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dhātuvibhaṅgasuttaṃ (MN 140-요소의 분석 경)
4. vibhaṅgavaggo, 10. dhātuvibhaṅgasuttaṃ (MN 140-요소의 분석 경)
이렇게 나는 들었다. ― 한때 마가다에서 돌아다니며 살고 있던 세존은 라자가하에 도착했다. 세존은 도공(陶工) 박가바에게 갔다. 가서는 도공 박가바에게 이렇게 말했다. — “박가바여, 만약 그대에게 부담되지 않는다면, 그대의 작업장에서 하룻밤을 머물고자 합니다.” “대덕이시여, 저에게 부담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곳에는 먼저 와서 머무는 출가자가 있습니다. 대덕이시여, 만약 그가 허락한다면, 두 분께서 편히 지내십시오.”
그때 세존에 대한 믿음으로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한 뿍꾸사띠라는 좋은 가문의 아들이 있었다. 그는 그 도공의 작업장에 먼저 와서 머물고 있었다. 그러자 세존은 뿍꾸사띠 존자에게 갔다. 가서는 뿍꾸사띠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 “비구여, 만약 그대에게 부담되지 않는다면 이 작업장에서 하룻밤을 머물고자 합니다.” “도반이여, 도공의 작업장은 넓습니다. 존자께서는 편히 머무십시오.”
그래서 세존은 도공의 작업장에 들어간 뒤 한쪽에 풀을 깔고 다리를 교차하고, 몸을 곧게 뻗치고, 콧구멍 주위에 사띠를 준비한 채 앉아있었다. 그리고 세존께서는 밤새 앉아 시간을 보냈다. 뿍꾸사띠 존자도 밤새 앉아 시간을 보냈다.
그러자 세존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이 좋은 가문의 아들은 신뢰할만하게 행동한다. 그에게 내가 질문 해야겠다.’라고. 그래서 세존은 뿍꾸사띠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 “비구여, 그대는 누구에게 출가했습니까? 그대의 스승은 누구입니까? 그대는 누구의 법에 동의합니까?”
“도반이여, 사꺄 족에서 출가한 사꺄 족의 사문 고따마가 있습니다. 세존이신 그분 고따마께는 이런 좋은 명성이 따릅니다. — ‘이렇게 그분 세존께서는 아라한, 정등각, 명행족, 선서, 세간해, 무상조어장부, 천인사, 불, 세존이시다.’라고. 저는 그분 세존께 출가했습니다. 그분 세존이 저의 스승입니다. 저는 그분 세존의 법에 동의합니다.”
“비구여, 그런데 그 세존-아라한-정등각은 지금 어디에 머뭅니까?”
“도반이여, 북쪽 나라에 사왓티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그분 세존-아라한-정등각은 지금 거기에 머뭅니다.”
“비구여, 그런데 그대는 그 세존을 전에 보았습니까? 보면 알아볼 수 있습니까?”
“도반이여, 나는 그 세존을 전에 보지 못했습니다. 보면 알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자 세존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이 좋은 가문의 아들은 나를 믿고 출가했다. 내가 그에게 법을 설해야겠다.’라고. 그래서 세존은 뿍꾸사띠 존자에게 말했다. — “비구여, 내가 그대에게 법을 설할 것이다. 그것을 듣고 잘 사고하라. 나는 말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도반이여.”라고 뿍꾸사띠 존자는 세존에게 대답했다. 세존은 이렇게 말했다. —
“비구여, 사람은 육계(六界), 육촉처(六觸處), 열여덟 가지 의(意)의 행보(行步), 네 가지 기반으로 이루어졌다. 여기에 서 있는 자는 사량(思量)이 전개되지 않는다. 사량이 전개되지 않을 때 그는 평화로운 성자라고 불린다. 지혜를 방일하지 말고 진리를 보호해야 하고 포기를 계발해야 하고 평화를 공부해야 한다. — 이것이 요소 분석의 개요이다.
