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ūḷasuññatasuttaṃ (MN 121-공(空)의 작은 경)
3. suññatavaggo, 1. cūḷasuññatasuttaṃ (MN 121-공(空-텅 빔)의 작은 경)
• suññatā: emptiness. (f.) 텅 빔. 공(空) ― suññatāvihāra 텅 빈 머묾. 공(空)한 머묾
• suñña: empty; void. (adj.) 빈. 공허한. ― migāramātupāsādo suñño 빈(비어있는) 미가라마뚜 저택
이렇게 나는 들었다. — 한때 세존은 사왓티에서 동쪽 사원의 미가라마뚜 강당에 머물렀다. 그때 저녁에 홀로 머묾에서 나온 아난다 존자가 세존에게 왔다. 와서는 세존에게 절한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아난다 존자는 세존에게 이렇게 말했다. — “대덕이시여, 한때 세존께서는 삭까에서 나가라까라는 삭까의 번화가에 머무셨습니다. 대덕이시여, 거기서 저는 ‘아난다여, 나는 요즘 자주 공(空)한(텅 빈) 머묾으로 머문다.’라고 이렇게 세존의 곁에서 들었고, 곁에서 받아들였습니다. 대덕이시여, 제가 그것을 바르게 듣고 바르게 받아들이고 바르게 사고하고 바르게 생각하는 것입니까?” “아난다여, 참으로 그러하다. 그대는 바르게 듣고 바르게 받아들이고 바르게 사고하고 바르게 생각하는 것이다. 아난다여, 나는 전에도 그랬고, 요즘도 자주 공한 머묾으로 머문다. 예를 들자면, 아난다여, 이 미가라마뚜 저택은 코끼리, 소, 말, 암말들에 의해 공 하고(비어있고) 금이나 은에 의해 비어있고, 여자와 남자의 모임에 의해 비어있지만, 비구 상가를 연(緣)한 하나만은 비어있지 않다. 이처럼 비구는 마을의 상(想)을 작의하지 않고, 사람의 상을 작의하지 않고, 숲의 상을 연한 하나만을 사고한다. 그의 심(心)은 숲의 상으로 접근하고 순일해지고 확립되고 기운다. 그는 이렇게 분명히 안다. — ‘마을의 상을 연한 불안들은 여기에 없다. 사람의 상을 연한 불안들은 여기에 없다. 그러나 숲의 상을 연한 하나의 불안만은 있다. 그는 ‘마을의 상에 속한 상은 비어있다.’라고 분명히 알고, ‘사람의 상에 속한 상은 비어있다.’라고 분명히 안다. 이렇게 그는 거기에 없는 것에 의해 그것의 공(空-비어있음)을 관찰하고, ‘그러나 숲의 상을 연한 하나만은 비어있지 않다.’라고 거기에 남아있는 것을 ‘존재하는 이것은 있다.’라고 분명히 안다. 아난다여, 이렇게도 사실에 따르고 전도되지 않았고 청정한 공(空-텅 빔)에 들어감이 있다.
다시, 아난다여, 비구는 사람의 상을 작의하지 않고, 숲의 상을 작의하지 않고 땅의 상을 연한 하나만을 사고한다. 그의 심은 땅의 상으로 접근하고 순일해지고 확립되고 기운다. 예를 들면, 아난다여, 소가죽을 막대기로 백 번을 두드려 잘 펼치면 주름이 없어진다. 이처럼, 아난다여, 비구는 이 땅의 높고 낮음, 강과 요새, 그루터기와 가시와 나무토막, 편평하지 않은 산 등 이 모두를 작의하지 않고 오직 땅의 상을 연한 하나를 사고한다. 그의 심은 땅의 상으로 접근하고 순일해지고 확립되고 기운다. 그는 이렇게 분명히 안다. — ‘사람의 상을 연한 불안은 여기에 없다. 숲의 상을 연한 불안은 여기에 없다. 그러나 땅의 상을 연한 하나의 불안만은 있다. 그는 ‘사람의 상에 속한 상은 비어있다.’라고 분명히 알고, ‘숲의 상에 속한 상은 비어있다.’라고 분명히 안다. 이렇게 그는 거기에 없는 것에 의해 그것의 공(空-비어있음)을 관찰하고, ‘그러나 땅의 상을 연한 하나만은 비어있지 않다.’라고 거기에 남아있는 것을 ‘존재하는 이것은 있다.’라고 분명히 안다. 아난다여, 이렇게도 사실에 따르고 전도되지 않았고 청정한 공(空-텅 빔)에 들어감이 있다.
