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sattaṭṭhānasuttaṃ (SN 22.57-일곱 가지 경우 경)
6. upayavaggo, 5. sattaṭṭhānasuttaṃ (SN 22.57-일곱 가지 경우 경)
사왓티에서 설해짐. “비구들이여, 일곱 가지 경우에 능숙한 비구는 삼중으로 검증하는 자여서 이 법과 율에서 완성된 자, 완전한 자, 최상의 사람이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어떻게 일곱 가지 경우에 능숙한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색(色)을 꿰뚫어 알고, 색의 자라남을 꿰뚫어 알고, 색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색의 소멸로 이끄는 실천을 꿰뚫어 안다. 색의 매력을 꿰뚫어 알고, 색의 위험을 꿰뚫어 알고, 색의 해방을 꿰뚫어 안다. 수(受)를 꿰뚫어 안다. … 상(想)을 … 행(行)들을 … 식(識)을 꿰뚫어 알고, 식의 자라남을 꿰뚫어 알고, 식의 소멸을 꿰뚫어 알고, 식의 소멸로 이끄는 실천을 꿰뚫어 안다. 식의 매력을 꿰뚫어 알고, 식의 위험을 꿰뚫어 알고, 식의 해방을 꿰뚫어 안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색(色)인가? 사대(四大)와 사대조색(四大造色) - 비구들이여, 이것이 색이라고 불린다. 자량의 자라남으로부터 색의 자라남이 있고, 자량의 소멸로부터 색의 소멸이 있다. 오직 이것, 바른 견해 … 바른 삼매의 여덟 요소로 구성된 성스러운 도(道)가 색의 소멸로 이끄는 실천이다.
색(色)을 연(緣)하여 생기는 즐거움과 만족 — 이것이 색의 매력이다. 색이 무상(無常)하고 고(苦)이고 변하는 것이 색의 위험이다. 색에 대한 욕탐(欲貪)의 제어와 욕탐(欲貪)의 버림이 색의 해방이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들이든 바라문들이든 이렇게 색을 실답게 알고, 이렇게 색의 자라남을 실답게 알고, 이렇게 색의 소멸을 실답게 알고, 이렇게 색의 소멸로 이끄는 실천을 실답게 알고, 이렇게 색의 매력을 실답게 알고, 이렇게 색의 위험을 실답게 알고, 이렇게 색의 해방을 실답게 안 뒤에 색의 염오와 이탐과 소멸을 위해 실천하는 자들은 잘 실천하는 자들이다. 잘 실천하는 자들은 이 법과 율에서 확고히 선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들이든 바라문들이든 이렇게 색을 실답게 알고, 이렇게 색의 자라남을 실답게 알고, 이렇게 색의 소멸을 실답게 알고, 이렇게 색의 소멸로 이끄는 실천을 실답게 알고, 이렇게 색의 매력을 실답게 알고, 이렇게 색의 위험을 실답게 알고, 이렇게 색의 해방을 실답게 안 뒤에 색의 염오와 이탐과 소멸로부터 집착 없이 해탈한 자들은 잘 해탈한 자들이다. 잘 해탈한 자들은 완전히 성취한 아라한이고, 완전히 성취한 아라한들에게 윤회의 선언은 없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수(受)인가?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수(受)의 무리가 있나니 안촉(眼觸)에서 생긴 수, 이촉(耳觸)에서 생긴 수, 비촉(鼻觸)에서 생긴 수, 설촉(舌觸)에서 생긴 수, 신촉(身觸)에서 생긴 수, 의촉(意觸)에서 생긴 수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수라고 불린다. 촉(觸)의 자라남으로부터 수의 자라남이 있고 촉의 소멸로부터 수의 소멸이 있다. 오직 이것, 바른 견해 … 바른 삼매의 여덟 요소로 구성된 성스러운 도(道)가 색의 소멸로 이끄는 실천이다.