‘비구여, 육계(六界), 이것이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무엇을 연하여 말했는가? (비구여, 이런 여섯 가지 요소가 있다) — 땅의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 공간의 요소, 식의 요소. ‘비구여, 육계, 이것이 사람이다.’라고 말한 것은 이것을 연하여 말했다.
‘비구여, 육촉처(六觸處), 이것이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무엇을 연하여 말했는가? 안촉처, 이촉처, 비촉처, 설촉처, 신촉처, 의촉처. ‘비구여, 육촉처, 이것이 사람이다.’라고 말한 것은 이것을 연하여 말했다.
‘비구여, 열여덟 가지 의(意)의 행보, 이것이 사람이다.’라고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무엇을 연하여 말했는가? 안으로 색을 보고서 만족을 주는 색으로 다가가고, 불만족(고뇌)을 주는 색으로 다가가고, 평정을 주는 색으로 다가간다. 이로 성을 듣고서 … 비로 향을 맡고서 … 설로 미를 맛보고서 … 신으로 촉을 닿고서 … 의로 법을 인식하고서 만족을 주는 법으로 다가가고, 불만족을 주는 법으로 다가가고, 평정을 주는 법으로 다가간다. — 이렇게 여섯 가지 만족의 행보가 있고, 여섯 가지 불만족의 행보가 있고, 여섯 가지 평정의 행보가 있다. ‘비구여, 열여덟 가지 의의 행보, 이것이 사람이다.’라고 말한 것은 이것을 연하여 말했다.
‘비구여, 네 가지 기반, 이것이 사람이다.’라고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무엇을 연하여 말했는가? 지혜의 기반, 진리[참]의 기반, 포기의 기반, 가라앉음의 기반. ‘비구여, 네 가지 기반, 이것이 사람이다.’라고 말한 것은 이것을 연하여 말했다.
‘지혜를 방일하지 말고 진리를 수호해야 하고 포기를 계발해야 하고 평화를 공부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무엇을 연하여 말했는가? 비구여, 어떻게 지혜를 방일하지 않는가? 비구여, 이런 여섯 가지 요소가 있다. — 땅의 요소(地), 물의 요소(水), 불의 요소(火), 바람의 요소(風), 공간의 요소(空), 식의 요소(識).
비구여, 무엇이 땅의 요소인가? 땅의 요소는 안의 것이 있을 수 있고, 밖의 것이 있을 수 있다. 그러면 비구여, 무엇이 안의 땅의 요소인가? 예를 들어 머리카락-털-손발톱-이-피부-살-힘줄-뼈-골수-신장-심장-간-흉막-지라-허파-창자-장간막-위-똥 등 안에 있고 개체적이고 거칠고 견고한 것 그리고 결합 된 것은 어떤 것이든, 또한, 기타의 안에 있고 개체적이고 거칠고 견고한 것 그리고 결합 된 것은 어떤 것이든, 비구여, 이것은 안의 땅의 요소라고 불린다. 그리고 안의 땅의 요소와 밖의 땅의 요소, 이들은 단지 땅의 요소일 뿐이다. 그것에 대해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아(我)가 아니다.’라고 이것을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써 보아야 한다. 이렇게 이것을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본 뒤에 땅의 요소에 대해 염오하고, 땅의 요소에 대해 심(心)이 바래게 한다.
비구여, 무엇이 물의 요소인가? 물의 요소는 안의 것이 있을 수 있고, 밖의 것이 있을 수 있다. 그러면 비구여, 무엇이 안의 물의 요소인가? 예를 들어 쓸개즙-가래-고름-피-땀-지방-눈물-기름-침-콧물-관절액-오줌 등 안에 있고 개체적이고 액체이고 액체에 속하는 것 그리고 결합 된 것, 또한, 어떤 것이든 기타의 안에 있고 개체적이고 액체이고 액체에 속하는 것 그리고 결합 된 것, 비구여, 이것은 안의 물의 요소라고 불린다. 그리고 안의 물의 요소와 밖의 물의 요소, 이들은 단지 물의 요소일 뿐이다. 그것에 대해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아(我)가 아니다.’라고 이것을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써 보아야 한다. 이렇게 이것을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본 뒤에 물의 요소에 대해 염오하고, 물의 요소에 대해 심이 바래게 한다.
