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dantabhūmisuttaṃ (MN 125-길들임의 단계 경)
3. suññatavaggo, 5. dantabhūmisuttaṃ (MN 125-길들임의 단계 경)
이렇게 나는 들었다. — 한때 세존은 라자가하에서 웰루와나의 다람쥐 보호구역에 머물렀다. 그때 초보 수행자 아찌라와따가 숲속 오두막에 머물렀다. 그때 걸어서 이리저리 움직이고 돌아다니던 자야세나 왕자가 초보 수행자 아찌라와따에게 왔다. 와서는 초보 수행자 아찌라와따와 함께 인사를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만한 이야기를 주고받은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자야세나 왕자는 초보 수행자 아찌라와따에게 이렇게 말했다. —
“나는 이렇게 들었습니다, 악기웻사나여, — ‘여기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확고한 의지로써 머무는 비구는 심(心)이 한끝에 집중됨[심일경성(心一境性)]을 얻을 수 있다.’라고.” “그렇습니다, 왕자여. 그렇습니다, 왕자여. 여기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확고한 의지로써 머무는 비구는 심(心)이 한끝에 집중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악기웻사나 존자께서 저에게 배운 대로 이해한 대로 법을 설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왕자여, 제가 그대에게 배운 대로 이해한 대로 법을 설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왕자여, 제가 그대에게 배운 대로 이해한 대로 법을 설한다 해도 그대는 나의 말의 의미를 알지 못할 것입니다. 그것은 나에게 피곤이고, 그것은 나를 짜증나게 할 것입니다.” “악기웻사나 존자는 저에게 배운 대로 이해한 대로 법을 설해주십시오. 저는 악기웻사나 존자의 말의 의미를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왕자여, 나는 그대에게 배운 대로 이해한 대로 법을 설하겠습니다. 만약 그대가 나의 말의 의미를 안다면, 이것은 유익입니다. 만약 그대가 나의 말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 해도 그만큼으로 멈추십시오. 나에게 그 이상을 묻지 마십시오.” “악기웻사나 존자는 저에게 배운 대로 이해한 대로 법을 설하십시오. 만약 제가 악기웻사나 존자의 말의 의미를 안다면, 이것은 유익입니다. 만약 제가 악기웻사나 존자의 말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면 그만큼에서 멈추겠습니다. 저는 악기웻사나 존자에게 거기서 그 이상을 질문하지 않겠습니다.”
그래서 초보 수행자 아찌라와따는 자야세나 왕자에게 배운 대로 이해한 대로 법을 설했다. 이렇게 말했을 때, 자야세나 왕자는 초보수행자 아찌라와따에게 이렇게 말했다. — “악기웻사나 존자여, ‘여기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확고한 의지로써 머무는 비구는 심이 한끝에 집중됨을 얻을 수 있다.’라는 경우는 없고, 여지는 없습니다.”라고. 자야세나 왕자는 초보 수행자 아찌라와따에게 경우 없음과 여지없음을 선언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떠났다.
그러자 초보 수행자 아찌라와따는 자야세나 왕자가 떠나고 오래지 않아서 세존에게 왔다. 와서는 세존에게 절한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초보 수행자 아찌라와따는 자야세나 왕자와 함께 나눈 우정의 대화를 전부 세존에게 알렸다.
이렇게 말했을 때, 세존은 초보 수행자 아찌라와따에게 이렇게 말했다. — “악기웻사나여, 여기에서 그런 대화가 무엇을 얻겠는가? 출리(出離)에 의해 알려지고, 출리에 의해 보이고, 출리에 의해 성취되고, 출리에 의해 실현되는 것을 소유 가운데 사는 자, 소유의 삶을 즐기는 자, 소유의 위딱까에 삼켜진 자, 소유의 열기로 불타는 자, 소유의 추구로 열광하는 자인 자야세나 왕자가 알고, 보고, 실현할 것이라는 경우는 없다.
