하는 비구가 한 사람이라도 있습니까?’라고 질문받은 존자는 ‘바라문이여, 아시는 분, 보시는 분, 그분 세존-아라한-정등각에 의해 ‘이 사람이 나의 죽음 이후에 그대들의 의지처가 될 것이다.’라고 정해졌고, 지금 우리가 따라야 하는 비구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난다 존자여, ‘이 사람이 세존의 죽음 이후에 우리의 의지처가 될 것이다.’라고 상가가 동의하고, 많은 장로가 결정한 그리고 지금 그대들이 따라야 하는 비구가 한 사람이라도 있습니까?’라고 질문받은 존자는 ‘바라문이여, ‘이 사람이 세존의 죽음 이후에 우리의 의지처가 될 것이다.’라고 상가가 동의하고, 많은 장로가 결정한 그리고 지금 우리가 따라야 하는 비구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난다 존자여, 이렇게 의지처가 없을 때, 누가 화합의 원인이 됩니까?’라고 질문받은 존자는 ‘바라문이여, 우리는 의지처가 없지 않습니다. 바라문이여, 우리는 의지처가 있습니다. 법이 의지처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난다 존자여, 이 말씀의 의미를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바라문이여, 아시는 분, 보시는 분, 그분 세존-아라한-정등각께서 비구들을 위해 제정한 학습계율과 암송해야 하는 계목이 있습니다. 한 마을을 의지하여 머무는 우리는 포살일에 모두 함께 모입니다. 모여서 계목을 암송하는 비구에게 계목의 암송을 요청합니다. 만약 계목을 암송할 때 비구에게 범함이 있고 위반이 있으면 우리는 그 비구를 법에 따라, 가르침에 따라 조치합니다.
참으로 존자가 우리를 조치하지 않고, 법이 우리를 조치합니다.” “아난다 존자여, 지금 그대들이 존경하고 존중하고 우러르고 예배하고, 존경하고 존중하면서 의지하여 머무는 비구가 한 명이라도 있습니까?” “바라문이여, 지금 우리가 존경하고 존중하고 우러르고 예배하고, 존경하고 존중하면서 의지하여 머무는 비구는 한 명도 없습니다.”
‘아난다 존자여, 그분 고따마 존자에 의해 ‘이 사람이 나의 죽음 이후에 그대들의 의지처가 될 것이다.’라고 정해졌고, 지금 그대들이 따라야 하는 한 사람의 비구라도 있습니까?’라고 질문받은 존자는 ‘바라문이여, 아시는 분, 보시는 분, 그분 세존-아라한-정등각에 의해 ‘이 사람이 나의 죽음 이후에 그대들의 의지처가 될 것이다.’라고 정해졌고, 지금 우리가 따라야 하는 비구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난다 존자여, ‘이 사람이 세존의 죽음 이후에 우리의 의지처가 될 것이다.’라고 상가가 동의하고, 많은 장로가 결정한 그리고 지금 그대들이 따라야 하는 비구가 한 사람이라도 있습니까?’라고 질문받은 존자는 ‘바라문이여, ‘이 사람이 세존의 죽음 이후에 우리의 의지처가 될 것이다.’라고 상가가 동의하고, 많은 장로가 결정한 그리고 지금 우리가 따라야 하는 비구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난다 존자여, 지금 그대들이 존경하고 존중하고 우러르고 예배하고, 존경하고 존중하면서 의지하여 머무는 비구가 한 명이라도 있습니까?’라고 질문받은 존자는 ‘바라문이여, 지금 우리가 존경하고 존중하고 우러르고 예배하고, 존경하고 존중하면서 의지하여 머무는 비구는 한 명도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난다 존자여, 이 말씀의 의미를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바라문이여, 아시는 분, 보시는 분, 그분 세존-아라한-정등각께서 선언한 믿음으로 이끄는 열 가지 법이 있습니다. 참으로 이 법들이 있을 때라면(있는 곳이라면) 이제 우리는 그것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우러르고 예배하고, 존경하고 존중하면서 의지하여 머뭅니다. 어떤 열 가지입니까?