비구여, 무엇이 불의 요소인가? 불의 요소는 안의 것이 있을 수 있고, 밖의 것이 있을 수 있다. 그러면 비구여, 무엇이 안의 불의 요소인가? 예를 들어 그것에 의해 데워지고, 그것에 의해 썩게 하고, 그것에 의해 불타고, 그것에 의해 먹고 마시고 씹고 맛본 것이 바르게 소화되는 등 안에 있고 개체적이고 열이고 열에 속한 것 그리고 결합 된 것, 또한, 어떤 것이든 기타의 안에 있고 개체적이고 열이고 열에 속한 것 그리고 결합 된 것, 비구여, 이것은 안의 불의 요소라고 불린다. 그리고 안의 불의 요소와 밖의 불의 요소, 이들은 단지 불의 요소일 뿐이다. 그것에 대해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아(我)가 아니다.’라고 이것을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써 보아야 한다. 이렇게 이것을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본 뒤에 불의 요소에 대해 염오하고, 불의 요소에 대해 심이 바래게 한다.
비구여, 무엇이 바람의 요소인가? 바람의 요소는 안의 것이 있을 수 있고, 밖의 것이 있을 수 있다. 그러면 비구여, 무엇이 안의 바람의 요소인가? 예를 들어 올라가는 바람, 내려가는 바람, 몸 안의 빈 곳의 바람, 배 안에 있는 바람, 몸의 구성 부분들을 이어 다니는 바람, 날숨과 들숨 등 안에 있고 개체적이고 기체이고 기체에 속한 것 그리고 결합 된 것, 또한, 어떤 것이든 기타의 안에 있고 개체적이고 기체이고 기체에 속한 것 그리고 결합 된 것, 비구여, 이것은 안의 바람의 요소라고 불린다. 그리고 안의 바람의 요소와 밖의 바람의 요소, 이들은 단지 바람의 요소일 뿐이다. 그것에 대해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아(我)가 아니다.’라고 이것을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써 보아야 한다. 이렇게 이것을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본 뒤에 불의 요소에 대해 염오하고, 불의 요소에 대해 심이 바래게 한다.
비구여, 무엇이 공간의 요소인가? 공간의 요소는 안의 것이 있을 수 있고, 밖의 것이 있을 수 있다. 비구여, 무엇이 안의 공간의 요소인가? 예를 들어 귓구멍, 콧구멍, 입속 공간 등 안에 있고 개체적이고 공간이고 공간에 속한 것 그리고 결합 된 것, 그것에 의해 먹고 마시고 씹고 맛본 것들을 삼키고, 먹고 마시고 씹고 맛본 것들이 채워지는 곳, 그것에 의해 먹고 마시고 씹고 맛본 것들이 낮은 곳으로 나가는 것, 또한, 어떤 것이든 기타의 안에 있고 개체적이고 공간이고 공간에 속한 것, 하늘과 하늘에 속한 것, 균열과 균열에 속한 것, 만져지지 않는 것, 살과 피에 의해 결합 된 것, 비구여, 이것은 안의 공간의 요소라고 불린다. 그리고 안의 공간의 요소와 밖의 공간의 요소, 이들은 단지 공간의 요소일 뿐이다. 그것에 대해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아(我)가 아니다.’라고 이것을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써 보아야 한다. 이렇게 이것을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 본 뒤에 공간의 요소에 대해 염오하고, 공간의 요소에 대해 심이 바래게 한다.