예를 들면, 악기웻사나여, 잘 길들고 잘 훈련된 두 마리의 가축 코끼리나 가축 말이나 가축 소 또는 길들지 않고 훈련되지 않은 두 마리의 가축 코끼리나 가축 말이나 가축 소가 있다. 악기웻사나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잘 길들고 잘 훈련된 두 마리의 가축 코끼리나 가축 말이나 가축 소가 길들임 때문에 길든 행동을 성취하고 길들임 때문에 길든 단계를 얻겠는가?” “그렇습니다, 대덕이시여.” “길들지 않고 훈련되지 않은 두 마리의 가축 코끼리나 가축 말이나 가축 소가 길들임 때문에 길든 행동을 성취하고 길들임 때문에 길든 단계를 얻겠는가?”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이처럼, 악기웻사나여, 출리(出離)에 의해 알려지고, 출리에 의해 보이고, 출리에 의해 성취되고, 출리에 의해 실현되는 것을 소유 가운데 사는 자, 소유의 삶을 즐기는 자, 소유의 위딱까에 삼켜진 자, 소유의 열기로 불타는 자, 소유의 추구로 열광하는 자인 자야세나 왕자가 알고, 보고, 실현할 것이라는 경우는 없다.
예를 들면, 악기웻사나여, 마을이나 번화가의 멀지 않은 곳에 큰 산이 있다. 그것을 두 명의 친구가 그 마을이나 번화가로부터 출발한 뒤 손을 잡고 그 산으로 갈 것이다. 가서는 한 친구는 산기슭 아래에 머물 것이고, 한 친구는 산꼭대기에 올라갈 것이다. 산기슭 아래에 머문 그 친구는 산꼭대기에 올라간 친구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 “벗이여, 산꼭대기에 선 그대는 무엇을 보는가?” 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 “벗이여, 산꼭대기에 선 나는 멋진 공원과 멋진 숲과 멋진 땅과 멋진 연못을 보네.”
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 “벗이여, 산꼭대기에 선 그대가 멋진 공원과 멋진 숲과 멋진 땅과 멋진 연못을 볼 것이라는 경우는 없고 여지는 없네.”라고. 산꼭대기에 선 그 친구는 산기슭 아래로 내려온 뒤 그 친구의 팔을 잡고 산꼭대기에 올라간 뒤에 잠시 쉬고 나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 “벗이여, 산꼭대기에 선 그대는 무엇을 보는가?” 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 “벗이여, 산꼭대기에 선 나는 멋진 공원과 멋진 숲과 멋진 땅과 멋진 연못을 보네.”
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 “이제, 벗이여, 그대가 말한 것을 우리는 이렇게 아네. — ‘벗이여, 산꼭대기에 선 그대가 멋진 공원과 멋진 숲과 멋진 땅과 멋진 연못을 볼 것이라는 경우는 없고 여지는 없네.’라고. 그러나 이제 다시 그대가 말한 것을 우리는 이렇게 아네. — ‘벗이여, 산꼭대기에 선 나는 멋진 공원과 멋진 숲과 멋진 땅과 멋진 연못을 보네.’”라고. 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 “참으로 그대의 말처럼, 벗이여, 나는 이 큰 산이 가려서 보아야 하는 것을 보지 못했네.”라고.
“악기웻사나여, 자야세나 왕자는 큰 산보다 더 높은 무명의 무더기에 의해 가려지고 덮이고 장애 되고 묶여 있다. 참으로 출리에 의해 알려지고, 출리에 의해 보이고, 출리에 의해 성취되고, 출리에 의해 실현되는 것을 소유 가운데 사는 자, 소유의 삶을 즐기는 자, 소유의 위딱까에 삼켜진 자, 소유의 열기로 불타는 자, 소유의 추구로 열광하는 자인 자야세나 왕자가 알고, 보고, 실현할 것이라는 경우는 없다. 악기웻사나여, 만약 그대가 자야세나 왕자에게 이런 두 가지 단순한 비유를 말했다면 그대로 인해 자야세나 왕자는 분명해졌을 것이다. 그대로 인해 분명해진 그는 분명한 방법으로 행동했을 것이다.” “어떻게 제가, 대덕이시여, 자야세나 왕자에게 단순하지만 이전에 듣지 못한 이런 두 가지 비유를 세존처럼 말할 것입니까?”
