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upavāṇasuttaṃ (SN 12.26-우빠와나 경)
3. dasabalavaggo, 6. upavāṇasuttaṃ (SN 12.26-우빠와나 경)
사왓티에 머물다. 그때 우빠와나 존자가 세존에게 왔다. 와서는 세존에게 절한 디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우빠와나 존자는 세존에게 이렇게 말했다. ―
“대덕이시여, ‘자신이 짓는 괴로움’을 선언하는, 업(業)을 설하는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있습니다. 대덕이시여, ‘남이 짓는 괴로움’을 선언하는, 업(業)을 설하는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있습니다. 대덕이시여, ‘자신도 짓고, 남도 짓는 괴로움’을 선언하는, 업(業)을 설하는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있습니다. 대덕이시여, ‘자신도 짓지 않고, 남도 짓지 않고, 원인 없이 생기는 괴로움’을 선언하는, 업(業)을 설하는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있습니다. 대덕이시여, 여기에 대해 세존께서는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가르칩니까? 저희가 어떻게 말하면 세존께서 설하신 것을 말하는 것이고, 사실 아닌 것으로 세존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고, 가르침을 가르침에 일치하게 설명하는 것이고, 법에 맞게 질책하여 말하는 어떤 사람에게도 비난받지 않겠습니까?”라고.
“우빠와나여, ‘연기(緣起)된 괴로움’을 나는 말했다. 무엇을 연(緣)하였는가? 촉(觸)을 연(緣)하였다. 이렇게 말하면, 내가 설한 것을 말하는 것이고, 사실 아닌 것으로 나를 비방하지 않고, 가르침을 가르침에 일치하게 설명하고, 법에 맞게 질책하여 말하는 어떤 사람에게도 비난받지 않는다.
거기서, 우빠와나여, 업(業)을 설하는 그 사문-바라문들이 선언하는 ‘자신이 짓는 괴로움’도 촉(觸)을 조건으로 생긴다. 업(業)을 설하는 그 사문-바라문들이 선언하는 ‘남이 짓는 괴로움’도 촉(觸)을 조건으로 생긴다. 업(業)을 설하는 그 사문-바라문들이 선언하는 ‘자신도 짓고, 남도 짓는 괴로움’도 촉(觸)을 조건으로 생긴다. 업(業)을 설하는 그 사문-바라문들이 선언하는 ‘자신도 짓지 않고, 남도 짓지 않고, 원인 없이 생기는 괴로움’도 촉(觸)을 조건으로 생긴다.
거기서, 우빠와나여, ‘스스로 짓는 괴로움’을 선언하는 업(業)을 설하는 사문-바라문들이 참으로 촉(觸)과 다른 곳에서 경험할 것이라는 경우는 없다. ‘남이 짓는 괴로움’을 선언하는 업(業)을 설하는 사문-바라문들도 참으로 촉(觸)과 다른 곳에서 경험할 것이라는 경우는 없다. ‘자신도 짓고, 남도 짓는 괴로움’을 선언하는 업(業)을 설하는 사문-바라문들도 참으로 촉(觸)과 다른 곳에서 경험할 것이라는 경우는 없다. ‘자신도 짓지 않고, 남도 짓지 않고, 원인 없이 생기는 괴로움’을 선언하는 업(業)을 설하는 사문-바라문들도 참으로 촉(觸)과 다른 곳에서 경험할 것이라는 경우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