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uruddhasuttaṃ (MN 127-아누룻다 경) ㅡ 무량한 심해탈과 고귀한 심해탈
3. suññatavaggo, 7. anuruddhasuttaṃ (MN 127-아누룻다 경)
이렇게 나는 들었다. — 한때 세존은 사왓티에서 아나타삔디까 사원에 머물렀다. 그때 빤짜깡가 건축가가 어떤 사람에게 말했다. — “여보시오, 오시오. 그대는 아누룻다 존자에게 가시오. 가서는 내 이름으로 아누룻다 존자의 발에 머리 숙여 존경을 표하시오. — ‘대덕이시여, 빤짜깡가 건축가가 아누룻다 존자의 발에 머리 숙여 존경을 표합니다.’라고. 그리고 이렇게 말 하시오. — ‘대덕이시여, 아누룻다 존자께서는 자신을 네 번째로 하는[다른 세 분과 함께] 내일의 공양을 허락해 주십시오. 대덕이시여, 빤짜깡가 건축가는 왕을 위한 할 일 때문에 의무가 많고 할 일이 많습니다. 그러니 대덕이시여, 아누룻다 존자께서는 아침 일찍 와 주십시오.’”라고. 그 사람은 “알겠습니다, 대덕이시여.”라고 빤짜깡가 건축가에게 대답한 뒤 아누룻다 존자에게 갔다. 가서는 아누룻다 존자에게 절한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그 사람은 아누룻다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 “대덕이시여, 빤짜깡가 건축가가 아누룻다 존자의 발에 머리 숙여 존경을 표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 ‘대덕이시여, 아누룻다 존자께서는 자신을 네 번째로 하는 내일의 공양을 허락해 주십시오. 대덕이시여, 빤짜깡가 건축가는 왕을 위한 할 일 때문에 의무가 많고 할 일이 많습니다. 그러니 대덕이시여, 아누룻다 존자께서는 아침 일찍 와 주십시오.’”라고. 아누룻다 존자는 침묵으로 동의했다.
아누룻다 존자는 그 밤이 지나서 오전에 옷차림을 바르게 하고 발우와 가사를 지니고 빤짜깡가 건축가의 집으로 갔다. 가서는 준비된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빤짜깡가 건축가는 아누룻다 존자에게 맛있고 먹기 좋은 음식을 직접 손으로 만족하게 하고, 받아들이게 했다. 식사를 마친 아누룻다 존자가 발우에서 손을 떼자 빤짜깡가 건축가는 어떤 낮은 자리를 잡아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빤짜깡가 건축가는 아누룻다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
“여기, 대덕이시여, 장로 비구들이 저에게 와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 ‘장자여, 무량(無量)한 심해탈(心解脫)을 닦아야 합니다.’라고. 어떤 장로 비구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 ‘장자여, 확장에 의한 심해탈(心解脫)을 닦아야 합니다.’라고. 대덕이시여, 무량한 심해탈과 확장에 의한 심해탈이라는 것은 의미도 다르고 표현도 다릅니까 아니면 의미는 같고 표현만 다릅니까?” “그렇다면, 장자여, 그대가 그것을 여기서 말해보십시오. 여기서 분명해질 것입니다.” “대덕이시여, 저는 ‘무량한 심해탈과 확장에 의한 심해탈이라는 것은 의미는 같고 표현만 다르다.’라고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장자여, 무량한 심해탈과 확장에 의한 심해탈이라는 것은 의미도 다르고 표현도 다릅니다. 그리고 이 법들이 의미도 다르고 표현도 다르다는 것과 관련하여 그것은 이런 방법으로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장자여, 무엇이 무량한 심해탈입니까? 여기, 장자여, 비구는 자(慈)가 함께한 심(心)으로 한 방향을 두루 미치면서 머뭅니다. 그렇게 두 방향을, 그렇게 세 방향을, 그렇게 네 방향을. 이렇게 위로 아래로 중간방위로, 모든 곳에서 모두에게 펼쳐서 모든 세상을 크고 귀하고 무량한, 원망 없고 거슬림 없는 자(慈)가 함께한 심으로 두루 미치면서 머뭅니다. 비(悲)가 함께한 심으로 … 희(喜)가 함께한 심으로 … 사(捨)가 함께한 심으로 한 방향을 두루 미치면서 머뭅니다. 그렇게 두 방향을, 그렇게 세 방향을, 그렇게 네 방향을. 이렇게 위로 아래로 중간방위로, 모든 곳에서 모두에게 펼쳐서 모든 세상을 크고 귀하고 무량한, 원망 없고 거슬림 없는 사(捨)가 함께한 심으로 두루 미치면서 머뭅니다. 이것이, 장자여, 무량한 심해탈이라고 불립니다.
