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aṇavibhaṅgasuttaṃ (MN 139-평화의 분석 경) 323-325.
4. vibhaṅgavaggo, 9. araṇavibhaṅgasuttaṃ (MN 139-평화의 분석 경)
이렇게 나는 들었다. ― 한때 세존은 사왓티에서 제따와나의 아나타삔디까 사원에 머물렀다. 그때 세존은 “비구들이여.”라고 비구들을 불렀다. “대덕이시여.”라고 그 비구들은 세존에게 대답했다. 세존은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평화의 분석을 설할 것이다. 그것을 듣고 잘 사고하라. 나는 말하겠다.”라고 말했다. “알겠습니다, 대덕이시여.”라고 그 비구들은 세존에게 대답했다. 세존은 이렇게 말했다. ―
“저열하고 천박하고 범속하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가져오지 않는 소유의 즐거움을 실천하지 않아야 하고, 괴롭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가져오지 않고 자신을 지치게 하는 실천을 하지 않아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런 양 끝을 가까이하지 않고서 여래가 깨달은 중도(中道)는 안(眼)을 만들고, 지(知)를 만들고, 가라앉음으로 실다운 지혜로 깨달음으로 열반으로 이끈다. 칭찬을 알아야 하고 비난을 알아야 한다. 칭찬을 알고 비난을 알고서 칭찬도 하지 막고 비난도 하지 말고 법을 설해야 한다. 즐거움을 판단할 줄 알아야 한다. 즐거움을 판단하고서 내적인 즐거움을 실천해야 한다. 뒤에서 말하지 않아야 하고, 앞에서 찌르는 말도 하지 않아야 한다. 서둘지 말고, 차분하게 말해야 한다. 지역의 언어를 고집하지 말고, 지정된 언어의 한계를 넘지 않아야 한다. ― 이것이 평화의 분석의 대의다.
‘저열하고 천박하고 범속하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가져오지 않는 소유의 즐거움을 실천하지 않아야 하고, 괴롭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가져오지 않고 자신을 지치게 하는 실천을 하지 않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무엇을 연(緣)하여 말했는가? 저열하고 천박하고 범속하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가져오지 않는 소유의 사유와 연결되어 행복해하고 만족해하는 것은 괴로움과 고통과 절망과 열기가 함께하는 삿된 실천이다. 저열하고 천박하고 범속하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가져오지 않는 소유의 사유와 연결되어 행복해하고 만족해하지 않는 것은 괴로움과 고통과 절망과 열기가 없는 바른 실천이다. 괴롭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가져오지 않고 자신을 지치게 하는 실천은 괴로움과 고통과 절망과 열기가 함께하는 삿된 실천이다. 괴롭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가져오지 않고 자신을 지치게 하는 실천을 하지 않는 것은 괴로움과 고통과 절망과 열기가 없는 바른 실천이다. 이것을 연(緣)하여 ‘저열하고 천박하고 범속하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가져오지 않는 소유의 즐거움을 실천하지 않아야 하고, 괴롭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가져오지 않고 자신을 지치게 하는 실천을 하지 않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런 양 끝을 가까이하지 않고서 여래가 깨달은 중도(中道)는 안(眼)을 만들고, 지(知)를 만들고, 가라앉음으로 실다운 지혜로 깨달음으로 열반으로 이끈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무엇을 연(緣)하여 말했는가? 오직 이것, 정견(正見)-정사유(正思惟)-정어(正語)-정업(正業)-정명(正命)-정정진(正精進)-정념(正念)-정정(正定)의 여덟 요소로 구성된 성스러운 도(道)이 있다. 이것을 연(緣)하여 ‘이런 양 끝을 가까이하지 않고서 여래가 깨달은 중도(中道)는 안(眼)을 만들고, 지(知)를 만들고, 가라앉음으로 실다운 지혜로 깨달음으로 열반으로 이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