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ūḷarāhulovādasuttaṃ (MN 147-라훌라의 가르침의 작은 경)
5. saḷāyatanavaggo, 5. cūḷarāhulovādasuttaṃ (MN 147-라훌라를 위한 가르침의 작은 경)
(SN 35.121-라훌라를 위한 가르침 경)과 같음
▣ 주제의 확장 ― (61)「라훌라 존자와 관련된 경전들」
이렇게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은 사왓티에서 제따와나의 아나타삔디까 사원에 머물렀다. 그때 외딴곳에서 홀로 머무는 세존에게 이런 심(心)의 온전한 생각이 떠올랐다. — “라훌라에게 해탈을 위해 익어야 하는 법들이 완전히 익었다. 나는 라훌라에게 더 나아가 번뇌들의 부서짐을 이끌어야겠다.”라고. 그러자 세존은 오전에 옷차림을 바르게 하고 발우와 가사를 지니고 탁발을 위해서 사왓티로 들어갔다. 사왓티에서 탁발을 하여 공양을 마치고 탁발에서 돌아와 라훌라 존자에게 말했다. — “라훌라여, 자리를 취하라. 오후의 머묾을 위해 장님들의 숲으로 갈 것이다.”라고. “알겠습니다, 대덕이시여.”라고 라훌라 존자는 세존에게 대답한 뒤 자리를 가지고 세존을 뒤에서 따라갔다.
그러자 그때 수천의 신들이 세존을 따라갔다. — “오늘 세존께서 라훌라 존자에게 더 나아가 번뇌들의 부서짐을 이끌 것이다.”라며. 그때 세존은 장님들의 숲에 들어간 뒤 어떤 나무 밑에 마련한 자리에 앉았다. 라훌라 존자도 세존에게 절한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라훌라 존자에게 세존은 이렇게 말했다. —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라훌라여, 안(眼)은 상(常)한가, 무상(無常)한가?” “무상합니다, 대덕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고(苦)인가, 락(樂)인가?” “고입니다, 대덕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고이고 변하는 것을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아(我)다.’라고 관찰하는 것은 타당한가?”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라훌라여, 색(色)들은 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대덕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고인가, 락인가?” “고입니다, 대덕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고이고 변하는 것을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아다.’라고 관찰하는 것은 타당한가?”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라훌라여, 안식(眼識)은 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대덕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고인가, 락인가?” “고입니다, 대덕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고이고 변하는 것을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아다.’라고 관찰하는 것은 타당한가?”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라훌라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안촉(眼觸)은 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대덕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고인가, 락인가?” “고입니다, 대덕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고이고 변하는 것을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아다.’라고 관찰하는 것은 타당한가?”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라훌라여, 안촉을 조건으로 생기는 수(受)에 속한 것, 상(想)에 속한 것, 행(行)들에 속한 것, 식(識)에 속한 것도 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대덕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고인가, 락인가?” “고입니다, 대덕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고이고 변하는 것을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아다.’라고 관찰하는 것은 타당한가?”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라훌라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耳)는 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대덕이시여.” … 비(鼻)는 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대덕이시여. … 설(舌)은 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대덕이시여. … 신(身)은 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대덕이시여. …
의(意)는 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대덕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고인가, 락인가?” “고입니다, 대덕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고이고 변하는 것을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아다.’라고 관찰하는 것은 타당한가?”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라훌라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법(法)은 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대덕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고인가, 락인가?” “고입니다, 대덕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고이고 변하는 것을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아다.’라고 관찰하는 것은 타당한가?”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라훌라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의식(意識)은 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대덕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고인가, 락인가?” “고입니다, 대덕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고이고 변하는 것을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아다.’라고 관찰하는 것은 타당한가?”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라훌라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의촉(意觸)은 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대덕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고인가, 락인가?” “고입니다, 대덕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고이고 변하는 것을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아다.’라고 관찰하는 것은 타당한가?”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라훌라여,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의촉을 조건으로 생기는 수(受)에 속한 것, 상(想)에 속한 것, 행(行)들에 속한 것, 식(識)에 속한 것도 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대덕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고인가, 락인가?” “고입니다, 대덕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고이고 변하는 것을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아다.’라고 관찰하는 것은 타당한가?”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라훌라여, 이렇게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안에 대해 염오하고, 색들에 대해 염오하고, 안식에 대해 염오하고, 안촉에 대해 염오하고, 안촉을 조건으로 생기는 수에 속한 것, 상에 속한 것, 행들에 속한 것, 식에 속한 것에 대해서도 염오한다.
이에 대해 염오하고, 성들에 대해 염오하고 … 비에 대해 염오하고, 향들에 대해 염오하고 … 설에 대해 염오하고, 미들에 대해 염오하고 … 신에 대해 염오하고, 촉들에 대해 염오하고 …
의에 대해 염오하고, 법들에 대해 염오하고, 의식에 대해 염오하고, 의촉에 대해 염오하고, 의촉을 조건으로 생기는 수에 속한 것, 상에 속한 것, 행들에 속한 것, 식에 속한 것에 대해서도 염오한다.
염오하는 자는 이탐한다. 이탐으로부터 해탈한다. 해탈했을 때 ‘나는 해탈했다.’라는 앎이 있다. ‘태어남은 다했다. 범행은 완성되었다. 해야 할 일을 했다. 다음에는 현재 상태[유(有)]가 되지 않는다.’라고 분명히 안다.”
세존은 이렇게 말했다. 라훌라 존자는 즐거워하면서 세존의 말씀을 기뻐했다. 그리고 이 설명이 설해졌을 때 라훌라 존자의 심(心)은 집착에서 벗어나 번뇌들로부터 해탈했다. 수천의 신들에게도 ‘자라나는 것은 무엇이든지 모두 소멸하는 것이다.’라는 티끌이 없고 때가 없는 법의 눈[법안(法眼)]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