그러면 장자여, 무엇이 확장에 의한 심해탈입니까? 여기, 장자여, 비구는 한 개의 나무뿌리만큼을 ‘확장된 것’이라고 두루 미치고, 기울면서 머뭅니다. 이것이, 장자여, 확장에 의한 심해탈이라고 불립니다. 다시, 장자여, 여기 비구는 나무뿌리 둘이나 셋만큼을 ‘확장된 것’이라고 두루 미치고, 기울면서 머뭅니다. 이것도, 장자여, 확장에 의한 심해탈이라고 불립니다. 다시, 장자여, 여기 비구는 마을 하나의 땅만큼을 ‘확장된 것’이라고 두루 미치고, 기울면서 머뭅니다. 이것도, 장자여, 확장에 의한 심해탈이라고 불립니다. 다시, 장자여, 여기 비구는 마을 둘이나 셋의 땅만큼을 ‘확장된 것’이라고 두루 미치고, 기울면서 머뭅니다. 이것도, 장자여, 확장에 의한 심해탈이라고 불립니다. 다시, 장자여, 여기 비구는 하나의 왕국만큼을 ‘확장된 것’이라고 두루 미치고, 기울면서 머뭅니다. 이것도, 장자여, 확장에 의한 심해탈이라고 불립니다. 다시, 장자여, 여기 비구는 왕국 둘이나 셋만큼을 ‘확장된 것’이라고 두루 미치고, 기울면서 머뭅니다. 이것도, 장자여, 확장에 의한 심해탈이라고 불립니다. 다시, 장자여, 여기 비구는 바다를 경계로 하는 대지만큼을 ‘확장된 것’이라고 두루 미치고, 기울면서 머뭅니다. 이것도, 장자여, 확장에 의한 심해탈이라고 불립니다. 장자여, 이 법들이 의미도 다르고 표현도 다르다는 것과 관련하여 그것은 이런 방법으로 알아야 합니다.
장자여, 이런 네 가지 존재의 태어남이 있습니다. 어떤 넷입니까? 여기, 장자여, 어떤 자는 ‘작은 빛’이라고 두루 미치고, 기울면서 머뭅니다.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소광천(少光天)의 신(神)들의 동료로 태어납니다. 다시, 장자여, 여기 어떤 자는 ‘무량한 빛’이라고 두루 미치고, 기울면서 머뭅니다.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무량광천(無量光天)의 신들의 동료로 태어납니다. 다시, 장자여, 여기 어떤 자는 ‘오염된 빛’이라고 두루 미치고, 기울면서 머뭅니다.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오염된 광명의 하늘의 신들의 동료로 태어납니다. 다시, 장자여, 여기 어떤 자는 ‘청정한 빛’이라고 두루 미치고, 기울면서 머뭅니다.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청정한 광명의 하늘의 신들의 동료로 태어납니다. 장자여, 이런 네 가지 존재의 태어남이 있습니다.
장자여, 그 신들이 함께 모이는 때가 있습니다. 함께 모인 그 신들에게 용모의 차이는 있지만 빛의 차이는 없습니다. 예를 들면, 장자여, 어떤 사람이 여러 개의 기름 등불을 한 집 안에 들여놓을 것입니다. 한 집에 들여놓은 그것들에게 불꽃의 차이는 있지만 빛의 차이는 없습니다. 이처럼, 장자여, 그 신들이 함께 모이는 때가 있습니다. 함께 모인 그 신들에게 용모의 차이는 있지만 빛의 차이는 없습니다.
장자여, 그 신들이 거기에서 흩어지는 때가 있습니다. 거기에서 흩어진 신들에게 용모의 차이와 빛의 차이가 알려집니다. 예를 들면, 장자여, 어떤 사람이 여러 개의 기름 등불을 그 집으로부터 내어놓을 것입니다. 거기로부터 내어놓은 그것들에게 불꽃의 차이와 빛의 차이가 알려질 것입니다. 이처럼, 장자여, 그 신들이 거기에서 흩어지는 때가 있습니다. 거기에서 흩어진 신들에게 용모의 차이와 빛의 차이가 알려집니다.
장자여, 그 신들은 ‘우리에게 이것은 ’상(常)하다‘거나 ’안정되다‘거나 ’영원하다‘라고 이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신들이 거듭 집착하는 곳에서 그 신들은 거듭 즐거워합니다. 예를 들면, 장자여, 운반용 막대기나 바구니에 의해 옮겨가는 파리들은 ‘우리에게 이것은 ’상(常)하다‘거나 ’안정되다‘거나 ’영원하다‘라고 이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파리들이 거듭 붙어있는 곳에서 그 파리들은 거듭 즐거워합니다. 이처럼, 장자여, 그 신들은 ‘우리에게 이것은 ’상(常)하다‘거나 ’안정되다‘거나 ’영원하다‘라고 이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신들이 거듭 집착하는 곳에서 그 신들은 거듭 즐거워합니다.”