다시, 아난다여, 비구는 숲의 상을 작의하지 않고, 땅의 상을 작의하지 않고 공무변처의 상을 연한 하나만을 사고한다. 그의 심은 공무변처의 상으로 접근하고 순일해지고 확립되고 기운다. 그는 이렇게 분명히 안다. — ‘숲의 상을 연한 불안은 여기에 없다. 땅의 상을 연한 불안은 여기에 없다. 그러나 공무변처의 상을 연한 하나의 불안만은 있다. 그는 ‘숲의 상에 속한 상은 비어있다.’라고 분명히 알고, ‘땅의 상에 속한 상은 비어있다.’라고 분명히 안다. 이렇게 그는 거기에 없는 것에 의해 그것의 공(空-비어있음)을 관찰하고, ‘그러나 공무변처의 상을 연한 하나만은 비어있지 않다.’라고 거기에 남아있는 것을 ‘존재하는 이것은 있다.’라고 분명히 안다. 아난다여, 이렇게도 사실에 따르고 전도되지 않았고 청정한 공(空-텅 빔)에 들어감이 있다.
다시, 아난다여, 비구는 땅의 상을 작의하지 않고, 공무변처의 상을 작의하지 않고 식무변처의 상을 연한 하나만을 사고한다. 그의 심은 식무변처의 상으로 접근하고 순일해지고 확립되고 기운다. 그는 이렇게 분명히 안다. — ‘땅의 상을 연한 불안은 여기에 없다. 공무변처의 상을 연한 불안은 여기에 없다. 그러나 식무변처의 상을 연한 하나의 불안만은 있다. 그는 ‘땅의 상에 속한 상은 비어있다.’라고 분명히 알고, ‘공무변처의 상에 속한 상은 비어있다.’라고 분명히 안다. 이렇게 그는 거기에 없는 것에 의해 그것의 공(空-비어있음)을 관찰하고, ‘그러나 식무변처의 상을 연한 하나만은 비어있지 않다.’라고 거기에 남아있는 것을 ‘존재하는 이것은 있다.’라고 분명히 안다. 아난다여, 이렇게도 사실에 따르고 전도되지 않았고 청정한 공(空-텅 빔)에 들어감이 있다.
다시, 아난다여, 비구는 공무변처의 상을 작의하지 않고, 식무변처의 상을 작의하지 않고 무소유처의 상을 연한 하나만을 사고한다. 그의 심은 무소유처의 상으로 접근하고 순일해지고 확립되고 기운다. 그는 이렇게 분명히 안다. — ‘공무변처의 상을 연한 불안은 여기에 없다. 식무변처의 상을 연한 불안은 여기에 없다. 그러나 무소유처의 상을 연한 하나의 불안만은 있다. 그는 ‘공무변처의 상에 속한 상은 비어있다.’라고 분명히 알고, ‘식무변처의 상에 속한 상은 비어있다.’라고 분명히 안다. 이렇게 그는 거기에 없는 것에 의해 그것의 공(空-비어있음)을 관찰하고, ‘그러나 무소유처의 상을 연한 하나만은 비어있지 않다.’라고 거기에 남아있는 것을 ‘존재하는 이것은 있다.’라고 분명히 안다. 아난다여, 이렇게도 사실에 따르고 전도되지 않았고 청정한 공(空-텅 빔)에 들어감이 있다.
다시, 아난다여, 비구는 식무변처의 상을 작의하지 않고, 무소유처의 상을 작의하지 않고 비상비비상처의 상을 연한 하나만을 사고한다. 그의 심은 비상비비상처의 상으로 접근하고 순일해지고 확립되고 기운다. 그는 이렇게 분명히 안다. — ‘식무변처의 상을 연한 불안은 여기에 없다. 무소유처의 상을 연한 불안은 여기에 없다. 그러나 비상비비상처의 상을 연한 하나의 불안만은 있다. 그는 ‘식무변처의 상에 속한 상은 비어있다.’라고 분명히 알고, ‘무소유처의 상에 속한 상은 비어있다.’라고 분명히 안다. 이렇게 그는 거기에 없는 것에 의해 그것의 공(空-비어있음)을 관찰하고, ‘그러나 비상비비상처의 상을 연한 하나만은 비어있지 않다.’라고 거기에 남아있는 것을 ‘존재하는 이것은 있다.’라고 분명히 안다. 아난다여, 이렇게도 사실에 따르고 전도되지 않았고 청정한 공(空-텅 빔)에 들어감이 있다.