그러면 다음으로는 깨끗하고 청정한 식(識)만이 남는다. 그 식에 의해 무엇을 인식하는가? ‘즐거움’이라고도 인식하고, ‘괴로움’이라고도 인식하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이라고도 인식한다. 비구여, 즐거움이 경험될 촉을 연하여 즐거운 느낌이 생긴다. 즐거운 느낌을 경험하는 그는 ‘나는 즐거운 느낌을 경험한다.’라고 분명히 안다. ‘즐거움이 경험될 그 촉의 소멸로부터, 그것에서 생긴, 즐거움이 경험될 촉을 연하여 생긴 즐거운 느낌은 소멸하고, 가라앉는다.’라고 꿰뚫어 안다.
비구여, 괴로움이 경험될 촉을 연하여 괴로운 느낌이 생긴다. 괴로운 느낌을 경험하는 그는 ‘나는 괴로운 느낌을 경험한다.’라고 분명히 안다. ‘괴로움이 경험될 그 촉의 소멸로부터, 그것에서 생긴, 괴로움이 경험될 촉을 연하여 생긴 괴로운 느낌은 소멸하고, 가라앉는다.’라고 꿰뚫어 안다.
비구여,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이 경험될 촉을 연하여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 생긴다.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경험하는 그는 ‘나는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경험한다.’라고 분명히 안다.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이 경험될 그 촉의 소멸로부터, 그것에서 생긴,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이 경험될 촉을 연하여 생긴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은 소멸하고, 가라앉는다.’라고 꿰뚫어 안다.
예를 들면, 비구여, 두 개의 나무토막을 맞대어 마찰하면 열이 생기고 불이 붙는다. 이 두 개의 나무토막을 분리하여 떼어 놓으면 거기서 생긴 열도 식고 가라앉는다. 이처럼, 비구여, 즐거움이 경험될 촉을 연하여 즐거운 느낌이 생긴다. 즐거운 느낌을 경험하는 그는 ‘나는 즐거운 느낌을 경험한다.’라고 분명히 안다. ‘즐거움이 경험될 그 촉의 소멸로부터, 그것에서 생긴, 즐거움이 경험될 촉을 연하여 생긴 즐거운 느낌은 소멸하고, 가라앉는다.’라고 꿰뚫어 안다.
비구여, 괴로움이 경험될 촉을 연하여 괴로운 느낌이 생긴다. 괴로운 느낌을 경험하는 그는 ‘나는 괴로운 느낌을 경험한다.’라고 분명히 안다. ‘괴로움이 경험될 그 촉의 소멸로부터, 그것에서 생긴, 괴로움이 경험될 촉을 연하여 생긴 괴로운 느낌은 소멸하고, 가라앉는다.’라고 꿰뚫어 안다.
비구여,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이 경험될 촉을 연하여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 생긴다.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경험하는 그는 ‘나는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경험한다.’라고 분명히 안다.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이 경험될 그 촉의 소멸로부터, 그것에서 생긴,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이 경험될 촉을 연하여 생긴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은 소멸하고, 가라앉는다.’라고 꿰뚫어 안다.
그러면 다음으로는 깨끗하고 청정하고 유연하고 준비되고 빛나는 평정만이 남는다. 예를 들면, 비구여, 숙련된 금 세공인이나 금 세공인의 제자가 용광로를 준비할 것이다. 용광로를 준비한 뒤에 용광로 입구에 불을 붙일 것이다. 용광로 입구에 불을 붙인 뒤에 집게로 금을 집은 뒤에 용광로 안에 넣을 것이다. 용광로 안에 넣은 뒤에 적절한 때에 불 것이고, 적절한 때에 물을 뿌릴 것이고, 적절한 때에 관찰할 것이다. 잘 불어지고 순수해지고 오염원이 버려지고 노란색을 얻은 그 금은 유연하고 준비되고 빛나게 된다. 허리띠거나, 귀걸이거나, 목걸이거나, 금으로 된 환이거나 장식품을 만들기 위해 원하는 것들의 목적을 실행한다. 이처럼, 비구여, 그다음으로는 깨끗하고 청정하고 유연하고 준비되고 빛나는 평정만이 남는다.
