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naḷakalāpīsuttaṃ (SN 12.67-갈대 묶음 경)
7. mahāvaggo, 7. naḷakalāpīsuttaṃ (SN 12.67-갈대 묶음 경)
한때 사리뿟따 존자와 마하꼿티까 존자가 바라나시에서 이시빠따나의 녹야원에 머물렀다. 그때 저녁에 홀로 머묾에서 나온 마하꼿티까 존자가 사리뿟따 존자에게 왔다. 와서는 사리뿟따 존자와 함께 유쾌하고 기억할만한 이야기를 주고받은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마하꼿티까 존자는 사리뿟따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ㅡ “도반 사리뿟따여, 노사(老死)는 스스로 만들어지는 것입니까, 노사(老死)는 남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입니까, 노사(老死)는 스스로도 만들어지고 남에 의해서도 만들어지는 것입니까, 아니면 노사(老死)는 스스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남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도 아닌 원인 없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도반 꼿티까여, 노사(老死)는 스스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노사(老死)는 남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노사(老死)는 스스로도 만들어지고 남에 의해서도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노사(老死)는 스스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남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도 아닌 원인 없이 일어나는 것도 아닙니다. 그보다는 생(生)의 조건으로부터 노사(老死)가 있습니다.”
“도반 사리뿟따여, 생(生)은 스스로 만들어지는 것입니까, 생(生)은 남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입니까, 생(生)은 스스로도 만들어지고 남에 의해서도 만들어지는 것입니까, 아니면 생(生)은 스스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남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도 아닌 원인 없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도반 꼿티까여, 생(生)은 스스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생(生)은 남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생(生)은 스스로도 만들어지고 남에 의해서도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생(生)은 스스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남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도 아닌 원인 없이 일어나는 것도 아닙니다. 그보다는 유(有)의 조건으로부터 생(生)이 있습니다.”
“도반 사리뿟따여, 유(有)는 스스로 만들어지는 것입니까 … 취(取)는 스스로 만들어지는 것입니까 … 애(愛)는 스스로 만들어지는 것입니까 … 수(受)는 스스로 만들어지는 것입니까 … 촉(觸)은 스스로 만들어지는 것입니까 … 육입(六入)은 스스로 만들어지는 것입니까 … 명색(名色)은 스스로 만들어지는 것입니까, 명색(名色)은 남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입니까, 명색(名色)은 스스로도 만들어지고 남에 의해서도 만들어지는 것입니까, 아니면 명색(名色)은 스스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남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도 아닌 원인 없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도반 꼿티까여, 명색(名色)은 스스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명색(名色)은 남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명색(名色)은 스스로도 만들어지고 남에 의해서도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아니면 명색(名色)은 스스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남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도 아닌 원인 없이 일어나는 것도 아닙니다. 그보다는 식(識)의 조건으로부터 명색(名色)이 있습니다.”
“도반 사리뿟따여, 식(識)은 스스로 만들어지는 것입니까, 식(識)은 남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입니까, 식(識)은 스스로도 만들어지고 남에 의해서도 만들어지는 것입니까, 아니면 식(識)은 스스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남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도 아닌 원인 없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도반 꼿티까여, 식(識)은 스스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남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식(識)은 스스로도 만들어지고 남에 의해서도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식(識)은 스스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남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도 아닌 원인 없이 일어나는 것도 아닙니다. 그보다는 명색(名色)의 조건으로부터 식(識)이 있습니다.”
“우리는 사리뿟따 존자의 말씀을 이렇게 압니다. ㅡ ‘도반 꼿티까여, 명색(名色)은 스스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명색(名色)은 남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명색(名色)은 스스로도 만들어지고 남에 의해서도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아니면 명색(名色)은 스스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남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도 아닌 원인 없이 일어나는 것도 아닙니다. 그보다는 식(識)의 조건으로부터 명색(名色)이 있습니다.’라고.
리는 사리뿟따 존자의 말씀을 이렇게 압니다. ㅡ ‘도반 꼿티까여, 식(識)은 스스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남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식(識)은 스스로도 만들어지고 남에 의해서도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식(識)은 스스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남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도 아닌 원인 없이 일어나는 것도 아닙니다. 그보다는 명색(名色)의 조건으로부터 식(識)이 있습니다.’라고.
도반 사리뿟따여, 이것에 대해 이 말씀의 의미를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그렇다면, 도반들이여, 그대들에게 비유를 들겠습니다. 그대들에게 비유를 말하겠습니다. 비유에 의해서도 어떤 현명한 사람들은 말의 의미를 압니다. 예를 들면, 도반들이여, 두 개의 갈대 묶음이 서로를 의지해서 서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도반들이여, 명색(名色)의 조건으로부터 식(識)이 있고, 식(識)의 조건으로부터 명색(名色)이 있습니다. 명색(名色)의 조건으로부터 육입(六入)이 있고, 육입(六入)의 조건으로부터 촉(觸)이 있고, … 이렇게 이 모든 괴로움 덩어리의 자라남[집(集)]이 있습니다. 도반들이여, 만약 그 갈대 묶음 가운데 하나를 잡아당기면 하나는 쓰러질 것입니다. 만약 다른 것을 잡아당기면 다른 것은 쓰러질 것입니다. 이와 같이, 도반들이여, 명색(名色)의 멸(滅)로부터 식(識)의 멸(滅)이 있고, 식(識)의 멸(滅)로부터 명색(名色)의 멸(滅)이 있습니다. 명색(名色)의 멸(滅)로부터 육입(六入)의 멸(滅)이 있고, 육입(六入)의 멸(滅)로부터 촉(觸)의 멸(滅)이 있고, … 이렇게 이 모든 괴로움 덩어리의 멸(滅)이 있습니다.”
“도반 사리뿟따여, 참으로 놀랍습니다. 도반 사리뿟따여, 참으로 신기합니다. 사리뿟따 존자는 이렇게 이것을 잘 말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사리뿟따 존자의 이 말씀에 대해 이런 서른여섯 가지 이야기로 감사하겠습니다. ㅡ ‘도반이여, 만약 비구가 노사(老死)의 염오(厭惡)-이탐(離貪)-소멸(消滅)을 위하여 법을 설하면 ‘법을 설하는 비구’라고 말하기에 적절합니다. 만약 비구가 노사(老死)의 염오(厭惡)-이탐(離貪)-소멸(消滅)을 위하여 실천하면 ‘열반으로 이끄는 법을 실천하는 비구’라고 말하기에 적절합니다. 만약 비구가 노사(老死)의 염오(厭惡)-이탐(離貪)-소멸(消滅)로부터 집착 없이 해탈하면 ‘지금여기의 열반을 성취한 비구’라고 말하기에 적절합니다. 만약 생(生)의 … 만약 유(有)의 … 만약 취(取)의 … 만약 애(愛)의 … 만약 수(受)의 … 만약 촉(觸)의 … 만약 육입(六入)의 … 만약 명색(名色)의 … 만약 식(識)의 … 만약 행(行)들의 … 만약 비구가 무명(無明)의 염오(厭惡)-이탐(離貪)-소멸(消滅)을 위하여 법을 설하면 ‘법을 설하는 비구’라고 말하기에 적절합니다. 만약 비구가 무명(無明)의 염오(厭惡)-이탐(離貪)-소멸(消滅)을 위하여 실천하면 ‘열반으로 이끄는 법을 실천하는 비구’라고 말하기에 적절합니다. 만약 비구가 무명(無明)의 염오(厭惡)-이탐(離貪)-소멸(消滅)로부터 집착 없이 해탈하면 ‘지금여기의 열반을 성취한 비구’라고 말하기에 적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