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vāsijaṭasuttaṃ (SN 22.101-도끼자루 경)
10. pupphavaggo, 9. vāsijaṭasuttaṃ (SN 22.101-도끼자루 경)
사왓티에서 설해짐. “비구들이여, 알고 보는 자에게 번뇌들의 부서짐을 나는 말한다.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자에게가 아니다. 비구들이여, 무엇을 알고 무엇을 보는 자에게 번뇌들의 부서짐이 있는가? ‘이렇게 색(色)이 있고, 이렇게 색(色)의 자라남이 있고, 이렇게 색(色)의 줄어듦이 있다. 이렇게 수(受)가 있고, 이렇게 수(受)의 자라남이 있고, 이렇게 수(受)의 줄어듦이 있다. 이렇게 상(想)이 있고, 이렇게 상(想)의 자라남이 있고, 이렇게 상(想)의 줄어듦이 있다. 이렇게 행(行)들이 있고, 이렇게 행(行)들의 자라남이 있고, 이렇게 행(行)들의 줄어듦이 있다 이렇게 식(識)이 있고, 이렇게 식(識)의 자라남이 있고, 이렇게 식(識)의 줄어듦이 있다.’라고, 비구들이여,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는 자에게 번뇌들의 부서짐이 있다.”
비구들이여, 수행을 실천하며 머물지 않는 비구에게 ‘참으로 나에게 집착하지 않음을 원인으로 번뇌들로부터 심(心)이 해탈하기를!’이라는 바람이 일어날지라도 집착하지 않음을 원인으로 번뇌들로부터 심(心)이 해탈하지 않는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수행되지 않았음’이라고 말해야 한다. 무엇이 수행되지 않았는가? 사념처(四念處)가 수행되지 않았고, 사정근(四正勤)이 수행되지 않았고, 사여의족(四如意足)이 수행되지 않았고, 오근(五根)이 수행되지 않았고, 오력(五力)이 수행되지 않았고, 칠각지(七覺支)가 수행되지 않았고, 팔정도(八正道)가 수행되지 않았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암탉에게 여덟 또는 열 또는 열두 개의 알이 있다. 그것들은 암탉에 의해 바르게 품어지지 못하고, 바르게 열을 받지 못하고, 바르게 다루어지지 못할 것이다. 그 암탉에게 ‘참으로 나의 병아리들이 발톱 끝이나 부리로 알의 껍질을 깨고 안전하게 태어나기를!’이라는 원함이 생길지라도 그 병아리들이 발톱 끝이나 부리로 알의 껍질을 깨고 안전하게 태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거기서, 비구들이여, 암탉에게 여덟 또는 열 또는 열두 개의 알이 있다. 그것들은 암탉에 의해 바르게 품어지지 못하고, 바르게 열을 받지 못하고, 바르게 다루어지지 못했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수행을 실천하며 머물지 않는 비구에게 ‘참으로 나에게 집착하지 않음을 원인으로 번뇌들로부터 심(心)이 해탈하기를!’이라는 바람이 일어날지라도 집착하지 않음을 원인으로 번뇌들로부터 심(心)이 해탈하지 않는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수행되지 않았음’이라고 말해야 한다. 무엇이 수행되지 않았는가? 사념처(四念處)가 수행되지 않았고, 사정근(四正勤)이 수행되지 않았고, 사여의족(四如意足)이 수행되지 않았고, 오근(五根)이 수행되지 않았고, 오력(五力)이 수행되지 않았고, 칠각지(七覺支)가 수행되지 않았고, 팔정도(八正道)가 수행되지 않았다.
수행을 실천하며 머무는 비구에게 ‘참으로 나에게 집착하지 않음을 원인으로 번뇌들로부터 심(心)이 해탈하였으면!’이라는 원함이 생기지 않을지라도 집착하지 않음을 원인으로 번뇌들로부터 심(心)이 해탈한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수행되었음’이라고 말해야 한다. 무엇이 수행되었는가? 사념처(四念處)가 수행되었고, 사정근(四正勤)이 수행되었고, 사여의족(四如意足)이 수행되었고, 오근(五根)이 수행되었고, 오력(五力)이 수행되었고, 칠각지(七覺支)가 수행되었고, 팔정도(八正道)가 수행되었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암탉에게 여덟 또는 열 또는 열두 개의 알이 있다. 그것들은 암탉에 의해 바르게 품어지고, 바르게 열을 받고, 바르게 다루어질 것이다. 그 암탉에게 ‘참으로 나의 병아리들이 발톱 끝이나 부리로 알의 껍질을 깨고 안전하게 태어나기를!’이라는 원함이 생기지 않을지라도 그 병아리들이 발톱 끝이나 부리로 알의 껍질을 깨고 안전하게 태어나는 것은 가능하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거기서, 비구들이여, 암탉에게 여덟 또는 열 또는 열두 개의 알이 있다. 그것들은 암탉에 의해 바르게 품어지고, 바르게 열을 받고, 바르게 다루어졌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수행을 실천하며 머무는 비구에게 ‘참으로 나에게 집착하지 않음을 원인으로 번뇌들로부터 심(心)이 해탈하였으면!’이라는 원함이 생기지 않을지라도 집착하지 않음을 원인으로 번뇌들로부터 심(心)이 해탈한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수행되었음’이라고 말해야 한다. 무엇이 수행되었는가? 사념처(四念處)가 수행되었고 … 팔정도(八正道)가 수행되었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석공이나 석공의 제자가 도끼자루를 보면서 손가락 자국들이나 엄지의 흔적을 본다. 그리고 ‘오늘은 이만큼 도끼자루가 닳았다. 어제는 이만큼, 그전에는 이만큼’이라는 앎이 없다. 그러나 닳았을 때 닳았다는 앎이 있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수행을 실천하며 머무는 비구에게 ‘오늘은 이만큼 번뇌가 부서졌다. 어제는 이만큼, 그전에는 이만큼’이라는 앎이 없다 할지라도 그러나 다함에서 다했다는 앎이 있다.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바다를 항해하는 줄기를 엮은 밧줄로 만든 배가 우기 동안 물에서 보낸 뒤에 겨울에 뭍에 닿으면 줄기를 엮은 밧줄들은 바람과 열에 닳아 있다. 우기 동안 비를 맞은 그것들은 쉽게 완화되고, 썩어버린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수행을 실천하며 머무는 비구에게 족쇄들은 쉽게 완화되고 썩어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