“예를 들면, 악기웻사나여, 머리에 의식을 치르고 왕위에 오른 끄샤뜨리야 왕이 코끼리 숲에 속한 자에게 말한다. — ‘오라, 코끼리 숲에 속한 자여, 그대는 왕의 코끼리를 타고서 코끼리 숲으로 가서 숲에 사는 코끼리를 보면 왕의 코끼리의 목에 묶어라.’라고. 악기웻사나여, ‘알겠습니다, 왕이시여.’라고 코끼리 숲에 속한 자는 머리에 의식을 치르고 왕위에 오른 끄샤뜨리야 왕에게 대답한 뒤 왕의 코끼리를 타고서 코끼리 숲으로 가서 숲에 사는 코끼리를 보면 왕의 코끼리의 목에 묶는다. 그를 왕의 코끼리는 열린 곳으로 끌고 나온다. 이만큼, 악기웻사나여, 숲에 사는 코끼리는 열린 곳으로 나온다. 악기웻사나여, 숲에 사는 코끼리는 코끼리 숲에 대한 갈망이 있다. 코끼리 숲에 속한 자는 머리에 의식을 치르고 왕위에 오른 끄샤뜨리야 왕에게 알린다. — ‘왕이시여, 숲에 사는 코끼리가 열린 곳으로 나왔습니다.’라고. 그러면, 악끼웻사나여, 머리에 의식을 치르고 왕위에 오른 끄샤뜨리야 왕은 코끼리의 다스림을 말한다. — ‘오라, 코끼리 조련사여, 그대는 숲에 사는 코끼리를 숲속에서의 행동들을 억제하고, 숲속에서의 기억과 사유를 억제하고, 숲속에서의 걱정과 피로와 열기를 억제하고, 마을에 대해 기뻐하고, 사람들에게 들어가는 행동들을 가르치기 위해 조련하라.’라고.
악기웻사나여, ‘알겠습니다, 왕이시여.’라고 코끼리 조련사는 머리에 의식을 치르고 왕위에 오른 끄샤뜨리야 왕에게 대답한 뒤, 숲속에서의 행동들을 억제하고, 숲속에서의 기억과 사유를 억제하고, 숲속에서의 걱정과 피로와 열기를 억제하고, 마을에 대해 기뻐하고, 사람들에게 들어가는 행동들을 가르치기 위해 큰 말뚝을 땅에 박고 숲에 사는 코끼리의 목을 묶는다. 그리고 코끼리 조련사는 온화하고 듣기에 좋고 사랑스럽고 유쾌하고 점잖고 많은 사람이 좋아하고 많은 사람의 마음에 드는 말에 의해 행동한다. 악기웻사나여, 숲에 사는 코끼리가 코끼리 조련사가 온화하고 듣기에 좋고 사랑스럽고 유쾌하고 점잖고 많은 사람이 좋아하고 많은 사람의 마음에 드는 말에 의해 행동하는 것을 듣고자 하고, 귀를 기울이고, 잘 아는 심(心)을 일어나게 한다. 그런 코끼리에게 코끼리 조련사는 부상(副賞)으로 풀과 먹이와 물을 준다.
악기웻사나여, 숲에 사는 코끼리가 코끼리 조련사의 풀과 먹이와 물을 받을 때 거기서 코끼리 조련사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 — ‘이제 숲의 코끼리는 살 것이다.’라고. 그러면 코끼리 조련사는 ‘친구여, 들어 올려. 친구여, 내려놓아.’라고 더 나아간 훈련을 한다. 악기웻사나여, 숲의 코끼리가 코끼리 조련사의 ‘들어 올려, 내려놓아’라는 훈련에 대해 순종하고 지시에 따를 때 코끼리 조련사는 ‘친구여, 앞으로 가. 친구여, 뒤로 가.’라고 더 나아간 훈련을 한다. 악기웻사나여, 숲의 코끼리가 코끼리 조련사의 ‘앞으로 가, 뒤로 가’라는 훈련에 대해 순종하고 지시에 따를 때 코끼리 조련사는 ‘친구여, 일어나. 친구여, 앉아.’라고 더 나아간 훈련을 한다. 악기웻사나여, 숲의 코끼리가 코끼리 조련사의 ‘일어나, 앉아’라는 훈련에 대해 순종하고 지시에 따를 때 코끼리 조련사는 움직이지 않음이라는 더 나아간 훈련을 한다. 큰 판자를 코에 묶는다. 손에 창을 든 사람이 목 위에 앉는다. 온 주위를 손에 창을 든 사람들이 둘러싸고 서 있다. 코끼리 조련사는 긴 창을 들고 앞쪽에 서 있다. 그 움직이지 않음이라는 훈련을 받는 그 코끼리는 앞발들도 움직이지 않고, 뒷발들도 움직이지 않고, 몸의 앞도 움직이지 않고, 몸의 뒤도 움직이지 않고, 머리도 움직이지 않고, 귀도 움직이지 않고, 상아도 움직이지 않고, 꼬리도 움직이지 않고, 코도 움직이지 않는다. 그 숲에 사는 코끼리는 칼을 맞는 것, 창을 맞는 것, 화살을 맞는 것, 닿는 소리를 맞는 것, 북소리와 고둥 소리와 나팔소리를 견딘다. 모든 비뚤어진 것과 결점과 쌓여있는 부적절한 것들에서 벗어나면 왕에게 어울리고, 왕에게 쓰일만하고, 왕의 요소라는 이름을 얻는다.
