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parivīmaṃsanasuttaṃ (SN 12.51-완전한 조사 경)
6. dukkhavaggo, 1. parivīmaṃsanasuttaṃ (SN 12.51-완전한 조사 경)
이렇게 나는 들었다. ㅡ 한때 세존은 사왓티에서 제따와나의 아나타삔디까 사원에 머물렀다. 거기서 세존은 “비구들이여.”라고 비구들을 불렀다. “대덕이시여.”라고 그 비구들은 세존에게 대답했다. 세존은 이렇게 말했다. ㅡ
“비구들이여, 모든 면에서 바르게 괴로움의 부서짐을 위해 완전한 조사를 하는 비구는 얼마만큼 완전히 조사해야 하는가?”라고. “대덕이시여, 참으로 법들은 세존을 뿌리로 하고, 세존을 도관(導管)으로 하고, 세존을 의지합니다. 대덕이시여, 이 말씀의 의미를 세존께서 분명히 해주시면 참으로 감사하겠습니다. 비구들은 세존에게서 듣고서 명심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비구들이여, 듣고 잘 사고하라. 나는 말하겠다.” “알겠습니다, 대덕이시여.”라고 그 비구들은 세존에게 대답했다. 세존은 이렇게 말했다. ㅡ
“여기, 비구들이여, 완전한 조사를 하는 비구는 ‘세상에는 다양하고 여러 종류의 괴로움인 노사(老死)가 생긴다. 이 괴로움은 무엇이 인연이고, 무엇이 자라남이고, 무엇에서 생기고, 무엇이 근원인가? 무엇이 있을 때 노사(老死)가 있고, 무엇이 없을 때 노사(老死)가 없는가?’라고 완전히 조사한다. 완전한 조사를 하는 그는 이렇게 꿰뚫어 안다. ㅡ ‘세상에는 다양하고 여러 종류의 괴로움인 노사(老死)가 생긴다. 이 괴로움은 생(生)이 인연이고, 생(生)이 자라남이고, 생(生)에서 생기고, 생(生)이 근원이다. 생(生)이 있을 때 노사(老死)가 있고, 생(生)이 없을 때 노사(老死)가 없다.’라고.
그는 노사(老死)를 꿰뚫어 알고, 노사의 자라남을 꿰뚫어 알고, 노사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노사의 소멸로 적절히 이끄는 실천을 꿰뚫어 안다. 그렇게 실천하는 자는 법에 따라 행한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모든 면에서 바르게 괴로움의 부서짐을 위해, 노사(老死)의 소멸을 위해 실천하는 자다.
그렇게 완전한 조사를 하는 자는 다음으로 ‘그런데 이 생(生)은 무엇이 인연이고, 무엇이 자라남이고, 무엇에서 생기고, 무엇이 근원인가? 무엇이 있을 때 생(生)이 있고, 무엇이 없을 때 생이 없는가?’라고 완전히 조사한다. 완전한 조사를 하는 그는 이렇게 꿰뚫어 안다. ㅡ ‘생(生)은 유(有)가 인연이고, 유가 자라남이고, 유에서 생기고, 유가 근원이다. 유가 있을 때 생이 있고, 유가 없을 때 생이 없다.’라고.
그는 생(生)을 꿰뚫어 알고, 생의 자라남을 꿰뚫어 알고, 생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생의 소멸로 적절히 이끄는 실천을 꿰뚫어 안다. 그렇게 실천하는 자는 법에 따라 행한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모든 면에서 바르게 괴로움의 부서짐을 위해, 생의 소멸을 위해 실천하는 자다.
그렇게 완전한 조사를 하는 자는 다음으로 ‘그런데 이 유(有)는 무엇이 인연이고, … 그런데 이 취(取)는 무엇이 인연이고, … 그런데 이 애(愛)는 무엇이 인연이고, … 수(受)는 … 촉(觸)은 … 그런데 이 육입(六入)은 무엇이 인연이고 … 그런데 이 명색(名色)은 … 그런데 이 식(識)은 … 그런데 이 행(行)들은 무엇이 인연이고 무엇이 자라남이고, 무엇에서 생기고, 무엇이 근원인가? 무엇이 있을 때 행(行)들이 있고, 무엇이 없을 때 행(行)들이 없는가?’라고 완전히 조사한다. 완전한 조사를 하는 그는 이렇게 꿰뚫어 안다. ㅡ ‘행(行)들은 무명(無明)이 인연이고, 무명이 자라남이고, 무명에서 생기고, 무명이 근원이다. 무명이 있을 때 행들이 있고, 무명이 없을 때 행들이 없다.’라고.
그는 행(行)들을 꿰뚫어 알고, 행들의 자라남을 꿰뚫어 알고, 행들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행들의 소멸로 적절히 이끄는 실천을 꿰뚫어 안다. 그렇게 실천하는 자는 법에 따라 행한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모든 면에서 바르게 괴로움의 부서짐을 위해, 행들의 소멸을 위해 실천하는 자다.