이렇게 말했을 때, 사비야 깟짜나 존자가 아누룻다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 “훌륭합니다, 대덕 아누룻다여! 저에게 여기에 이어지는 질문이 있습니다. 대덕이시여, 그 빛나는 신들은 모두 소광천입니까 아니면 여기에 무량광천의 어떤 신들도 있습니까?”라고. “도반 깟짜나여, 그 요소만큼 여기에는 소광천의 어떤 신들도 있고, 여기에는 무량광천의 어떤 신들도 있습니다.” “대덕 아누룻다여, 어떤 원인, 어떤 조건 때문에 하나의 신들의 무리에 태어난 그 신들에게 여기 소광천의 어떤 신들도 있고, 여기 무량광천의 어떤 신들도 있습니까?”
“그렇다면, 도반 깟짜나여, 여기서 그대에게 되묻겠습니다. 그대에게 괜찮다면 그것을 설명하십시오. 그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도반 깟짜나여, 한 개의 나무뿌리만큼을 ‘확장된 것’이라고 두루 미치고, 기울면서 머무는 비구와 나무뿌리 둘이나 셋만큼을 ‘확장된 것’이라고 두루 미치고, 기울면서 머무는 비구 — 심(心)을 닦는 이 두 비구 중에 더 확장된 심을 닦는 비구는 누구입니까?” “대덕이시여, 나무뿌리 둘이나 셋만큼을 ‘확장된 것’이라고 두루 미치고, 기울면서 머무는 비구가 심을 닦는 이 두 비구 중에 더 확장된 심을 닦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도반 깟짜나여, 나무뿌리 둘이나 셋만큼을 ‘확장된 것’이라고 두루 미치고, 기울면서 머무는 비구와 마을 하나의 땅만큼을 ‘확장된 것’이라고 두루 미치고, 기울면서 머무는 비구 — 심을 닦는 이 두 비구 중에 더 확장된 심을 닦는 비구는 누구입니까?” “대덕이시여, 마을 하나의 땅만큼을 ‘확장된 것’이라고 두루 미치고, 기울면서 머무는 비구가 심을 닦는 이 두 비구 중에 더 확장된 심을 닦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도반 깟짜나여, 마을 하나의 땅만큼을 ‘확장된 것’이라고 두루 미치고, 기울면서 머무는 비구와 마을 둘이나 셋의 땅만큼을 ‘확장된 것’이라고 두루 미치고, 기울면서 머무는 비구 — 심을 닦는 이 두 가지 중에 더 확장된 심을 닦는 비구는 누구입니까?” “대덕이시여, 마을 둘이나 셋의 땅만큼을 ‘확장된 것’이라고 두루 미치고, 기울면서 머무는 비구가 심을 닦는 이 두 비구 중에 더 확장된 심을 닦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도반 깟짜나여, 마을 둘이나 셋의 땅만큼을 ‘확장된 것’이라고 두루 미치고, 기울면서 머무는 비구와 하나의 왕국만큼을 ‘확장된 것’이라고 두루 미치고, 기울면서 머무는 비구 — 심을 닦는 이 두 가지 중에 더 확장된 심을 닦는 비구는 누구입니까?” “대덕이시여, 하나의 왕국만큼을 ‘확장된 것’이라고 두루 미치고, 기울면서 머무는 비구가 심을 닦는 이 두 비구 중에 더 확장된 심을 닦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도반 깟짜나여, 하나의 왕국만큼을 ‘확장된 것’이라고 두루 미치고, 기울면서 머무는 비구와 왕국 둘이나 셋만큼을 ‘확장된 것’이라고 두루 미치고, 기울면서 머무는 비구 — 심을 닦는 이 두 가지 중에 더 확장된 심을 닦는 비구는 누구입니까?” “대덕이시여, 왕국 둘이나 셋만큼을 ‘확장된 것’이라고 두루 미치고, 기울면서 머무는 비구가 심을 닦는 이 두 비구 중에 더 확장된 심을 닦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도반 깟짜나여, 왕국 둘이나 셋만큼을 ‘확장된 것’이라고 두루 미치고, 기울면서 머무는 비구와 바다를 경계로 하는 대지만큼을 ‘확장된 것’이라고 두루 미치고, 기울면서 머무는 비구 — 심을 닦는 이 두 가지 중에 더 확장된 심을 닦는 비구는 누구입니까?” “대덕이시여, 바다를 경계로 하는 대지만큼을 ‘확장된 것’이라고 두루 미치고, 기울면서 머무는 비구가 심을 닦는 이 두 비구 중에 더 확장된 심을 닦습니다.” “도반 깟짜나여, 이런 원인, 이런 조건 때문에 하나의 신들의 무리에 태어난 그 신들에게 여기 소광천의 어떤 신들도 있고, 여기 무량광천의 어떤 신들도 있습니다.”