그는 이렇게 분명히 안다. — ‘만약 내가 이렇게 깨끗하고 이렇게 청정한 이 평정을 공무변처에 집중하고 그것으로 이어지는 법을 위해 심을 닦는다면, 그런 나에게 그것을 의지하고 그것을 집착하는 이 평정은 오랫동안 긴 시간을 머물 것이다. 만약 내가 이렇게 깨끗하고 이렇게 청정한 이 평정을 식무변처에 집중하고 그것으로 이어지는 법을 위해 심을 닦는다면, 그런 나에게 그것을 의지하고 그것을 집착하는 이 평정은 오랫동안 긴 시간을 머물 것이다. 만약 내가 이렇게 깨끗하고 이렇게 청정한 이 평정을 무소유처에 집중하고 그것으로 이어지는 법을 위해 심을 닦는다면, 그런 나에게 그것을 의지하고 그것을 집착하는 이 평정은 오랫동안 긴 시간을 머물 것이다. 만약 내가 이렇게 깨끗하고 이렇게 청정한 이 평정을 비상비비상처에 집중하고 그것으로 이어지는 법을 위해 심을 닦는다면, 그런 나에게 그것을 의지하고 그것을 집착하는 이 평정은 오랫동안 긴 시간을 머물 것이다.’라고.
그는 이렇게 분명히 안다. — ‘만약 내가 이렇게 깨끗하고 이렇게 청정한 이 평정을 공무변처에 집중하고 그것으로 이어지는 법을 위해 심을 닦는다면, 이것은 유위이다. 만약 내가 이렇게 깨끗하고 이렇게 청정한 이 평정을 식무변처에 집중하고 그것으로 이어지는 법을 위해 심을 닦는다면, 이것은 유위이다. 만약 내가 이렇게 깨끗하고 이렇게 청정한 이 평정을 무소유처에 집중하고 그것으로 이어지는 법을 위해 심을 닦는다면, 이것은 유위이다. 만약 내가 이렇게 깨끗하고 이렇게 청정한 이 평정을 비상비비상처에 집중하고 그것으로 이어지는 법을 위해 심을 닦는다면, 이것은 유위이다.’라고.
그는 존재[유(有)]거나 존재에서 벗어남[무유(無有)]을 위하여 그것을 형성하지도 않고 의도하지도 않는다. 존재거나 존재에서 벗어남을 위하여 그것을 형성하지도 않고 의도하지도 않는 그는 세상에서 어떤 것도 집착하지 않는다. 집착하지 않으면 동요하지 않는다. 동요하지 않으면 개별적으로 완전히 꺼진다. ‘태어남은 다했다. 범행은 완성되었다. 해야 할 일을 했다. 다음에는 현재 상태[유(有)]가 되지 않는다.'라고 분명히 안다.
만약 그가 즐거운 느낌을 경험하면 ‘이것은 무상(無常)하다.’라고 꿰뚫어 알고, ‘묶일 것이 아니다.’라고 꿰뚫어 알고, ‘기뻐할 것이 아니다.’라고 꿰뚫어 안다. 만약 괴로운 느낌을 경험하면 ‘이것은 무상하다.’라고 꿰뚫어 알고, ‘묶일 것이 아니다.’라고 꿰뚫어 알고, ‘기뻐할 것이 아니다.’라고 꿰뚫어 안다. 만약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경험하면 ‘이것은 무상하다.’라고 꿰뚫어 알고, ‘묶일 것이 아니다.’라고 꿰뚫어 알고, ‘기뻐할 것이 아니다.’라고 꿰뚫어 안다.
