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 맛지마 니까야 관통 법회 ― 143. 아나타삔디까를 위한 가르침 경[재가자에게 설하지 않는 가르침 & 법처(法處)의…
▣ 맛지마 니까야 관통 법회 ― 143. 아나타삔디까를 위한 가르침 경[재가자에게 설하지 않는 가르침 & 법처(法處)의 이해](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240515)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Xr8OJ0R4sT4
큰 병을 앓고 있던 아나타삔디까 장자에게 사리뿟따 존자가 가르침을 설합니다. 설법이 끝나자 아나타삔디까 장자는 오랫동안 스승을 섬겼지만 이런 설법을 듣지 못했다고 하고, 아난다 존자는 재가자에게 설하지 않는 가르침이라고 말합니다. 장자는 사리쁫따 존자에게 이 가르침을 재가자에게도 설해달라고 요청하지만 사리뿟따 존자는 대답 없이 돌아갑니다. 재가자에게 설하지 않는 가르침은 무엇인지 해석해 보았는데, (DN 22-대념처경)의 법념처에 속한 사성제에서의 고집과 고멸에 관한 서술과 연결됩니다. → 법처에 대한 이해의 단초를 제공 ― 「법처(法處) = 수(受)-상(想)-행(行) & 활성화된 지금 삶을 구성하는 것들」
큰 병을 앓고 있던 아나타삔디까 장자가 사람을 보내 사리뿟따 존자를 초청하고, 아난다 존자를 뒤따르는 사문으로 하여 문병을 온 사리뿟따 존자가 아나타삔디까 장자에게 가르침을 설합니다. 설법이 끝나자 아나타삔디까 장자는 눈물을 흘리며 우는데, 오랫동안 스승과 의(意)를 닦는 비구들을 섬겼지만 이런 법의 말씀을 이전에는 듣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난다 존자는 재가자에게 설하지 않는, 오직 출가자에게만 설하는 가르침이라고 말하고, 아나타삔디까 장자는 사리쁫따 존자에게 이 가르침을 재가자에게도 설해달라고 요청하지만 사리뿟따 존자는 대답 없이 돌아갑니다. 이때, 재가자에게 설하지 않는 가르침은 무엇인지 해석해 보았는데, (DN 22-대념처경)/(MN 10-대념처경)의 법념처(法念處)에 속한 사성제(四聖諦) 관찰에서의 고집(苦集)과 고멸(苦滅)에 관한 서술과 연결된 이해입니다.
또한, 이런 해석에서 활성 상태의 지금 삶의 전개를 구성하는 요소들인 「본 것-들은 것-닿아 안 것-인식한 것-얻은 것-조사한 것-이어서 조사한 것-의(意)로 접근한 것」이 사띠에 의해 대상화되어 법처(法處)를 구성한다는 점을 보아서 법처(法處)에 관해 좀 더 상세하게 설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법처(法處) = 수(受)-상(想)-행(行) & 활성화된 지금 삶을 구성하는 것들」
1. 사리뿟따 존자의 설법 ― 「재가자에게 설하지 않는 가르침」 → 법처(法處)의 이해
“그러므로 장자여, 그대는 이렇게 공부해야 합니다. ― ‘나는 안(眼)을 집착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나에게 안(眼)을 의지한 식(識)이 있지 않을 것이다.’라고. 장자여, 그대는 이렇게 공부해야 합니다.”
; ‘집착하는 것을 의지한 식(識)’ → 집착하는 것이 인식 대상이라는 의미
; 집착하는 대상 ― 안-이-비-설-신-의 → 색-성-향-미-촉-법 → 안식 ~ 의식 → 안촉 ~ 의촉 → 안촉에서 생긴 수(受) ~ 의촉에서 생긴 수(受) → 지계(地界-땅의 요소) ~ 식계(識界-식의 요소)[육계(六界)] → 색-수-상-행들-식 → 공무변처-식무변처-무소유처-비상비비상처 → 이 세상-저세상 → 본 것-들은 것-닿아 안 것-인식한 것-얻은 것-조사한 것-이어서 조사한 것-의(意)로 접근한 것
▣ 주제의 확장 ― (40)「내입처(內入處)-외입처(外入處)-식(識)-촉(觸)-수(受)-상(想)-사(思)-애(愛)에 이어지는 경우들」 참조 ☞ http://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2_11&wr_id=49
이 주제는 동일한 주제를 내입처(內入處)-외입처(外入處)-식(識)-촉(觸)-수(受)-상(想)-사(思)-애(愛)에 이어지는 몇 가지 전개를 보여 주는데, 특히, (DN 22-대념처경)/(MN 10-대념처경)은 애(愛)가 생겨나고 소멸하는 자리를 심(尋)-사(伺)로 이어서 소개함.