여기 바라문이여, 비구는 계를 중시합니다. 계목(戒目)의 단속으로 단속하고, 행동의 영역을 갖추어 작은 결점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보면서 머뭅니다. 받아들인 뒤 학습 계목들 위에서 공부합니다.
많이 배우고, 배운 것을 명심하고, 배운 것을 쌓습니다. 처음도 좋고 중간에도 좋고 끝도 좋은, 의미를 갖추고 표현을 갖춘 법들과 온전하게 완전하고 청정한 범행(梵行)을 선언하는 가르침을 많이 배우고 만족하고 말에 의해 익숙해지고 의(意)로써 이어보고 견해로써 잘 꿰뚫습니다.
가사와 탁발 음식과 거처와 병(病)의 조건으로부터 필요한 약품에 의해서 만족합니다.
지금여기의 행복한 머묾을 위한 높은 심(心)인 네 가지 선(禪)을 원하는 대로 어렵지 않고 고통스럽지 않게 얻습니다.
여러 가지 종류의 신통을 실행합니다. — 하나였다가 여럿이 되기도 하고, 여럿이었다가 하나가 되기도 합니다. 드러내기도 하고 숨기도 하고, 분말과 성벽과 산을 가로지르기를 허공에서처럼 닿지 않고 갑니다. 땅에서도 물에서처럼 떠오르고 들어갑니다. 물에서도 땅에서처럼 빠지지 않고 갑니다. 허공에서도 가부좌하고 날개 달린 새처럼 갑니다. 이렇게 강력하고 웅장한 저 달과 해를 손으로 닿아 쓰다듬습니다. 범천의 세상까지도 몸으로 나아갑니다.
신성한 귀의 요소로 심(心)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합니다. 그는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귀의 요소로 멀든 가깝든 하늘과 인간의 양쪽 소리를 듣습니다.
다른 중생들과 다른 사람들의 심(心)을 심(心)으로 분별하여 분명히 압니다. — ①탐(貪)이 있는 심(心)을 ‘탐(貪)이 있는 심(心)’이라고 분명히 압니다. ②탐(貪)이 없는 심(心)을 ‘탐(貪)이 없는 심(心)’이라고 분명히 압니다. ③진(嗔)이 있는 심(心)을 ‘진(嗔)이 있는 심(心)’이라고 분명히 압니다. ④진(嗔)이 없는 심(心)을 ‘진(嗔)이 없는 심(心)’이라고 분명히 압니다. ⑤치(癡)가 있는 심(心)을 ‘치(癡)가 있는 심(心)’이라고 분명히 압니다. ⑥치(癡)가 없는 심(心)을 ‘치(癡)가 없는 심(心)’이라고 분명히 압니다. ⑦수축된 심(心)을 ‘수축된 심(心)’이라고 분명히 압니다. ⑧흩어진 심(心)을 ‘흩어진 심(心)’이라고 분명히 압니다. ⑨개발된 심(心)을 ‘개발된 심(心)’이라고 분명히 압니다. ⑩개발되지 않은 심(心)을 ‘개발되지 않은 심(心)’이라고 분명히 압니다. ⑪위가 있는 심(心)을 ‘위가 있는 심(心)’이라고 분명히 압니다. ⑫위가 없는 심(心)을 ‘위가 없는 심(心)’이라고 분명히 압니다. ⑬삼매를 닦는 심(心)을 ‘삼매를 닦는 심(心)’이라고 분명히 압니다. ⑭삼매를 닦지 않는 심(心)을 ‘삼매를 닦지 않는 심(心)’이라고 분명히 압니다. ⑮해탈된 심(心)을 ‘해탈된 심(心)’이라고 분명히 압니다. ⑯해탈되지 않은 심(心)을 ‘해탈되지 않은 심(心)’이라고 분명히 압니다.