그가 만약 즐거운 느낌을 경험하면, 풀려난 자로서 그것을 경험한다. 만약 괴로운 느낌을 경험하면, 풀려난 자로서 그것을 경험한다. 만약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경험하면, 풀려난 자로서 그것을 경험한다. 몸이 끝나는 느낌을 경험하는 그는 ‘나는 몸이 끝나는 느낌을 경험한다.’라고 꿰뚫어 안다. 생명이 끝나는 느낌을 경험하는 그는 ‘나는 생명이 끝나는 느낌을 경험한다.’라고 꿰뚫어 안다. 그는 ‘몸이 무너진 뒤 생명이 끝나면, 기뻐하지 않는 모든 느낌은 오직 여기에서 차가워질 것이다.’라고 꿰뚫어 안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기름을 연하고 심지를 연하여 기름 등불이 탄다. 기름과 심지가 다 탄 그것에게 다른 기름과 심지가 주어지지 않으면 자량이 없는 기름 등불은 꺼진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몸이 끝나는 느낌을 경험하는 비구는 ‘나는 몸이 끝나는 느낌을 경험한다.’라고 꿰뚫어 안다. 생명이 끝나는 느낌을 경험하는 그는 ‘나는 생명이 끝나는 느낌을 경험한다.’라고 꿰뚫어 안다. 그는 ‘몸이 무너진 뒤 생명이 끝나면, 기뻐하지 않는 모든 느낌은 오직 여기에서 차가워질 것이다.’라고 꿰뚫어 안다. 그러므로 이렇게 갖춘 비구는 이 최상의 지혜를 위한 기반을 갖추었다. 비구여, 참으로 모든 괴로움의 부서짐에 대한 앎이 최상의 성스러운 지혜이다.
그에게 진리[참]에 서 있는 이 해탈은 흔들림이 없다. 비구여, 허황한 법은 거짓이고, 허황하지 않은 법인 열반은 진리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갖춘 비구는 이 최상의 진리를 위한 기반을 갖추었다. 비구여, 참으로 허황하지 않은 법인 열반이 최상의 성스러운 진리이다.
이전에 어리석은 자였던 그에게 재생의 조건들이 온전히 떠안겨 있었다. 그것들은 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생겨나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그러므로 이렇게 갖춘 비구는 이 최상의 포기를 위한 기반을 갖추었다. 비구여, 참으로 모든 재생의 조건을 놓음이 최상의 성스러운 포기이다.
이전에 어리석은 자였던 그에게 간탐과 관심과 친밀이 있었다. 그것은 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생겨나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이전에 어리석은 자였던 그에게 화와 진에와 심술궂음이 있었다. 그것은 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생겨나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이전에 어리석은 자였던 그에게 무명과 혼란스러움이 있었다. 그것은 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생겨나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그러므로 이렇게 갖춘 비구는 이 최상의 가라앉음을 위한 기반을 갖추었다. 비구여, 참으로 탐진치의 가라앉음이 최상의 성스러운 가라앉음이다. ‘지혜를 방일하지 말고 진리를 보호해야 하고 포기를 계발해야 하고 평화를 공부해야 한다.’라고 말한 것은 이것을 연하여 말했다.
