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paṭipadāsuttaṃ (SN 22.44-실천 경)
5. attadīpavaggo, 2. paṭipadāsuttaṃ (SN 22.44-실천 경)
사왓티에서 설해짐.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유신(有身)의 자라남으로 이끄는 실천과 유신의 소멸로 이끄는 실천을 설할 것이다. 그것을 들어라. 비구들이여, 무엇이 유신의 자라남으로 이끄는 실천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성스러운 법에 대해 능숙하지 못하고, 성스러운 법에서 훈련되지 못하고, 고결한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고결한 사람의 법에 대해 능숙하지 못하고, 고결한 사람의 법에서 훈련되지 못한 배우지 못한 범부는 아(我)로부터 색(色)을 관찰한다. 색(色)을 가진 자로서의 아(我)를 관찰하거나, 아(我)에서 색(色)을 관찰하거나, 색(色)에서 아(我)를 관찰한다. 아(我)로부터 수(受)를 … 상(想)을 …행(行)들을 … 아(我)로부터 식(識)을 관찰한다. 식(識)을 가진 자로서의 아(我)를 관찰하거나, 아(我)에서 식(識)을 관찰하거나, 식(識)에서 아(我)를 관찰한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유신의 자라남으로 이끄는 실천, 유신의 자라남으로 이끄는 실천’이라고 불린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이것은 ‘괴로움의 자라남[고집(苦集)]으로 이끄는 관찰’이라고 불린다. 여기에 이런 의미가 있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유신의 소멸로 이끄는 실천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사람을 만나고, 성스러운 법에 대해 능숙하고, 성스러운 법에서 훈련되고, 고결한 사람을 만나고, 고결한 사람의 법에 대해 능숙하고, 고결한 사람의 법에서 훈련된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아(我)로부터 색(色)을 관찰하지 않는다. 색(色)을 가진 자로서의 아(我)를 관찰하거나, 아(我)에서 색(色)을 관찰하거나, 색(色)에서 아(我)를 관찰하지 않는다. 아(我)로부터 수(受)를 … 상(想)을 …행(行)들을 … 아(我)로부터 식(識)을 관찰하지 않습니다. 식(識)을 가진 자로서의 아(我)를 관찰하거나, 아(我)에서 식(識)을 관찰하거나, 식(識)에서 아(我)를 관찰하지 않는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유신의 소멸로 이끄는 실천, 유신의 소멸로 이끄는 실천’이라고 불린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고멸(苦滅)]로 이끄는 관찰’이라고 불린다. 여기에 이런 의미가 있다.