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sammasasuttaṃ (SN 12.66-명상 경)
7. mahāvaggo, 6. sammasasuttaṃ (SN 12.66-명상 경)
• sammasati: grasps; touches; knows thoroughly; meditates on. (saṃ + mas + a)
• sammasa: 접촉. 촉(觸)
이렇게 나는 들었다. — 한때 세존은 꾸루에서 깜마사담마라는 꾸루의 번화가에 머물렀다. 그때 세존은 “비구들이여.”라고 비구들을 불렀다. “대덕이시여.”라고 그 비구들은 세존에게 대답했다. 세존은 이렇게 말했다. —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안의 닿음[촉(觸)]을 명상해야 한다.”라고. 이렇게 말했을 때, 어떤 비구가 세존에게 이렇게 말했다. — “대덕이시여, 저는 안의 닿음을 명상합니다.”라고. “그렇다면, 비구여, 그대는 그것과 관련해서 어떻게 안의 닿음을 명상하는가?” 그러자 그 비구는 대답했다. 그 비구가 대답한 것과 관련해서 그 비구는 세존의 심(心)을 기쁘게 하지 못했다.
이렇게 말했을 때, 아난다 존자가 이렇게 말했다. —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안의 닿음에 대해 말씀하실 때입니다. 선서시여, 그때입니다. 세존에게서 듣고 비구들은 명심할 것입니다.”라고. “그렇다면, 아난다여, 듣고 잘 사고하라. 나는 말하겠다.” “알겠습니다, 대덕이시여.”라고 그 비구들은 세존에게 대답했다. 세존은 이렇게 말했다. —
”여기 비구들이여, 명상하는 비구는 안의 닿음을 명상한다. — ‘세상에는 이런 다양하고 다른 종류의 고(苦)와 노사(老死)가 생긴다. 이런 고(苦)는 무엇이 인연이고, 무엇 때문에 자라나고, 무엇에서 생기고, 무엇이 기원인가? 무엇이 있을 때 노사(老死)가 있고, 무엇이 없을 때 노사(老死)가 없는가?’ 명상하는 그는 이렇게 안다. — ‘세상에는 이런 다양하고 다른 종류의 고(苦)와 노사(老死)가 생긴다. 이런 고(苦)는 재생의 조건이 인연이고, 재생의 조건 때문에 자라나고, 재생의 조건에서 생기고, 재생의 조건이 기원이다. 재생의 조건이 있을 때 노사(老死)가 있고, 재생의 조건이 없을 때 노사(老死)가 없다.’라고. 그는 노사를 꿰뚫어 알고, 노사의 자라남을 꿰뚫어 알고, 노사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노사의 소멸로 바르게 이끄는 실천을 꿰뚫어 안다. 이렇게 실천하는 자는 법에 따라 실천하는 자이다. 이런 비구는,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소멸을 위해, 노사의 소멸을 위해 온전히 바르게 실천하는 자라고 불린다.
그리고 더 나아가 명상하는 비구는 안의 닿음을 명상한다. — ‘그러면 이런 재생의 조건은 무엇이 인연이고, 무엇 때문에 자라나고, 무엇에서 생기고, 무엇이 기원인가? 무엇이 있을 때 재생의 조건이 있고, 무엇이 없을 때 재생의 조건이 없는가?’ 명상하는 그는 이렇게 안다. — ‘재생의 조건은 애(愛)가 인연이고, 애(愛) 때문에 자라나고, 애(愛)에서 생기고, 애(愛)가 기원이다. 애(愛) 있을 때 재생의 조건이 있고, 애(愛)가 없을 때 재생의 조건이 없다.’라고. 그는 재생의 조건을 꿰뚫어 알고, 재생의 조건의 자라남을 꿰뚫어 알고, 재생의 조건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재생의 조건의 소멸로 바르게 이끄는 실천을 꿰뚫어 안다. 이렇게 실천하는 자는 법에 따라 실천하는 자이다. 이런 비구는,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소멸을 위해, 재생의 조건의 소멸을 위해 온전히 바르게 실천하는 자라고 불린다.