이처럼, 악기웻사나여, 여기 여래-아라한-정등각-명행족-선서-세간해-무상조어장부-천인사-불-세존이 세상에 출현한다. 그는 신과 함께하고 마라와 함께하고 범천과 함께하는 세상과 사문-바라문과 함께하고 신과 사람과 함께하는 존재를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선언한다. 그는 처음도 좋고 중간에도 좋고 끝도 좋은, 의미를 갖추고 표현을 갖춘 법을 설하고, 온전하게 완전하고 청정한 범행을 드러낸다. 이런 법을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나 다른 가문에 태어난 자가 듣는다. 그는 이 법을 듣고서 여래에게 믿음을 얻는다. 얻어진 그 믿음을 갖춘 그는 이렇게 숙고한다. — ‘재가의 삶이란 압박이고 오염이 많지만, 출가는 열린 허공과 같다. 재가에 살면서 온전히 충만하고 온전히 청정하고 소라고둥처럼 빛나는 범행을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니 나는 머리와 수염을 깎고, 물들인 옷을 입고서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해야겠다.’라고.
그는 나중에 적은 재산을 버리거나 많은 재산을 버리거나 주변의 적은 친척을 버리거나 주변의 많은 친척을 버린 뒤에 머리와 수염을 깎고, 물들인 옷을 입고,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한다. 악기웻사나여, 이만큼 성스러운 제자는 열린 곳으로 나온다. 악기웻사나여, 신과 사람들은 다섯 가지 소유의 사유에 묶인 것에 대한 갈망이 있다. 여래는 그에게 더 나아간 것을 훈련한다. — ‘오라, 비구여. 그대는 계를 중시하여라. 계목으로 단속하고, 행동의 영역을 갖추어 작은 결점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보면서 머물러라. 받아들인 뒤 학습 계목들 위에서 공부하여라.
악기웻사나여, 성스러운 제자가 계를 중시하고, 계목으로 단속하고, 행동의 영역을 갖추어 작은 결점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보면서 머물고, 받아들인 뒤 학습 계목들 위에서 공부할 때 여래는 그에게 더 나아간 것을 훈련한다. — ‘오라, 비구여. 그대는 기능들에서 문을 보호하여라. 안(眼)으로 색(色)을 보면서 상(相)을 붙잡지 않고 뒤따르는 것(受)을 붙잡지 마라. 안근(眼根)을 단속하지 않고 머물면 간탐과 불만과 악한 불선법들이 흘러들어 올 것이니 그것의 단속을 위해 실천하라. 안근을 보호하고, 안근에서 단속하라. 이(耳)로 성(聲)을 들으면서 … 비(鼻)로 향(香)을 맡으면서 … 설(舌)로 미(味)를 맛보면서 … 신(身)으로 촉(觸)을 느끼면서 … 의(意)로 법(法)을 인식하면서 상(相)을 붙잡지 않고 뒤따르는 것(受)을 붙잡지 마라. 의근(意根)을 단속하지 않고 머물면 간탐과 불만과 악한 불선법들이 흘러들어 올 것이니 그것의 단속을 위해 실천하라. 의근을 보호하고, 의근에서 단속하라.
※ (yathā gaṇakamoggallānasuttante, evaṃ vitthāretabbāni.)