여러 이전의 존재 상태[전생]를 기억합니다. 즉 — 한 번의 생, 두 번의 생, 세 번의 생, 네 번의 생, 다섯 번의 생, 열 번의 생, 스무 번의 생, 서른 번의 생, 마흔 번의 생, 쉰 번의 생, 백 번의 생, 천 번의 생, 십만 번의 생, 세계가 자라나는[퇴보] 여러 겁, 세계가 줄어드는[진화] 여러 겁, 세계가 자라나고 줄어드는 여러 겁을 기억합니다. — ‘이러이러한 곳에서 나는 이런 이름이었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였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행복과 괴로움을 이렇게 경험했고, 수명의 한계는 이러했다. 나는 거기에서 죽어 이러이러한 곳에 태어났다. 그곳에서 나는 이런 이름이었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였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행복과 괴로움을 이렇게 경험했고, 수명의 한계는 이러했다. 나는 거기에서 죽어 여기에 태어났다.’라고. 이렇게 상태와 함께, 상세한 설명과 함께 여러 이전의 존재 상태를 기억합니다.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천안(天眼)]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고, 저열하고 뛰어나고, 잘생기고 못생기고, 좋은 곳[선처(善處)]에 가고 나쁜 곳[악처(惡處)]에 가는 것을 봅니다. 업에 따라서 가는 중생들을 분명히 압니다.
번뇌들이 부서졌기 때문에 번뇌가 없는 심해탈(心解脫)과 혜해탈(慧解脫)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머뭅니다.
바라문이여, 아시는 분, 보시는 분, 그분 세존-아라한-정등각께서 선언한 믿음으로 이끄는 이런 열 가지 법이 있습니다. 참으로 이 법들이 있을 때라면(있는 곳이라면) 이제 우리는 그것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우러르고 예배하고, 존경하고 존중하면서 의지하여 머뭅니다.”라고.
이렇게 말했을 때, 마가다의 대신인 왓사까라 바라문이 우빠난다 장군에게 말했다. ― “장군이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 존자들은 존경해야 하는 것을 존경하고, 존중해야 하는 것을 존중하고, 우러러야 하는 것을 우러르고, 예배해야 하는 것을 예배합니까?” “참으로 이 존자들은 존경해야 하는 것을 존경하고, 존중해야 하는 것을 존중하고, 우러러야 하는 것을 우러르고, 예배해야 하는 것을 예배합니다. 참으로 이 존자들이 이것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우러르고 예배하지 않는다면, 이제 이 비구들이 무엇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우러르고 예배하고, 존경하고 존중하면서 의지하여 머물겠습니까?” 그러자 마가다의 대신 왓사까라 바라문이 아난다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 “그런데 아난다 존자는 지금 어디에 머무십니까?” “바라문이여, 나는 지금 웰루와나에 머뭅니다.” “아난다 존자여, 웰루와나는 마음에 들고 조용하고 소음이 작고 한적하고 인적이 드물고 홀로 머물기에 적당합니까?” “참으로 바라문이여, 보호하고 지켜주는 그대들 덕분에 웰루와나는 마음에 들고 조용하고 소음이 작고 한적하고 인적이 드물고 홀로 머물기에 적당합니다.” “참으로 아난다 존자여, 선(禪)을 하고 선을 하는 성품을 가진 존자들 덕분에 웰루와나는 마음에 들고 조용하고 소음이 작고 한적하고 인적이 드물고 홀로 머물기에 적당합니다. 존자들은 선(禪)을 하고 선의 성품을 가졌습니다.
(*) 여기를 제외한 모든 용례에서 1인칭으로 서술됨 ― ‘한때 여기 나는’
아난다 존자여, 한때 그분 고따마 존자께서 웨살리에서 큰 숲의 뾰족지붕 강당에 머무셨습니다. 아난다 존자여, 그때 나는 큰 숲의 뾰족지붕 강당으로 그분 고따마 존자에게 갔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그분 고따마 존자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선에 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분 고따마 존자께서는 선을 하고 선의 성품을 가졌습니다. 또한, 그분 고따마 존자께서는 모든 선을 칭찬하셨습니다.”