그리고 더 나아가 명상하는 비구는 안의 닿음을 명상한다. — ‘그러면 이런 애(愛)는 생길 때 어디에서 생기고, 이런 애(愛)는 자리 잡을 때 어디에서 자리 잡는가?’라고. 명상하는 그는 이렇게 안다. — ‘세상에서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 이런 애(愛)는 생길 때 여기에서 생기고, 이런 애(愛)는 자리 잡을 때 여기에서 자리 잡는다. 그러면 무엇이 세상에서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인가? 안(眼)은 세상에서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이런 애(愛)는 생길 때 어디에서 생기고, 이런 애(愛)는 자리 잡을 때 어디에서 자리 잡는다. 이(耳)는 세상에서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 비(鼻)는 세상에서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 설(舌)은 세상에서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 신(身)은 세상에서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의(意)는 세상에서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이다. 이런 애(愛)는 생길 때 여기에서 생기고, 이런 애(愛)는 자리 잡을 때 여기에서 자리 잡는다.
비구들이여, 세상에서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을 상(常)으로부터 보고, 락(樂)으로부터 보고, 아(我)로부터 보고, 아프지 않음으로부터 보고, 안온(安穩)으로부터 보았던 과거의 사문이나 바라문은 누구든지 애(愛)를 늘어나게 했다. 애(愛)를 늘어나게 하는 그들은 재생의 조건을 늘어나게 했다. 재생의 조건을 늘어나게 하는 그들은 고(苦)를 늘어나게 했다. 고(苦)를 늘어나게 하는 그들은 생(生)-노(老)-사(死)-수(愁)-비(悲)-고(苦)-우(憂)-뇌(惱)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고(苦)의 영역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세상에서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을 상(常)으로부터 보고, 락(樂)으로부터 보고, 아(我)로부터 보고, 아프지 않음으로부터 보고, 안온(安穩)으로부터 볼 미래의 사문이나 바라문은 누구든지 애(愛)를 늘어나게 할 것이다. 애(愛)를 늘어나게 하는 그들은 재생의 조건을 늘어나게 할 것이다. 재생의 조건을 늘어나게 하는 그들은 고(苦)를 늘어나게 할 것이다. 고(苦)를 늘어나게 하는 그들은 생(生)-노(老)-사(死)-수(愁)-비(悲)-고(苦)-우(憂)-뇌(惱)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고(苦)의 영역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세상에서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을 상(常)으로부터 보고, 락(樂)으로부터 보고, 아(我)로부터 보고, 아프지 않음으로부터 보고, 안온(安穩)으로부터 보는 현재의 사문이나 바라문은 누구든지 애(愛)를 늘어나게 한다. 애(愛)를 늘어나게 하는 그들은 재생의 조건을 늘어나게 한다. 재생의 조건을 늘어나게 하는 그들은 고(苦)를 늘어나게 한다. 고(苦)를 늘어나게 하는 그들은 생(生)-노(老)-사(死)-수(愁)-비(悲)-고(苦)-우(憂)-뇌(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고(苦)의 영역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고 나는 말한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색깔도 갖추고 냄새도 갖추고 맛도 갖춘 마실 것이 담긴 잔이 있는데, 독이 섞인 것이다. 그런데 열기에 압도되고 열기에 고통받아 피곤하고 두렵고 목마른 사람이 올 것이다. 그런 그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 ‘이것 보세요, 이것은 색깔도 갖추고 냄새도 갖추고 맛도 갖춘 마실 것이 담긴 잔인데, 독이 섞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원한다면 마셔도 좋습니다. 그대가 이것을 마실 때 색깔도 냄새도 맛도 기쁨을 줄 것이고, 마신 뒤에는 그것 때문에 죽거나 죽음만큼의 고통을 당할 것입니다.’라고. 그는 그 마실 것이 담긴 잔을 서둘러서 가늠하지 않고 마실 것이다.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그것 때문에 죽거나 죽음만큼의 고통을 당할 것이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세상에서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을 … 과거의 사문이나 바라문은 누구든지 … 미래의 … 세상에서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을 상(常)으로부터 보고, 락(樂)으로부터 보고, 아(我)로부터 보고, 아프지 않음으로부터 보고, 안온(安穩)으로부터 보는 현재의 사문이나 바라문은 누구든지 애(愛)를 늘어나게 한다. 