비구들이여, 만약 무명(無明)이 스민 사람이 공덕(功德)의 행(行)을 행하면 공덕에 닿은 식(識)이 있고, 만약 비공덕(非功德)의 행(行)을 행하면 비공덕에 닿은 식(識)이 있고, 만약 흔들림 없음의 행(行)을 행하면 흔들림 없음에 닿은 식(識)이 있다. 비구들이여, 비구에게 무명(無明)이 버려지고 명(明)이 생길 때 그는 무명(無明)의 바램으로부터, 명(明)의 생김으로부터 공덕(功德)의 행(行)도 행하지 않고, 비공덕(非功德)의 행(行)도 행하지 않고, 흔들림 없음의 행(行)도 행하지 않는다. 행하지 않고 의도하지 않는 자는 세상에서 아무 것도 집착하지 않는다. 집착하지 않으면 동요하지 않고, 동요하지 않으면 개별적으로 완전히 꺼진다. '태어남은 다했다. 범행은 완성되었다. 해야 할 일을 했다. 다음에는 현재 상태[유(有)]가 되지 않는다.'라고 분명히 안다.
그가 만약 즐거운 느낌을 경험하면, 그것은 무상(無常)하다고 꿰뚫어 알고, 묶일 것이 아니라고 꿰뚫어 알고, 기뻐할 것이 아니라고 꿰뚫어 안다. 만약 괴로운 느낌을 경험하면, 그것은 무상(無常)하다고 꿰뚫어 알고, 묶일 것이 아니라고 꿰뚫어 알고, 기뻐할 것이 아니라고 꿰뚫어 안다. 만약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경험하면, 그것은 무상(無常)하다고 꿰뚫어 알고, 묶일 것이 아니라고 꿰뚫어 알고, 기뻐할 것이 아니라고 꿰뚫어 안다. 그가 만약 즐거운 느낌을 경험하면 풀려난 자로서 그것을 경험한다. 만약 괴로운 느낌을 경험하면 풀려난 자로서 그것을 경험한다. 만약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경험하면 풀려난 자로서 그것을 경험한다.
몸이 끝나는 느낌을 경험하는 그는 ‘나는 몸이 끝나는 느낌을 경험한다.’라고 꿰뚫어 안다. 생명이 끝나는 느낌을 경험하는 그는 ‘나는 생명이 끝나는 느낌을 경험한다.’라고 꿰뚫어 안다. 그는 ‘몸이 무너진 뒤 생명이 끝나면, 동의되지 않은 모든 느낌들은 오직 여기에서 차가워질 것이다.’라고 꿰뚫어 안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이 도공의 가마로부터 뜨거운 그릇을 꺼낸 뒤에 평평한 땅 위에 놓을 것이다. 그때 그것의 열은 거기서 식을 것이고. 그릇만 남을 것이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몸이 끝나는 느낌을 경험하는 비구는 ‘나는 몸이 끝나는 느낌을 경험한다.’라고 꿰뚫어 안다. 생명이 끝나는 느낌을 경험하는 그는 ‘나는 생명이 끝나는 느낌을 경험한다.’라고 꿰뚫어 안다. 그는 ‘몸이 무너진 뒤 생명이 끝나면, 동의되지 않은 모든 느낌들은 오직 여기에서 차가워질 것이다.’라고 꿰뚫어 안다.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비구들이여, 번뇌 다한 비구가 공덕(功德)의 행(行)을 행하거나, 비공덕(非功德)의 행(行)을 행하거나, 흔들림 없음의 행(行)을 행하겠는가?”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그러면 모든 면에서 행(行)들이 없을 때, 그대들은 행(行)들의 소멸로부터 식(識)이 알려지게 할 수 있겠는가?”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그러면 모든 면에서 식(識)이 없을 때, 그대들은 식(識)의 소멸로부터 명색(名色)이 알려지게 할 수 있겠는가?”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그러면 모든 면에서 명색(名色)이 없을 때, 그대들은 명색(名色)의 소멸로부터 육입(六入)이 알려지게 할 수 있겠는가?”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그러면 모든 면에서 육입(六入)이 없을 때, 그대들은 육입(六入)의 소멸로부터 촉(觸)이 알려지게 할 수 있겠는가?”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그러면 모든 면에서 촉(觸)이 없을 때, 그대들은 촉(觸)의 소멸로부터 수(受)가 알려지게 할 수 있겠는가?”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그러면 모든 면에서 수(受)가 없을 때, 그대들은 수(受)의 소멸로부터 애(愛)가 알려지게 할 수 있겠는가?”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그러면 모든 면에서 애(愛)가 없을 때, 그대들은 애(愛)의 소멸로부터 취(取)가 알려지게 할 수 있겠는가?”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그러면 모든 면에서 취(取)가 없을 때, 그대들은 취(取)의 소멸로부터 유(有)가 알려지게 할 수 있겠는가?”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그러면 모든 면에서 유(有)가 없을 때, 그대들은 유(有)의 소멸로부터 생(生)이 알려지게 할 수 있겠는가?”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그러면 모든 면에서 생(生)이 없을 때, 그대들은 생(生)의 소멸로부터 노사(老死)가 알려지게 할 수 있겠는가?”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훌륭하고 훌륭하다, 비구들이여. 비구들이여, 이렇게 그것[완전한 조사]이 있고, 다른 방법은 그것[완전한 조사]이 아니다. 비구들이여, 나의 가르침을 믿고, 그것을 명료히 하라. 여기에 분명함을 가지고 의심이 없게 하라. 이것이 괴로움의 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