다만, 이 경은 내입처(內入處)-외입처(外入處)-식(識)-촉(觸)-수(受)에 이어 ‘육계(六界)-오온(五蘊)-무색계(無色界)-이 세상-저세상 → 본 것-들은 것-닿아 안 것-인식한 것-얻은 것-조사한 것-이어서 조사한 것-의(意)로 접근한 것(*)’의 구성을 보여 줌.
그런데 이 경이 집착의 대상으로 소개하는 이 구성은 애(愛)를 조건으로 하는 것이어서 (DN 22-대념처경)/(MN 10-대념처경)의 애(愛)가 생겨나고 소멸하는 자리와 대응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음.
(*) 「본 것-들은 것-닿아 안 것-인식한 것-얻은 것-조사한 것-이어서 조사한 것-의(意)로 접근한 것」은 활성화된 지금 삶을 지시하는 것인데, 「diṭṭhaṃ sutaṃ mutaṃ viññātaṃ pattaṃ pariyesitaṃ의 용례」에서 정리하였습니다. ☞ http://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2_11&wr_id=368
● 이 법들이 인식 대상이 되는 방법 → 법처(法處)의 이해
사띠는 눈뜸입니다. 안근(眼根)이 밖으로 색(色)을 보는 기능이라면 사띠[염근(念根)]는 안으로 눈떠 마음의 현재 또는 마음이 몸과 함께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보는 기능입니다. 현재라는 것은 활성 상태인데, 누적된 것들인 오온(五蘊)의 자기화된 지금 삶의 과정입니다.
식(識)과 명색(名色)이 함께한 것은 활성존재(bhūta)입니다. 이때, 오온이 세상에 대응해서 펼쳐진 것이 십이처(十二處)라는 이해의 연장선에서 활성존재(오온 + 작의와 촉)가 세상을 만나기 위해 펼쳐진 것이 내입처-외입처-식-촉-수로 구성된 지금 삶의 현장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인식의 현장은 2차 인식의 과정에 의해 행위로 그 활성 상태가 이어집니다. ― 「본 것-들은 것-닿아 안 것-인식한 것-얻은 것-조사한 것-이어서 조사한 것-의(意)로 접근한 것」
이때, 사띠는 바로 이런 활성 상태를 보는 기능입니다. 사띠를 확립하지 못한 사람은 활성 상태를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사띠를 확립한 사람은 활성 상태를 봅니다. 그리고 그 활성 상태를 보기 때문에 이 경도 대념처경도 활성 상태에 대한 앎 즉 인식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만, 대념처경은 애(愛)의 관점에서, 이 경은 애를 조건으로 하는 취(取)의 관점에서 말하는 차이를 보여 주는데, 이때, 취(取)는 욕탐(欲貪)입니다. → 주제의 확장(AN-5) ‒ 매력 또는 염오를 이어보는 것 참조 ☞ http://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2_11&wr_id=112
이런 관점에서 육외입처의 법(法)은 오온(五蘊)의 수(受)-상(想)-행(行)이면서 활성화된 지금 삶을 구성하는 것들 즉 ‘주제의 확장 ― (40)’에서 설명하는 법들을 포함한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이해는 법(法)의 범주를 더 설명해 주는데, 타심통(他心通)에 의해 남의 마음을 읽는 것, 숙명통(宿命通)에 의해 식(識)을 구성하는 기억들에 접근하여 전생을 보는 것 그리고 천안통(天眼通) 즉 죽고 태어남의 현상을 대상화하여 직접 보는 것 등입니다.
; 법처(法處) = 수(受)-상(想)-행(行) & 활성화된 지금 삶을 구성하는 것들
2. 아나타삔디까 장자가 울면서 눈물을 흘리고, 아난다 존자의 참여로 함께 대화함
; “장자여, 그대는 움츠러듭니까, 장자여, 그대는 낙담합니까?”