애(愛)를 늘어나게 하는 그들은 재생의 조건을 늘어나게 한다. 재생의 조건을 늘어나게 하는 그들은 고(苦)를 늘어나게 한다. 고(苦)를 늘어나게 하는 그들은 생(生)-노(老)-사(死)-수(愁)-비(悲)-고(苦)-우(憂)-뇌(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고(苦)의 영역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세상에서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을 무상(無常)으로부터 보고, 고(苦)로부터 보고, 무아(無我)로부터 보고, 아픔으로부터 보고, 두려움으로부터 보았던 과거의 사문이나 바라문은 누구든지 애(愛)를 버렸다. 애(愛)를 버린 그들은 재생의 조건을 버렸다. 재생의 조건을 버린 그들은 고(苦)를 버렸다. 고(苦)를 버린 그들은 생(生)-노(老)-사(死)-수(愁)-비(悲)-고(苦)-우(憂)-뇌(惱)에서 벗어났다. 고(苦)의 영역으로부터 벗어났다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세상에서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을 무상(無常)으로부터 보고, 고(苦)로부터 보고, 무아(無我)로부터 보고, 아픔으로부터 보고, 두려움으로부터 볼 미래의 사문이나 바라문은 누구든지 애(愛)를 버릴 것이다. 애(愛)를 버릴 그들은 재생의 조건을 버릴 것이다. 재생의 조건을 버릴 그들은 고(苦)를 버릴 것이다. 고(苦)를 버릴 그들은 생(生)-노(老)-사(死)-수(愁)-비(悲)-고(苦)-우(憂)-뇌(惱)에서 벗어날 것이다. 고(苦)의 영역으로부터 벗어날 것이라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세상에서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을 무상(無常)으로부터 보고, 고(苦)로부터 보고, 무아(無我)로부터 보고, 아픔으로부터 보고, 두려움으로부터 보는 현재의 사문이나 바라문은 누구든지 애(愛)를 버린다. 애(愛)를 버리는 그들은 재생의 조건을 버린다. 재생의 조건을 버리는 그들은 고(苦)를 버린다. 고(苦)를 버리는 그들은 생(生)-노(老)-사(死)-수(愁)-비(悲)-고(苦)-우(憂)-뇌(惱)에서 벗어난다. 고(苦)의 영역으로부터 벗어난다고 나는 말한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색깔도 갖추고 냄새도 갖추고 맛도 갖춘 마실 것이 담긴 잔이 있는데, 독이 섞인 것이다. 그런데 열기에 압도되고 열기에 고통받아 피곤하고 두렵고 목마른 사람이 올 것이다. 그런 그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 ‘이것 보세요, 이것은 색깔도 갖추고 냄새도 갖추고 맛도 갖춘 마실 것이 담긴 잔인데, 독이 섞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원한다면 마셔도 좋습니다. 그대가 이것을 마실 때 색깔도 냄새도 맛도 기쁨을 줄 것이고, 마신 뒤에는 그것 때문에 죽거나 죽음만큼의 고통을 당할 것입니다.’라고. 그러나 비구들이여, 그 사람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 ‘나는 이 갈증을 물로 해소하거나, 응유로 해소하거나, 구운 소금으로 해소할 수 있다. 그러니 나는 이것을 마시지 않아야겠다. 그것이 나에게 오랫동안 이익과 행복을 위한 것이다.’라고. 그는 마실 것이 담긴 그 잔을 가늠을 통해 마시지 않을 것이다. 포기할 것이다. 그는 그것 때문에 죽거나 죽음만큼의 고통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세상에서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을 무상(無常)으로부터 보고, 고(苦)로부터 보고, 무아(無我)로부터 보고, 아픔으로부터 보고, 두려움으로부터 보았던 과거의 사문이나 바라문은 누구든지 애(愛)를 버렸다. 애(愛)를 버린 그들은 재생의 조건을 버렸다. 재생의 조건을 버린 그들은 고(苦)를 버렸다. 고(苦)를 버린 그들은 생(生)-노(老)-사(死)-수(愁)-비(悲)-고(苦)-우(憂)-뇌(惱)에서 벗어났다. 고(苦)의 영역으로부터 벗어났다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세상에서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을 무상(無常)으로부터 보고, 고(苦)로부터 보고, 무아(無我)로부터 보고, 아픔으로부터 보고, 두려움으로부터 볼 미래의 사문이나 바라문은 … 세상에서 마음을 끌고 즐거운 것을 무상(無常)으로부터 보고, 고(苦)로부터 보고, 무아(無我)로부터 보고, 아픔으로부터 보고, 두려움으로부터 보는 현재의 사문이나 바라문은 누구든지 애(愛)를 버린다. 애(愛)를 버리는 그들은 재생의 조건을 버린다. 재생의 조건을 버리는 그들은 고(苦)를 버린다. 고(苦)를 버리는 그들은 생(生)-노(老)-사(死)-수(愁)-비(悲)-고(苦)-우(憂)-뇌(惱)에서 벗어난다. 고(苦)의 영역으로부터 벗어난다고 나는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