“yato kho, brāhmaṇa, bhikkhu indriyesu guttadvāro hoti, tamenaṃ tathāgato uttariṃ vineti — ‘ehi tvaṃ, bhikkhu, bhojane mattaññū hohi. paṭisaṅkhā yoniso āhāraṃ āhāreyyāsi — neva davāya na madāya na maṇḍanāya na vibhūsanāya, yāvadeva imassa kāyassa ṭhitiyā yāpanāya vihiṃsūparatiyā brahmacariyānuggahāya — iti purāṇañca vedanaṃ paṭihaṅkhāmi, navañca vedanaṃ na uppādessāmi, yātrā ca me bhavissati anavajjatā ca phāsuvihāro cā’”ti.
바라문이여, 비구가 기능들에서 문을 보호할 때 여래는 그에게 더 나아간 것을 훈련한다. — ‘오라, 비구여. 그대는 음식에서 적당량을 알아라. 사실에 들어맞는 고찰을 원인으로 음식을 먹어라. — ‘달리기 위해서도 아니고, 여분을 위해서도 아니고, 꾸밈을 위해서도 아니고, 장식을 위해서도 아니고, 오직 이 몸을 유지할 영양을 위한 만큼, 해침을 자제할 만큼, 범행에 도움이 되기 위한 만큼. 이렇게 나는 이전의 느낌을 부수고, 새로운 느낌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나의 삶은 흠 잡을 데 없고, 안락한 생활양식이 유지될 것이다.’라고.
“yato kho, brāhmaṇa, bhikkhu bhojane mattaññū hoti, tamenaṃ tathāgato uttariṃ vineti — ‘ehi tvaṃ, bhikkhu, jāgariyaṃ anuyutto viharāhi, divasaṃ caṅkamena nisajjāya āvaraṇīyehi dhammehi cittaṃ parisodhehi, rattiyā paṭhamaṃ yāmaṃ caṅkamena nisajjāya āvaraṇīyehi dhammehi cittaṃ parisodhehi, rattiyā majjhimaṃ yāmaṃ dakkhiṇena passena sīhaseyyaṃ kappeyyāsi pāde pādaṃ accādhāya sato sampajāno uṭṭhānasaññaṃ manasikaritvā, rattiyā pacchimaṃ yāmaṃ paccuṭṭhāya caṅkamena nisajjāya āvaraṇīyehi dhammehi cittaṃ parisodhehī’”ti.
바라문이여, 비구가 음식에서 적당량을 알 때 여래는 그에게 더 나아간 것을 훈련한다. — ‘오라, 비구여. 그대는 깨어있음을 실천하며 머물러라. 낮 동안에는 경행을 수반한 앉음을 통해 장애가 되는 법들로부터 심을 청정케 하라. 밤의 초삼분 동안에는 경행을 수반한 앉음을 통해 장애가 되는 법들로부터 심을 청정케 하라. 밤의 중삼분 동안에는 발에 발을 포개고, 사띠-삼빠자나 하면서 일어남의 상(想)을 작의한 후 오른쪽으로 사자처럼 누워라. 밤의 후삼분 동안에는 경행을 수반한 앉음을 통해 장애가 되는 법들로부터 심을 청정케 하라.’라고.
“yato kho, brāhmaṇa, bhikkhu jāgariyaṃ anuyutto hoti, tamenaṃ tathāgato uttariṃ vineti — ‘ehi tvaṃ, bhikkhu, satisampajaññena samannāgato hohi, abhikkante paṭikkante sampajānakārī, ālokite vilokite sampajānakārī, samiñjite pasārite sampajānakārī, saṅghāṭipattacīvaradhāraṇe sampajānakārī, asite pīte khāyite sāyite sampajānakārī, uccārapassāvakamme sampajānakārī, gate ṭhite nisinne sutte jāgarite bhāsite tuṇhībhāve sampajānakārī’”ti.
바라문이여, 비구가 깨어있음을 실천하며 머물 때 여래는 그에게 더 나아간 것을 훈련한다. — ‘오라, 비구여. 그대는 사띠-삼빠자나를 갖추어라. 나아갈 때도 물러날 때도 옳고 그름을 판단하면서 행하여라. 앞을 볼 때도 돌아볼 때도 옳고 그름을 판단하면서 행하여라. 구부릴 때도 펼 때도 옳고 그름을 판단하면서 행하여라. 대가사와 발우와 가사를 지닐 때도 옳고 그름을 판단하면서 행하여라. 먹을 때도 마실 때도 씹을 때도 맛볼 때도 옳고 그름을 판단하면서 행하여라. 똥과 오줌을 눌 때도 옳고 그름을 판단하면서 행하여라. 갈 때도-서 있을 때도-앉아 있을 때도-잠잘 때도-깨어있을 때도-말할 때도-침묵할 때도 옳고 그름을 판단하면서 행하여라.’라고.