수(受)를 연(緣)하여 생기는 즐거움과 만족 — 이것이 수의 매력이다. 수가 무상하고 고이고 변하는 것이 수의 위험이다. 수에 대한 욕탐(欲貪)의 제어와 욕탐(欲貪)의 버림이 수의 해방이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들이든 바라문들이든 이렇게 수를 실답게 알고, 이렇게 수의 자라남을 실답게 알고, 이렇게 수의 소멸을 실답게 알고, 이렇게 수의 소멸로 이끄는 실천을 실답게 알고, 이렇게 수의 매력을 실답게 알고, 이렇게 수의 위험을 실답게 알고, 이렇게 수의 해방을 실답게 안 뒤에 수의 염오와 이탐과 소멸을 위해 실천하는 자들은 잘 실천하는 자들이다. 잘 실천하는 자들은 이 법과 율에서 확고히 선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들이든 바라문들이든 이렇게 수를 실답게 알고, … 윤회의 선언은 없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상(想)인가?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상(想)의 무리가 있나니 색상(色想), 성상(聲想), 향상(香想), 미상(味想), 촉상(觸想), 법상(法想)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상이라고 불린다. 촉의 자라남으로부터 상의 자라남이 있고 촉의 소멸로부터 상의 소멸이 있다. 오직 이것, 바른 견해 … 바른 삼매의 여덟 요소로 구성된 성스러운 도(道)가 색의 소멸로 이끄는 실천이다. … 윤회의 선언은 없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행(行)들인가?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사(思)의 무리가 있나니 색사(色思), 성사(聲思), 향사(香思), 미사(味思), 촉사(觸思), 법사(法思)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행들이라고 불린다. 촉의 자라남으로부터 행의 자라남이 있고 촉의 소멸로부터 행의 소멸이 있다. 오직 이것, 바른 견해 … 바른 삼매의 여덟 요소로 구성된 성스러운 도(道)가 색의 소멸로 이끄는 실천이다.
행(行)들을 연(緣)하여 생기는 즐거움과 만족 — 이것이 행들의 매력이다. 행들이 무상하고 고이고 변하는 것이 행들의 위험이다. 행들에 대한 욕탐(欲貪)의 제어와 욕탐(欲貪)의 버림이 행들의 해방이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들이든 바라문들이든 이렇게 행들을 실답게 알고, 이렇게 행들의 자라남을 실답게 알고, 이렇게 행들의 소멸을 실답게 알고, 이렇게 행들의 소멸로 이끄는 실천을 실답게 알고, … 행들의 염오와 이탐과 소멸을 위해 실천하는 자들은 잘 실천하는 자들이다. 잘 실천하는 자들은 이 법과 율에서 확고히 선다. … 윤회의 선언은 없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식(識)인가?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식(識)의 무리가 있나니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 의식(意識)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식이라고 불린다. 명색(名色)의 자라남으로부터 식의 자라남이 있고 명색의 소멸로부터 식의 소멸이 있다. 오직 이것, 바른 견해 … 바른 삼매의 여덟 요소로 구성된 성스러운 도(道)가 색의 소멸로 이끄는 실천이다.
식(識)을 연(緣)하여 생기는 즐거움과 만족 — 이것이 식의 매력이다. 식이 무상하고 고이고 변하는 것이 식의 위험이다. 식에 대한 욕탐(欲貪)의 제어와 욕탐(欲貪)의 버림이 식의 해방이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들이든 바라문들이든 이렇게 식을 실답게 알고, 이렇게 식의 자라남을 실답게 알고, 이렇게 식의 소멸을 실답게 알고, 이렇게 식의 소멸로 이끄는 실천을 실답게 알고, 이렇게 식의 매력을 실답게 알고, 이렇게 식의 위험을 실답게 알고, 이렇게 식의 해방을 실답게 안 뒤에 식(識)의 염오와 이탐과 소멸을 위해 실천하는 자들은 잘 실천하는 자들이다. 잘 실천하는 자들은 이 법과 율에서 확고히 선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들이든 바라문들이든 이렇게 식을 실답게 알고, 이렇게 식의 자라남을 실답게 알고, 이렇게 식의 소멸을 실답게 알고, 이렇게 식의 소멸로 이끄는 실천을 실답게 알고, 이렇게 식의 매력을 실답게 알고, 이렇게 식의 위험을 실답게 알고, 이렇게 식의 해방을 실답게 안 뒤에 식의 염오와 이탐과 소멸로부터 집착 없이 해탈한 자들은 잘 해탈한 자들이다. 잘 해탈한 자들은 완전히 성취한 아라한이고, 완전히 성취한 아라한들에게 윤회의 선언은 없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렇게 일곱 가지 경우에 능숙하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어떻게 삼중으로 검증하는 자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계(界)로부터 검증한다. 처(處)로부터 검증한다. 연기(緣起)로부터 검증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비구는 삼중으로 검증한다. 비구들이여, 일곱 가지 경우에 능숙한 비구는 삼중으로 검증하는 자여서 이 법과 율에서 완성된 자, 완전한 자, 최상의 사람이라고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