“훌륭합니다, 대덕 아누룻다여! 저에게 여기에 이어지는 질문이 있습니다. 대덕이시여, 그 빛나는 신들은 모두 오염된 광명의 하늘의 신들입니까 아니면 여기에 청정한 광명의 어떤 하늘의 신들도 있습니까?”라고. “도반 깟짜나여, 그 요소만큼 여기에는 오염된 광명의 어떤 하늘의 신들도 있고, 여기에는 청정한 광명의 어떤 하늘의 신들도 있습니다.” “대덕 아누룻다여, 어떤 원인, 어떤 조건 때문에 하나의 신들의 무리에 태어난 그 신들에게 여기 오염된 광명의 어떤 신들도 있고, 여기 청정한 광명의 어떤 신들도 있습니까?”
“도반 깟짜나여, 그렇다면 그대에게 비유를 말하겠습니다. 비유에 의해서도 어떤 현명한 사람들은 말의 의미를 압니다. 예를 들면, 도반 깟짜나여, 기름 등불이 타고 있을 때 기름도 깨끗하지 않고 심지도 깨끗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기름도 깨끗하지 않음과 심지도 깨끗하지 않음 때문에 흐릿하게 탑니다. 이처럼, 도반 깟짜나여, 여기 어떤 비구는 ‘오염된 빛’이라고 두루 미치고, 기울면서 머뭅니다. 그에게 몸의 추악함도 잘 진정되지 않고, 해태-혼침도 잘 뿌리 뽑히지 않고, 들뜸-후회도 잘 가라앉지 않습니다. 그는 몸의 추악함도 잘 진정되지 않고, 해태-혼침도 잘 뿌리 뽑히지 않고, 들뜸-후회도 잘 가라앉지 않기 때문에 무디게 선(禪)을 합니다.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오염된 광명의 하늘의 신들의 동료로 태어납니다. 예를 들면, 도반 깟짜나여, 기름 등불이 타고 있을 때 기름도 깨끗하고 심지도 깨끗합니다. 그것은 기름도 깨끗함과 심지도 깨끗함 때문에 흐릿하게 타지 않습니다. 이처럼, 도반 깟짜나여, 여기 어떤 비구는 ‘청정한 빛’이라고 두루 미치고, 기울면서 머뭅니다. 그에게 몸의 추악함도 잘 진정되고, 해태-혼침도 잘 뿌리 뽑히고, 들뜸-후회도 잘 가라앉습니다. 그는 몸의 추악함도 잘 진정되고, 해태-혼침도 잘 뿌리 뽑히고, 들뜸-후회도 잘 가라앉기 때문에 무디게 선을 하지 않습니다.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청정한 광명의 하늘의 신들의 동료로 태어납니다. 도반 깟짜나여, 이런 원인, 이런 조건 때문에 하나의 신들의 무리에 태어난 그 신들에게 여기 오염된 광명의 어떤 신들도 있고, 여기 청정한 광명의 어떤 신들도 있습니다.”
이렇게 말했을 때, 사비야 깟짜나 존자가 아누룻다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 “훌륭합니다, 대덕 아누룻다여! 대덕이시여, 아누룻다 존자는 ‘이렇게 나는 들었다’라거나 ‘이렇게 될 만하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대덕이시여, 아누룻다 존자는 ‘그와 같이도 그 신들은, 이렇게도 그 신들은’이라고 말합니다. 대덕이시여, 그래서 저에게 이런 생각이 듭니다. — ‘참으로 아누룻다 존자는 그 신들과 더불어 이전에 함께 머물고, 이전에 함께 대화하고, 이전에 토론했다.’라고.” “참으로, 도반 깟짜나여, 이것은 무례하고 비난하는 이야기이지만 나는 그대에게 말하겠습니다. — ‘도반 깟짜나여, 오랫동안 나는 그 신들과 더불어 이전에 함께 머물고, 이전에 함께 대화하고, 이전에 토론했습니다.’라고.”
이렇게 말했을 때, 사비야 깟짜나 존자가 빤짜깡가 건축가에게 이렇게 말했다. — “장자여, 그대에게 유익함입니다. 장자여, 그대에게 잘 얻어진 것입니다! 그대에게 의심은 제거되었고, 우리는 이 법문을 들을 기회를 얻었습니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