다시, 아난다여, 비구는 무소유처의 상을 작의하지 않고, 비상비비상처의 상을 작의하지 않고 무상심삼매(無相心三昧)를 연한 하나만을 사고한다. 그의 심은 무상심삼매로 접근하고 순일해지고 확립되고 기운다. 그는 이렇게 분명히 안다. — ‘무소유처의 상을 연한 불안은 여기에 없다. 비상비비상처의 상을 연한 불안은 여기에 없다. 그러나 생명을 조건으로 이 몸을 연한 육처(六處)에 속한 불안만은 있다. 그는 ‘무소유처의 상에 속한 상은 비어있다.’라고 분명히 알고, ‘비상비비상처의 상에 속한 상은 비어있다.’라고 분명히 안다. 이렇게 그는 거기에 없는 것에 의해 그것의 공(空-비어있음)을 관찰하고, ‘그러나 생명을 조건으로 이 몸을 연한 육처(六處)에 속한 것만은 비어있지 않다.’라고 거기에 남아있는 것을 ‘존재하는 이것은 있다.’라고 분명히 안다. 아난다여, 이렇게도 사실에 따르고 전도되지 않았고 청정한 공(空-텅 빔)에 들어감이 있다.
다시, 아난다여, 비구는 무소유처의 상을 작의하지 않고, 비상비비상처의 상을 작의하지 않고 무상심삼매를 연한 하나만을 사고한다. 그의 심은 무상심삼매로 접근하고 순일해지고 확립되고 기운다. 그는 이렇게 분명히 안다. — ‘이 무상심삼매도 형성된 것이고 의도된 것이다.’라고. ‘어떤 것이든 형성된 것이고 의도된 것은 무상(無常)하고 소멸의 법(法)이다.’라고 분명히 안다.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는 그에게 욕루(慾漏)로부터도 심(心)이 해탈하고, 유루(有漏)로부터도 심이 해탈하고, 무명루(無明漏)로부터도 심이 해탈한다. 해탈했을 때 해탈했다는 앎이 있다. ‘태어남은 다했다. 범행은 완성되었다. 해야 할 일을 했다. 다음에는 현재 상태[유(有)]가 되지 않는다.’라고 분명히 안다. 그는 이렇게 분명히 안다. — ‘욕루를 연한 불안은 여기에 없다. 유루를 연한 불안은 여기에 없다. 무명루를 연한 불안은 여기에 없다. 그러나 생명을 조건으로 이 몸을 연한 육처(六處)에 속한 불안만은 있다.’라고. 그는 ‘욕루(慾漏)에 속한 상(想)은 비어있다.’라고 분명히 알고, ‘유루(有漏)에 속한 상(想)은 비어있다.’라고 분명히 알고, ‘무명루(無明漏)에 속한 상(想)은 비어있다.’라고 분명히 안다. 이렇게 그는 거기에 없는 것에 의해 그것의 공(空-비어있음)을 관찰하고, ‘그러나 생명을 조건으로 이 몸을 연한 육처(六處)에 속한 것만은 비어있지 않다.’라고 거기에 남아있는 것을 ‘존재하는 이것은 있다.’라고 분명히 안다. 아난다여, 이렇게도 사실에 따르고 전도되지 않았고 청정함을 넘어선 위없는 공(空-텅 빔)에 들어감이 있다.
아난다여,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과거에 청정함을 넘어선 위없는 공(空-텅 빔)을 성취하여 머물렀던 자들은 모두 이 청정함을 넘어선 위없는 공(空-텅 빔)을 성취하여 머물렀다. 아난다여,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미래에 청정함을 넘어선 위없는 공(空-텅 빔)을 성취하여 머물 자들은 모두 이 청정함을 넘어선 위없는 공(空-텅 빔)을 성취하여 머물 것이다. 아난다여,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현재에 청정함을 넘어선 위없는 공(空-텅 빔)을 성취하여 머무는 자들은 모두 이 청정함을 넘어선 위없는 공(空-텅 빔)을 성취하여 머문다. 그러므로 아난다여, ‘우리는 청정함을 넘어선 위없는 공(空-텅 빔)을 성취하여 머물 것이다.’라고, 아난다여, 그대들은 이렇게 공부해야 한다.
세존은 이렇게 말했다. 그 비구들은 즐거워하면서 세존의 말씀을 기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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