“yato kho, brāhmaṇa, bhikkhu satisampajaññena samannāgato hoti, tamenaṃ tathāgato uttariṃ vineti — ‘ehi tvaṃ, bhikkhu, vivittaṃ senāsanaṃ bhajāhi araññaṃ rukkhamūlaṃ pabbataṃ kandaraṃ giriguhaṃ susānaṃ vanapatthaṃ abbhokāsaṃ palālapuñjan’ti. so vivittaṃ senāsanaṃ bhajati araññaṃ rukkhamūlaṃ pabbataṃ kandaraṃ giriguhaṃ susānaṃ vanappatthaṃ abbhokāsaṃ palālapuñjaṃ. so pacchābhattaṃ piṇḍapātapaṭikkanto nisīdati pallaṅkaṃ ābhujitvā, ujuṃ kāyaṃ paṇidhāya, parimukhaṃ satiṃ upaṭṭhapetvā. so abhijjhaṃ loke pahāya vigatābhijjhena cetasā viharati, abhijjhāya cittaṃ parisodheti; byāpādapadosaṃ pahāya abyāpannacitto viharati sabbapāṇabhūtahitānukampī, byāpādapadosā cittaṃ parisodheti; thinamiddhaṃ pahāya vigatathinamiddho viharati ālokasaññī sato sampajāno, thinamiddhā cittaṃ parisodheti; uddhaccakukkuccaṃ pahāya anuddhato viharati ajjhattaṃ vūpasantacitto, uddhaccakukkuccā cittaṃ parisodheti; vicikicchaṃ pahāya tiṇṇavicikiccho viharati akathaṃkathī kusalesu dhammesu, vicikicchāya cittaṃ parisodheti.
바라문이여, 비구가 사띠-삼빠자나를 갖출 때 여래는 그에게 더 나아간 것을 훈련한다. — ‘오라, 비구여. 그대는 숲속이나 나무 아래나 산이나 골짜기나 산속 동굴이나 묘지나 밀림이나 노지나 짚더미와 같은 외딴 처소를 의지하라.’라고. 그는 숲속이나 나무 아래나 산이나 골짜기나 산속 동굴이나 묘지나 밀림이나 노지나 짚더미와 같은 외딴 처소를 의지한다. 탁발하여 공양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오후에 다리를 교차하고 몸을 곧게 뻗치고, 콧구멍 주위에 사띠를 준비한 채 앉아 있다. 그는 세상에 대한 간탐을 버린 뒤에 간탐에서 벗어난 심(心)으로 머물고, 간탐으로부터 심을 청정케 한다. 진에의 결점을 버린 뒤에 분노하지 않는 심으로 모든 생명의 이익을 위하여 연민하며 머물고, 진에의 결점으로부터 심을 청정케 한다. 해태-혼침을 버린 뒤에 해태-혼침 없이 광명상(光明想)을 가지고 사띠와 삼빠자나를 갖춘 자로 머물고, 해태-혼침으로부터 심을 청정케 한다. 들뜸-후회를 버린 뒤에 휘저어지지 않아 안으로 가라앉은 심으로 머물고, 들뜸-후회로부터 심을 청정케 한다. 의심을 버린 뒤에 의심을 건너 유익한 법들에 대해 불확실함을 가지지 않은 자로 머물고, 의심으로부터 심을 청정케 한다.
그는 지혜를 무력화시키는 심(心)의 오염원인 이런 다섯 가지 장애를 버리면서 몸(身)에서 몸을 이어 보면서 머문다. 알아차리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옳음의 유지-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자는 세상에서 간탐과 고뇌를 제거한다. 느낌(受)들에서 느낌을 이어 보면서 머문다. 알아차리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옳음의 유지-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자는 세상에서 간탐과 고뇌를 제거한다. 마음(心)에서 마음을 이어 보면서 머문다. 알아차리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옳음의 유지-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자는 세상에서 간탐과 고뇌를 제거한다. 현상(法)들에서 현상을 이어 보면서 머문다. 알아차리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옳음의 유지-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자는 세상에서 간탐과 고뇌를 제거한다. 예를 들면, 악기웻사나여, 숲속에서의 행동들을 억제하고, 숲속에서의 기억과 사유를 억제하고, 숲속에서의 걱정과 피로와 열기를 억제하고, 마을에 대해 기뻐하고, 사람들에게 들어가는 행동들을 가르치기 위해 코끼리 조련사는 큰 말뚝을 땅에 박고 숲에 사는 코끼리의 목을 묶는다. 이처럼, 악기웻사나여, 성스러운 제자에게 이 사념처는 재가와 연결된 행동들의 억제를 위한, 재가와 연결된 기억과 사유의 억제를 위한, 재가와 연결된 걱정과 피로와 열기의 억제를 위한, 방법을 얻기 위한, 열반의 실현을 위한 심의 차꼬이다.