‘여기에 서 있는 자는 사량이 전개되지 않는다. 사량이 전개되지 않을 때 평화로운 성자라고 불린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무엇을 연하여 말했는가? 비구여, ‘나는 있다.’라는 것은 사량된 것이고, ‘이것은 나다.’라는 것은 사량된 것이고, ‘나는 있을 것이다.’라는 것은 사량된 것이고, ‘나는 있지 않을 것이다.’라는 것은 사량된 것이고, ‘나는 색을 가진 자가 될 것이다.’라는 것은 사량된 것이고, ‘나는 무색을 가진 자가 될 것이다.’라는 것은 사량된 것이고, ‘나는 상(想)을 가진 자가 될 것이다.’라는 것은 사량된 것이고, ‘나는 상을 가지지 않은 자가 될 것이다.’라는 것은 사량된 것이고, ‘나는 상을 가진 것도 아니고 가지지 않은 것도 아닌 자가 될 것이다.’라는 것은 사량된 것이다. 비구여, 사량된 것은 병이고, 사량된 것은 종기고, 사량된 것은 화살이다. 그러나 비구여, 모든 사량된 것을 넘어섰기 때문에 평화로운 성자라고 불린다. 비구여, 평화로운 성자는 태어나지 않고, 늙지 않고, 죽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갈망하지 않는다. 비구여, 그는 태어나게 강제하는 것이 없다. 태어나지 않는 그가 어떻게 늙을 것이고, 늙지 않는 그가 어떻게 죽을 것이고, 죽지 않는 그가 어떻게 흔들릴 것이고, 흔들리지 않는 그가 어떻게 갈망할 것인가? ‘여기에 서 있는 자는 사량이 전개되지 않는다. 사량이 전개되지 않을 때 그는 평화로운 성자라고 불린다.’라고 말한 것은 이것을 연하여 말했다. 비구여, 그대는 간략히 설한 이 여섯 가지 요소의 분석을 명심하라.”
그러자 뿍꾸사띠 존자는 ‘참으로 스승께서 나에게 오셨다. 참으로 선서께서 나에게 오셨다. 참으로 정등각께서 나에게 오셨다.’라며 자리에서 일어나 윗 가사를 한쪽 어깨가 드러나게 입고 세존의 발에 머리를 대고 세존에게 이렇게 말했다. — “대덕이시여, 무지와 어리석음과 능숙하지 못함 때문에 제가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세존을 도반이라는 말로 불러야 한다고 생각한 저에게, 대덕이시여, 세존께서는 미래의 단속을 위해서 잘못을 잘못으로부터 놓아주십시오[잘못에 대한 참회를 받아주십시오].”라고. “비구여, 나를 도반이라는 말로 불러야 한다고 생각한 그대는 참으로 무지와 어리석음과 능숙하지 못함 때문에 잘못을 저질렀다. 그러나 비구여, 그대가 잘못을 잘못으로부터 본 뒤에 법답게 바로잡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대를 받아들인다. 비구여, 이 성스러운 율에서 잘못을 잘못으로부터 본 뒤에 법답게 바로잡고, 미래에 단속하는 자는 향상한다.” “대덕이시여, 저는 세존의 앞에서 구족계를 받고자 합니다.” “비구여, 그대에게 발우와 가사가 준비되었는가?” “대덕이시여, 저에게 발우와 가사는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비구여, 여래는 발우와 가사를 준비하지 않은 자에게 구족계를 받게 하지 않는다.”
• paccapādi ― paṭipajjati(: enters upon a path or course; goes along; follows a method)의 aor
그러자 뿍꾸사띠 존자는 세존의 말을 기뻐하고 감사한 뒤에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에게 절한 뒤 오른쪽으로 돈 뒤에 발우와 가사를 구하기 위해 떠났다. 발우와 가사를 구하기 위해 돌아다니는 뿍꾸사띠 존자를 떠돌던 소가 생명을 빼앗았다. 그때 많은 비구가 세존에게 왔다. 와서는 세존에게 절한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그 비구들은 세존에게 이렇게 말했다. — “대덕이시여, 세존으로부터 간략한 가르침을 받은 뿍꾸사띠라는 좋은 가문의 아들이 죽었습니다. 그가 간 곳은 어디입니까? 어디에 태어났습니까?”라고. “비구들이여, 좋은 가문의 아들 뿍꾸사띠는 현자다. 가르침에 일치하는 법을 실천했다. 법을 이유로 나를 짜증 나게 하지 않았다. 비구들이여, 좋은 가문의 아들 뿍꾸사띠는 오하분결(五下分結)을 완전히 부수었기 때문에 화생했다. 거기서 완전한 열반에 드는 자이니, 그 세상으로부터 돌아오지 않는 존재[불환자(不還者)]이다.
세존은 이렇게 말했다. 그 비구들은 즐거워하면서 세존의 말씀을 기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