“바라문이여, 그분 세존께서는 모든 선(禪)을 칭찬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분 세존께서는 모든 선을 칭찬하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바라문이여, 그분 세존께서는 어떤 선을 칭찬하지 않았습니까? 여기, 바라문이여, 어떤 사람은 욕탐(慾貪)이 스며들고, 욕탐(慾貪)에 시달리는 심(心)으로 머뭅니다, 일어난 욕탐의 해방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합니다. 그는 안으로 욕탐을 일으킨 채로 선을 하고, 태우고, 숙고하고, 명상합니다. 진에가 스며들고, 진에에 시달리는 심으로 머뭅니다, 일어난 진에의 해방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합니다. 그는 안으로 진에를 일으킨 채로 선을 하고, 태우고, 숙고하고, 명상합니다. 해태-혼침이 스며들고, 해태-혼침에 시달리는 심으로 머뭅니다, 일어난 해태-혼침의 해방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합니다. 그는 안으로 해태-혼침을 일으킨 채로 선을 하고, 태우고, 숙고하고, 명상합니다. 들뜸-후회가 스며들고, 들뜸-후회에 시달리는 심으로 머뭅니다, 일어난 들뜸-후회의 해방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합니다. 그는 안으로 들뜸-후회를 일으킨 채로 선을 하고, 태우고, 숙고하고, 명상합니다. 의심이 스며들고, 의심에 시달리는 심으로 머뭅니다, 일어난 의심의 해방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합니다. 그는 안으로 의심을 일으킨 채로 선을 하고, 태우고, 숙고하고, 명상합니다. 바라문이여, 그분 세존께서는 이런 선을 칭찬하지 않았습니다.
바라문이여, 그분 세존께서는 어떤 선(禪)을 칭찬하였습니까? 여기, 바라문이여, 비구는 소유의 삶에서 벗어나고, 불선법들에서 벗어나서, 위딱까가 있고 위짜라가 있고 떨침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의 초선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위딱까와 위짜라의 가라앉음으로 인해, 안으로 평온함과 마음의 집중된 상태가 되어, 위딱까도 없고 위짜라도 없이, 삼매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의 제2선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기쁨의 바램으로부터 평정하게 머물고, 사띠와 바른 앎을 가지고 몸으로 즐거움을 경험하면서, 성인들이 '평정을 가진 자, 사띠를 가진 자, 즐거움에 머무는 자[사념락주(捨念樂住)].'라고 말하는 제3선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즐거움의 버림과 괴로움의 버림으로부터, 이미 만족과 불만들의 줄어듦으로부터, 괴로움도 즐거움도 없고 평정과 청정한 사띠[사념청정(捨念淸淨)]의 제4선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바라문이여, 그분 세존께서는 이런 선을 칭찬하셨습니다.”
“참으로 아난다 존자여, 그분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열한 선(禪)을 비난하고, 칭찬해야 할 선을 칭찬했습니다. 아난다 존자여, 이제 우리는 가겠습니다. 우리는 바쁘고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바라문이여, 그대가 돌아가기에 적당한 때를 생각하십시오.” 마가다의 대신 왓사까라 바라문은 아난다 존자의 말씀을 기뻐하고 감사한 뒤에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갔다.
마가다의 대신 왓사까라 바라문이 돌아가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고빠까목갈라나 바라문이 아난다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 “우리가 아난다 존자에게 질문한 것에 대해 아난다 존자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바라문이여, 그대에게 말하지 않았습니까? ― ‘바라문이여, 아라한-정등각이었던 그분 세존께서 갖추었던 법을 모든 관점에서 완전하게 모두 갖춘 비구는 한 명도 없습니다. 참으로 바라문이여, 그분 세존은 생겨나지 않은 길을 생겨나게 하셨고, 일어나지 않은 길을 일어나게 하셨고, 선언되지 않은 길을 선언하셨고, 길을 아는 분, 길에 능숙한 분, 길에 정통한 분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제자들은 길을 따르고, 나중에 갖추어 머뭅니다.’라고.”
gopakamoggallānasuttaṃ niṭṭhitaṃ aṭṭhama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