여래는 그에게 더 나아간 것을 훈련한다. — ‘오라, 비구여, 그대는 몸에서 몸을 이어 보면서 머물러야 한다. 소유의 사유를 수반하는 생각을 떠올리지 말라. 경험들에서 … 마음에서 … 현상들에서 법을 이어 보면서 머물러야 한다. 소유의 사유를 수반하는 생각을 떠올리지 말라.’라고.
그는 위딱까와 위짜라의 가라앉음으로 인해, 안으로 평온함과 마음의 집중된 상태가 되어, 위딱까도 없고 위짜라도 없이, 삼매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의 제2선을 … 제3선을 … 제4선을 성취하여 머문다. 그는 이렇게 심(心)이 삼매를 닦고, 청정하고 아주 깨끗하고 침착하고 오염원이 없고 유연하고 준비되고 안정되고 흔들림 없음에 도달했을 때, 이전의 존재 상태에 대한 기억의 앎으로 심(心)을 기울게 한다. 그는 여러 이전의 존재 상태[전생]를 기억한다. 즉 — 한 번의 생, 두 번의 생, 세 번의 생, 네 번의 생, 다섯 번의 생, 열 번의 생, 스무 번의 생, 서른 번의 생, 마흔 번의 생, 쉰 번의 생, 백 번의 생, 천 번의 생, 십만 번의 생, 세계가 자라나는[퇴보] 여러 겁, 세계가 줄어드는[진화] 여러 겁, 세계가 자라나고 줄어드는 여러 겁을 기억한다. — ‘이러이러한 곳에서 나는 이런 이름이었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였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행복과 괴로움을 이렇게 경험했고, 수명의 한계는 이러했다. 나는 거기에서 죽어 이러이러한 곳에 태어났다. 그곳에서 나는 이런 이름이었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였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행복과 괴로움을 이렇게 경험했고, 수명의 한계는 이러했다. 나는 거기에서 죽어 여기에 태어났다.’라고. 이렇게 상태와 함께, 상세한 설명과 함께 여러 이전의 존재 상태를 기억한다.
그는 이렇게 심(心)이 삼매를 닦고, 청정하고 아주 깨끗하고 침착하고 오염원이 없고 유연하고 준비되고 안정되고 흔들림 없음에 도달했을 때, 죽고 다시 태어남의 앎으로 심(心)을 기울게 한다. 그는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천안(天眼)]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고, 저열하고 뛰어나고, 잘생기고 못생기고, 좋은 곳[선처(善處)]에 가고 나쁜 곳[악처(惡處)]에 가는 것을 본다. 업에 따라서 가는 중생들을 분명히 안다. — ‘이들은 몸으로 나쁜 삶을 살고 말로 나쁜 삶을 살고 의(意)로 나쁜 삶을 살고, 성자들을 비방하고, 삿된 견해를 가졌고, 사견업(邪見業)을 지었다. 이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상실과 비탄의 상태, 비참한 존재, 벌 받는 상태, 지옥에 태어났다. 그러나 이들은 몸으로 좋은 삶을 살고 말로 좋은 삶을 살고 의(意)로 좋은 삶을 살고, 성자들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지니고, 정견업(正見業)을 지었다. 이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하늘 세상에 태어났다.’라고. 이렇게 그는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는 것을 본다. 저열하고 뛰어나고, 잘생기고 못생기고, 좋은 곳에 가고 나쁜 곳에 가는 등 업에 따라서 가는 중생들을 분명히 안다.
