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kosambisuttaṃ (SN 12.68-꼬삼비 경)
7. mahāvaggo, 8. kosambisuttaṃ (SN 12.68-꼬삼비 경)
한때 무실라 존자와 빠윗타 존자와 나라다 존자와 아난다 존자가 꼬삼비에서 고시따 사원에 머물렀다. 그때 빠윗타 존자가 무실라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 “도반 무실라여, 믿음과 다른 곳, 성향과 다른 곳, 전승과 다른 곳, 온전한 생각 떠오름의 출현과 다른 곳, 견해와 통찰의 지속과 다른 곳에 무실라 존자에게 ‘생(生)을 조건으로 노사(老死)가 있다.’라는 개별적 앎이 있습니까?”라고. “도반 빠윗타여, 믿음과 다른 곳, 성향과 다른 곳, 전승과 다른 곳, 온전한 생각 떠오름의 출현과 다른 곳, 견해와 통찰의 지속과 다른 곳에서 나는 ‘생을 조건으로 노사가 있다.’라는 것을 알고 봅니다.”
“도반 무실라여, 믿음과 다른 곳, 성향과 다른 곳, 전승과 다른 곳, 온전한 생각 떠오름의 출현과 다른 곳, 견해와 통찰의 지속과 다른 곳에 무실라 존자에게 ‘유(有)를 조건으로 생(生)이 있다.’라는 개별적 앎이 있습니까?”라고 … 취(取)를 조건으로 유(有)가 있다 … 애(愛)를 조건으로 취(取)가 있다 … 수(受)를 조건으로 애(愛)가 있다 … 촉(觸)을 조건으로 수(受)가 있다 … 육입(六入)을 조건으로 촉(觸)이 있다 … 명색(名色)을 조건으로 육입(六入)이 있다 … 식(識)을 조건으로 명색(名色)이 있다 … 행(行)들을 조건으로 식(識)이 있다 … 무명(無明)을 조건으로 행(行)들이 있다.’라는 개별적 앎이 있습니까?”라고. “도반 빠윗타여, 믿음과 다른 곳, 성향과 다른 곳, 전승과 다른 곳, 온전한 생각 떠오름의 출현과 다른 곳, 견해와 통찰의 지속과 다른 곳에서 나는 ‘무명을 조건으로 행들이 있다.’라는 것을 알고 봅니다.”
“도반 무실라여, 믿음과 다른 곳, 성향과 다른 곳, 전승과 다른 곳, 온전한 생각 떠오름의 출현과 다른 곳, 견해와 통찰의 지속과 다른 곳에 무실라 존자에게 ‘생이 소멸할 때 노사가 소멸한다.’라는 개별적 앎이 있습니까?”라고. “도반 빠윗타여, 믿음과 다른 곳, 성향과 다른 곳, 전승과 다른 곳, 온전한 생각 떠오름의 출현과 다른 곳, 견해와 통찰의 지속과 다른 곳에서 나는 ‘생이 소멸할 때 노사가 소멸한다.’라는 것을 알고 봅니다.”
“도반 무실라여, 믿음과 다른 곳, 성향과 다른 곳, 전승과 다른 곳, 온전한 생각 떠오름의 출현과 다른 곳, 견해와 통찰의 지속과 다른 곳에 무실라 존자에게 ‘유가 소멸할 때 생이 소멸한다.’라는 개별적 앎이 있습니까?”라고 … 취가 소멸할 때 유가 소멸한다 … 애가 소멸할 때 취가 소멸한다 … 수가 소멸할 때 애가 소멸한다 … 촉이 소멸할 때 수가 소멸한다 … 육입이 소멸할 때 촉이 소멸한다 … 명색이 소멸할 때 육입이 소멸한다 … 식이 소멸할 때 명색이 소멸한다 … 행들이 소멸할 때 식이 소멸한다 … 무명이 소멸할 때 행들이 소멸한다.’라는 개별적 앎이 있습니까?”라고. “도반 빠윗타여, 믿음과 다른 곳, 성향과 다른 곳, 전승과 다른 곳, 온전한 생각 떠오름의 출현과 다른 곳, 견해와 통찰의 지속과 다른 곳에서 나는 ‘무명이 소멸할 때 행들이 소멸한다.’라는 것을 알고 봅니다.”
“도반 무실라여, 믿음과 다른 곳, 성향과 다른 곳, 전승과 다른 곳, 온전한 생각 떠오름의 출현과 다른 곳, 견해와 통찰의 지속과 다른 곳에 무실라 존자에게 ‘유(有)의 소멸이 열반이다.’라는 개별적 앎이 있습니까?”라고. “도반 빠윗타여, 믿음과 다른 곳, 성향과 다른 곳, 전승과 다른 곳, 온전한 생각 떠오름의 출현과 다른 곳, 견해와 통찰의 지속과 다른 곳에서 나는 ‘유의 소멸이 열반이다.’라는 것을 알고 봅니다.”
“그런 앎과 봄에 의해 무실라 존자는 번뇌 다한 아라한입니까?” 이렇게 말했을 때, 무실라 존자는 침묵했다. 그러자 나라다 존자가 빠윗타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 “훌륭합니다, 도반 빠윗타여, 내가 이 질문에 답하겠습니다. 나에게 이 질문을 해 주십시오. 내가 그대에게 이 질문에 대해 말하겠습니다.” “나라다 존자는 이 질문에 답하십시오. 나는 나라다 존자에게 이 질문을 하겠습니다. 나라다 존자가 나에게 이 질문에 대해 말해 주십시오.”
