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윳따 니까야 제1권 ― (SN 3.17-불방일 경)[(방일-불방일)1)금생과 내생의 이익을 위한 것, 2)현상과 사실의 영역…
▣ 상윳따 니까야 제1권 ― (SN 3.17-불방일 경)[(방일-불방일)1)금생과 내생의 이익을 위한 것, 2)현상과 사실의 영역의 분기점(법의 드러남)](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240503)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_6d3EpwSrRU&t=133s
금생과 내생의 이익을 위한 한 가지 법을 묻는 빠세나디 꼬살라 왕에게 부처님은 불방일(不放逸)이 바로 그것이라고 답합니다.
그런데 방일-불방일은 두 가지 관점에서 보아야 합니다. 내생의 이익까지도 목적으로 하는 재가자의 삶에서와 내생을 부르지 않는 출가자/수행자의 삶에서입니다.
이때, 「맛지마 니까야 관통 법회 - 97. 다난자니 경[방일과 불방일 & 죽음에 처한 사람을 위한 문병](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230607)」에서는 방일과 불방일에 대해 ①게으름과 게으르지 않음, ②법이 드러나지 않음과 법이 드러남의 두 가지 이해에 더해 ③십악업을 버리고 십선업을 닦는 삶의 실천 여부로써 설명하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서술하였는데, 이런 관점에서 보면 재가자의 방일-불방일과 출가자/수행자의 방일-불방일로 구분하는 것이 기준이 되고, 그 결과로의 (유위-무위의) 업(業)의 발현이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5_10_07&wr_id=2
특히, 출가자/수행자의 불방일에 대해 법이 드러나기 전까지 즉 내적인 심(心)의 사마타의 과정까지는 현상의 영역, 드러난 법에 대한 무상(無常)의 관찰 즉 법의 위빳사나부터는 사실의 영역이기 때문에 법이 드러나는 현상/사건을 현상과 사실의 분기점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MN 119-신념처경)은 심(心)이 안으로 진정되고 가라앉고 집중되고 삼매에 드는 때 즉 내적인 심(心)의 사마타에 의해 법이 드러나는 때까지를 마라의 지배력의 영역이라고 설명하고, 그 이후는 마라가 지배력을 행사하지 못한다고 말하는데, 현상의 영역에서 지배력을 행사하는 마라를 극복하는 것으로의 수행에 대한 설명입니다. ☞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5_12_09&wr_id=1
(MN 26-덫 경) 등은 마라를 눈이 멀고, 발이 없게 만들고, 마라의 눈을 파괴한 뒤에 빠삐만뜨가 없는 곳으로 갔다는 서술을 하는데,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5_03_06&wr_id=4
한편, 경은 게송으로 마무리되는데, (AN 5.43-원함 경)의 게송과 유사합니다. ☞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9_01_05&wr_id=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