그는 이렇게 심(心)이 삼매를 닦고, 청정하고 아주 깨끗하고 침착하고 오염원이 없고 유연하고 준비되고 안정되고 흔들림 없음에 도달했을 때, 번뇌들의 부서짐의 앎으로 심(心)을 기울게 한다. 그는 ‘이것이 고(苦)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이것이 고집(苦集)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이것이 고멸(苦滅)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이것이 고멸(苦滅)로 이끄는 실천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들이 번뇌[루(漏)]들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이것이 번뇌의 집(集)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이것이 번뇌의 멸(滅)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이것이 번뇌의 멸(滅)로 이끄는 실천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그가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볼 때 소유의 번뇌[욕루(慾漏)]에서도 심(心)이 해탈하고, 존재의 번뇌[유루(有漏)]에서도 심(心)이 해탈하고, 무명(無明)의 번뇌[무명루(無明漏)]에서도 심(心)이 해탈한다. 해탈했을 때 ‘나는 해탈했다’라는 앎이 있다. ‘태어남은 다했다. 범행은 완성되었다. 해야 할 일을 했다. 다음에는 현재 상태[유(有)]가 되지 않는다.’라고 분명히 안다.
그 비구는 추위와 더위와 허기와 갈증과 쇠파리-모기-바람-뙤약볕-파충류의 닿음과 심하고 언짢은 말들을 감내하고, 몸에 생겨난 괴롭고 날카롭고 예리하고 고통스럽고 불만스럽고 마음에 들지 않고 생명을 위협하는 등의 느낌들을 극복하는 부류가 된다. 모든 탐-진-치의 쌓임으로부터 벗어나면 공양받을만한 분, 환영받을만한 분, 보시받을만한 분, 합장 받을만한 분이며, 이 세상의 위없는 복전(福田)이다.
만약, 악기웻사나여, 길들지 않고 훈련되지 않은 늙은 왕의 코끼리가 죽으면 ‘죽음을 길들이지 못하고 죽은 늙은 왕의 코끼리’라는 이름을 얻는다. 만약, 악기웻사나여, 길들지 않고 훈련되지 않은 중년의 왕의 코끼리가 죽으면 ‘죽음을 길들이지 못하고 죽은 중년의 왕의 코끼리’라는 이름을 얻는다. 악기웻사나여, 만약 길들지 않고 훈련되지 않은 젊은 왕의 코끼리가 죽으면 ‘죽음을 길들이지 못하고 죽은 젊은 왕의 코끼리’라는 이름을 얻는다. 이처럼, 악기웻사나여, 만약 번뇌가 다하지 않은 장로 비구가 죽으면 ‘죽음을 길들이지 못하고 죽은 장로 비구’라는 이름을 얻는다. 만약, 악기웻사나여, 번뇌가 다하지 않은 중진 비구가 죽으면 ‘죽음을 길들이지 못하고 죽은 중진 비구’라는 이름을 얻는다. 만약, 악기웻사나여, 번뇌가 다하지 않은 신진 비구가 죽으면 ‘죽음을 길들이지 못하고 죽은 신진 비구’라는 이름을 얻는다.
만약, 악기웻사나여, 잘 길들고 잘 훈련된 늙은 왕의 코끼리가 죽으면 ‘죽음을 길들이고 죽은 늙은 왕의 코끼리’라는 이름을 얻는다. 만약, 악기웻사나여, 잘 길들고 잘 훈련된 중년의 왕의 코끼리가 죽으면 ‘죽음을 길들이고 죽은 중년의 왕의 코끼리’라는 이름을 얻는다. 만약, 악기웻사나여, 잘 길들고 잘 훈련된 젊은 왕의 코끼리가 죽으면 ‘죽음을 길들이고 죽은 젊은 왕의 코끼리’라는 이름을 얻는다. 이처럼, 악기웻사나여, 만약 번뇌가 다한 장로 비구가 죽으면 ‘죽음을 길들이고 죽은 장로 비구’라는 이름을 얻는다. 악기웻사나여, 만약 번뇌가 다한 중진 비구가 죽으면 ‘죽음을 길들이고 죽은 중진 비구’라는 이름을 얻는다. 악기웻사나여, 만약 번뇌가 다한 신진 비구가 죽으면 ‘죽음을 길들이고 죽은 신진 비구’라는 이름을 얻는다.”
세존은 이렇게 말했다. 초보 수행자 아찌라와따는 즐거워하면서 세존의 말씀을 기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