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avijjāpaccayasuttaṃ (SN 12.35-무명(無明)의 조건 경)
4. kaḷārakhattiyavaggo, 5. avijjāpaccayasuttaṃ (SN 12.35-무명(無明)의 조건 경)
사왓티에 머물렀다. … “비구들이여, 무명(無明)을 조건으로 행(行)들이 있고, 행(行)들을 조건으로 식(識)이 있고, … 이렇게 이 모든 괴로움 무더기가 자라난다.”라고. 이렇게 말하자 어떤 비구가 세존에게 이렇게 말했다. ― “대덕이시여, 무엇이 노사(老死)이고, 누구에게 이 노사가 있습니까?”라고.
“적절한 질문이 아니다.”라고 세존은 말했다. “비구여, 어떤 사람은 ‘무엇이 노사이고, 누구에게 이 노사가 있습니까?’라고 이렇게 말할 것이고, 비구여, 어떤 사람은 ‘다른 것이 노사이고 다른 사람에게 이 노사가 있다(늙고 죽는다는 것과 늙고 죽는 자와는 서로 다르다).’라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두 가지는 뜻에서는 하나고 단지 표현만 다른 것이다. 비구여, ‘그 생명이 그 몸이다.’라는 견해가 있을 때 범행의 삶은 없다. 또는, 비구여, ‘다른 생명과 다른 몸이다.’라는 견해가 있을 때 범행의 삶은 없다. 비구여, 이런 두 끝에 접근하지 않고 여래는 그대에게 중(中)에 의한 법을 설한다. ― ‘생을 조건으로 노사가 있다.’라고.”
“대덕이시여, 무엇이 생(生)이고, 누구에게 이 생이 있습니까?”라고. “적절한 질문이 아니다.”라고 세존은 말했다. “비구여, 어떤 사람은 ‘무엇이 생이고, 누구에게 이 생이 있습니까?’라고 이렇게 말할 것이고, 비구여, 어떤 사람은 ‘다른 것이 생이고 다른 사람에게 이 생이 있다.’라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두 가지는 뜻에서는 하나고 단지 표현만 다른 것이다. 비구여, ‘그 생명이 그 몸이다.’라는 견해가 있을 때 범행의 삶은 없다. 또는, 비구여, ‘다른 생명과 다른 몸이다.’라는 견해가 있을 때 범행의 삶은 없다. 비구여, 이런 두 끝에게 접근하지 않고 여래는 그대에게 중(中)에 의한 법을 설한다. ― ‘유(有)를 조건으로 생이 있다.’라고.”
“대덕이시여, 무엇이 유(有)이고, 누구에게 이 유가 있습니까?”라고. “적절한 질문이 아니다.”라고 세존은 말했다. “비구여, 어떤 사람은 ‘무엇이 유이고, 누구에게 이 유가 있습니까?’라고 이렇게 말할 것이고, 비구여, 어떤 사람은 ‘다른 것이 유이고 다른 사람에게 이 유가 있다.’라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두 가지는 뜻에서는 하나고 단지 표현만 다른 것이다. 비구여, ‘그 생명이 그 몸이다.’라는 견해가 있을 때 범행의 삶은 없다. 또는, 비구여, ‘다른 생명과 다른 몸이다.’라는 견해가 있을 때 범행의 삶은 없다. 비구여, 이런 두 끝에게 접근하지 않고 여래는 그대에게 중(中)에 의한 법을 설한다. ― ‘취(取)를 조건으로 유(有)가 있다.’라고. … ‘애(愛)를 조건으로 취가 있다.’라고. … ‘수(受)를 조건부터 애가 있다.’라고. … ‘촉(觸)을 조건으로 수가 있다.’라고. … ‘육입(六入)을 조건으로 촉이 있다.’라고. … ‘명색(名色)을 조건으로 육입이 있다.’라고. … ‘식(識)을 조건으로 명색이 있다.’라고. … ‘행(行)을 조건으로 식이 있다.’라고.
“대덕이시여, 무엇이 행(行)들이고, 누구에게 이 행들이 있습니까?”라고. “적절한 질문이 아니다.”라고 세존은 말했다. “비구여, 어떤 사람은 ‘무엇이 행들이고, 누구에게 이 행들이 있습니까?’라고 이렇게 말할 것이고, 비구여, 어떤 사람은 ‘다른 것이 행들이고 다른 사람에게 이 행들이 있다.’라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두 가지는 뜻에서는 하나고 단지 표현만 다른 것이다. 비구여, ‘그 생명이 그 몸이다.’라는 견해가 있을 때 범행의 삶은 없다. 또는, 비구여, ‘다른 생명과 다른 몸이다.’라는 견해가 있을 때 범행의 삶은 없다. 비구여, 이런 두 끝에 접근하지 않고 여래는 그대에게 중(中)에 의한 법을 설한다. ― ‘무명(無明)을 조건으로 행들이 있다.’라고.
그러나 비구여, 무명이 남김없이 바래어 소멸할 때 ‘무엇이 노사이고, 누구에게 이 노사가 있습니까?’라거나, ‘다른 것이 노사이고 다른 사람에게 이 노사가 있다’라거나, ‘그 생명이 그 몸이다.’라거나, ‘다른 생명과 다른 몸이다.’라거나 어떤 것이든 왜곡됨, 침착하지 못함, 몸부림침은 모두 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생겨나지 않는 상태가 된다.
그리고 비구여, 무명이 남김없이 바래어 소멸할 때 ‘무엇이 생이고, 누구에게 이 생이 있습니까?’라거나, ‘다른 것이 생이고 다른 사람에게 이 생이 있다.’라거나, ‘그 생명이 그 몸이다.’라거나, ‘다른 생명과 다른 몸이다.’라거나 어떤 것이든 왜곡됨, 침착하지 못함, 몸부림침은 모두 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생겨나지 않는 상태가 된다.
그리고 비구여, 무명이 남김없이 바래어 소멸할 때 ‘무엇이 유이고, … 무엇이 취이고 … 무엇이 애이고, … 무엇이 수이고 … 무엇이 촉이고 … 무엇이 육입이고 … 무엇이 명색이고 … 무엇이 식이고 …
그리고 비구여, 무명이 남김없이 바래어 소멸할 때 ‘무엇이 행들이고, 누구에게 이 행들이 있습니까?’라거나, ‘다른 것이 행들이고 다른 사람에게 이 행들이 있다.’라거나, ‘그 생명이 그 몸이다.’라거나, ‘다른 생명과 다른 몸이다.’라거나 어떤 것이든 왜곡됨, 침착하지 못함, 몸부림침은 모두 버려지고 뿌리 뽑히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되고 존재하지 않게 되고 미래에 생겨나지 않는 상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