“도반 나라다여, 믿음과 다른 곳, 성향과 다른 곳, 전승과 다른 곳, 온전한 생각 떠오름의 출현과 다른 곳, 견해와 통찰의 지속과 다른 곳에 나라다 존자에게 ‘생을 조건으로 노사가 있다.’라는 개별적 앎이 있습니까?”라고. “도반 빠윗타여, 믿음과 다른 곳, 성향과 다른 곳, 전승과 다른 곳, 온전한 생각 떠오름의 출현과 다른 곳, 견해와 통찰의 지속과 다른 곳에서 나는 ‘생을 조건으로 노사가 있다.’라는 것을 알고 봅니다.”
“도반 나라다여, 믿음과 다른 곳, 성향과 다른 곳, 전승과 다른 곳, 온전한 생각 떠오름의 출현과 다른 곳, 견해와 통찰의 지속과 다른 곳에 나라다 존자에게 ‘유를 조건으로 생이 있다.’라는 개별적 앎이 있습니까?”라고 … 취를 조건으로 유가 있다 … 애를 조건으로 취가 있다 … 수를 조건으로 애가 있다 … 촉을 조건으로 수가 있다 … 육입을 조건으로 촉이 있다 … 명색을 조건으로 육입이 있다 … 식을 조건으로 명색이 있다 … 행들을 조건으로 식이 있다 … 무명을 조건으로 행들이 있다.’라는 개별적 앎이 있습니까?”라고. “도반 빠윗타여, 믿음과 다른 곳, 성향과 다른 곳, 전승과 다른 곳, 온전한 생각 떠오름의 출현과 다른 곳, 견해와 통찰의 지속과 다른 곳에서 나는 ‘무명을 조건으로 행들이 있다.’라는 것을 알고 봅니다.”
“도반 나라다여, 믿음과 다른 곳, 성향과 다른 곳, 전승과 다른 곳, 온전한 생각 떠오름의 출현과 다른 곳, 견해와 통찰의 지속과 다른 곳에 나라다 존자에게 ‘생이 소멸할 때 노사가 소멸한다.’라는 개별적 앎이 있습니까?”라고. “도반 빠윗타여, 믿음과 다른 곳, 성향과 다른 곳, 전승과 다른 곳, 온전한 생각 떠오름의 출현과 다른 곳, 견해와 통찰의 지속과 다른 곳에서 나는 ‘생이 소멸할 때 노사가 소멸한다.’라는 것을 알고 봅니다.”
“도반 나라다여, 믿음과 다른 곳, 성향과 다른 곳, 전승과 다른 곳, 온전한 생각 떠오름의 출현과 다른 곳, 견해와 통찰의 지속과 다른 곳에 나라다 존자에게 ‘유가 소멸할 때 생이 소멸한다.’라는 개별적 앎이 있습니까?”라고 … 취가 소멸할 때 유가 소멸한다 … 애가 소멸할 때 취가 소멸한다 … 수가 소멸할 때 애가 소멸한다 … 촉이 소멸할 때 수가 소멸한다 … 육입이 소멸할 때 촉이 소멸한다 … 명색이 소멸할 때 육입이 소멸한다 … 식이 소멸할 때 명색이 소멸한다 … 행들이 소멸할 때 식이 소멸한다 … 무명이 소멸할 때 행들이 소멸한다.’라는 개별적 앎이 있습니까?”라고. “도반 빠윗타여, 믿음과 다른 곳, 성향과 다른 곳, 전승과 다른 곳, 온전한 생각 떠오름의 출현과 다른 곳, 견해와 통찰의 지속과 다른 곳에서 나는 ‘무명이 소멸할 때 행들이 소멸한다.’라는 것을 알고 봅니다.”
“도반 나라다여, 믿음과 다른 곳, 성향과 다른 곳, 전승과 다른 곳, 온전한 생각 떠오름의 출현과 다른 곳, 견해와 통찰의 지속과 다른 곳에 나라다 존자에게 ‘유의 소멸이 열반이다.’라는 개별적 앎이 있습니까?”라고. “도반 빠윗타여, 믿음과 다른 곳, 성향과 다른 곳, 전승과 다른 곳, 온전한 생각 떠오름의 출현과 다른 곳, 견해와 통찰의 지속과 다른 곳에서 나는 ‘유의 소멸이 열반이다.’라는 것을 알고 봅니다.”
“그런 앎과 봄에 의해 나라다 존자는 번뇌 다한 아라한입니까?” “‘유의 소멸이 열반이다.’라고, 도반이여, 나는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써 잘 봅니다. 그러나 나는 번뇌 다한 아라한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도반이여, 버려진 길에 우물이 있습니다. 거기에 줄도 없고 두레박도 없습니다. 그런데 열기에 압도되고 열기에 고통받아 피곤하고 두렵고 목마른 사람이 올 것이고, 그 물을 볼 것입니다. 그에게 ‘물이 있다’라는 앎이 생기겠지만 그 물을 몸으로 닿아 머물지 못할 것입니다. 이처럼, 도반이여, ‘유의 소멸이 열반이다.’라고, 도반이여,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써 잘 봅니다. 그러나 나는 번뇌 다한 아라한이 아닙니다.”
이렇게 말했을 때, 아난다 존자가 빠윗따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 “도반 빠윗타여, 이렇게 말하는 그대는 나라다 존자에게 무엇을 말하겠습니까?” “도반 아난다여, 이렇게 말하는 나는 나라다 존자에게 선(善)과 다른 곳, 유익(有益)과 다른 곳에서 말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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