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acelakassapasuttaṃ (SN 12.17-나체수행자 깟사빠 경)
2. āhāravaggo, 7. acelakassapasuttaṃ (SN 12.17-나체수행자 깟사빠 경)
이렇게 나는 들었다. — 한때 세존은 라자가하에서 웰루와나의 다람쥐 기르는 곳에 머물렀다. 그때 세존은 오전에 옷차림을 바르게 하고 발우와 가사를 지니고 탁발을 위해 라자가하에 들어갔다. 나체수행자 깟사빠가 멀리서 오고 있는 세존을 보았다. 보고서 세존에게 왔다. 와서는 세존과 함께 인사를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만한 이야기를 주고받은 뒤 한 곁에 섰다. 한 곁에 선 그 바라문은 세존에게 이렇게 말했다. — “만약 고따마 존자께서 우리의 질문에 대답해 주실 수 있다면, 우리는 고따마 존자께 어떤 주제에 대해 여쭙겠습니다.”
“깟사빠여, 질문하기에 적당한 때가 아닙니다. 우리는 마을에 들어왔습니다.” 두 번째도 나체수행자 깟사빠는 세존에게 이렇게 말했다. — “만약 고따마 존자께서 우리의 질문에 대답해 주실 수 있다면, 우리는 고따마 존자께 어떤 주제에 대해 여쭙겠습니다.” “깟사빠여, 질문하기에 적당한 때가 아닙니다. 우리는 마을에 들어왔습니다.” 세 번째도 나체수행자 깟사빠는 세존에게 이렇게 말했다. — “만약 고따마 존자께서 우리의 질문에 대답해 주실 수 있다면, 우리는 고따마 존자께 어떤 주제에 대해 여쭙겠습니다.” “깟사빠여, 질문하기에 적당한 때가 아닙니다. 우리는 마을에 들어왔습니다.” 이렇게 말했을 때 나체수행자 깟사빠는 세존에게 이렇게 말했다. — “우리는 고따마 존자에게 많은 질문을 원하지 않습니다.” “깟사빠여, 원하는 것을 질문하십시오.”
“고따마 존자여, 괴로움은 자신이 만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깟사빠여.”라고 세존은 말했다. “그러면 고따마 존자여, 괴로움은 남이 만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깟사빠여.”라고 세존은 말했다. “그러면 고따마 존자여, 괴로움은 자신이 만들기도 하고, 남이 만들기도 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깟사빠여.”라고 세존은 말했다. “그러면 고따마 존자여, 괴로움은 자신이 만들지도 않고, 남이 만들지도 않고, 원인 없이 만들어집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깟사빠여.”라고 세존은 말했다. “고따마 존자여, 괴로움은 없습니까?” “깟사빠여, 괴로움은 없지 않습니다. 깟사빠여, 괴로움은 있습니다.” “그렇다면 고따마 존자는 괴로움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합니까?” “깟사빠여, 나는 괴로움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지 않습니다. 깟사빠여, 나는 괴로움을 압니다. 깟사빠여, 나는 괴로움을 봅니다.”
“‘고따마 존자여, 괴로움은 자신이 만듭니까?’라고 물었을 때 ‘그렇지 않습니다, 깟사빠여.’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고따마 존자여, 괴로움은 남이 만듭니까?’라고 물었을 때 ‘그렇지 않습니다, 깟사빠여.’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고따마 존자여, 괴로움은 자신이 만들기도 하고, 남이 만들기도 합니까?’라고 물었을 때 ‘그렇지 않습니다, 깟사빠여.’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고따마 존자여, 괴로움은 자신이 만들지도 않고, 남이 만들지도 않고, 원인 없이 만들어집니까?’라고 물었을 때 ‘그렇지 않습니다, 깟사빠여.’라고 말했습니다. ‘고따마 존자여, 괴로움은 없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깟사빠여, 괴로움은 없지 않습니다. 깟사빠여, 괴로움은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고따마 존자는 괴로움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합니까?’라고 물었을 때 ‘깟사빠여, 나는 괴로움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지 않습니다. 깟사빠여, 나는 괴로움을 압니다. 깟사빠여, 나는 괴로움을 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대덕이시여, 세존께서는 저에게 괴로움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대덕이시여, 세존께서는 저에게 괴로움에 대해 가르쳐 주십시오.”
“‘그가 짓고 그가 경험한다.’라고, 깟사빠여, 시작하는 자에게 ‘괴로움은 자신이 만드는 것이다.’라는 이런 상(常)의 주장이 생깁니다. ‘다른 이가 짓고 다른 이가 경험한다.’라고, 깟사빠여, 느낌에 압도된 자에게 ‘괴로움은 남이 만드는 것이다.’라는 이런 단(斷)의 주장이 생깁니다. 깟사빠여, 이런 두 끝으로 접근하지 않고 여래는 그대에게 중(中)에 의해서 법을 설합니다. — ‘무명(無明)을 조건으로 행(行)들이, 행들을 조건으로 식(識)이 … 이렇게 이 모든 괴로움 무더기가 자라난다. 그러나 무명이 남김없이 바래어 소멸할 때 행들이 소멸하고, 행들이 소멸할 때 식이 소멸하고 … 이렇게 이 모든 괴로움 무더기가 소멸한다.’라고.”
이렇게 말했을 때, 나체수행자 깟사빠는 세존에게 이렇게 말했다. — “정말 기쁩니다, 대덕이시여. 정말 기쁩니다, 대덕이시여! 예를 들면, 대덕이시여, 넘어진 자를 일으킬 것입니다. 덮여있는 것을 걷어낼 것입니다. 길 잃은 자에게 길을 알려줄 것입니다. ‘눈 있는 자들은 모습들을 본다.’라며 어둠 속에서 기름 등불을 들 것입니다. 이처럼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법을 설하셨습니다. 이런 저는, 대덕이시여, 의지처인 세존(世尊) 그리고 가르침과 비구 상가에게로 갑니다. 대덕이시여, 저는 세존의 앞에서 출가하고자 합니다. 구족계를 받고자 합니다.”
“깟사빠여, 이 법과 율에서 출가하기를 원하고 구족계를 받기를 원하는 전에 외도였던 자는 넉 달 동안 심사 기간을 살게 된다. (심사 기간을 산) 넉 달이 지나면 확고한 심(心)을 가진 비구들은 출가하게 하여 비구가 되는 구족계를 받게 한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 개인의 차이가 있음을 안다."
"대덕이시여, 만약 이 법과 율에서 출가하기를 원하고 구족계를 받기를 원하는 전에 외도였던 자는 넉 달 동안 심사 기간을 살게 되고, (심사 기간을 산) 넉 달이 지나 확고한 심(心)을 가진 비구들이 출가하게 하여 비구가 되는 구족계를 받게 한다면, 저는 4년의 심사 기간을 살겠습니다. (심사 기간을 산) 4년이 지나 확고한 심(心)을 가진 비구들이 출가하게 하여 비구가 되는 구족계를 주게 하십시오.”
나체수행자 깟사빠는 세존의 앞에서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았다. 새로 구족계를 받고 홀로 외딴곳에서 방일하지 않고 노력하고 단호한 의지로써 머문 깟사빠 존자는 오래지 않아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한 목적인 위없는 범행(梵行)의 완성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머물렀다. “태어남은 다했다. 범행은 완성되었다. 해야 할 일을 했다. 다음에는 현재 상태[유(有)]가 되지 않는다.”라고 실답게 알았다. 깟사빠 존자는 아라한들 가운데 한 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