; “대덕 아난다시여, 저는 움츠러들지 않고, 낙담하지도 않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스승과 의(意)를 닦는 비구들을 섬겼지만(*), 이런 법의 말씀을 이전에는 듣지 못했습니다.”
(*) satthā payirupāsito manobhāvanīyā ca bhikkhū 이 경이 유일한 용례
※ 부처님과 manobhāvanīyā bhikkhū(의(意)를 닦는 비구들)을 함께 언급하는 경우
• bhagavantaṃ vā payirupāsitvā manobhāvanīye vā bhikkhū 세존과 마음 닦는 비구들을 찾아뵌 뒤 ― (SN 55.21-마하나마 경1)/(SN 55.22-마하나마 경2)
• aniccadassāvī kho panāhaṃ, bhante, bhagavato manobhāvanīyānañca bhikkhūnaṃ 대덕이시여, 저는 세존과 의(意)를 닦아야 하는 비구들 가운데서 무상(無常)을 봅니다. ― (SN 22.1-나꿀라삐따 경)
• na kho panetaṃ, āvuso, bhagavato sammukhā sutaṃ sammukhā paṭiggahitaṃ, napi manobhāvanīyānaṃ bhikkhūnaṃ sammukhā sutaṃ sammukhā paṭiggahitaṃ 도반들이여, 이것을 세존의 곁에서 듣지 않고 받지 않았습니다. 의(意)를 닦아야 하는 비구들의 곁에서 듣지 않고 받지 않았습니다. ― (AN 10.28-큰 질문 경2)
; “장자여, 흰옷을 입은 재가자들(gihī odātavasanā)에게 이런 법의 말씀을 설하지 않습니다. 장자여, 출가자들에게 이런 법의 말씀을 설합니다.”
재가자들에게 설하지 않는 가르침이 있다고 하여 재가 신자가 보시와 오계의 공덕만으로 욕계 하늘에 태어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위에서 보듯이, 재가자에게 설하지 않는 가르침은 사띠의 확립에 의한 활성 상태와 관련한 가르침으로 특화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재가자의 성취 한도는 불환자, 출가자의 성취 한도는 아라한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런 내용과 관련되어 있는지는 더 연구가 필요합니다.
• 불교입문(1-소유 210119) ― 흰옷을 입은 재가자의 기타 용례1)(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 http://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9_02&wr_id=24
; “그렇다면 대덕 사리뿟따여, 재가자들에게도 이런 법의 말씀을 설해주십시오. 참으로 대덕이시여, 태어날 때부터 더러움이 적은(apparajakkhajātikā)(*)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법을 듣지 않으면 쇠퇴할 것입니다. 법을 이해하는 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 (DN 14-대전기 경) → 위빳시 부처님의 일화
/(MN 26-덫 경)/(MN 85-보디 왕자 경)/(SN 6.1-범천의 요청 경) → 범천의 요청
/(SN 4.5-마라의 덫 경2) → 전도선언
/(MN 143-아나타삔디까를 위한 가르침 경) → 재가자를 위한 아나타삔디까의 요청
3. 사리뿟따 존자와 아난다 존자가 돌아간 뒤 오래지 않아서 아나타삔디까 장자는 죽어서 도솔천의 무리에 태어남
4. 신의 아들 아나타삔디까가 부처님에게 와서 게송을 읊음
• (SN 2.20-아나타삔디까 경)/(SN 1.48-제따와나 경) 참조 ☞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6_01_02&wr_id=72
5. 부처님이 비구들에게 어떤 신의 아들의 방문을 소개함
6. 아난다 존자가 그 신의 아들이 아나타삔디까일 것이라고 말하고, 부처님은 아난다 존자를 takka에게 얻어져야 하는 만큼(*)이 그대에 의해서 얻어졌다고 말하여 칭찬함.
(*) 이 신이 누구인지 아는 것은 takka와 관련한 어떤 경지에 든 수행자에게 얻어지는 것인데 아난다 존자가 알았기 때문에 훌륭하다고 칭찬하는 것.
; 초기불전연구원 ― 아난다여, 그대가 추론하는 것이 옳다.
; 한국빠알리성전협회 ― 아난다여, 훌륭하다. 네 생각이 바로 맞았다.
; bhikkhu bodhi ― You have drawn the right inference by reasoning 바르게 추론하였다.
; takka: thought; reasoning; logic. (nt.), butter-milk. (m.)
• takkāya ― takka의 여격 = takka에게/ takka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